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길
김지하
간다
울지 마라 간다
흰 고개 검은 고개 목마른 고개 넘어
팍팍한 서울 길
몸 팔러 간다
언제야 돌아오리란
언제야 웃음으로 화안히
꽃피어 돌아오리란
댕기 풀 안쓸운 약속도 없이
간다
울지 마라 간다
모질고 모진 세상에 살아도
분꽃이 잊힐까 밀 냄새가 잊힐까
사뭇사뭇 못 잊을 것을
꿈꾸다 눈물 젖어 돌아올 것을
밤이면 별빛 따라 돌아올 것을
간다
울지 마라 간다
하늘도 시름겨운 목마른 고개 넘어
팍팍한 서울 길
몸 팔려 간다.
(시집 『황토』, 1970)
[작품해설]
1960년대 이후 우리 농촌은 왜곡된 경제화 정책과 농촌이 안고 있는 구조적 모순으로 말미암아 서서히 쇠퇴 일로를 걷기 시잘한다. 그로 인한 농민들의 대규모 이농(離農) 현상과 농촌의 공동화(空洞化) 현상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된다.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도시로 몰려간 농민들은 단순히 노동력만을 파는 것을 지나 결국에는 농촌의 삶 또는 그들의 정신마저 도시에 팔게 되는 비극적 결과를 초래한다. 그리하여 이 이농 현상은 단순히 농촌만의 문제가 아닌 전 국민적 관심사로 대두되고 이로 인하여 한국인 모두가 심각한 고향 상실 의식을 갖게 된다. 이제 삶의 원형적이고 화해로운 질서로서의 고형 공간은 사라져 버리 대신, 시멘트로 대표되는 획일적이고 비인간적인 도시 문화만이 이 땅에 남게 되었다. 이 시는 바로 이러한 이농 현상과 그로 인한 농촌 문화의 붕괴를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는 시인의 서글픔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이 시의 표현은 ‘간다 / 울지 마라 간다’는 구절의 세 번에 걸친 반복에 초점이 놓인다. 이 구절이 작품의 서두, 중간, 결말 부분에 놓여 시상을 개폐시킨은 물론 시상을 응축시키는 기능도 갖고 있다. 몸을 팔기 위해 사울로 가야만 한다는 표현은 그 결연한 의지만큼이나 상대적으로 서글프고 우울한 부누이기를 자아냄으로써 비장한 느낌을 전해 준다. 그러므로 이 시의 묘미는 이러한 단호함과 비장함이 한데 맞물려 서로 밀고 당기는 것에서 시적 긴장이 생겨나는 데에 있다. 이 시는 이러한 긴장의 구도가 세 번씩이나 반복되며 주제를 강조한다.
화자는 서울에서 일용 노동자로서 힘겨운 삶을 살아야 하는 자신의 처지를 ‘몸 팔러 가’는 상황으로 표현함으로써 더욱 비감스러운 분위기를 조성한다. 또한 화자는 수출 주도형의 경제 구조 지탱을 위한 저임금과 농민들에 대한 정부의 저곡가 정책을 비판한다. 화자는 언제 돌아온다는 약속도 할 수 없이, 사랑하는 여인에게 결혼을 맹세할 수도 없이 막막한 심정으로 고향을 떠나 ‘모질고 모진’ 서울로 향해 간다. 결코 고향의 ‘분꽃’과 ‘밀냄새’는 잊을 수 없을 것이라는 화자의 고백 속에는 이농민의 회한과 분노가 짙게 배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작가소개]
김지하(金芝河)
본명 : 김영일(金英一)
1941년 전라남도 목포 출생
서울대학교 미학과 졸업
1969년 『시학』에서 시 「황톳길」 등을 발표하여 등단
1970년 「오적(五賊)」을 발표하여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투옥
1975년 아시아 아프리카 작가회의에서 수여하는 ‘로터스상’ 수상
1981년 국제시인협회에서 수여하는 ‘위대한 시인상’ 수상
1981년 브르노 크라이스티 인권상 수상
2002년 제14회 정지용문학상 수상
시집 : 『황토』(1970), 『타는 목마름으로』(1982), 『대설 남(南)』(1984), 『애린』(1987), 『검은 산 하얀 방』(1987), 『이 가문 날에 비구름』(1988), 『나의 어머니』(1988), 『별밭을 우러르며』(1989), 『중심의 괴로움』(1994), 『빈 산』(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