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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너에게 편지를 원문보기 글쓴이: 화화당
"베레모를 쓴 자화상 Self-portrait in Beret", by Claude Monet, 1886
햇살과 바람과 그리고 그대,
내 사랑이여
"양산을 든 여인 La Femme à l'ombrelle — Madame Monet et son fils (Woman with a Parasol)", by Claude Monet, 1875, Oil on canvas, 100 × 81 cm. ©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DC., US.
클로드 모네가 1872년부터 1878년까지
파리 센 강변의 아르장퇴유 부근에서 머물렀던
시기는 <아르장퇴유, 양귀비 꽃 (1873년)>과
<인상, 해돋이 (1874년)> 같은 걸작들이
연이어 나온 시기로, 사랑하는 아내 까미유와
함께 행복을 누리던 때와도 시기적으로 겹쳐요.
그러나 1878년 까미유는
둘째 아들을 낳은 뒤부터 점점 쇠약해져 갔고
자궁암으로 결국 이듬해 세상을 뜨고 말죠ㅠ.ㅠ
비록 까미유는 서른두 살의 젊은 나이에
모네의 곁을 떠났지만, 그녀와 그가 함께한
아르장퇴유에서의 행복했던 시간들은
사라지지 않고 그가 그린 그림들을 통해
영원의 생명력을 얻었습니다.
그의 걸작들 속에서 까미유는 여전히 건강하고
젊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살아 있으니까요.
아르장퇴유 강변을 세 식구가 함께 산책하던
1875년의 어느 화창한 날 오후.
눈부신 햇살과 춤추는 구름,
바람결에 나풀거리는 그녀의 하얀 스커트와 초록색 양산...
산책하다 말고 갑자기 길가에 캔버스를 펼쳐 놓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는 남편을 바라보는
상기된 표정의 사랑스러운 아내.
이렇듯 걸작은 찰나의 순간을
영원으로 확장하는 힘을 발휘해요.
맨왼쪽: 클로드 모네가 1875년에 그린 <양산을 든 여인>. ©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DC., US./ 오른쪽 두 작품: 클로드 모네가 1886년에 그린 두 점의 <양산을 든 여인>. © Musee d'Orsay, Paris.
보시는 것처럼 클로드 모네는 <양산을 든 여인
(Woman with a Parasol)>이란 제목으로
총 3점의 유화 작품을 남겼는데요.
날아가는 찰나의 순간을
날쌔게 잡아낸 붓스트로크의
움직임이 한눈에 봐도
굉장히 가볍고 경쾌하죠?!
그 중에서도 특히
어린 아들 장과 함께 세 식구가 산책을 하던 날
그린 1875년 작!
"양산을 든 여인 La Femme à l'ombrelle — Madame Monet et son fils (Woman with a Parasol)", by Claude Monet, 1875, Oil on canvas, 100 × 81 cm. ©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DC., US.
그림을 확대해서 보면
모네의 붓질의 흔적에서도
'바람'이 역력하게 느껴져요.
붓의 방향이 일정하지 않고 사방으로,
역동적인 움직임을 보여주죠.
흰색과 회색, 라이트 블루, 그리고
노란색도 보입니다.
봄날, 바람 부는 모네의 언덕.
클로드 모네의 1875년 작 <양산을 든 여인> 중에서 '하늘 부분' 일부 확대
부는 바람을 따라
흔들리는 언덕의 풀꽃들.
클로드 모네의 1875년 작 <양산을 든 여인> 중에서 작품 하단 일부 확대
이 그림 사이즈가 실물로 보면
생각보다 제법 크거든요.
가로 세로 모두 거의 1미터 정도 됨.
그래서 실제로 보면
화창한 봄날의 바람 부는 언덕 위의 풍경이
전해주는 설렘이 고스란히 다가오면서
상기된 표정으로 화가(관람객)을 바라보는
까미유와 시선이 마주칠 땐 모네가 그런 것처럼
우리 또한 그녀와 '사랑'에 빠지게 돼요.
그림이 불러일으키는 감정, 친밀감에
자연스럽게 나도 함께 동조하게 되는데요.
모네의 <양산을 든 여인>을 보고
그런 감정을 경험한 사람이 또 있었으니!
"마담 X (Madame X)", by John Singer Sargent, 1883-1884, Oil on canvas, 208.6 × 109.9cm
<마담 X (마담 피에르 고트로)> 같은
상류사회 여성들의 초상화를 주로 남긴,
"미국 미술의 3대 거장"으로 일컬어지는
존 싱어 사전트(1856년 ~ 1925년)는
1876년, 파리에서 열린
<제2회 인상주의 전시회>에서 모네의 이 그림을
보았고, 모네의 <양산을 든 여인>에 영감을 받아
<Two Girls with Parasols at Fladbury>를
그리게 돼요 :)
"Two Girls With Parasols at Fladbury", by John Singer Sargent, 1889. © 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 City.
'인상주의'라는 장르를 대표하는 화가들은
많지만, 그 중 단 한 명만을 꼽아야 한다면,
그 한 사람은 단연 '인상주의'의 시작점이 된,
'인상주의'라는 용어의 사실상의 최초 발명자인
클로드 모네가 되어야 할 거예요.
그리고 그의 수많은 '인상주의' 띵작들에
모델이자 뮤즈로 함께했던 까미유 동시외도
잊지 말아야겠죠.
"바지유와 까미유 Bazille And Camille", by Claude Monet, 1865, Oil on canvas, 93 x 68.9 cm
1865년 클로드 모네는 동료화가이자
당시 작업실을 함께 쓰고 있던 프레데리크
바지유의 소개로 열여덟 살의 까미유 동시외를
처음 만나게 됩니다.
모네는 즉시 자신의 작품에 모델로 포즈를
취해줄 것을 까미유에게 부탁해요.
이 날 이후로
모네는 까미유만 그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게 되었죠.
"The Picnic (풀밭 위의 점심식사 Luncheon on the Grass)", by Claude Monet, 1865, Oil on canvas, 130.0 x 181.0 cm.
<The Picnic>이라는 제목으로도 불리는 위 그림
1865년 작 <Luncheon on the Grass
(풀밭 위의 점심식사)>에서 맨왼쪽에 있는
두 인물이 바지유와 까미유
"Lunch on the Grass", by Claude Monet, 1865-1866, Oil on canvas, 248 x 217 cm. © Musée d'Orsay, Paris.
"정원의 여인들 Women in a Garden", by Claude Monet, 1866-1867, Oil on canvas, 255 × 205 cm. © Musee d'Orsay, Paris.
이 <정원의 여인들> 그림에선
그림 속의 3명의 여인이 모두 까미유
클로드 모네의 <정원의 여인들 Women in a Garden> 작품 이미지 일부 확대
아직 화가로서 스스로 생계를 벌 만큼
입지를 다지기 전의 모네는 부모로부터의
경제적 지원이 없이는 캔버스를 살 돈조차
구할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아들의 성공을 바란 모네의 가족은
아무런 배경도 없는 까미유와의 결혼을
극렬하게 반대했고, 결국 지원도 끊었습니다.
"Madame Monet(까미유) and Child", by Claude Monet, 1875
둘이 함께라면
그런 어려움들은 견딜 수 있었어요.
둘이 함께라면.
그러나 그런 행복도 잠시...
"Camille and Jean Monet in the Garden at Argenteuil", by Claude Monet, 1873
클로드 모네의 <양산을 든 여인>으로
화제를 다시 돌려서
아내 까미유와 함께
아들 장을 데리고 산책하던 중
푸른 하늘과 따사로운 햇살,
그리고 초록색 양산을 들고 있는
아내의 하얀 치맛자락이 바람에 나풀거리는,
너무나도 평온하고 행복한 광경에 영감을 받아
그 길로 걸음을 멈추고 길가에 캔버스를 세우고
그리기 시작한 그림.
길을 걷다가 멈춰서서 그런 남편을 돌아보는
상기된 표정의 아내와 아들.
생각만 해도 행복해지는 기분이 들죠.
"아르장퇴유의 산책 En Promenade pres d'Argenteui", by Claude Monet, Oil on canvas, 61 x 81.4 cm. © Musee Marmottan Monet, Paris.
클로드 모네의 그림들에 등장하는
젊은 여인은 거의 대부분
사랑하는 아내 까미유를 모델로 그린 거라고
위에서도 말씀드렸는데요.
까미유가 결국 자궁암으로 서른두 살이라는
너무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난 뒤 (1879년),
그 후로 모네는 더 이상 인물화는 잘 그리지 않고
풍경화만 주로 그리게 됩니다
왼쪽: 건강했을 때의 까미유 "Camille with a Small Dog", by Claude Mont, 1866 /
오른쪽: 죽음 직전의 까미유 "Camille Monet on her deathbed", by Claude Monet, 1879, Oil on canvas, 90 x 68 cm. © Musee d'Orsay, Paris.
까미유를 잃은 지 7년째가 되는 어느 날,
두 번째 아내 알리스의 딸 쉬잔과 함께
강변을 산책하던 모네는
따사로운 햇살과
바람에 나부끼는 하얀 치맛자락,
그리고 초록색 양산에...
쉬잔에게서 까미유의 모습을 떠올리는데!
데자뷔
까미유의 죽음 이후 7년 만에 처음으로
모네는 두 점의 인물화를 다시 그려요.
클로드 모네가 1886년에 그린 두 점의 <양산을 든 여인>. 두 작품 다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
그러나 그림 속 여인의 얼굴은
- 이목구비는 - 끝내 그려 넣지 못했어요.
"오른쪽을 향하고 있는 양산을 든 여인 Woman with parasol facing right", by Claude Monet, 1886, Tempera on canvas. © Musee d'Orsay, Paris.
"왼쪽을 향하고 있는 양산을 든 여인 Study of a Figure Outdoors: Woman with a Parasol, facing left", by Claude Mont, 1886, Tempera on canvas, 131 x 88 cm. © Musee d'Orsay, Paris.
클로드 모네의 <Study of a Figure Outdoors: Woman with a Parasol, facing left> 작품 이미지 일부 확대
얼굴을 그려 넣지 않은
1886년에 그린 위의 그림과
이목구비는 물론이고 그림 속 인물(까미유)의
시선과 표정까지 읽을 수 있는
아래의 1875년 버전 <양산을 든 여인>을
비교해 보세요.
까미유를 모델로 그린 1875년 작 <양산을 든 여인> 그림 일부 확대
"양산을 든 여인 La Femme à l'ombrelle — Madame Monet et son fils (Woman with a Parasol)", by Claude Monet, 1875, Oil on canvas, 100 × 81 cm.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DC., US.
1886년 모네가 바람 부는 언덕 위에서
그린 인물은 분명 의붓딸 쉬잔이었지만,
그로하여금 자신도 모르게 종이를 펼치고
그림을 그리게 한 건
그리운 까미유였기 때문에
차마 얼굴은 그려 넣을 수 없었던 것이었죠
"Woman with a Parasol", by Claude Monet, 1891, Black chalk on Gillot pape, 32.0 x 23.0 cm Black chalk on Gillot paper
왼쪽: 1886년 버전 <양산을 든 여인> / 오른쪽: 1891년 버전 <양산을 든 여인.
"Portrait of Camille Monet", by Claude Monet, 1866-1867
까미유 동시외 (까미유 모네 Camille Monet, 1847 ~ 1879), 1871년... Photo by Greiner
이 사진은 1871년 모네와 까미유가
네덜란드로 여행을 갔을 때 찍은 사진으로,
개인소장자에 의해 보관되고 있었던 덕분에
알리스는 이 사진의 존재를 미처 알지 못했거든요.
그렇게 해서 살아남은
까미유 동시외의 유일한 사진 1장.
모네가 1886년에 <양산을 든 여인>을
다시 그리면서 까미유의 얼굴을 그 그림에
그려 넣지 못한 것도 어쩌면 이 때문일 거예요.
"(네덜란드) 잔담 근처의 풍차들 Windmills near Zaandam", by Claude Monet, 1871
비록 까미유 동시외에 관한 사진들과
다른 기록들은 남아 있는 게 거의 없지만,
그녀를 그린 많은 그림들이
- 그것도 세계 미술의 역사를 빛내는
레전드 화가들이 그린 그림들이ㄷㄷ -
세상에 남아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요.
모네뿐만 아니라
모네의 동료화가들도 까미유를 그리는 걸
좋아했다고 해요.
까미유를 단독 모델로 해서 그리기도 했고
아르장퇴유의 모네의 집을 찾아갔을 때
그곳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는 모네와
까미유, 어린 장의 평화로운 모습을 보고
세 가족을 화폭에 담기도 했죠.
"Femme cueillant des Fleurs (Woman picking flowers)", by 르누아르 Pierre-Auguste Renoir, 1872-1874, Oil on canvas, 65.5 x 54.4cm.
"까미유 모네 Camille Monet", by 르누아르 Pierre-Auguste Renoir, 1872, Oil on canvas, 61 x 50 cm. © Musee Marmottan Monet, Paris.
"까미유 모네와 아들 장 Madame Monet et son fils", by 르누아르 Pierre-Auguste Renoir, 1874
특히 1874년에 그린 이 두 그림은
르누아르와 마네가 같은 시기에
모네의 집을 방문했다는 걸 알게 해줘서
볼 때마다 미소를 짓게 돼요♡
두 작품의 구도는 굉장히 비슷한 반면
르누아르와 마네의 각기 다른 필치와
개성이 여기서도 확연히 눈에 띄죠?!!
"아르장퇴유의 그들의 집 정윈에 있는 모네 가족 The Monet Family in Their Garden at Argenteuil", by 에두아르 마네 Edouard Manet, 1874, Oil on canvas, 61 x 99.7 cm. © © 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 City.
저 위에서 언급한 미국의 레전드 화가
존 싱어 사전트도 모네의 집을 방문해
그곳에서 모네와 그의 가족들을 그림으로
그렸는데요. 그런데 사전트가 찾아간
모네의 집은 모네가 까미유와 함께 살았던
파리 근교의 아르장퇴유가 아니라,
노르망디의 지베르니에 위치한 집이었어요.
까미유가 죽고 몇 년 뒤
모네는 아르장퇴유를 떠나 지베르니로
거처를 옮기거든요.
"Claude Monet painting by the edge of the wood", by 존 싱어 사전트 John Singer Sargent, 1885, Oil on canvas, 54 x 64 cm. © Tate Gallery, London, UK.
1885년 지베르니에 있는 모네의 집을 방문한
존 싱어 사전트가 그린 모네와 그의 가족.
이 그림 속의 여인은 까미유가 아닌
모네의 두 번째 아내 알리스겠죠?!
모네의 최대 후원자 중 한 명이었던 화상
에르네스 오슈데한테는 매력이 넘치는 아내
알리스가 있었어요. 아마도 알리스는 사랑이 아닌
돈 같은 다른 이유로 오슈데와의 결혼생활을
억지로(?) 유지하고 있었는가 봐요.
남편을 통해 알게 된 전도유망한 화가 모네에게
알리스는 끌리게 됩니다.
그러던 중 모네의 아내가 병석에 눕게 되고
심적으로 크게 흔들리기 시작한 모네는
알리스한테서 의지할 곳을 찾게 돼요
그리고 얼마 뒤
갑자기 불경기가 불어닥치면서
알리스의 남편 오슈데는
그만 파산을 하게 되고
자살기도 후 그는 도망치듯 파리에서
자취를 감춰버리게 되는데요.
알리스는 남편 오슈데를 따라가는 대신
애들을 데리고 모네의 집으로 들어가요+O+
이 무렵 모네의 동료화가들과 주변 지인들은
알리스와 모네의 부적절한 관계에 대해
다들 알고 있었다고. 알면서 쉬쉬 하는 분위기
까미유가 죽고 1년 뒤
알리스는 모네의 외부 행사에도
함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신문에서는 그녀를 모네의 아내로
소개하기 시작. 사실혼 관계
그런데 오슈데는 아직 살아 있었걸랑요;;;
오슈데가 1891년 객사를 하고
1892년 모네와 알리스는 법적으로
부부가 됩니다.
모네를 향한 알리스의 집착과
까미유에 대한 질투는 실로 엄청났다고 해요.
그녀는 모네에게서 까미유에 관한 기억을
지워버리고 싶어했고 또 실행에 옮겼죠.
클로드 모네의 1886년 작 <Study of a Figure Outdoors: Woman with a Parasol, facing left> 작품 이미지 일부 확대
그렇지만 알리스는 모네의 마음 속에서
까미유에 관한 기억을,
그리움의 감정까지 완전히 지우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까미유가 죽고 7년 뒤에 모네가 그린
- 차마 여인의 얼굴은 그려 넣지 못한 -
저 그림만 봐도.
"알리스 오슈데 Alice Hoschede", by Carolus-Duran, 18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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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너에게 편지를 원문보기 글쓴이: 화화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