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를 쓰는 여인과 하녀
진병관 님| 프랑스 공인 문화 해설사, 작가
가을은 늘 짧다. 기후 온난화로 갈수록 뜨거운 날이 늘어 이러다 세상에 여름과 겨울만 남는 것은 아닐지 걱정되는 요즘, 가을이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가을이면 경복궁 근처를 산책하곤 했다. 현대적인 빌딩 숲 사이에 숨어있는, 낙엽이 쌓인 길을 따라 걷다 보면 '가을은 참 예쁜 계절이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파리에서 지내다 보니 우리나라의 가을 풍경이 그리울 때가 많다. 이를 평계 삼아 가을이 되면 보고 싶고 고마운 이들에게 가끔 엽서를 보낸다. 모바일 메신저로 소식을 전하는 데 몇 초도 걸리지 않지만, 굳이 손 글씨로 안부를 묻는다. 그 행위는 가을과 잘 어울리는 낭만적인 일이기도 하다.
한 여인이 햇살 드는 창가 옆 책상에 않아 편지를 쓰고 있다. 그곁에 서 있는 하녀는 편지가 완성되기를 기다리는 것 같다. 화가 페르메이르의 특징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작품으로, 조용하고 평온한 어느 오후의 실내 풍경이 보는 이의 마음을 차분하게 만든다.
페르페이르는 특히 창으로 들어오는 빛을 표현하는 데 능통해 그의 그림은 전체적으로 따뜻한 느낌이 강하다. 그림 속 풍경이지만 연극적으로 연출하기 위해 왼쪽에는 무대 커튼처럼 짙은 올리브색 커튼을 그렸다. 마치 우리가 엿보는 것처럼 그려 그림에 더 집중할 수 있게 한 것이다. 페르메이르는 하녀의 시선을 창밖으로 향하게 해 그림을 관람하는 이가 편지를 쓰는 여인에게만 집중하지 않고 전체적으로 그림을 볼 수 있도록 했다. 하녀는 아마 편지가 완성되면 직접 전달하거나 편지가 도달할 수 있도록 누군가를 찾아갈 것이다.
여인은 누구에게 편지를 쓰는 것일까? 왼손으로 종이의 끝부분을 잡고 있는 것으로 보아 막 편지를 쓰기 시작한 듯하다. 몸이 책상으로 기울어질 만큼 쓰기에 꽤 몰입한 것 같다. 여인의 앞쪽 바닥에는 구겨진 종이와 편지를 봉인할 때 쓰는 실링 왁스가 떨어져 있다. 구겨진 종이는 그녀에게 온 편지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고요한 풍경과는 달리 편지를 뜯어 읽고 답장을 적기 위해 급하게 책상에 앉은 탓에 물건이 떨어진 것으로 상상할 수 있다. 그런데 하녀의 표정에서는 당혹스러움이나 불편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딴생각에 빠져 있는 듯하다. 이를 보면 단순히 편지를 쓰다가 틀려서 구겨 버린 것으로도 추측이 가능하다. 또 하나 책상과 의자 사이로 내려온 천에는 화가의 서명이 적혀 있다. 편지를 쓰는 여인이 화가와 아련한 관계를 맺은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발칙한 상상이 들기도 한다.
17세기 네덜란드는 상업이 발전해 중인 계층 상인들도 집을 꾸미기 위해 그림을 많이 주문할 수 있었다. 이들은 종교적인 이야기가 담긴 그림보다 자신들의 평범한 일상을 담은 풍속화를 선호했는데, 그림 속 편지를 쓰는 여인도 글쓰기를 배운 중산층 여성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시 중산층 여인들 사이에서 편지 쓰기는 보편적인 취미 중 하나였다. 때문에 페르메이르뿐 아니라 다른 화가들의 작품에서도 사랑받는 주제였다.
물건을 보내는 행위는 흔해졌지만, 편지를 보내는 일은 드물어진 세상이다. 오히려 그렇기에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는 것이 더 행복한 일이 된 것 같다. 소중한 이야기를 공유하고, 받는 이를 그리워하는 내용을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을이 짧아지는 만큼 편지를 쓸 수 있는 시간도 짧아지는 것만 같다. 굳이 가을에만 편지를 써야 하는 건 아니지만, 가을이니까 쓰고 싶은 게 또편지이다. 오랜만에 보고 싶은 이들에게 작은 엽서에 손으로 꾹꾹 눌러 쓴 그리움을 전해야겠다는 마음이 든다. 여러분도 이번 주말, 근처로 산책 나갔다 돌아오는 길에 엽서 몇 장 사 보는 건 어떨까?
진병관 님은 현재 프랑스 공인 문화 해설사로 일하며 루브르 박물관과 오르세 미술관 등지에서 여행과 예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쉽고 재밌는 미술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저서로 <기묘한 미술관) <위로의 미술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