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알아가기 시리즈⑫
질서의 하나님
참고말씀: 잠25:16; 전7:16; 고전1:11,12; 3:3; 4:7,8,21; 5:1; 6:1; 11:18; 14:26-40
읽을말씀: 고전14:33,40
주제말씀: 고전14:33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모든 성도가 교회에서 함과 같이.”
첫째, 질서의 하나님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모든 성도가 교회에서 함과 같이.”(고전14:33)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을 향해 어떤 하나님을 가르치고 있습니까? 질서의 하나님입니다. 어째서입니까? 하나님은 절대로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고전14:33 상)
왜 이 같은 하나님을 가르쳤습니까? 고린도교회에는 많은 은사, 그중에서도 특히 방언과 예언의 은사들을 받은 자들이 많았는데, 종종 이들이 은사를 무질서하게 남발하여 공예배의 질서를 흐트러뜨리거나 교회 공동체에 어려움을 끼쳤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이들에게는 어느 정도의 제재가 필요했는데, “예언하는 자들의 영은 예언하는 자들에게 제재를 받나니.”(고전14:32) 그들은 이 같은 제재를 통해 질서 있게 자신들의 은사를 사용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너희는 다 모든 사람으로 배우게 하고 모든 사람으로 권면을 받게 하기 위하여 하나씩 하나씩 예언할 수 있느니라.”(고전14:31)
이를 통해 무엇을 깨닫게 됩니까? 은사의 사용이나 예배의 진행 등 소위 영적인 일일수록 어느 정도의 제재가 반드시 필요하며, 이 같은 제재를 통해 우리는 모두 온전한 예배생활과 질서 있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제재’라는 단어를 부정적으로만 생각한 채, 이를 무시하거나 거부하려는 성향을 보이기도 하는데요, 물론 과도한 제재는 불합리하겠지만, 어느 정도의 제재마저 거부하려는 습관을 그대로 방치한다면, 제대로 된 신앙성장을 기대할 수 없고, 그로 인해 예배의 질서가 흐트러지거나 공동체가 무너지게 되는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필히 어떤 하나님을 배워야 합니까? 질서의 하나님입니다. 명심하십시오. 하나님은 어지러움이나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라 질서의 하나님이시요,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아 아니시요...”(고전14:33 상) /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시요...”(한글개역, 고전 14:33 상) 화평의 하나님이십니다.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고전14:33 중)
왜 ‘질서’와 ‘화평’ 두 단어가 교차적으로 사용된 것입니까? 진정한 화평은 어지러움이나 무질서가 아니라 정돈된 질서를 통해서 구현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 모든 성도의 교회에서 그러하니라.’(고전14:33 하)
그러므로 우리는 어찌 해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질서의 하나님이심을 깨닫고, 질서의 하나님의 자녀답게 신앙생활이나 일상생활 모든 면에서 무질서하게 살아가지 않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둘째, 무슨 일이든지 질서 있게 해야 합니다!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고전14:40)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까? 먼저는, 품위 있는 신앙생활입니다. 즉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해야 합니다.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고전 14:40 상)
사실 본문은 1차적으로 누구에게 권면한 내용입니까? 본인을 선지자나 신령한 자로 생각하던 사람들입니다. “만일 누구든지 자기를 선지자나 혹은 신령한 자로 생각하거든 내가 너희에게 편지하는 이 글이 주의 명령인 줄 알라 만일 누구든지 알지 못하면 그는 알지 못한 자니라.”(고전14:37,38)
한 마디로, 어떤 사람에게 권면한 것입니까? 신앙생활에 무관심하고 교회를 멀리 하는 사람입니까? 천만의 말씀입니다. 오히려 소위 은혜와 은사들을 많이 받았고, 누구보다도 열정이 가득하며, 교회에 대한 열심이 남다른 사람들입니다.
의외이지 않습니까? 이런 사람들이라면 누구보다도 모범적으로 신앙생활을 잘할 것 같은데,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은가 봅니다. 이는 무엇을 통해 여실히 알 수 있습니까? 어느 교회보다도 은사를 많이 받았던 고린도교회에 잡음(雜音)이 늘 끊이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네 형제들아 글로에의 집 편으로 너희에 대한 말이 내게 들리니 곧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이라 내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한다는 것이니.”(고전1:11,12) /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고전3:3) / “누가 너를 남달리 구별하였느냐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 너희가 이미 배 부르며 이미 풍성하며 우리 없이도 왕이 되었도다...”(고전4:7,8) / “너희가 무엇을 원하느냐 내가 매를 가지고 너희에게 나아가랴 사랑과 온유한 마음으로 나아가랴.”(고전4:21) / “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그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도 없는 것이라 누가 그 아버지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도다.”(고전5:1) / “너희 중에 누가 다른 이와 더불어 다툼이 있는데 구태여 불의한 자들 앞에서 고발하고 성도 앞에서 하지 아니하느냐.”(고전6:1) / “먼저 너희가 교회에 모일 때에 너희 중에 분쟁이 있다 함을 듣고 어느 정도 믿거니와.”(고전11:18)
우리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소위 신령한 사람일수록 무엇이 필요합니까? 품위입니다. 즉 품격 있는 신앙생활이 요구됩니다. 어째서입니까? 무슨 일이든 과하거나 지나치면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므로, 모든 것을 적당하게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적당하게 하고...”(개역한글, 고전14:40 상) / “너는 끌을 보거든 족하리만큼 먹으라 과식함으로 토할까 두려우니라.”(잠25:16) /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도 말며 지나치게 지혜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스스로 패망하게 하겠느냐.”(전7:16)
또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까? 질서 있는 신앙생활입니다. 즉 모든 것을 질서 있게 해야 합니다. “...질서 있게 하라”(고전 14:40 하) 어째서입니까? ‘자율’(自律)이라는 미명 하에 내버려두고 방치하면, 무질서하고 어지러워지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통해 무엇을 깨닫게 됩니까? 하나님께서 질서의 하나님이시니, 우리도 무슨 일이든 질서 있게 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질서의 하나님께 잘 배워서, 모든 것을 질서 있게 하고 있습니까? 무질서한 생활은 과감히 청산하고 무슨 일이든 품위 있고 질서 있게 하고 있습니까? 명심하십시오. 하나님은 무질서나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시란 점을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