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하고 단정하고 논리적이고 명석한 여성 변호사
박소영 씨
글-김 류 (시인) | 사진김보섭 (자유사진가)
변호사는, 식사가 끝날 때까지 내내 얼굴에 퍼진 웃음을 지우지 않았다. 곁에 앉은 홍보실장도 세상 전혀 걱정이 없는 사람처럼 웃는다. 그들 웃음이 양지쪽 같고 안온해서 마치 수십 년 지기(知己)와 함께한 자리처럼 점심은 맛이 있고 분위기는 상냥하고 다정했다. 특히 회 맛을 더한 것은 까다롭게 격식을 차리지 않은 채 편하게 입을 열게 하는 수수한 대화 스타일 때문이었다. “안녕하세요? 박소영(朴素榮)입니다. 여기 법무법인 로시스종합법률사무소에 근무하는 변호사입니다.” 이렇게 처음 응접 의자에 앉으며 초대면 인사를 할 때에도 변호사는 활짝 웃음을 띠었다. 그리고 이쪽의 신분을 확인하고 나자 이내, 지지난호의 ‘미스 사이공보다는 예쁘게 나와야 된다’며, 또 한 차례 웃음을 크게 웃은 것도 변호사였다. 그러니까 변호사는 식사 동안에도 그 웃음을 끝내 멈추지 않았고, 누구의 이야기도 끝까지 웃음으로 들어 준 것이다. 그런 태도는 변호사가 밝은 심성을 타고 태어났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고, 또 내면의 교양이 은은하고 온유하게 피어나기 때문일 것이라는 점이다. 짐짓 자유공원 꼭대기에 있는 여학교를 나와서 그럴 것이라는, 이쪽의 우호적이기는 해도 썩 들어맞지 않는 표현에도 반 농담 정도로 수긍하는 태도가 역시 유쾌하고 밝았다. 따지고 보면 가장 논리적이고 가장 정확, 적확한 사고 체계를 두뇌 속에 가지고 있을 사람들이 변호사가 아닌가. 그러나 그것 역시 따지고 보면, 또 흔한 우리의 편견일 것이다. 법정에서라면 틀림없이 ‘샤일록의 칼이 절대로 안토니오의 살을 베어내지 못하게 할 만큼’ 냉정한 논리와 기지(機智)로 무장하겠지만, 오늘처럼 이렇게 점심을 먹는 순간에는 그렇지 않은 것이다. 평화롭게 엉뚱한 상상이나 공상을 현실과 뒤섞어 제멋대로 늘어놓고 있는 부류에 대해서 그저 밝음과 웃음과 덕담을 말할 뿐이다. 그러니까 변호사의 본성은 차분하고 논리적이고 명석하면서 또 한편 참하고 수수하고 다정다감하다는 것이다. 특히 다정다감한 부분에서 그 증명이, 반주로 소주를 마신 것이 이쪽인데도 마치 아득히 먼 수평선을 바라보는 듯한, 또 얼마간은 이쪽의 분방한 분위기를 선망(羨望)하는 듯한 그런 눈길을 보내기까지 한 것이다. 허술하기 짝이 없는 이쪽 ‘인류’가 그나마 누리고 있는 그런 ‘자유’가 부러웠던 것일까. “시 같은 거…, 학교에서 배운 거나 겨우…. 그렇지만 남편은 그런 분야에 좀 통해요. 첼로 연주가 취미거든요.” 이쪽은 법에 대해 아는 게 없이 사막처럼 휑한데, 변호사는 말은 그렇게 하면서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이나 에드가 앨런 포우의 시 ‘아나벨리’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 이쪽의 자유가 아주 조금은 부러울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남편, 법무관이 되어 충청남도 어디쯤에서 군복무를 하고 있는 자기 남편은 좀 다르다는 것을 강조한다.
아하, 부부가 같은 해에 고시를 패스했다고 말했던 것을 깜빡 잊었다. 맞다. 사진 속의 눈썹자리가 시커멓게 짙고 서글서글하게 생긴 그 미남 법무관! 남성에 대한 신뢰를 쌓게 한 유일한 남자로서, 곁에 잡아 두어야겠다는 마음을 먹도록 한 남자, 고려대 법대 재수생 동기, 2001년 고시 동기, 2002년 사법연수원 동기, 2004년 부부 변호사로서 일생의 동기. 그리고 남편은 군법무관으로 간 것이다. 참, 둘 사이에 8개월 된 아들이 하나 있다. “주말 부부예요. 그런 상황이라 지금 현재 인천 우리 친정 부모님 댁에 같이 있어요. 어머니께서 아기 보아 주시거든요. 오늘이 금요일이니까, 남편은 내일 옵니다. 물론 기다려지지요. 첼로요? 집에 왔으니까 첼로를 켜기는 하겠죠. 그러면 전 곁에서 감상이나 하는 거구요.” 아무튼 12월 마지막 송년호 인물을 여성 변호사로 정한 것은 잘한 일이다. 12월이 법이나 혹은 변호사와 무슨 관련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아름답고 밝고 선한 성품의 여성을 만났다는 점에서는 아주 마음이 행복하다. 부친이 연안부두 쪽에서 어구상(漁具商)을 경영하고 있다는 것을 말할 때도 꾸밈이 없었고, 신흥초등학교, 신흥여중, 인일여고를 나온 토박이 인천 사람인 점도 푸근하다. 성품은 구김이 없고 환한데, 그러나 외모는 어딘가 모르게 느낌이 좀 무겁고 전체적으로 가라앉은 듯한 인상이 풍긴다. 그러나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직업이 직업이니만치 얼굴의 화장도 함부로 진하게 하거나 멋을 부릴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이 곧 변호사라는 직업에서 오는 제약인 것이다. 의상 역시도 썩 화려할 수가 없을 것이다. 내방하는 의뢰인들에 대한 느낌도 고려해야 할 것이고, 법정에 서는 상황도 늘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자연 의상의 채색이 어둡고 무겁고 되바라지지 않은 쪽으로 선호(選好)될 것이 틀림없다. 스타일 역시 단정한 정도에 머물 것이고 구두도 하이힐처럼 굽이 높고 뾰족한 것은 가려지게 될 것 같다. 편집장이 알려 준 대로 변호사는 편한 검은색 케주얼화를 신고 있는 것이다. 물론 변호사도 여느 여학생들과 같은 학창 시절을 보낸 사람이다. 축현학교 앞 대동문구 2층의 음악홀에 자주 놀러가기도 했었다. 거기에는 음악을 내보내는 멋진 디스크 자키가 있어서 여학생들의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었다. 또 선생님을 좋아하기도 해서 옆자리의 친구로부터 ‘소영이가 선생님 좋아한대요’ 하는 식의 놀림을 당하기도 했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는 반장으로서 이른바 '반팅'을 주선하면서 한 남학생과 1개월쯤인가, 아주 짧은 만남이기는 했어도 데이트를 해 보았던 경험도 있는 것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줄곧 변호사가 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어릴 때는 왜 그런 생각을 했었는지 모르겠는데 중·고등을 지나며 대학에 가서는 법관이 되어 꼭 약자의 편에 서리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러나 실제 법조인이 되고 보니까 그것이 얼마나 한계가 있는 이야기인지 뼈저리게 느껴지더군요. 안타깝게도 옛날 마음속에 가졌던 이상은 말 그대로 그저 단순한 이상에 지나지 않을 뿐이라는 것을 분명히 깨달은 셈이지요.”
하지만 실망하지 말아요. 현실은 결코 이상이 아니니까. 현실이 이상이라면 이상은 우리 마음에, 영혼에 깃들일 수가 없는 것이니까. 변호사는, 법무법인 로시스에서 여성 변호사 특유의 섬세하고 치밀하면서도 다감한 특징을 살려 부동산에 관련한 문제들과 이혼 사건 등의 가정 문제 같은 민사 사건을 전담한다. “변호사의 태도는 죄를 지은 사람에 대해 법을 넘어서서까지 무한정 옹호하자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살인자든 탈세자든 명백한 범죄자에 대해 그가 그런 범죄에 이른 데 상응하여, 법이 정한 바 가장 적절한 죄 값을 물도록, 법을 잘 모르는 그를 대신해서 법 전문가인 변호사가 도와주는 것이지요. 그렇게 보면 사회의 보편적인 정의감과 변호사가 자신의 의뢰 고객에 대해 행하는 의무가 결코 상충되거나 어긋난다고 볼 수 없는 거지요. 많은 사람들이 이 부분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아요.” 주말이 오면 이 착하고, 그러면서 당찬 젊은 변호사는 이쪽의 권유대로 미술 전시회도 가보고, 영화관에도 가고, 연극도 볼 것인지…. 그런 곳을 돌고 와서 남편과 어느 분위기 괜찮은 집에 마주앉아 술이라도 한 병 나누는 것도 좋아 보일 텐데…. “책에 잘 나와야 하니까, 이제부터, 오후에는 전심전력을 다해서 사진을 찍을 거구요.” 그래요. 그렇게 밝고 웃는 얼굴 사진 많이 찍어 둬요. 그리고 꼭 아주 덕망 있는 훌륭한 변호사가 되어요. 어느 날 그 좌절한 ‘이상’을 실현할 수도 있을지 모르니까요.
|
첫댓글 사업번창 하시구여~~ 아주 덕망 있고 훌륭한 변호사가 되시길 바랍니다. 개업을 축하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