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의 대가
조지프 스티글리치 지음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책 '불평등의 대가'에서 현재 미국의 상황을 이렇게 진단했다. 미국은 예전처럼 '아메리칸 드림'을 꿈꿀 수 있는 기회의 땅이 더 이상 아니라는 지적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수 백만 명의 미국인이 자신이 살던 집에서 쫓겨났고 실업자 신세가 됐다. 이에 따라 부의 집중과 빈부격차는 날로 확대되고 있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책에서 불평등한 구조로 인해 미국을 필두로 전 세계 경제가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불평등의 문제를 윤리나 도덕의 관점이 아니라 시장주의자들이 추구하는 효율성의 관점에서 비판했다. 금융업자나 경영자 등 기득권층의 '지대 추구', 즉 공짜로 보다 많은 이득을 보려는 경제·정치적 행위로 인해 빚어진 불평등은 시장 경제가 원래 가지는 역동성과 효율성 및 생산성을 모두 마비시킨다는 것이다.
상위1%는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해 자신들의 관점에 동조하는 사람들을 정부의 규제기구 책임자로 앉히고, 이들은 다시 규제의 대상이 되는 시장으로 진출한다. 그렇게 해서 발생하는 불평등은 효율과 무관한 분배구조를 고착화해 파멸적인 악순환 고리를 형성, 결국 사회 전체를 침몰시킨다. 따라서 불평등은 어쩔 수 없이 용인해야 할 필요악이 아니라 갖은 노력을 통해서 예방하고 시정해야 할 장애물이라는 것이 스티글리츠 교수의 비판이다.
불평등한 미국의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를 신봉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 역시 미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압축성장 속에 제대로 된 성숙한 자본주의 체제를 아직 가지지 못한 우리나라는 이념적인 왜곡까지 더해지며 심각한 불평등 구조를 갖게 됐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의 빈부 격차는 경제협력개발기구 가운데 최고 수준으로 벌어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빈부격차는 공식적인 통계청 표본 조사만으로도 이미 심각한 상황이다. 상위 10%의 소득이 하위 10%보다 얼마나 더 많은 지 보여주는 배율은 1993년만 해도 6.8배였으나, 외환위기가 터진 1998년 9.8배까지 치솟았고 지금까지도 여전히 9배 전후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또 지난 30년간 상위 10퍼센트의 소득 증가분은 하위 10퍼센트의 약 아홉 배에 달한다.
더구나 경제학자 출신인 민주당 홍종학 의원이 사생활 보호라는 명분으로 공개되지 않았던 국세청의 '통합소득 100분위 자료'를 토대로 분석한 내용에 따르면 2011년 기준 상위 1퍼센트의 평균 소득은 중위소득의 15.1배에 달했다. 과세 미달자 560만명을 포함해 비교하면 상위 1퍼센트의 평균 소득은 중위 소득의 22.6배까지 치솟는다.
이 국세청 소득 자료를 토대로 측정한 불평등의 척도를 나타내는 지니 계수도 2011년 기준 0.448로 멕시코와 미국 수준만큼이나 높다. 이 책에서 스티글리츠는 미국이 멕시코나 남미 국가처럼 불평등이 심각해졌다고 개탄했는데, 사실 한국의 실정도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인 것이다.
스티글리츠는 시장 만능을 외치는 보수 우파도, 자본주의를 부인하는 급진좌파도 아닌 정통 주류 경제학자다. 이념과 편향을 떠나 이성과 양심을 가진 학자의 눈으로 현존하는 자본주의의 탐욕과 실상을 정직하게 기록하고 분석했다. 그는 불평등한 구조를 개혁하기 위한 방안으로 △금융부분의 규제 △독점금지법 강화 △기업에 대한 정부의 무상공여와 보조금 폐지 △조세개혁 누진성 강화 △의료보장 및 사회보호 프로그램 △교육접근권 개선 등을 제시했다.
빈부격차가 줄어들고 국가운명 공동체라는 인식과 기회와 공평성에 대한 사회적 약속이 유지되는 사회, 만인을 위한 자유와 정의라는 말이 진정한 의미를 발휘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그가 제시하는 개혁방안은 상위 1퍼센트의 이익만을 위한 섣부른 시장 만능주의와 이를 위한 정치적 왜곡이 판을 치는 현 시점의 우리나라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빈부격차와 불평등 문제를 정치를 통해 해결하지 못한다면 한국 사회의 미래는 보장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