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Ⅱ
김춘리
짖어대던 목줄이 솟구쳐 올랐다
묶여 있던 모든 힘은 앞발 쪽에 몰려 있고
어머니의 개. 조. 심 경고문은 담벼락 사이에 엎드렸다
골목을 풀어 줄 때 어머니 눈빛은 다정하여서
빙빙 돌던 골목은 금방 온순해지고
발걸음이 팽팽해진 형제들은 날카롭게 타자를 맴돌았다
가장 무서운 것은
목줄 안의 반경이 헝컬어지는 일
어머니의 개. 조. 심 경고문이 덜거럭거릴 때
손목을 놓친 형제들이 감추고 잇던 꼬리를 꺼냈다
목줄 풀린 안장에 올라탄 꼬리
개. 조. 심 경고문을 떼어내자 몇 겹의 그림자가 뒹구는 골목
묶어줘!
묶어줘!
형제들은 꼬리를 흔들기 시작했다
무서운 건 골목을 나누는 일이다
꼬리는 보도블록에 하얀 분필을 그었다
아직 멀었니?
어머니의 손목이 골목을 붙잡고 있었다
*김춘리 시집『평면과 큐브』 에서
첫댓글 항상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좋은 시 한 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