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원 망산도
설과 추석이면 형제 조카들이 고향을 찾아 차례를 올리고 선산 성묘를 다녀온다. 칠순을 넘긴 큰형님이 고향을 지키고 계서 마음 든든하다. 누구에게나 빠르거나 늦은 차가 있겠지만 세월 따라 노화가 진행됨은 어쩔 수 없다. 건강을 잘 지켜 나감이 인생 후반부 제 각각 짐 지고 있는 의무이자 숙제다. 이번 추석엔 손위 셋째 형님이 몸이 조금 불편해 고향 걸음을 하지 못해 아쉬웠다.
셋째 형님 내외는 수 년 전 부산에서 교직 생활을 마감했다. 현직에 있을 때는 교통이 편리한 도심에 살다가 은퇴 후 지금 사는 곳은 전혀 예상 밖인 가덕도다. 이름 붙이면 귀촌이고 전원으로 돌아간 삶인지 모르겠다. 앞으로는 연대봉이 바라보이고 뒤로는 눌차만을 배경으로 한 곳에 목조 주택을 지어 잔디밭 뜰을 갖추었다. 운전대 잡기도 거추장스럽다면서 있던 차도 처분했단다.
추석 이튿날 가덕도 작은 형님을 찾아뵙느라고 길을 나섰다. 배낭엔 여름 산에 들어 채집해 말린 영지버섯과 작년 가을 말려둔 산국 잎을 조금 챙겼다. 고향에서 가져온 밤도 넣었다. 창원실내수영장 앞에서 757번 직행버스를 타고 진해 용원으로 갔다. 용원은 진해 동쪽으로 부산광역시와 인접했다. 용원은 부산진해 신항만이 들어서면서 예전 조용한 어촌 포구가 아닌지 오래 되었다.
종점에서 가덕도로 건너가는 마을버스를 타고 작은 형님 내외를 뵙고 안부를 나누었다. 작은형님은 추석 연휴였지만 아침나절 진료가 예약된 녹산 어느 병원을 찾아 처방받은 약을 타 왔다고 했다. 혈압이 일시 높아지고 협심증 증세가 조금 보여 잠을 편히 들지 못한다고 했다. 연휴가 끝나고 나면 대학병원 진료가 예약되어 있었다. 어서 안정 되어 예전처럼 건강을 회복하길 바랐다.
작은형님 댁에서 두어 시간 머물다 자리를 일어섰다. 영지와 밤을 비운 배낭엔 누렁호박 한 덩이를 담아 짊어졌다. 집을 나서 마을버스 정류장까지 십여 분 걸었다. 호수 같은 눌차만은 썰물로 바닷물이 모두 빠져나가 갯벌을 드러내 굴 양식 덕장이 그대로 다 보였다. 아까 버스에서 한 노인이 여덟 물때라 조수간만 차가 아주 큰 때라던 말이 떠올랐다. 그 노인은 현지주민인 듯했다.
다시 용원으로 건너왔다. 망산도와 바로 인접한 곳이 마을버스 종점이자 기점이기도 했다. 마을버스는 가덕도와 하단 지하철 종점까지 가는 두 노선이었다. 창원으로 가는 757 직행버스 출발지였다. 서울 강남고속터미널로 가는 고속버스도 출발지도 그곳이었다. 내가 타고 갈 757번 버스는 시동을 끝 채 출발대기 중이었다. 나는 버스가 출발하기까지 바로 가까운 망산도를 바라보았다.
아까 가덕도 눌차만 그랬듯이 망산도도 썰물로 바닥까지 다 드러나 발을 디디고 건너가도 될 듯했다. 예전엔 나는 두 차례 건너가 바위와 나무를 살펴 본 적도 있었다. 지금은 철제 울타리에 문을 달아 열쇠를 채워 두어 아무나 출입할 수 없게 되어 있었다. 그 곁에 유주정 정자가 세워져 있었다. 녹산 산업단지와 신항만 개발되면서 망산도는 이제 더 이상 바다에 뜬 섬이 아니었다.
신라 경주에 버금가는 가락국 고도가 김해다. 왕릉이나 석탑이 경주만큼 많지 않지만 김해에는 수로왕 탄생설화가 서린 신령스러운 구지봉이 있다. 그 가까이 수로왕릉이 있고 허황옥 능도 있다. 구지봉과 수로왕릉과 허황옥 능은 세 성씨와 연관이 있다. 김해 김 씨와 김해 허씨와 거기서 분파된 인천 이 씨다. 이 세 성씨는 동성동본으로 여기기에 결혼 대상자를 고를 때도 피해야 한다.
창원으로 복귀하는 757번 직행버스가 출발하기를 기다리다 망산도를 바라보면서 문득 스친 생각이다. 허황옥이 인도 아유타국에서 오라비 장유화상과 함께 머나먼 뱃길로 와 안착한 곳이 망산도 아니던가. 불교의 남방전래설을 뒷받침하는 행로이기도 하다. 개발의 미명 아래 아득한 옛적 설화유적이 제대로 관리되지 못함이 유감이었다. 나라에서 챙기지 못한다면 세 성씨 집안에서라도. 17.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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