당진 소난지도 의병총(唐津 小蘭芝島 義兵塚)
소재지 : 충청남도 당진시 석문면 난지도리 373-2 소난지도 둠바벌
문화재 지정 일시 : 2017년 10월 23일, 2021년 11월 19일
정의 : 충청남도 당진시 석문면 소난지도에 조성된 근대 개항기 항일 의병총.
개설
한말 의병 항쟁은 1905년 을사늑약이 강제 체결되고, 1907년 광무 황제의 강제 퇴위와 대한제국의 군대가 해산되면서 더욱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당진시 석문면 소난지도는 조선 시대 조운로의 중간 기착지(寄着地)로 식량을 탈취할 수 있는 요충지였다. 의병들은 소난지도를 근거지로 삼고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였고, 일본 경찰은 의병 활동을 진압하기 위하여 1908년 3월 15일 소난지도를 급습하였다. 의병들은 일본 경찰에 맞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지만, 대부분 무참하게 전사하고 말았다. 그 후 주민들은 의병의 시신을 수습하여 의병총을 만들어 장례를 지냈고, 현재까지 순국한 의병을 기리는 행사를 진행해 오고 있다.
변천
1908년 소난지도 의병 항쟁 이후 의병의 시신들은 방치되었고, 석문면 해안가까지 밀려왔다. 이에 소난지도 주민들은 의병의 시신을 수습해 소난지도 동쪽의 둠바벌에 안장하고 봉분을 조성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봉분도 바닷물에 씻겨 사라져 갔고, 유골도 드러나 흩어졌다. 간혹 몰지각한 사람들은 사람의 유골이 약재에 쓰인다는 미신을 믿고 의병총을 도굴하기도 하였다.
당진 소난지도 의병총은 1970년에 들어서 재조명되었다. 의병총의 멸실을 걱정하던 석문 중학교 신이균 이사장과 김부영 교장이 현지를 답사하고 1973년부터 의병총을 보수하고 정화 작업을 추진하였다. 1980년 6월에는 소난지도 의병총 건립 추진 위원회를 구성했고 교사와 학생들로부터 성금도 모았다. 1982년 5월에는 국사 편찬 위원회 및 충청남도 문화재 위원회에 고증과 비문을 의뢰, 6월에 두 위원회로부터 비석의 문안을 받아 충청남도 도지사가 찬(撰)한 원문으로 비문을 새겼다.
1982년 8월에는 당진 군수, 당진 교육장, 국회 위원, 홍성 보훈 지청장 등의 내빈들이 참여한 가운데 의병총비를 건립했다. 그 후 석문 중학교 교직원 및 학생 대표들은 매년 현충일을 기하여 의병총에 참배하고 정화 작업을 진행하였다. 추모제는 1987년부터 석문면과 석문면 번영회가 주관해 봉행했으며, 소난지도 의병 항쟁 기념 사업회는 1997년 5월 발족했다. 사업회는 의병 항쟁의 역사적 고증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그 결과 2003년 11월 20일 충남 대학교에서 학술 대회를 개최하여 정식으로 학계에 보고했다.
이러한 노력을 바탕으로 2009년 9월 22일 현충 시설로 지정되었으며, 2017년 10월 23일에는 국가등록문화재 제692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국가등록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당진시와 소난지도 의병 항쟁 기념사업회에서는 매년 6월 1일 ‘의병의 날’을 기념해 추모식을 거행하고 호국의 얼을 기리고 있다.
형태
당진 소난지도 의병총은 평범한 일반인의 묘소보다 약간 큰 규모로 조성되었다. 의병총의 하부는 대리석으로 둘레돌을 쌓고 그 위에 봉분을 썼다. 의병총 외곽에는 담을 쌓아 바람을 막도록 하였고, 의병총 정중앙 앞에는 상석(床石)을 놓고 그 앞에 ‘의병총(義兵塚)’이라는 비석을 세웠다. 비석은 자연석을 쌓고 콘크리트 처리를 한 뒤에 화강석 기단을 얹었다. 비신(碑身)[비문을 새긴 비석의 몸체]은 기단 위에 오석으로 세웠고, 비신 위에는 지붕돌을 올렸다. 비석의 전체 높이는 약 210~230㎝ 정도이다.
금석문
당진 소난지도 의병총 비석 전면에는 ‘의병총(義兵塚)’이라 썼다. 비석의 뒷면에는 ‘이곳은 1907년 을사조약에 반거를 들고 국권을 수복하고자 왜군과 싸우다 장렬히 순국하신 홍일초 휘하 150여 의병이 고이 잠들어 있는 곳으로 그 거룩한 님들의 넋을 기리고 후세 영원토록 지켜갈 교리로 삼고자 이곳에 비를 세우다. 1982년 8월 5일 석문 중학교 교직원 및 학생 일동’이라 새겼다.
현황
충청남도 당진시에서는 의병총 주변의 토지인 석문면 난지도리 373-7번지 일대에 2009년 추모탑을 건립하였고 추모 공원으로 확장하였다. 이로써 소난지도 의병 항쟁과 관련한 추모 행사를 충분히 치를 수 있도록 하였다.
의의와 평가
당진 소난지도 의병총은 1908년 소난지도를 중심으로 활약한 의병의 시신을 수습해 조성한 묘소이다. 이들은 대부분 성명이 알려지지 못한 무명 의병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일제 침략에 맞서 치열한 항쟁을 전개한 당진 지역 주민의 항일 정신을 극명하게 표현한 것이다. 특히 1900년대 초기에 활발했던 활빈당에서 의병으로, 일제 강점기에는 독립군과 독립 만세 운동으로 계승되는 중요한 거점지라 하겠다.
당진 소난지도 의병총(唐津 小蘭芝島 義兵塚)
위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