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태조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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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개국과 대재앙의 씨앗 잉태
이성계는 정도전과 의기투합한 지 10여 년 만에 고려의 마지막 왕이 되었습니다.
이성계는 즉위한 후 명나라 주원장이 낙점한 조선이라는 국호(1.조선 2.화령 중 하나를 정해달라고 한것임)로 새나라를 출범시키고,
이숭인 등 정몽주의 측근 8명의 학자를 곤장으로 쳐 죽이는 등 반혁명세력의 핵심분자들을 가차 없이 제거함과 아울러 공이 있는 자들을 개국공신으로 임명하는 등 발 빠른 행보를 보였습니다.
그러나 공이 누구 못지않게 큰 이방원 등 그 아들들을 하나도 공신으로 선정하지 않았으니,
이것은 세자책봉 문제와 더불어 훗날 벌어질 엄청난 비극의 씨앗이 됩니다.
이성계는 부인이 둘 있었는데,
첫째 부인은 6남 2녀를 남긴 후 이성계가 왕이 되기 전에 사망했고,
둘째 부인은 2남 1녀를 낳고, 조선의 중전이 되는 호사를 누리게 됩니다.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여 왕이 된 후 자연스럽게 세자를 책봉해야 하는 문제가 대두되었는데,
장자인 이방우가 세자가 되지 못하므로(이방우는 한량으로 정치에 관심이 없었다고 함),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이 크고 왕제를 갖춘 이방원이 세자가 될 것으로 예측했으나,
예상을 뒤엎고 둘째 부인인 중전의 막내 아들 방석이 세자로 선정되었습니다.
이는 중전의 욕심, 정몽주를 쳐 죽인 이방원을 꺼린 이성계, 재상주의를 실현하려는 정도전 등의 이해가 합치된 결과였고,
이성계는 이방원의 반발 정도는 자신의 카리스마로 충분히 제압 가능한 것으로 본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정몽주를 쳐죽이는 광기를 보고도 그 집요함과 과감함을 간과한 것으로,
이러한 세자책봉은 결국 훗날의 2차례에 걸친 피비린내 나는 왕자의 난의 빌미가 되고 맙니다.
*조선왕조실록 2편*
태조실록-2
공민왕과 이성계의 등장
결국은 이성계의 고조할배가 젊은 여자를 잘 못 건드려서 개피봤고 원나라에 딸랑거렸다고 조정에서 왕따신세 당하고, 촌놈이라 괄시 많이 당했습니다.
하지만 싸우면 이기는 최고의 장수로 백성들로부터 아이돌같은 대접을 받아서 혁명을 성공시키게 되는데~~
어쨌거나 저쨌거나 11세때 원나라에 볼모로 끌려갔던 총명한 소년(공민왕이 됨)은 커가면서 원나라 왕실의 총애를 받고 그 평생의 연인 노국공주와 결혼까지 한 후 원나라 조정의 깊은 뜻(고려를 좌지우지 하겠다는 뜻)에 의해 고려의 공민왕으로 책봉됩니다.
그러나 공민왕은 원나라의 기대와 달리 왕이 되자 곧 원나라를 등에 업고 왕 이상의 권세를 누리던 기철(원나라 기황후의 오빠)과 그 일당을 죽이고
전 회에 본 것처럼 이자춘의 도움을 받아 동북면까지 회복하는 등 기세 좋게 고려의 독립과 개혁을 추진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즈음 원나라의 토벌에 밀려 고려로 밀려들어오는 홍건적과 여진족에 왜구까지 고려를 침범하는 바람에 공민왕은 개혁의 기회를 잃게 됩니다만, 이러한 공민왕과 고려의 불행이 이 사나이에게 기회를 주었으니, 이 자가 바로 이성계입니다.
이성계의 부친 이자춘은 개경에서 5년을 살다가 동북면으로 돌아온 후 곧 사망하였고, 이제 동북면에는 사람이 없다는 세간의 평을 뒤집으며 이성계가 화려하게 부상합니다.
원나라에 쫒기던 홍건적이 침범하여 개경을 함락한 후, 고려는 대대적인 개경 수복작전을 펼치는데 이 때 이성계는 홍건적 수장의 목을 베어버리는 등 대활약을 하여 일약 무명에서 전국구 스타로 발 돋음 하게 되고,
곧이어 심양 일대를 지배하던 원나라 장수 나하추를 박살내면서, 이성계는 고려를 대표하는 명장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말하자면 이때 이성계는 메시와 손흥민 그리고 호나우두를 합쳐 놓은 정도의 신화적 스타가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지요
*조선왕조실록 3편*
개국-1 3대 세력, 그리고 신돈의 등장
고려말, 이 나라에는 권문세족, 사찰 세력, 신진사대부라는 3개의 세력이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요즘으로 치자면 민주,국민,개혁,...이런거겠지요~
권문세족은 100년에 걸친 무신의 지배와 또 100년에 걸친 원의 지배를 거치면서 사병과 원나라를 등에 업은 권세를 가진 자들로서,
이들은 산과 강을 경계로 삼을 만큼 광대한 사유지를 가지고도 아예 빨대를 꽂고 백성의 피를 빨았습니다.(대표자 이인임)
사찰 세력은 불교가 국교로 대접 받는 틈을 타 권문세족 못지않은 토지와 권력을 소유한 막강세력이었습니다.
신진사대부 세력은 당대의 학자 이색과 정몽주, 정도전 등을 대표로 하는 그 문하의 유학자들로서 지방 중소지주 출신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이들은 권력은 없지만 권문세족과 사찰세력의 문제를 뜯어 고칠 날을 기대하며 힘을 모으고 있었습니다.
공민왕은 권문세족과 사찰 세력의 문제점을 진작부터 알고 이들의 문제를 해결할 의지를 불태웠으나,
홍건적과 왜구의 침범에다 부인인 노국공주의 죽음까지 겹치자 인생의 흥미를 잃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고려 개혁 의지는 잃지 않고 있었습니다.
공민왕은 권문세족과 사대부는 끼리끼리 선배니 후배니 다 연결되어 있어 이들을 믿을 수 없다고 보고, 이즈음 알게 된 스님에게 고려개혁을 맡기니, 이 자가 바로 그 유명한 신돈입니다.
신돈이라는자도~스타트는 혁신위원회의 위원장이다 뭐다해서 깔삼하게 출발은 했지만~훗날 고기맛을 본 다음에 신돈의 말로는~ 쯧쯧~
*조선왕조실록 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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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국-2
신돈과 공민왕의 죽음, 그리고 이인임의 화려한 등장
공민왕은 권문세족의 왈왈거리는 반대를 무릅쓰고, 신돈에게 주변의 어떤 모함이 있더라도 신돈을 절대로 버리지 않겠다는 맹세에 각서까지 써주고, 인감증명을 붙혀서 공증해 주고 개혁 전권을 부여하였습니다.
이에 신난 신돈은 빼앗긴 백성의 땅 찾아주기, 강제로 노비가 된 백성의 신분 찾아주기, 과거제 개혁으로 이색, 정몽주, 정도전 등 신진사대부 등용시키기 등의 강력한 개혁으로 백성들로부터 엄청난 인기를 얻었습니다.
신돈은 몇 해동안 사심 없는 강력한 개혁 드라이브로 고려의 미래를 밝히는 듯 했으나,
곧 과도한 인기와 권력에 취해서 방자해져 미망에 빠져들기 시작했고, 결국 역모를 꽤했다는 이유로 맹세각서에도 불구하고 불법인신구속 4일 만에 재판도 없이 모가지가 뎅강 떨어지고 마는데,
이는 신돈의 과도한 인기를 두려워하고 질투한 공민왕의 자작극이라는 추정이 많습니다. (토사구팽~정치가 다글치~뭐 딴거있나)
어쨌든 저쨌든, 신돈의 죽음으로 공민왕의 고려개혁 열정은 사라지고~공민왕~그 양반은 아예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공민왕은 폐인이 다 된 채, 자제위, 즉 고관 자제들 중 나이 어린 꽃미남 소년들을 궁에 데려다 놓고 혼숙, 후궁 찝쩍거리기 등등 별 해괴한 변태 짓을 일삼았습니다.
그러다 후궁 중 하나가 임신을 하자, 술김에 내관에게 ‘내일 아침이 되면 그 후궁과 관계된 꽃미남 소년들을 모조리 죽이고 후궁이 낳은 자식을 내 자식으로 해야겠다’는 말을 하고,
이어서 ‘아참~ 최내관 너도 이 사실을 알고 있으니 너도 죽여야 겠다’라는 말을 농담처럼 한 후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최만생이라는 내관은 자신이 죽게 될 것을 염려하여 그날 밤 자제위 꽃미남 소년들과 결탁해 오로지 살고자 하는 의지로 쥐가 고양이를 무는 거사를 일으켜 정말로 공민왕을 죽이게 됩니다.
이와 같은 국왕 살해사건은 곧 전모가 밝혀지게 되는데,
이 때 누구처럼~합동수사본부장으로서 범인검거, 수사, 재판, 대국민담화문발표, 기자회견까지 도맡은 이가 당시 시중을 맡고 있던 권문세족의 대표자 이인임으로, 이인임은 이 사건 이후 강력한 권력을 쥐게 됩니다.
*조선왕조실록 5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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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국-3
이인임의 죽음, 그리고 최영, 이성계 투톱시대 개막
공민왕 살해사건을 깔끔하게 처리하여 강력한 실세권력을 움켜 쥔 이인임은 공민왕의 뒤를 이을 후계자를 결정하는 당정 연석회의에서 신돈의 아들이라는 소문이 자자한 어린 아이를 왕으로 삼으니 이 자가 우왕이고,
이인임은 어린 우왕의 후견인으로서 더 더욱 막강한 권력을 행사합니다.
이즈음 중국에는 조폭 반건달 출신 주원장이 명나라를 세워 중국의 주인장이 되었는데,
명나라를 우짜든지 섬겨야 한다는 신진사대부(이색, 정몽주, 정도전)와 북쪽으로 도망간 몽고 원나라를 섬겨야 한다는 권문세족(이인임)이 충돌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이인임과 맞서던 정도전 등이 귀양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 후 정몽주 등은 모두 풀려나 조정에 복귀하였지만, 이인임은 정도전만은 개경에 들어올 수 없다면서 가택연금과 정치활동금지조치를 내렸습니다.
이렇게 되자 정도전은 귀양지에서 깨달은 것과 현재 자신의 팍팍한 처지 등을 종합해 본 결과, 이래 죽나 저래 죽나~세상을 바꾸려면, 역성혁명
(왕씨에서 이씨로 왕조를 바꾸는 혁명)밖에 길이 없다고 보고, 이성계를 만나 의기투합하였고,
결국은 젊은 패기 둘이 사고를 치니, 이 때 이성계의 나이 47세, 정도전의 나이 41세였습니다.
한편, 이인임의 후견 아래 차츰 커가던 우왕은 저거 아부지 신돈처럼 ,
인간 개말종 같은 행태를 보이면서도 실권이 있는 진짜 왕이 되고자 하는 욕심까지 가졌고, 그 과정에서 탐욕스러운 이인임보다는 욕심 없고 강직해 보이는 최영 장군에게 마음이 확 끌렸습니다.
우왕은 드디어 최영에게 이인임을 제거하라는 밀명을 내렸고, 최영은 일의 성사를 위해 이성계를 끌어들였으며, 최영과 이성계는 힘을 합쳐 완펀치에 이인임과 그 일파를 모두 쳐 죽이니,
이로써 최영과 이성계의 투톱 세상이 열리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최영과 이성계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