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양자역학은 모든 존재의 실상을
실체론이 아닌 관계론으로 보는 점에서
일정 부분 유사성이 존재한다.
불교에서의 무아, 공, 연기법과
양자역학의 상보성 이론(입자와 파동의 중첩성)은 확실히 유사하다.
불교라고 했을 때 우리는 가장 큰 특징을 무아 혹은 공,
이런 키워드를 떠올릴 수가 있는데
뜻은, ‘고유하고 독립적인 실체는 없다’라는 게 핵심이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서로 의존해서 함께 모여서 일어나는 연기하기 때문에
모든 존재를 독립적 실체로 보기가 어렵다.
‘제법은 무아다’ 이렇게 된 것이다.
모든 현상에 독립적이고 고유한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존재의 실상은 실체론이라기보다는 관계론에 있다.
그래서 개체가 아니라 관계가 실상에 더 가깝다
다음에 공이라고 하는 것은
그 실제가 따로 있는 어떤 존재가 아니라, 실제는 텅 비어 있다 하는 게 공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무아론을 이야기하고 그다음에 공을 이야기하지만
그 밑바탕에는 ‘모든 것은 연기한다’라고 하는 연기법이 관찰되고 있는 것이다.
불교를 아주 아주 극단적으로 간략하게 이야기한 것이다.
그 다음에 양자역학이라고 하는 것은,
물론 고전 물리학, 뉴턴 미케닉스라고 하는 고전물리학이 있고
그다음에 아이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있고
그 다음에 20세기 초에 양자역학이라고 하는 물리학의 이론이 생겼다.
서양의 물리학의 계보를 잇는 하나의 과학 이론이다.
고전물리학에서는 기본이 입자론이다. 입자, 즉,원자.
아주 독립적이고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원자의 성질을 규명하고, 역학관계를 이해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했고 그래서 원자가 실제이고
그 원자들 간의 관계는 어떻게 보면 좀 부차적이다.
그게 20세기의 최종적인 고전물리학의 결론은,개인이 가장 중요하다. 사회는 부차적이다. 관계도 부차적이다
개인의 독립성과 존재가 가장 중요하다
그런데 그것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거쳐서 양자역학으로 오면, 세계를 보는 관점이 좀 바뀐다.
좀 바뀌는 게 아니고 이해할 수 없는 수준으로 바뀌어버린다.
양자역학의 입장은 정반대이다.
실체라고 주장하는 혹은 추정되었던 입자, 물리학에서는 원자라고 하는데, 입자보다 훨씬 더 관계가 중요하다
그리고 더 참된 존재 요소다
그래서 독립적이고 고유한 실체로서의 입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는 관계다.
뿐만아니라, 불교는 뉴턴의 진화론과도 비슷하다.
진화론의 화두 자연선택은, 불교의 세계관과 많이 닮아있다.
삶이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받아 들이는 것이다.
이것은 진화론의 자연선택과 일정 부분 맥을 같이 한다. 자연과의 관계다.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없다.
봄이 오고 여름이 오고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오고 다시 봄이 오고......
이것은 인간이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어쩌다 자연에 맡겨진 자연의 선택일 뿐이다.
그래서 인간은 독립적인 개체가 아니라, 우주와 함께 관계를 맺어가는 양자역학과도 닿아있고, 진화론과도 비슷하다.
불교는 종교가 아니라 과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