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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만 따라가야 합니다!
참고말씀: 잠8:17; 마17:20; 막6:14; 9:29; 고전15:31
읽을말씀: 눅9:1-62
주제말씀: 눅9:23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첫째, 예수님만 바라보고 따라가야 합니다(1-36절)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눅9:23)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불러서 어디에 두루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고 병도 고치게 하셨습니까? 각 마을입니다. 무엇을 주시면서 그리하게 하신 것입니까? 능력과 권위입니다. 어째서입니까? 하나님 나라의 일은 주님이 주신 능력과 권위 없이는 도무지 감당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위를 주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보내시며.”(1,2절) / “제자들이 나가 각 마을에 두루 다니며 곳곳에 복음을 전하며 병을 고치더라.”(6절)
특이한 점은 전도여행을 위해서 지팡이나 배낭, 양식, 돈, 여벌 옷 등을 가지지 말라고 하셨는데, “이르시되 여행을 위하여 아무 것도 가지지 말라 지팡이나 배낭이나 양식이나 돈이나 두 벌 옷을 가지지 말며.”(3절) 이는 어째서입니까? 예수님만 바라보고 예수님만 의지하게 위함입니다.
제자들의 전도활동으로 인해 누구의 이름이 드러났습니까? 예수님의 이름입니다. 그러자, 누가 이 예수님을 보고 싶어 했습니까? 헤롯입니다. “이에 예수의 이름이 드러난지라...”(막6:14 상) / “헤롯이 이르되 요한은 내가 목이 베었거늘 이제 이런 일이 들리니 이 사람이 누군가 하며 그를 보고자 하더라.”(9절) 그러나 이는 단순한 호기심일 뿐 무엇이 아닙니까? 예수님을 간절히 만나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우리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뵙기를 사모하고 있습니까?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잠8:17)
뱃새다의 빈들에서는 어떤 이적을 베푸셨습니까? 소위 오병이어의 이적입니다. 즉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남자만 5천 명, 실제로는 2만여 명 가량을 배불리 먹이고도 남음이 있었던 이적을 베푸신 것입니다(10-17절).
이 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하셨는데,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13절 상) 이는 어떻게 해석해야 합니까? 혹 제자들의 형편과 처지를 몰라서 하신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합니까? 아닙니다. 허면 무엇입니까? 이 문제를 능히 해결하실 수 있는 분이 바로 예수님임을 깨닫고 이 예수님께 문제를 가져오고 그분을 통해 해결함 받으라는 말씀으로 해석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만 따라가려면 어떤 것들이 필수적입니까? 먼저는 신앙고백의 점검입니다. 분명한 신앙고백이 없으면 언제든지 흔들리거나 넘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니.”(20절)
또한 자기 부인입니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는 각오가 없이는 결단코 따라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23절) /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15:31)
또 예수님을 따르려면 무엇이 전제되어야 합니까? 기도생활입니다. 어째서입니까? 이와 같은 기도생활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도무지 예수님을 따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하신 후 팔 일쯤 되어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 가사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28,29절)
예수님은 특별히 무엇을 위해 기도하셨습니까? 사명 감당을 위함입니다. 즉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 조만간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것을 놓고 집중해서 기도하신 것입니다. “문득 두 사람이 예수와 함께 말하니 이는 모세와 엘리야라 영광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할 새.”(30,31절)
기도생활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는데,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수록 누구만 보이게 됩니까? 예수님입니다.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고 소리가 그치매 오직 예수만 보이더라...”(35,36절)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부터라도 무슨 삶을 살아야 합니까? 오직 예수님 한 분만 바라보고 또 이 예수님만 따라가는 삶입니다.
둘째, 실패의 원인을 깨닫고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37-62절)
“당신의 제자들에게 내쫓아 주기를 구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못하더이다.”(눅9:40)
예수님을 따르다보면 무엇을 피하기 힘듭니까? 실수나 실패입니다. 하지만 이런 때에라도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실패의 원인을 깨닫고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예수님이 이튿날 산에서 내려오셨을 때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한 사람이 귀신 들린 아들을 고쳐달라고 제자들에게 데려왔으나 제자들이 능히 고칠 수가 없었습니다.
“이튿날 산에서 내려오시니 큰 무리가 맞을 새 무리 중의 한 사람이 소리 질러 이르되 선생님 청컨대 내 아들을 돌보아 주옵소서 이는 내 외아들이니이다 귀신이 그를 잡아 갑자기 부르짖게 하고 경련을 일으켜 거품을 흘리게 하며 몹시 상하게 하고야 겨우 떠나 가나이다 당신의 제자들에게 내쫓아 주기를 구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못하더이다.”(37-40절)
제자들은 왜 고칠 수 없었습니까? 먼저는, 믿음이 작아졌기 때문이요,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마17:20) 둘째는, 온전히 기도로 나아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막9:29)
혹시 우리도 믿음이 작아져 실패했거나, 기도가 부족해서 넘어지지 않았습니까? 이번 기회에 믿음을 회복하고, 기도의 열정을 다시 회복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이 장차 몸소 겪으실 수난을 제자들에게 말씀해주셨으나 그들은 어떠했습니까? 깨닫지 못했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이 말을 너희 귀에 담아 두라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지리라 하시되 그들이 이 말씀을 알지 못하니...”(43-45절) 이처럼 깨닫지 못하다보니 종종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누가 크냐는 변론이 일어났습니다. “제자 중에서 누가 크냐 하는 변론이 일어나니.”(46절)
어째서입니까? 말씀을 듣고도 깨닫지 못하면, 쓸데없는 일에 집중하게 되고, 무익한 일에 시간과 재능을 낭비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에게 무엇을 가르치셨습니까? ‘누가 크냐’가 아니라, ‘누가 가장 작은 자로서 섬기는지’가 중요하다는 점입니다. “...너희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작은 그가 큰 자니라.”(48절 하) 아울러 예수님은 자신들을 따르지 않는다고 금하고,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저주하는 제자들에게 무엇을 요구하셨습니까? 관용의 마음입니다. 우리도 좁은 마음이 아니라 관용의 넓은 마음을 가질 수 있기를 원합니다.
“요한이 여짜오되 주여 어떤 사람이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와 함께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금하지 말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너희를 위하는 자니라 하시니라.”(49,50절) / “예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기 때문에 그들이 받아들이지 아니하는지라 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이를 보고 이르되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예수께서 돌아보시며 꾸짖으시고.”(53-55절)
끝으로, 예수님을 따르려면 무엇을 각오해야 합니까? 고난입니다. “길 가실 때에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어디로 가시든지 나는 따르리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57,58절)
주님을 따르려면 또 무엇을 분명히 해야 합니까? 우선순위입니다. 즉 손에 쟁기를 잡은 농부가 앞만 보고 가야 하듯이, 우리도 우선순위를 분명한 채 앞만 보고 달려가야 할 것입니다.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나로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이르시되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 또 다른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주를 따르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하게 허락하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59-62절)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예수님을 따르다보면 실수나 실패를 피하기 힘들지만, 그 때마다 실패의 원인을 빨리 깨닫고 다시 일어나고 있습니까? 또한 예수를 따르기 위해 겸손과 관용의 마음을 가지되, 고난을 각오하고 우선순위를 바로 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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