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치 : 조천읍 선흘리 1019번지(조천읍 선흘동1길41)
시대 : 일제강점기(1938)
유형 : 碣(기념비)
선흘분교장에 학교가 세워진 것은 1936년이다. 당시의 이름은 선흘간이학교였으며 4년제 사립이었다. 이후 1944년에 선흘공립학교로 승격하였다. 1949년 10월에는 4·3의 와중에 폐교되었다가 1950년 8월에 함덕초 선흘분교장으로 복구하여 1953년 4월 1일 선흘국민학교로 승격 개교하였다. 학생수 감소로 인해 1995년 3월에는 다시 함덕초 선흘분교장으로 격하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학생수가 18명에 이르는 등 학생수 감소를 이유로 폐교논의가 몇 년 동안 지속되어 오다가 2015년부터 건강생태학교를 운영하면서 2017년 5월 현재에는 학생수 56명이 되었다.
이 비석은 학교 설립에 공헌한 분을 기리는 것으로 선흘분교장 교문 동쪽 나무들 사이에 다른 공덕비들과 함께 맨 서쪽에 세워져 있다. 비석은 대리석으로 만들었으며 현무암으로 만든 비각 안에 있다.
비석의 정면 가운데에는 큰 글씨로 議官金琬鉉紀念碑라고 새겨져 있고, 그 좌우로 千金不惜 一校維持 遺芳百世 安敢忘之라는 작은 글씨가 있다. 뜻은 〈천금을 애석하게 여기지 않고 한 학교를 유지하였으니 아름다움(아름다운 이름)이 백세에 남을 것이며 어찌 감히 잊을손가!〉로 해석하면 좋을 듯하다.
왼쪽 옆면에는 歲戊寅秋 善屹里民 一同이라는 글자가 있다. 무인년(1938) 가을에 선흘리민 일동이 세웠다는 뜻이다.
議官은 사전을 보면〈고종32년(1895)년에 두었던 중추원(中樞院)의 한 벼슬. 대한제국 광무9년(1905)년에 찬의(贊議)로 고쳤다.〉라는 설명이 나온다. 김완현씨가 실제로 중추원 의관을 지낸 분인지는 미상(未詳)이다. 제주인물대사전에는 김완현이 나오지 않는다.
《작성 170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