印, 쌀 이어 설탕 수출금지 검토… 글로벌 식량 인플레 경보
설탕 생산 2위 국가에 극한 가뭄
인도, 쌀-양파 이어 수출규제 고려
中도 폭우로 쌀-옥수수 생산 줄 듯
보호무역주의 겹쳐 가격 급등 우려
세계 2위 설탕 생산국인 인도가 설탕 수출 금지를 검토하고 있다. 인도가 설탕 수출 규제에 나서는 것은 7년 만이다. 최근 이상기후로 가뭄이 이어지면서 식료품 가격이 급등하자 쌀과 양파 수출 규제에 이어 설탕까지 수출을 통제하겠다는 취지다. 중국도 태풍 ‘독수리’가 주요 곡물 지대를 휩쓸면서 쌀 옥수수 같은 주요 작물 생산이 큰 피해를 입었다. 글로벌 곡물 생산 벨트를 강타한 이상기후에 보호무역주의가 겹치며 지난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세계를 휩쓴 식량 인플레이션 공포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 印, 10년 만의 가뭄에 쌀 설탕 ‘공급난’
로이터통신은 23일 “가뭄으로 사탕수수 수확량이 감소하면서 인도 정부가 10월부터 설탕 수출 금지를 고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 소식통은 “다음 사탕수수철에는 수출용으로 할당할 설탕이 충분하지 않을 것”이라며 “(인도의) 초점은 국내 설탕 수요를 만족시키고 남는 사탕수수로 에탄올을 생산하는 데 있다”고 로이터에 말했다.
인도가 설탕 수출 규제를 검토하게 된 것은 10년 만에 최악의 가뭄을 겪으면서 주요 사탕수수 재배지인 마하라슈트라주(州)와 카르나타카주 강수량이 예년의 절반 수준에 그쳐 설탕 생산량이 크게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기 때문이다. 인도 설탕 생산량은 내년까지 3.3% 감소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인도에서 기상 이변으로 가격이 치솟고 있는 식료품은 설탕만이 아니다. 세계 쌀 수출 40%를 차지하는 인도는 최근 쌀 가격이 11% 이상 오르자 지난달 20일부터 일부 쌀 품종 수출을 금지했다. 또 지난달 집중호우로 농가들이 큰 피해를 입으면서 양파 가격도 20%가량 급등하자 양파에 40% 수출세(稅)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14억 명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서민 계층 생활에 필수적인 주요 식료품 값이 동시에 들썩이자 수출 금지와 고율 관세를 앞세워 식탁 물가 잡기 총력전에 뛰어든 것이다. 인도 식품업계도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최근 작황 부진으로 토마토 가격도 치솟자 패스트푸드 체인 버거킹은 인도에서 판매하는 버거 제품에 토마토를 넣지 않기로 했다.
● 세계 식량 안보 ‘퍼펙트스톰’ 우려
기상 이변으로 인한 곡물 생산 급감과 이에 따른 보호무역 움직임은 인도에서만 벌어지는 현상이 아니다. 태국 브라질 같은 주요 곡물 생산국도 엘니뇨 현상 등이 야기한 이상기후에 주요 작물 수확량이 평년 수준을 밑돌면서 각국 내부의 쌀과 설탕을 비롯한 주요 식료품 공급 부족 현상이 글로벌 식량 안보를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 최대 식품 수입국인 중국이 폭우로 쌀 옥수수 같은 작물 피해를 입은 것도 글로벌 식량 공급 불안을 키우는 또 다른 변수다. 중국 농업경제 전문가들은 올해 중국 쌀 생산은 3∼5%, 옥수수 생산은 2%가량 감소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곡물 등 식료품 물가 불안이 본격화하면서 주요 식료품 생산국들의 수출 통제를 비롯한 보호무역 조치가 확산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지난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촉발된 식량 안보 우려 속에 32개국이 77건의 식품 수출 금지 조치를 취했다가 올 들어 19개국 25건으로 줄었다. 하지만 최근 증가세로 돌아서고 있다.
식량 재고 확보 경쟁도 갈수록 치열해지면서 연쇄적으로 식료품 가격 상승이라는 악순환이 빚어져 아시아와 아프리카 개발도상국이 큰 충격을 받게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지난달 세계식량가격지수는 전월 대비 1.3% 상승해 3개월 만에 오름세를 나타냈다. 국제 밀 가격은 물론 식용유 등에 쓰이는 팜유 가격도 들썩인다.
미국 경제 전문 CNBC방송은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에 따르면 쌀 가격이 12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올랐다”며 “쌀을 주식으로 삼는 아시아 국가들에 ‘퍼펙트스톰(한꺼번에 몰리는 경제 위기)’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워싱턴=문병기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