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6년 양도세 마찰로 시작 - 최근 집시법 둘러싸고 충돌
- 대법 "헌재는 위헌성 판단만 - 법률 적용기준 제시 부적절"
- 헌재 "한정위헌도 위헌 일종 - 유죄 확정판결도 재심 가능"
헌법재판소의 변형 결정 중 하나인 '한정 위헌'을 둘러싼 헌재와 대법원의 해묵은 '힘겨루기'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민간 위촉위원의 '공무원' 인정 여부에 대해 제주 A 대학 교수였던 이모(54) 씨가 위헌심판 헌법소원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이 씨는 '공무원'의 직무와 관련해 뇌물을 수수했다며 특가법상 뇌물수수가 적용돼 징역 5년을 선고받고 4년째 수형생활 중이다.
김종대 전 헌법재판관은 "헌재와 대법원이 갈등하는 모양새를 보여 국민에게 심려를 끼쳤다. 두 기관이 서로 존중할 때 국민의 기본권이 완벽하게 보호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헌재가 한정 위헌 결정을 하면 법원이 이를 존중해 주고, 헌재의 위헌명령 심사권을 대법원에 돌려주는 등 두 기관이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국민 기본권 찾을 수 있을까
공익소송으로 이 씨의 사건을 맡은 법무법인 국제는 2일 헌재에 '형집행 효력정지 및 석방 가처분' 위험심판 헌법소원을 신청했다. 이것이 받아들여진다면 이 씨가 만기까지 수형생활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다. 형량이 무거운 특가법상 뇌물죄 대신 일반 형법상의 배임수재죄가 적용되기 때문이다.
한정 위헌을 둘러싼 헌재와 대법원 간 갈등은 법률의 해석 권한이 어디에 있느냐로 귀결된다. 대법원은 법률 해석에 대한 권한이 법원에만 있고, 헌재는 위헌성만 판단하면 된다는 입장이다. 한정 위헌이라는 명목 아래 헌재가 법원에 법률 해석·적용 기준을 제시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반대로 헌재는 한정 위헌이 위헌 결정 중 하나라는 입장이다. 헌재는 헌재법 47조 3항에 따라 위헌 결정이 난 법 조항에 근거한 유죄 확정판결에 대해서는 재심을 청구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대법원 판례는 한정 위헌은 재심 사유가 아니라고 본다.
대법원이 이번 이 씨의 재심개시신청에 관한 재항고를 받아들인다면 문제는 쉽게 해결된다. 재심이 개시되면 이미 한정 위헌 결정이 난 상황이므로 검찰을 통해 공무원 범죄가 아닌 일반 배임수재로 공소장을 변경할 수 있게 돼 감경된 형으로 마무리할 수 있다. 하지만 한정 위헌을 인정하지 않는 대법원에서 이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작다.
반대로 기각할 경우에는 헌재가 한정 위헌을 인정하지 않는 대법원의 확정판결을 취소하는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대법원에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재심 개시에 대해 방치할 우려도 있다.
법무법인 국제의 김동진 변호사는 "한정 위헌에 대한 헌재와 법원의 견해차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 때문에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된다면 더 큰 문제이다"고 지적했다.
■ 헌재-대법원 '한정 위헌 갈등'
헌재와 대법원의 다툼은 1996년부터 시작됐지만, 아직 뚜렷한 해결책이 나오지 않고 있다.
1996년 한 전직 국회의원이 국세청으로부터 실거래가 기준으로 8억여 원의 양도소득세를 부과받았고, 취소 소송을 냈으나 법원이 이를 기각하자 헌법소원을 통해 한정 위헌 결정을 받아내면서 시작됐다. 헌재는 '공시지가'를, 대법원은 '실거래가'를 기준으로 매겨야 한다며 상반된 입장을 보였다. 대법원은 한정 위헌 결정과 별개로 재심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그러자 헌재는 한정 위헌 결정을 존중하지 않은 대법원 확정판결을 아예 취소해 버리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빚어졌다. 결국, 국세청이 2001년 3월 실거래가 기준으로 양도세를 부과한 조치를 직권으로 취소하면서 사태는 마무리됐다.
2009년에는 상속 포기자가 증여받은 재산에 대한 세금을 상속인에게 부과하는 내용의 상속세법 조항을 놓고 헌재와 대법원이 또 맞붙었다. 1·2심 법원이 해당 법 조항에 위헌성이 없다고 판결하자 헌법소원이 제기됐고, 헌재는 "상속세 부과 대상에 상속 포기자까지 포함하지 않으면 위헌"이라고 한정 위헌 결정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상고심에서 "해당 조항은 합헌"이라고 판결해 헌재 결정의 효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최근에는 헌재가 집시법 23조를 해가 진 후부터 같은 날 24시까지의 시위에 적용하는 한 위헌이라며 한정 위헌 결정을 내렸지만 법원은 한정 위헌이 재심 사유가 아니라는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헌법재판소
1988년 9월 1일 설립. 재판관 9명.
헌법에 관한 분쟁을 담당하는 독립된 헌법기관. 제4부로 불림.
권한쟁의심판, 위헌법률심판, 헌법소원심판, 탄핵심판, 위헌정당해산심판
◆대법원
1948년 설립. 대법관 14명.
대한민국 최고 법원이자, 3권 분립 기관 중 하나인 사법부의 최고 기관.
상고사건과 재항고 사건 및 대법원의 권한에 속하는 사건 심판
첫댓글 고맙습니다 교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