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로 서울에서 부산가기’ 두번째 이야기
제가 자전거로 남한강과 낙동강을 종주한 지 딱 한 달이 지났습니다. 5월1일부터 4박5일 동안 약 430킬로미터를 달린 것입니다. 당시의 감동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저는 주말 계획 중 골프와 자전거 중 하나를 고르라면 서슴없이 자전거를 고를 정도로 이제는 자전거 매니아가 되었습니다. 3주전 ‘자전거로 서울에서 부산가기’ 첫번째 이야기를 월요편지에 썼습니다. 오늘은 그 두번째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5월1일 점심 때까지 저와 친구 윤건백은 이포교에서 비내섬 인증센터까지 자전거로 달렸습니다. 그곳에는 점심 먹을 만한 곳이 없어 밴에 자전거를 싣고 이동하여 점심을 먹고 다시 비내섬 인증센터로 돌아와 그곳에서 오후 일정을 시작하였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얼마를 가니 아름다운 광경이 눈에 들어 옵니다. 지도를 꺼내 어디인지 찾고 싶지만 그것도 힘들고 귀찮은 일입니다. 간신히 핸드폰을 꺼내 들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증명사진이라도 찍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피곤한 몸을 움직이게 만듭니다.
자전거 여행을 떠나며 과연 기록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였습니다. 사진은 어떻게 찍고 새롭게 겪게 되는 수많은 일들은 어떻게 기록하고 순간 순간 스치는 생각과 감동들은 어떻게 붙잡아 둘 것인가. 자전거 종주기를 쓴 분들은 신통하게도 그 감동을 실감나게 펼치고 있는데 우리는 어떻게 할까 많은 생각을 하였습니다.
심지어는 ‘여행작가의 모든 것’이라는 책을 읽기도 하였습니다. 요즘은 여행이 일반화 되어 여행작가를 지망하는 사람이 많은가 봅니다. 그래서 여행작가 코치라는 직업도 생겼습니다. 이 책은 그 코치중 한 분인 문유정이라는 분이 쓴 책입니다. ‘당신도 여행작가가 될 수 있다’가 그녀가 내건 슬로건입니다. 이 책을 읽노라면 언젠가 저도 여행에 관한 책을 쓸 수 있을 것만 같아 집니다.
사실 자전거를 타면서 무엇 인가를 기록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몸이 지쳐 자전거 페달을 밟기도 버거운데 무엇을 쓴다는 것은 사치입니다. 저는 가장 간단하고 쉬운 방법을 택하기로 하였습니다.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 친지들 밴드에 올리기로 한 것입니다. 사실 이것도 쉽지 않은 일이지만 이것마저도 하지 않는다면 무엇이 남을까 걱정이 되어 부지런히 사진 찍고 밴드에 실시간으로 올렸습니다.
이번처럼 아름다운 풍경이 나오면 풍경도 찍고 풍경을 배경으로 우리들 사진도 찍습니다. 사실 성능 좋은 카메라도 가지고 왔지만 밴드에 올리려니 그 카메라는 무용지물이 되고 맙니다. 성능 좋은 카메라로 작품사진을 찍고 싶은 욕심은 굴뚝 같았지만 그 마저 피곤은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점심을 먹고 2시간 반을 달렸습니다. 충주댐과 탄금대 갈림길에서 저희는 자연스럽게 충주댐쪽으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수안보에서 1박을 할 생각으로 충주댐이 그 방향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충주댐 전방 10킬로미터 지점에서 잠시 쉬기로 하였습니다. 자리에 앉자 갑자기 탈진 상태가 되어버립니다. 밧데리가 나간 것입니다. 드러 누었습니다. 체력이 바닥난 것입니다. 아무래도 무엇을 먹어야 할까 봅니다. 저희가 비상식량을 준비한 것은 초콜릿과 바나나입니다. 초콜릿을 꺼냈더니 배낭에서 태양 열에 녹아 곤죽이 되었습니다. 도저히 수저나 젓가락 없이는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수저나 젓가락이 있을 리 만무 입니다. 친구가 꾀를 냅니다. 나뭇가지를 꺾어 껍질을 벗겨내고 젓가락을 만들었습니다. 궁즉통입니다. 이렇게 먹는 초콜릿은 꿀맛입니다. 한판을 거의 다 먹으니 눈이 떠집니다. 살고 볼 일이라 바나나도 꺼내 먹었습니다. 4박5일 동안 바나나를 엄청 먹었습니다. 최고의 비상식량은 바나나입니다.
옆에는 지역 어르신들이 그라운드 골프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1983년 일본에서 게이트볼과 골프의 장점만 따서 만든 운동이라는 그라운드 골프를 이곳 충주에서 보게 되다니 우리나라 레저 문화의 차원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그저 국민 놀이 고스톱만 하던 상황에서 다양한 레저가 국민 생활의 품격을 높이고 있습니다.
이제 다시 힘을 내어 달려봅니다. 탄수화물을 마구 먹었더니 시속 30킬로미터까지 속도가 납니다. 30-40분 달려 충주댐에 도착하였습니다. 저희 계산으로는 충주댐을 지나면 수안보가 나와야 하는데 무엇인가 이상합니다. 충주댐이 종착지 같습니다. 자전거 여행을 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저희가 길을 잘못 들어 섰다고 합니다. 대부분 자전거로 서울에서 부산까지 종주하는 사람들은 충주댐으로 오지 않고 저희가 쉰 갈림길에서 탄금대를 거쳐 수안보 그리고 새재 고개를 넘습니다.
보급부대 밴을 운전하고 있는 이창용 과장은 수안보에서 숙소를 찾고 저희를 기다리고 있는데 저희는 남한강의 발원지인 충주댐에 도착한 것입니다. 이과장에게 전화하여 충주댐으로 오라고 하고 올 때까지 충주댐 이곳저곳을 둘러보았습니다. 첫날부터 계획이 어긋나기 시작하였습니다. 해는 지고 어둑어둑해지고 있었습니다. 보급부대로 밴을 가지고 오지 않았더라면 이곳에서 꼼짝없이 다시 자전거로 수안보까지 1시간 이상 달려야 하고 그곳에 도착하여 숙소를 찾아야 할테니 불편한 것이 한 두가지가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이 밴을 가지고 자전거 여행을 하는 저희가 부러웠는지 ‘황제 싸이클링을 하십니다.’라고 한마디 합니다.
이과장이 운전하는 밴이 저 멀리서 보이자 반갑기 그지 없습니다. 저희는 자전거를 차에 실고 수안보로 향했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수안보에 왔습니다. 아마 20년도 더 된 것 같습니다. 이과장이 골라 놓은 숙소에 가기 전에 먼저 배를 채우기로 하였습니다. 이과장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수안보는 꿩요리가 유명하답니다. 가만히 보니 음식점마다 입구에 꿩 조각을 설치해 놓았습니다. 우리는 소개를 받아 꿩요리집으로 들어 갔습니다. 당연히 꿩샤브샤브를 시키고 도토리묵도 시켰습니다. 그러나 예상만큼 맛이 있지는 않았습니다. 수안보는 관광지라 음식점이 표준화되어 있는 듯하였습니다.
우리는 숙소에 들어가 짐을 풀고 대중 목욕탕에 가서 온천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러나 마음과 몸은 따로 놀고 있었습니다. 가벼운 옷차림으로 온천을 하러 나왔지만 이미 눈꺼풀은 꿈나라로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저와 친구는 커피를 한잔 마시고 각자 방에서 온천수로 샤워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첫날 밤이 깊어가고 침대에 드러눕자 말자 기분 좋은 피곤함이 저를 잠의 세상으로 인도하였습니다.
다음날 아침 언제 자전거를 탔더냐 싶게 산뜻한 몸과 마음으로 호텔 방을 나설 수 있었습니다. 밖에 나와보니 이미 다들 준비를 하고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호텔 상호를 배경으로 기념 사진 한장 찰칵.
저희는 당초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기로 한 계획을 급수정하기로 하였습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려면 충주 탄금대에서 상주 상풍교까지 가는 새재자전거길을 거쳐야 하는데 이 길은 초보자가 자전거로 넘기에는 너무 힘이 드는 오르막길 투성이라 어떻게 할까 고민중이던 중이었습니다. 예정에 없던 충주댐을 올라 간 김에 남한강 자전거길과 낙동강 자전거길을 종주하는 것으로 계획을 바꾸기로 하였습니다. 저는 친구에게 궁색한 논리를 펼쳤습니다. ‘우리는 4대강 사업을 시찰하러 온 거야. 이번에는 남한강과 낙동강만 시찰하자구.’
대신 우리는 다른 팀들이 잘 가지 않는 탄금대에서 충주댐까지의 길과 안동댐에서 상풍교까지의 길을 가기로 하였습니다. 우리 일행은 밴을 타고 수안보에서 안동댐까지 이동하였습니다. 아침은 안동 간고등어. 이번 여행의 큰 즐거움 중 하나는 먹거리입니다. 각 지역 마다의 고유한 음식을 맛보는 맛기행이라 해도 그리 틀린 말을 아닙니다. 4박5일 동안 15끼니를 먹었는데 모두 다른 음식을 먹었습니다.
안동댐에 도착하여 댐도 구경하고 슬슬 워밍업을 하였습니다. 다른 팀들이 잘 가기 않는다는 안동댐에서 상풍교까지의 길이 무려 60킬로미터입니다. 중간에 만난 사람들은 그 길은 내리막이라 별로 힘이 들지 않는다고들 하였기 때문에 첫날에 비해 마음은 한결 가볍습니다. 그런데 댐을 바라보니 아침 일찍부터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무슨 일인가 보니 조정대회가 열리고 있는 것입니다. 안동댐에서 조정경기. 우리나라의 레저 수준이 이 정도입니다. 한참을 구경하다 저희들의 본 임무가 떠올랐습니다. 자 이제 시작입니다.
그런데 어디가 자전거 도로인지 잘 구분이 되지 않습니다. 어찌어찌 하여 자전거 도로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좁고 울퉁불퉁한 것이 위험하기 짝이 없습니다. 한시간 쯤 달렸나 봅니다. 강건너편에 안동병원 건물이 위용을 자랑합니다. 제가 부산고검장 시절 강의를 하러 간 적도 있는 안동병원을 만나자 반갑기 그지 없습니다. 안동병원 강보영 이사장님께 전화를 드렸더니 잘 연결되지 않습니다. 안부 문자를 남기고 다시 달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자전거 탄 사람을 한 명도 만날 수가 없습니다. 자전거족들이 안동댐에서 상풍교까지 코스는 잘 이용하지 않는 모양입니다. 친구가 자전거를 세우고 지도를 한참을 드려다 보더니 무엇인가 잘못되었다고 합니다. 강건너편으로 달려야 하는데 반대편을 달리고 있는 것입니다. 자전거 티맵에 해당하는 티맵바이크를 핸드폰에서 켜고 이리저리 방향을 찾았습니다. 우회로가 있기는 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차도를 이용하여 우회하기로 하였습니다. 차가 생생 달려 위험하기 짝이 없습니다. 하는 수 없이 끌바(내려서 바이크를 끄는 것)를 합니다.
이번 자전거 여행에서 알게 된 사실 중 하나가 지자체의 재정상태와 단체장의 관심에 따라 강변 개발에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표지판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것을 보면 안동시는 강변개발에 관심이 적은 듯하였습니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자전거 전용도로를 다시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편할 수가 없습니다. 차도를 달릴 때의 불편함을 경험한 뒤라 이 쾌적함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얼마를 달렸습니다. 그런데 앞에 엄청난 오르막길이 나타났습니다. 아니 안동댐에서 상풍교까지는 내리막만 있다던 사전정보는 어찌된 것인가요.
자전거를 타면 오르막 길도 나오고 내리막 길도 나옵니다. 오르막이 없으면 내리막도 없지요. 그런데 2일째 타다보니 오르막 길을 타고 올라가는 요령이 생겼습니다. 제 자전거에는 기어가 두개 있습니다. 큰기어는 3단이고 작은 기어는 9단입니다. 이 두개가 작동을 하면 27단 기어인 셈입니다. 언덕을 올라 갈 때는 큰기어를 중간에 놓고 작은 기어를 하나씩 풀면서 올라갑니다. 이렇게 하면 이론적으로는 총 18단 기어를 가지고 언덕을 올라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9단 정도로 언덕을 올라갑니다. 그러니 눈대중으로 언덕을 7-8등분하여 한등분을 올라 갈 때마다 기어를 하나씩 풉니다. 이렇게 하면 정상에 다다를 때 1-2단의 여유가 남습니다. 인생길도 힘든 구간이 있고 편한 구간이 있습니다. 힘든 구간은 그 기간을 어림잡아 몇 구간으로 나누고 돈과 노력을 단계별로 투입하여 버텨야 합니다. 자전거를 타다 보면 인생을 배우게 됩니다.
이 고개길을 넘고 나니 시원한 내리막입니다. 인생이 이렇기만 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힘든 고개길이 있어 이런 내리막이 더 기분 좋은 것 아닐까요.
자전거 여행 이야기는 계속 됩니다.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14.6.2. 조근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