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
아버지는 시골 초등학교 교사(敎師)셨다. 평생 교감(校監)이나 교장(校長)자리를 마다하시고 교단(敎壇)을 벗삼아 아이들을 가르치셨다. 하루 종일 재잘대는 아이들과 함께 하는 것이 아버지에게는 더 없는 낙(樂)이고 행복(幸福)이셨다.
정년퇴임 후, 아버지는 학생들이 그리운지 저녁이면 앨범을 펼쳐들고 30년 전 처음 만났던 학생들의 얘기부터 그리운 옛 이야기를 들려주시곤 하셨다.
“이 아이는 정말 말썽꾸러기였지… 하루라도 안 싸울 날이 없었단다. 그래도 심성이 착하고 붙임성도 좋아서 나만 보면 떡볶이를 사달라며 조르곤 했던 아이지….”
“유진이 얘는 참 의젓하고 성격이 참으로 밝은 아이였지. 아프신 홀어머니와 힘들게 살면서도 앨범 사진과 같이 늘 웃음을 잃지 않았던 명랑하고 성격이 밝은 아이였지. 아프신 어머니 때문에 늘 입 버릇처럼 의사가 되겠다고 말하곤 했었단다. 내가 가끔 집에 찾아가서 유진이 몰래 고기며 쌀이며 사다 놓곤 했었는데... ”
줄줄이 이어지는 아버지 추억담은 늘 우리 자식들 마음을 촉촉이 적시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산책을 다녀오시던 아버지가 쓰러지셨다. "폐암 말기… 한 평생 칠판 앞에서 쓰고 닦고 하시더니 폐암이 되셨구나.”
희망이 없다는 의사의 말을 뒤로 하고 우리는 아버지를 집으로 모셔와 가족이 할 수 있는 치료를 계속했다. 종종 아버지 제자들이 소식을 듣고 문병차 찾아오곤 했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께서는 또 한참을 제자들과 옛 추억에 잠겨 이야기를 나누곤 하셨다. 그때 만큼은 아버지 얼굴에도 생기(生氣)가 도셨다.
그러나 아버지 병세는 날이 갈수록 나빠졌다. 기침 때문에 잠을 못이루시는 날들이 잦아지고, 가래 끓는 소리도 거칠어졌다. 얼마 못가서 마침내 아버지께서는 대화(對話)를 나누지 못할 정도로 병세(病勢)가 악화(惡化)되셨다.
그때 마침, 진료(診療)받던 병원에서 의사(醫師) 한 분을 보내주셨다. 20대 후반의 여의사였는데, 가래가 끓으면 젖은 가재로 손가락을 넣어 가래를 꺼내주곤 하면서 가족 만큼이나 지극 정성으로 보살펴주셨다. 여의사가 오는 날이면 대화(對話)가 불가능하셨던 아버지도 유난히 표정(表情)이 밝아지셨다.
한번은 아버지가 기침이 무척이나 심해져 얼굴은 핏발로 벌게지고 목에서는 가래가 들끓어 숨쉬기 조차 답답해하시자, 손으로 가래를 꺼내던 여의사꼐서는 난데없이 음료수 빨대를 가져오라고 하셨다. 대체 빨대로 무엇을 하려나 하고 의아해하며 빨대를 가져다 드렸더니 그녀는 빨대 한 끝을 아버지 목구멍에 넣고 다른 한 끝은 자기가 물고 가래를 입으로 빨아내는 것이 아닌가!
자식들도 감히 못하는 일을 젊은 여의사가 그렇게 하고 있었다. 폐암 말기 환자였기 때문에 가래에서 악취가 심했다. 그러나 여의사는 전혀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그렇게 빨아내기를 몇 십분 정도 하자, 가래 끓는 소리가 잠잠해지고 아버지 얼굴에 화색(和色)이 돌았다.
몇 달 후, 아버지는 결국 세상을 떠나셨다. 장례를 치르고, 우리 가족은 그동안 살아계실 때 문병(問病) 오시고 장례에 오셨던 분들께 고맙다고 방문 인사도 드리고 먼 곳에 계신 분들께 감사의 답례 인사장도 보내드렸다. 그리고 병원을 찾아 정성을 베푸셨던 젊은 그 여의사 선생님도 찾아뵙기로 했다.
그런데,
“네?... 의사 보내드린 적이 없는데요?”
“분명히 병원에서 왔다고 했는데요?”
“의사 분 성함이 어떻게 되나요? 아무튼 저희 병원쪽에서는 의사를 보내드린 적이 없습니다.”
여의사의 이름도 몰랐던 우리는 헛걸음한 채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이 일이 있은지 얼마 후, 외국에서 한 통의 편지가 날아왔다. 돌아가신 아버지 앞으로 온 편지였다.
"선생님, 저 유진이에요. 선생님이 참 예뻐해 주시던 유진이입니다. 제가 초등학교 시절 어려울 때 가끔 저희 집에 쌀과 고기며 반찬을 놓고 가셨던 선생님! 저는 다 알고 있었답니다. 그 때는 자존심이 상해서 차마 고맙다는 말씀도 드리지 못했습니다. 그 못난 제자가 의사(醫師)가 됐어요. 제 소식을 알면 제일 기뻐하실 선생님을 수소문(搜所聞)해 찾았을 때, 선생님께서는 많이 편찮으시다는 것을 알았고 선생님을 뵙고 치료해 드릴 때는 진작 대화 한마디 못했던 것이 무척 후회스럽고 안타까왔습니다. 침상에 누워계신 선생님을 뵈었을 때 의사 가운을 입은 저를 보시며 비록 말씀은 못하셨지만 선생님께서는 ‘어서 오렴... ’하고 반겨주시듯 제 손을 꼭 잡아주신 선생님! 그때 절 알아보신 거 맞죠? 언젠가 제 꿈이 의사(醫師)라고 말씀드렸을 때 선생님께서는
''유진이는 사람의 병든 몸 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고쳐주는 훌륭한 의사가 될거야!'' 하셨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그 말씀을 지키려고 해요…
이 곳, 아프리카 오지(奧地)에서 환자들의 몸 뿐만 아니라 선생님 말씀 처럼 마음도 치유해주는 훌륭한 의사가 될 것을 다짐하면서 불우한 환경에 처한 이들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선생님도 저를 위해 기도해주실 거죠? 사랑합니다... 선생님 ! '
우리 가족은 머나먼 아프리카에서 날아온 그 여의사가 바로 아버지 목에서 끓는 가래를 빨대로 뽑아내 주시던 유진이란 제자였음을 뒤늦게 알게 되었으며, 그 여의사의 고귀한 편지를 아버지 묘소에 고이 놓아드렸다.
오늘, 사제간(師弟間)의 아름다운 소식을 호출하게 된 사유(事由)는 5월15일이 스승의 날이기 때문이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숭고(崇高)한 정신이 퇴색된 지도 오래되어 마음 한 구석이 텅 빈 것 같고 안타까운 심정을 이루 말할 수 없다. 이제는 스승의 날을 교육의 날로 바꾸자는 청원(請願)도 날로 높아지고 있다는 말이 있어 스승의 날이 얼마나 존속될지 의문이 들기도 하고 안타깝기만 하다.
가르치는 스승을 공경(恭敬)하자는 사회적 풍토를 조성하고 스승들의 사기진작(士氣振作)과 교권존중(敎權尊重), 나아가 사회적 지위 향상을 위해 정부가 법정기념일로 제정한 날이 "스승의 날" 인데 이 고귀한 기념일이 존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나만의 생각이 아닐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배우고 싶은 제자가 있다면 그 뒤에는 가르치는 스승이 있기 마련이다. 나는 교사도 아니고 교사와 관련도 없으면서 매년 5월에 스승의 날을 맞이하면 생각나는 중요한 하나가 있다. 나이가 들어 80이 넘는 노년이 됐지만 지금도 나를 가르쳐주는 스승이 계시다는 사실이다. 참 스승을 만나기란 싶지 않기도 하지만 생각을 바꾸면 나의 스승은 도처(到處)에 있다.
내가 한권의 책을 선택하고 그 책을 읽는 것은 책의 저자(著者)와 간접 대면(對面)해서 가르침을 받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책 한권을 읽는다는 것은 스승 한 분을 만나는 것과 같다고 하겠다.
1주일에 한권의 책을 읽으면 한 분의 스승을 만나는 셈이고 1년이면 50분을 10년이면 500분의 스승을 얻는 것이니 감사가 넘칠 뿐만 아나라 날마다 지혜로와지지 않겠는가...
이상 작가 김홍신의 ''내 삶을 사랑하는 365가지 방법"에서 발췌한 내용을 소개해 드렸습니다...
불금에 행복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