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49장 7절 ~ 11절
O 에돔에 관하여 만군의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테만에 더 이상 지혜가 없느냐? 분별 있는 사람으로부터 계략이 없어졌느냐? 그들의 지혜가 사라졌느냐? 7)
Concerning Edom, thus saith the LORD of hosts; Is wisdom no more in Teman? is counsel perished from the prudent? is their wisdom vanished? 7)
prudent ① 신중한 ② 분별 있는 ③ 빈틈 없는
테만 또는 데만은 에돔의 대표도시 보스라의 남쪽에 있는 땅입니다. 모압과 암몬에 이어 에돔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지고 있습니다. 에돔은 모압과 암몬과는 우리에게 의미가 다른 점이 있습니다. 에돔은 지금의 일루미나티의 조상입니다. 그러므로 에돔이 이스라엘을 핍박하였던 일이 다시 우리에게 지금 일어나고 있는 것이고, 에돔을 통하여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해할 수 있으며, 에돔곧 일루미나티가 어떻게 되는 지도 알 수있는 것입니다. 에돔은 에서의 붉은 색의 의미가 있으며 로스차일드가의 상징인 붉은 방패는 자신들이 에서의 후손이라는 것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위 말씀에 나오는 필요한 지혜는 요하난이 가진 지혜와 다른 지혜입니다. 테만인들은 요하난이 가진 지혜는 가졌을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의 일루미나티도 요하난의 지혜를 가졌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필요하지만 가지지 못한 지혜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지혜란 능력이 아니라 가치에 관점을 두어야 합니다. 악하고 사기치고 자신의 뜻을 관철하는 능력이 있는 지혜는 지혜라 부를 수 없는 것입니다. 죄를 짓는 능력의 지혜는 요하난과 같은 세상적인 사람의 지혜로 그들을 멸망으로 이끄는 지혜였습니다. 그러므로 멸망하지 않도록 우리를 지켜주는 지혜는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는 것이 우리를 지켜주는 지혜가 됩니다.
오 드단의 거민들아, 너희는 도피하였다가 돌이켜 깊은 데 거하라. 이는 내가 그를 감찰할 때, 그에게 에서의 재난을 내릴 것임이라. 8)
Flee ye, turn back, dwell deep, O inhabitants of Dedan; for I will bring the calamity of Esau upon him, the time that I will visit him. 8)
드단은 비교적 먼 거리의 도시로 보입니다. 아니면 다른 도시일 수도 있습니다. 어찌되었든 에서, 에돔에 재앙에서 멀리 피하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이전글에서도 밝힌 바대로 하나님의 지금의 이 말씀은 드단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이 말씀을 통하여 어떤 메시지를 주시는 것일까요?
제 생각에는 죄악된 사람들과 분리되는 것이 재앙에서의 구별로 보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와 에돔과 모압과 암몬의 공통점은 죄가 번성한 도시였습니다. 롯이 소돔과 고모라에서 나와야 살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도 죄악된 세상문화안에서 벗어나야 사는 것입니다. 물리적으로도 영적으로도 구별되고 분리되어야 합니다. 물리적으로 그들과 분리되지 않고, 영적으로도 분리되지 않는다면 그들과 다르지 않은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게 됩니다. 죄악된 세상의 문화와 그것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재앙을 받을때 분리되지 못하고 함께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
재작년의 이태원에서 있었던 사건으로 볼 수 있듯이 하나님의 뜻을 아는 사람은 물리적으로나 영적으로나 그 자리에 나아가 어울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백신도 마찬가지로 그들의 속임수와 기만을 느끼는 사람들은 세상의 압력에 그들과 동조하여 타협할 수 없었습니다.
포도를 거두는 자들이 네게 오면 그들이 포도 이삭들을 얼마는 남겨 놓지 않겠느냐? 만일 도둑들이 밤에 들면 그들이 만족할 때까지 파괴하리라. 9)
If grapegatherers come to thee, would they not leave some gleaning grapes? if thieves by night, they will destroy till they have enough. 9)
이것은 하나님의 징계와 사탄의 핍박과의 차이입니다. 사탄의 핍박은 하나님의 허락하에 일어나는 것이지만 그 목적이 우리를 고통을 주려함이고, 하나님의 징계는 포도원 수확자들이 포도를 수확하는 것처럼 정교하고 질서있는 수확이 되는 것입니다. 도둑은 포도원이 자기 것이 아니기 때문에 완전히 파괴되는 것을 개의치 않는 것입니다.
도둑은 오직 도둑질하고 죽이며 멸망시키려고 오지만, 내가 온 것은 양들로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 함이라.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생명을 내어 놓으나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들도 자기 양들이 아니므로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들을 버려 두고 도망치느니라. 그리하여 이리가 양들 채가고 흩어지게 하느니라.
요한복음 10장 10절 11절 12절
하나님은 도둑처럼 약탈하러 오시는 분이 아니고 추수하러 오시는 분이시기에, 우리에게 주어지는 징계와 심판에는 정교한 공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에서를 벗겼고, 내가 그의 비밀스런 자리들을 들춰 냈으니 그가 자신을 숨길 수 없으리라. 그의 씨와 형제와 이웃들이 멸망하였어도 그는 아니라. 10)
But I have made Esau bare, I have uncovered his secret places, and he shall not be able to hide himself: his seed is spoiled, and his brethren, and his neigbours, and he is not. 10)
그러나 내가 에서를 벌거벗기고 그의 은밀한 곳들을 드러내었으니 그가 자신을 숨기지 못하리라. 그의 씨와 그의 형제들과 그의 이웃들이 노략을 당하였은즉 그가 존재하지 아니하느니라.
대저 내가 에서로 적신이 되게 하여 그 비밀한 곳들이 드러나게 하였나니 그가 그 몸을 숨길 수 없을 것이라 그 자손과 형제와 이웃이 멸망하였은즉 그가 없어졌느니라.
흠정역 / 개역개정 예레미야 49장 10절
예레미야 49장 10절의 해석이 흠정역과 개역개정은 같은 의미이지만 말씀보존학회만이 다르게 되어 있습니다. 말씀보존학회의 번역의 의미는 에서의 자손과 형제와 이웃은 멸망하여도 에서만은 남게 된다는 의미로 전달됩니다. 그러나 흠정역 킹제임스와 개역개정은 에서가 그의 자손과 형제와 이웃이 함께 멸망하여서 is not 존재하지 않게 된다는 의미로 전달되고 있습니다. 이 해석은 이 말씀에 이어지는 말씀으로 가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에서는 야곱의 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압과 암몬이라는 이름과 같이 에서는 에돔민족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에서가 남는 것은 에돔민족의 정체성이 남아서 이어지는 것을 의미하고, 에서가 존재하지 않게 됨은 에돔민족의 정체성이 사라지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해석의 차이가 말씀보존학회와 흠정역, 개역개정과의 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에서의 자손과 형제와 이웃은 이스라엘과 암몬과 모압이라고 볼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말씀보존학회의 번역이 틀렸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다른 민족과 달리 에서(에돔민족)의 정체성이 현재까지도 일루미나티로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암몬과 모압과 에돔과 이스라엘이 모두 멸망을 당하였으나 그중에서 암몬과 모압은 그의 정체성을 잃어버려서 지금은 존재하지 않지만 이스라엘과 에서( 에돔)는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에돔의 정체성을 이어받았다고 주장하는 일루미나티가 그들이며, 유대인들은 자신들을 시온이라 부르며 그 정체성이 남아있습니다. 자손이 spoiled됨으로 정체성이 멸망한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그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민족의 정체성은 직계혈통으로만 이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의 자칭 유대인들과 로스차일드 붉은 방패라고 자신들을 에돔의 후손으로 생각하는 자들 모두 이스라엘의 자손이 아니고 에돔의 자손들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은 정체성을 가지고 있으며, 육적이 아닌 영적인 자손으로 그들의 조상의 죄를 물려받아 감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위 말씀대로 에서 곧 일루미나티의 벌거벚은 실체를 목격하게 될 것입니다.
네 아비 없는 자식들을 남겨두라. 내가 그들을 살려 두겠노라. 또 네 과부들은 나를 의지할지니라. 11)
Leave thy fatherless children, I will preserve them alive; and let thy widows trust in me. 11)
고아와 과부는 약자입니다. 그리고 약자는 그 민족의 죄에 책임이 적습니다. 민족적인 죄는 그 민족의 강자들에 의하여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약자는 그 죄에서 소외되었기 때문에 자비를 받는 것으로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