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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안개 헤치고 – 월악산(하봉,중봉,영봉,마애봉)
1. 하봉에서 바라본 전경, 뒤쪽이 중봉
월악산이 널리 알려지게 된 것도 물론 단양가도의 한수리 남한강가에서 언뜻언뜻 쳐다보이는 그 날카로운 암봉
까닭이었다. 따라서 이 산을 처음 파고 든 것도 물론 클라이머들로서, 그 무렵 희양산 암벽을 발견한 것과 비슷한
시기에 이 언저리 소백산맥 깊숙이 숨어 있는 암장을 찾아 헤매던 이른바 바위꾼들이었다. 위치로도 그렇고 모양새
로도 그랬다. 소백산맥이 휘능청거리며 죽령과 이화령을 꿰고서 북으로 잠시 한눈을 파는가 싶은 언저리, 월악산은
그 옛날 삼국통일을 꿈꾸며 신라 화랑들이 말발굽을 울리면서 북으로 치닫던 그런 모양새로 거기 호젓이 숨어 있었
던 것이다.
―― 김장호, 『韓國名山記』(1995, 평화출판사), ‘월악산(月岳山)’에서
▶ 산행일시 : 2024년 3월 23일(토), 맑음
▶ 산행코스 : 수산1리(숫갓) 버스승강장,후청골마을,보덕암,보덕굴,하봉,중봉,영봉,신륵사삼거리,송계삼거리,
마애봉,마애불,덕주사,덕주골마을
▶ 산행거리 : 도상 11.0km(이정표 거리 12.3km)
▶ 산행시간 : 5시간 47분(09 : 13 ~ 15 : 00)
▶ 교 통 편 : 반더룽산악회 버스(31명)로 가고 옴
▶ 구간별 시간
07 : 00 – 양재역 12번 출구 100m 전방 마을버스 승강장
08 : 12 – 충주휴게소( ~ 08 : 30)
09 : 13 – 수산1리(숫갓) 버스승강장, 산행시작
09 : 46 – 보덕암 주차장
09 : 53 – 보덕암(寶德庵)
09 : 57 – 보덕굴
11 : 02 – 하봉(898m)
11 : 30 – 중봉(1,019m)
12 : 10 – 영봉(靈峰, 1,095m), 점심( ~ 12 : 35)
12 : 59 – 신륵사 삼거리
13 : 12 - 송계삼거리
13 : 15 – 헬기장, 945m봉
13 : 24 – 마애봉(△960m)
14 : 07 – 마애불
14 : 40 – 덕주사(德周寺)
15 : 00 – 덕주골 먹자동네, 산행종료, 휴식( ~ 16 : 03)
17 : 12 – 여주휴게소( ~ 17 : 30)
18 : 15 - 양재역
2. 월악산 지도
정말 오랜만에 월악산을 간다. 영봉에서의 사방 트이는 조망이 그리웠다. 그간 신륵사나 포암산, 만수봉 쪽에서
만수릿지를 가면서 월악산 영봉을 두 번 들르기는 했지만, 보덕암에서 하봉과 중봉을 넘어 영봉을 오르기는 퍽 오래
전의 일이다. 그리로 갔었다는 사실만 기억에 남아 있을 뿐 그 등로의 사정이나 주변의 경치는 전혀 생각나지 않는
다. 때로는 망각이 축복이기도 하다. 마치 처음 가는 산처럼 가는 것이다.
어제 오후까지 봄비가 내렸다. 오늘은 기온이 급격히 오른 탓에 안개가 물씬 인다. 월악산 들머리인 수산리 가는
차창 밖 풍경이 안개에 가렸지만 한낮 햇살이 비추면 금방 스러지고 말 봄 안개이려니 한다. 승용차는 보덕암 바로
아래 주차장까지 갈 수 있지만 대형버스는 36번 국도 수산1리(숫갓) 버스승강장까지만 갈 수 있다. 여기서 보덕암까
지 2.2km나 된다. 버스에 내려 광천(廣川)을 수산교(壽山橋)로 건너고 후청골 마을로 들어간다.
후청골마을 고샅길 지나 널찍한 농로 따라 비탈진 산자락을 굽이굽이 돌아 오른다. 사과밭이 많다. 계분 냄새가
코를 찌른다. 사방은 안개로 흐릿하다. 잰걸음 한다. 금세 더워진다. 너도나도 가던 걸음을 멈추고 반팔 옷차림한다.
보덕암 아래 주차장이 나오고 계단 길 한 피치 길게 오르면 보덕암이다. 등로에서 살짝 벗어났다. 들른다. 적막한
산중 절집 풍경소리가 산객들을 반가이 맞이한다. 보덕굴 0.1km 이정표가 유혹한다. 배낭 벗어놓고 다니러간다.
내가 앞장서자 두 사람 젊은이가 우리도 가보자 하고 따라오더니 내리막 계단길이 길게 이어지자 보덕굴로 가는 길
이 아닐 것이라며 지레 짐작하고 뒤돌아간다. 산모롱이에 굴이 있다. 동굴이 상당히 깊고 넓다. 이 동굴에 신라 마의
태자가 왕리조사 되어 불교로 귀의하면서 잠시 머물렀다고 한다. 동굴 끝에 가부좌를 하고 있는 석불을 모셨다.
보덕굴 앞에 서면 전경이 훤히 트이는데 오늘은 안개로 흐릿하다.
다시 보덕암이다. 그 위쪽에 모감주나무 군락지가 있다. 천연기념물과 지방기념물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이 인근에
70여주가 자생하고 있다는데 이른 봄이라 모두 나목이어서 다른 나무들과 구별하기 어렵다. 절집을 나와 하봉을 향
한다. 영봉 4.0km. 잠깐 계단 올라 산모롱이 돌고 가파른 오르막이 이어진다. 0.5km 오르면 높다란 암벽과 맞닥뜨
리고 그 왼쪽 밑자락을 돌아간다. 그다음 긴 계단 오르막이다. 계단이 끝나고 슬랩을 잠시 돌 때면 깊은 낭떠러지가
발아래라 오금이 저린다.
능선에 오르면 눈이 녹고 어제 내린 비로 길은 진창이다. 바지자락이 흙투성이가 된다. 당분간은 숲길이라 아무런
조망이 없다. 등로 주변에 혹시 풀꽃이라도 피었을까 살펴보지만 황량하다. 얼핏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오른쪽
골 건너 산릉의 소나무가 실루엣이지만 가경이다. 월악산은 기암괴석과 소나무가 아름다운 산이다. 첨봉인 암봉에
다가간다. 계단을 오른다. 길다. 하봉이리라. 하봉이라는 표지석이나 표지판이 없다. 생각지도 못한 절경을 본다.
3. 햇살이 비추자 안개가 스러지고 있다
4. 보덕굴. 굴 안은 상당히 깊고 넓다. 겨울에는 승빙(乘氷)이라고도 하는 역고드름이 생긴다.
5. 보덕굴 앞의 전경
6. 하봉에서 바라본 전경
10. 중봉 가는 길에 뒤돌아본 하봉
11. 앞은 중봉, 뒤는 영봉
안개가 반공은 여백으로 놓아두고 그 아래에 원근의 침봉과 소나무를 농담으로 채색하니 더욱 심산유곡의 비경이
다. 안개가 끼지 않았다면 이처럼 신비롭지는 않았을 것이다. 전경이 걸음걸음 비인간의 비경이다. 『택리지(擇里
志)』의 저자인 이중환(李重煥, 1690~1753)이 단양을 지나갈 때 하선암에 놀다 지었다는 연구(聯句)를 생각나게
하는 경치다.
만 첩 두메에 온 것이 봄꿈인가, 아스름하여라.
오랜 세월 후에라도 신선놀이 하기를 의논하노라.
萬峽怳疑春夢到
千秋長擬地仙遊
하봉을 내리는 계단에서다. 바로 내 앞에 가는 등산객 배낭 옆구리 주머니에서 무언가 둥그런 물건이 빠져나와 절벽
아래로 떨어진다. 그걸 알려주었더니 깜짝 놀란다. 70만 원짜리 선글라스라고 한다. 구름다리 지나며 절벽 아래를
내려다보고 발을 동동 구르지만 별 도리가 없다. 내 배낭에 10m 슬링이 있으니 내가 어떻게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없
을까 여러모로 궁리했지만 내려다보는 것조차 현기증이 나는 절벽이라 속수무책이다. 혹시 내 어깨에 둘러멘 카메
라가 안전한지 정밀 점검한다.
더러 곳곳이 빙판이다. 가파른 데는 계단이다. 계단이 연속된다. 960m봉을 넘고 잠시 평탄하다가 침봉인 중봉을
오른다. 긴 계단 오르막이다. 절벽 잔도도 오른다. 오뉴월 비지땀 쏟는다. 중봉. 중봉도 정상 표지판이나 표지석이
없다. 정상은 서너 평 되는 데크전망대다. 서쪽으로 막힐 것이 없는데 안개인지 미세먼지인지 뿌옇게 가렸다. 특히
내려다보는 경치가 뛰어나다는 충주호도 여태 무중이다. 곧장 영봉을 향한다. 급전직하로 쏟아져 내린다.
오른쪽으로 등로를 약간 벗어나서 슬랩을 기어 암봉에 오르면 영봉과 그 주변을 오롯이 볼 수 있을 것 같아 몇 번이
나 망설이다 아무도 오른 흔적이 없다는 핑계로 돌아선다. 고개 들어 바라보는 월악산 능선이 칼날 같다. 쭉쭉 내려
바닥 친 안부는 평평한 너른 공터다. 안부 좌우사면은 목책으로 막아놓았고 거기를 오간 인적이 없다. 외길이다.
여기도 빙판이거나 진창이다. 난간 붙들고 오른다. 족두리봉이라는 1,011m봉을 왼쪽 사면으로 길게 돌아 넘으면 철
계단이 시작된다.
철계단을 지그재그로 설치했다. 아마 곧추선 암릉이라 현기증을 줄이려고 그랬을 것 같다. 허공에 뜬 잔도도 지난
다. 밑은 내려다보지 않고 다만 눈높이 계단만 바라보며 오른다. 고개 돌리면 영봉 남쪽의 산 첩첩 경치가 펼쳐진다.
흐릿하지만 눈에 힘 좀 주면 알아볼 수 있는 반가운 산들이다. 계단마다 경점이다. 열 계단에 아홉 계단은 그 경치를
바라보며 오른다. 영봉. 많은 사람들이 올랐다. 너른 암반 여러 곳에 장의자를 놓았고, 데크전망대도 설치했다.
12. 중봉에서 바라본 전경, 오른쪽 중간은 말뫼산. 멀리 가운데 주흘산이 흐릿하게 보인다.
13. 중간은 말뫼산, 왼쪽 뒤는 월항삼봉
14. 중간은 만수릿지, 오른쪽 멀리는 포암산과 만수봉
15. 중봉
16. 멀리 가운데는 마패봉과 신선봉
17. 중봉 서쪽 암릉과 소나무
18. 중봉, 앞 왼쪽은 족두리봉
19. 멀리 맨 왼쪽은 문수봉, 맨 오른쪽은 만수봉과 포암산
20. 왼쪽부터 어래산, 하설산, 매두막, 문수봉(가운데)
봄볕이 영봉 정상 너른 암반에 가득하지만 덥지 않고 선선하다. 나도 한쪽 비집어 자리 잡고 점심밥 먹는다. 굳이
정상에서 점심밥을 먹으려는 것은 머무는 시간은 조금이라도 늘리면 안개가 더 옅어져 원경 조망이 트이지 않을까
해서다. 느긋이 커피까지 마시고 일어난다.
왼쪽부터 차례로 어래산, 하설산, 매두막, 문수봉, 대미산, 만수봉, 포암산, 월항삼봉, 주흘산, 부봉6봉, 조령산, 마패
봉, 신선봉 등등을 확연히 알아볼 수 있다.
왜 월악산이라고 할까? 달(月)을 구경하기 좋아서 그럴까? 김장호는 그의 저서 『韓國名山記』 ‘월악산(月岳山)’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우선 덕주골부터 풀어낸다.
“덕주골이란 이름도 그렇다. 이 골짜기를 가리켜 흔히 신라의 덕주공주가 어쨌다느니, 또는 동국여지승람 14나
범자고(梵字攷)에 전하듯이 ‘세속에 전하기로 덕주부인이 덕주사를 지어 그 이름이라’느니 하지만, 그런 사실은
역사를 뒤져도 밝혀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 이름 ‘덕’은 본디 만주 말에서 온 ‘크다’는 뜻이요, 그리고 ‘주(周)’는
‘두루→달’의 뜻으로 환원되어 ‘달기(達己)’, ‘달구(達句) 등과 한가지로 ‘산’에 대응된다는 것이 국어학자들의 공통
된 해석이다. (…) 한자로 ‘달천(達川)’이라 표기하는 그 ‘달(達)’은 ‘달’이니 ‘達川’도 필경 ‘산내’ 즉 ‘산골짜기
시내’란 뜻이다.”
“월악산의 경우는 이미 그 원뜻이 다 드러난 셈이다. 대개의 문헌들 거개가 ‘月岳山’으로 나와 있으나 산경표(山經
表)에는 그저 ‘月岳’으로 그리고 동국여지승람 14와 범자고에는 ‘月嶽’으로 나와 있지만, 그 ‘月岳’ ‘月嶽’도 물론
‘달뫼’ 즉 ‘산’의 겹말이다.”
달천(達川)이란 지명이 월악산과 무관하지 않으니 이에 대해 덧붙인다.
산서 조경남(山西 趙慶男, 1570~1641)의 『난중잡록 4(亂中雜錄 四)』에 따르면 “신립이 조령(鳥嶺)에 이르렀지만
천험의 요새를 지키지 못하고 퇴각하여 주 서쪽 달천 가에 이르러 배수진(背水陣)을 쳤는데, 왜적의 돌격을 받아 전
군이 대패하고, 신립과 종사관 김여물(金汝岉)은 모두 강물에 투신하여 죽었다.” 하며, 이에 대해 파담자 윤계선(坡
潭子 尹繼先, 1577~1604)은 『달천몽유록(㺚川夢游錄)』에 다음과 같이 이르고 있다 한다.
“(…) 좋은 무기를 간직하고서도 싸우지 못하니, 장군의 계책 없음이 분하다. 손을 묶고 할 일 없이 적을 맞이하여
목을 내밀고 적의 칼을 받았으니 마음을 싸매고 원한을 머금었다. 헛되이 죽은 혼이 사충(沙蟲)이 되고, 원숭이와
학이 된 자가 그 몇 천만 명이나 되는지 모른다. 분한 기운이 위로 맺혀 뭉친 구름이 어두컴컴하고, 원한의 소리가
아래로 흘러 강물도 흐느낀다. 이다지도 마음을 상하고 눈을 쓰리게 하는가. 인하여 슬피 읊조리고 강개하여 시
세 편을 지었다.”
그 율시에는,
鳥鳶飛盡渚禽棲 까마귀 소리개 다 날아가고 물새도 보금자리에 드니
落日沙場路欲迷 해 떨어진 모래밭에는 길조차 희미하네
憶得當時空脈脈 당시를 돌이켜 생각하니 그저 아득하기만 한데
忍看芳草又萋萋 차마 보니 꽃다운 풀은 또 푸르도다
鐵衣塡水琴灘咽 갑옷이 물을 메워 금탄강은 오열하고
杇骨撑郊月岳低 삭은 뼈는 들에 우뚝 쌓여 월악산이 낮도다
誰使將軍名譽早 뉘라서 장군으로 하여금 명예가 이르게 했던고
悔敎車馬浪征西 거마로 하여금 헛되이 서쪽을 정벌케 하였음은 뉘우치노라
ⓒ 한국고전번역원 | 김종오 권덕주 (공역) | 1971
월악산을 오른 반대편 내리막도 지그재그로 낸 계단이다. 절벽 잔도를 내리면 안내문이 있다. 심장질환이나 고소공
포증이 있는 사람은 올라가지 마시라고 한다. 영봉 정상에서 0.8km 내리면 ┳자 갈림길로 왼쪽은 신륵사 2.8km,
오른쪽은 덕주사 4.1km다. 덕주사 쪽은 영봉 절벽 밑을 0.4km 돌아 그 남쪽 능선인데 낙석으로 다칠 것을 염려하
여 철망지붕을 씌운 데크로드를 간다. 능선 길이 부드럽다. 북쪽 능선과는 달리 걷기 알맞도록 꼬독꼬독하게 말랐다.
21. 멀리 가운데 오른쪽은 주흘산
22. 멀리 가운데 조령산이 흐릿하게 보인다.
23. 멀리 가운데는 백두대간 대미산
24. 앞은 만수릿지
25. 멀리 오른쪽은 주흘산
26. 앞 사진의 아랫부분을 확대하였다.
27. 앞은 말뫼산과 북바위산
28. 월악산 영봉
29. 앞 왼쪽이 만수릿지
혹시 덕순이가 있을까 분위기 좋은 좌우사면을 둘러보며 간다. 내내 빈 눈이다. 완만한 내리막이 주춤한 데는 ┣자
갈림길인 송계삼거리다. 오른쪽은 동창교 2.8km로 간다. 한 피치 완만하게 올라 너른 헬기장이다. 뒤돌아 암봉인
영봉을 바라보면 달이 떠오르는 모습 같기도 하다. 숲속 길이 이어진다. ┫자 능선 분기봉인 마애봉(△960m)을
기점으로 덕주사, 덕주골은 내리막이다. 마애봉 왼쪽(동쪽)은 만수릿지 지나 만수봉으로 간다. 비탐구간이라며 철조
망 치고 막았다.
지난날 오지산행에서는 이 만수릿지를 가고 오고 했다. 그때 짜릿하던 손맛이 그립다. 그 릿지에서 바라보는 좌우의
경치는 또 얼마나 장관이었던가. 마애봉 내리는 암릉은 계단이고 협곡은 구름다리로 건넌다. 목책 넘어 잡목 헤치고
전망이 트일 절벽 위 암반에 다가가 영봉 정상에서 보던 뭇 산들을 발걸음으로 줌인하여 보았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내리는 계단마다 전망대다. 지도에는 844m봉에서 능선을 계속 붙들고 가는 길이 있긴 하지만 암릉의 연속
이다.
얌전히 그 능선 왼쪽 사면으로 잘 다듬은 등로인 계단을 통통 내린다. 절집에 보인다. 등로는 그 앞으로 이어진다.
마애불 0.1km. 배낭 벗어놓고 들른다. 덕주사 마애불이다. 정식 명칭은 ‘제천 덕주사 마애여래입상’이다. 높이가
13m에 달하는 거대한 화강암 바위 절벽에 조각한 불상이다. 고려 시대 초기에 만들어진 불상이라고 한다. 보물
제406호다. 이 마애불에는 덕주공주가 오빠인 마의태자와 함께 망국의 한을 달래며 덕주사를 짓고 아버지 경순왕을
그리워했다는 전설이 담겨져 있다고 한다.
마애불 절집을 나와서 덕주사 가는 길은 박석 깔린 대로다. 이 너른 박석대로는 1.1km나 이어진다. 이 산중에 대단
한 역사였다. 어쩌면 덕주산성 북문을 오가는 삼국시대 그때의 유적일까. 박석대로 끝나고 야자매트 깐 대로를
0.5km 가면 덕주사다. 덕주사가 대찰이다. 너른 터에 장대한 석물들이 눈길을 끈다. 예전에 이곳 명물이었던 남근
석(男根石)도 들여다본다. 다음은 그 안내문의 일부다.
“덕주사 뒤편 수산리 쪽에서 영봉을 바라보면 누워있는 여자의 얼굴 모습을 닮은 형태이다. (…) 이 산이 여자의
모습을 한 산이라고 하여 월악산(月岳山)이라 칭한 것 같다. 또한 월악산의 풍수학으로 볼 때 음기(陰氣)가 왕성한
산이기에 옛 선조들은 월악산의 음(陰)의 지기(地氣)를 누르고 음양의 조화를 이루기 위해 이곳에 남근석을 세운 것
같다. (…) 처음에는 월악산의 음기를 중화시키고자 세웠으나 세월이 지나며 아들을 바라는 사람이나 또 소망과 행
운을 기구(祈求)하는 민속신앙의 대상이 되어왔음을 없어진 남근석 윗부분을 보면 알 수 있다.(…)”
덕주사를 나서면 덕주골 계류에는 수경대(水鏡臺)와 학소대(鶴巢臺) 등 수석(水石)이 소리 내지르며 경염을 벌인
다. 그걸 구경하며 걷다 보면 덕주골마을 1km가 금방이다. 덕주골 먹자동네가 비수기라 한산하다. 산행 마감시간인
16시가 되려면 1시간이 남았다. 계류에 내려가 세면탁족 한다. 발목에 감기는 물살이 부드럽고 시원하다.
30. 멀리 가운데 오른쪽이 주흘산, 그 왼쪽은 포암산과 만수봉
31. 멀리 가운데 왼쪽은 조령산, 그 앞 오른쪽은 마패봉과 신선봉, 그 앞 왼쪽은 월항삼봉
32. 중봉과 영봉
33. 멀리 오른쪽은 만수봉과 포암산
34. 앞은 말뫼산, 멀리 왼쪽은 신선봉
35. 덕주사 마애불 가는 길에서
36. 덕주사 마애불, 보물 제406호다
37. 제비꽃 덕주사에서
38. 산수유, 덕주골마을에서
첫댓글 비슷한 곳을 다녀왔는데 월악산 부근은 미세먼지가 덜하군요...백두대간을 비롯한 산군들이 많이 보입니다..7시간짜리를 6시간도 못되게 잘라버렸으니 청춘이십니다^^
보덕암에서 영봉까지 거의 줄을 서다시피했습니다.
영봉 정상도 만원이었고요.
따뜻한 봄날이라 반팔 차림이 많더군요.^^
게을러서 월악산 간지도 오래 되었네요. 욕시 조망이 좋습니다. 예전에 식당에서 라면 시켰더니 어린 여자애가 송이를 찢어 넣었더군요...^^
날이 맑았더라면 조망이 더욱 장관이었을 텐데, 그래도 그만하기 다행이었습니다.
월악산은 소나무가 이름다운 산이기도 하더군요.
월악산과 그 주변의 산들에 소나무가 많으니 그때는 아마 송이도 흔했겠네요.^^
이짝동네 간지도 오래 되었네여~ 70짜리 선글이 아까비 ㅎㅎ
그 절벽 아래에는 다른 등산용품도 수두룩 할 것 같더군요.ㅋㅋ
다슬기(?) 거꾸로 세운 듯한 영봉을 힘들게 올랐던 기억만 남아있네요. 안개탓으로 실루엣처럼 보이는 주변의 산하가 보기 좋습니다.
그때는 계단이 설치되기 전이었나 보군요.
그때는 바위꾼들만 올랐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