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일의 새로 쓰는 택리지 7: 제주도
제주도 여자들의 노동요
제주에서 근무하다가 표류해서 『표해록』이라는 귀중한 해양문학을 남긴 최부의 글에 제주바다 풍경이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제주의 바다는 색깔이 몹시 푸르며 성질이 난폭하고 급하다. 작은 바람에도 물결 위에 물결이 넘쳐 흘러, 서로 부딪치고 휘돌아가며 급히 솟구치기도 하고 평평히 흘러가기도 하는 것이 이보다 심함이 없었다.
제주는 큰 바다 가운데 있어서 파도가 흉포하여 사람이 많이 빠져 죽는다. 그러므로 여염집에는 여자가 남자의 3배나 되며, 부모 된 사람은 여자를 낳으면 반드시 말하기를 “나에게 효도할 놈이다” 하고, 아들을 낳으면 누구나 말하기를 “내 자식이 아니오. 고래의 밥이라” 했다.
여자는 많고 남자는 귀한 제주에서는 노역하는 일을 모두 여자에게 시켰다. 두세 명 혹은 네댓이 함께 한 절구방아를 찧는데, 반드시 방아 찧는 노래를 부른다. 그들의 모습이 매우 슬프고 가락 또한 애처로워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슬픔을 자아냈다.
『탐라지』에 의하면 그 풍속이 시작된 것은 원나라 때부터라고 한다. “본도가 원나라에 예속되었던 시절에 남자들이 많이 징발되어 간 뒤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그 뒤부터 여성들의 원한이 방아를 찧을 때 노래에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그 음조가 슬프기 그지없다. 연자매 찧는 소리도 역시 그와 비슷하다.”
동계 정온 역시 이곳 제주도에 유배를 와서 보고 들은 것을 많이 기록으로 남겼다. 그중에 제주도 사람들이 노동을 하며 불렀던 노동요를 두고 지은 시가 「촌녀저가(村女杵歌)」다.
이 지방엔 방아 찧는 풍속이 없으니 마을 아낙네 절굿공이를 안고 노래 부르네 높고 낮음이 가락이 있는 것 같고 끊일락 이을락 서로 조화를 이루네 모름지기 그 뜻을 알아듣고자 하여 자주 들으니 점점 귀에 익네 처량하게 새벽달에 잠 못 이루어 먼 곳에서 온 나그네 머리만 세는구나
절구를 찧으며 노래 부르는 제주 여인네들을 보면서 유배된 자신의 처지를 노래한 정온의 뒤를 이어서, 제주도로 유배를 왔던 이건도 그가 저술한 『제주풍토기』에 그와 비슷한 글을 실었다.
여인들이 절구를 찧을 때는 군취(群聚)하고 힘을 합하여 절굿공이 노래를 제창하면서 찧는다. 경각에 두어 휘의 곡식을 능히 장만할 수 있으나 그 노랫소리가 슬프고 처량하여 차마 들을 수가 없다.
조관빈(趙觀彬) 역시 이곳 제주도의 유배 시절에 이곳 제주 여자들에 대한 글을 쓴 사람이다. 그는 정미환국으로 이광좌(李光佐)가 영의정으로 복직되자 비판하다가 유배형을 당한 사람이다. 조관빈의 적소는 대정읍 북문에 있던 김호의 집이었다. 조관빈은 제주도 여자들의 이색적인 삶의 풍경에 대해 「탐라잡영(耽羅雜詠)」이라는 시를 남겼다.
시골 아낙 옷자락은 여미지 않아 몸을 드러내고 멀리서 샘물 길어 허벅 지고 가는구나 처첩 한집안살이 괴로운데 날 저물어 방아 노래 원성처럼 들리네
시골 여자들이 옷자락을 여미지 않아 가슴을 드러내는 것은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육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하지만 샘물을 허벅으로 지고 가는 풍경은 낯설기만 했을 것이다.
제주도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 중 「밭 발리는 소리」가 있다. “마당같이 밭이랑 밟아 모종일랑 세우고, 조 나무도 한 자나 되게, 조 이삭도 한 자나 되게, 무쇠 열매 열어 주오, 어령 어령 어려려 돌돌돌.”
김정이 지은 『제주풍토록』에 “흙의 성질이 푸석푸석하고 건조하여 곡식을 심을 때는 소나 말을 몰아서 밟아 줘야 한다. 계속하여 2~3년을 경작하면 곡식이 이삭을 맺지 않으므로 그곳을 버리고 또 다른 밭을 개간한다”라는 글이 있다.
제주의 흙은 대부분이 차지지 않은 가루흙이라서 푸석푸석하다. 그런데다 바람이 잦으므로 뿌린 조 씨앗을 흙으로 덮었다고 해서 싹이 나는 것이 아니었다. 뿌린 씨앗이 그냥 하늘을 보고 드러나 있으면 온갖 새들이 쪼아 먹고, 바람에 날아가 버리므로 마소를 몰아 밭을 탄탄하게 다지며 부르는 노래가 그 노래였다.
한편 제주의 놀이 중에 조리희(照里戱)가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실려 있는데 매년 8월 15일이면 남녀가 함께 모여 노래하고 춤추며 나누어 좌대(左隊)ㆍ우대(右隊)를 만들어 큰 동아줄의 두 끝을 잡아당기어 승부를 결정짓는 놀이가 조리희였다. 놀이 진행 중에 만일 동아줄의 중간이 끊어져서 두 분대가 땅에 자빠지면 구경하는 사람들이 크게 웃는다. 이것을 조리의 놀이라고 한다. 같은 날 그네 뛰는 것과 닭 잡는 놀이도 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