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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SNOW IS SEND PRESENT TO ME
번호: 58 글쓴이: a움하하a
조회: 2 날짜: 2005/04/19 19:16
「하얀 눈은 송이송이 내려 거리를 감싸 앉았습니다. 그리고 허공에 휘날리는 눈발은 제게 작은 천사를 대려다 주었습니다.」
- SNOW IS SEND PRESENT TO ME -
1.
몇 번째인지, 이제는 세기도 귀찮아졌다. 단지 저 아이들의 까르르거리는 소리가 듣기 좋게
귀에 쟁쟁거릴 뿐이다. 저 웃음소리가 얼마나 많이 들렸던가?
어제 저녁부터 내리기 시작했던 눈은 아이들에겐 천사와도 같은 미소를 선사했고, 어른들에
겐 동심과도 같은 작은 감동과 추억을, 일하는 자들에겐 미끄럼에 대한 스트레스와 걱정을 주
었다. 그러나 눈은 그 짜증과 스트레스를 건네주면서도 나와 같이 버림받은 자들에겐 그 어떤
것들도 선물해 주지 아니하였다. 차별도 심한 눈이다.
눈은 송이송이 내렸고, 펑펑도 내렸고, 가루처럼 흩날리기도 했다. 그것을 맞으며 어떤 사람
은 기뻐하고, 어떤 사람은 슬퍼하며, 또 어떤 사람은 짜증을 부리기도 했다. 내 앞을 지나가는
이들 몇몇도 그러고 있는 편이다. 차별 심한 눈님께서는 내가 거리를 더럽힌다 생각했는지,
나마저도 거리와 동화시키기 위하여 그 하얀 눈을 내려주었다. 다른 이들이 보기엔 초라하고
거들떠 볼 필요도, 본다하여도 곧 눈길을 피하여 다른 곳으로 종종 걸음을 옮기는 내 모습은,
내가 보기에도 이 겉만 깨끗한 도시를 더럽히고 있었다. 속 안만 썩어버린 체, 내 모습을 완전
히 지워버린 도시의 모습을 보면서 여전히 손을 벌리고만 있었다.
이러길 몇 번, 쨍그랑 소리와 함께 백 원짜리 백은 동전이 떨어졌다. 그 모습은 철 같기도 하
고 다른 이들이 입에 몇 번씩 거론하기도 했던 그 신비의 광석을 닮기도 했다. 어디까지나 그
것은 나에게만 해당이 되는 것이었다. 다른 이들은 그것을 흔히 볼 수 있는 것이자 쓸모가 거
의 없는 것과도 비슷했다. 당연히 그들은 그들의 손에 들린 네모난 물건을 대거나 긁기만 하
면 끝이니 말이다.
그들이 다른 직업 있는 자들에게 족족 빠듯한 지폐 한 장을 건네며 네모난 도화지보다 두껍고
딱딱한 것을 주었다 받는 행위는 나로선 이해할 수 없으나 그들로선 당연한 일인가 보다. 그
러니 저들은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표정을 지으며 행동하니 말이다. 속으로 고개를 저
으며 다른 이들에게 손을 벌렸다.
한 사람이 내 앞을 지나가면서 금동 빛을 띤 동전 하나를 떨어뜨렸다. 그리고 그 뒤를 잇는 사
람은 백 원짜리 동전보다 조금 더 큰 백은 동전, 학이 그려진 동그란 오백 원짜리를 건네주었
다. 그리고 흘끔 보더니만 혀를 쯧쯧 차면서 지나가버렸다. 개중에는 줬음에도 불구하고 감사
하단 말을 안 했다면서, 큰 소리로 투덜대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한숨
을 내쉬었다. 뼈 속까지 썩어버린 세상이다. 이런 걸 말세라고 하려나?
한참을 그러고 있었다. 대충 모인 돈은 약 이천 원 대. 이정도면 갓 만들어진 김밥 한 줄과 따
뜻한 자판기 코코아 한 잔을 마실 수 있을 것이다.
하늘을 보니 아직도 눈발이 휘날리고 있었다. 옷에 묻은 눈을 털어내면서 일어서려고 했다.
순간적으로 뒤쪽에서 훅하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려 할 때, 그 훅하는 소리를 낸 물건
은 다름 아닌 눈 뭉치였다. 하얗고도 부셔져있는 눈 조각들. 눈이 돌아가는 듯했다. 고함을 지
르려 하는 데, 아래에서 무언가가 내 옷깃을 잡아당겼다. 고개를 내려보니 아까 그 눈덩이를
던진 아이인 듯 보였다.
아이는 내가 쳐다보자 움찔거리더니만 우물쭈물 입을 내밀고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내 눈은 정상적인 시력을 가지고 있으니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내가 그 아이를 빤히 내려다보자, 아이는 옆을 쿡 찔렀다. 그 옆에는 어떤 사내아이가 어쩔 줄
을 모르고 있다가, 아직도 내 옷깃을 잡고 있는 아이가 자신을 찌르자 흠칫 놀라서 울먹거리
는 눈이 되어버렸다. 나는 아이를 달래기 위해, 사람들이 흔히 이야기하는 돈 잡아먹는 손을
들어 머리를 쓰다듬었다.
내가 돈을 받는 것을 보면서 사람들은, 돈을 잡아먹느냐는 둥 염치가 없다는 둥 들리지 않을
거라 생각한 것인지, 아니면 들으라는 듯 소리를 치는 것인지 열심히 입을 놀려대곤 하였다.
그리고 내가 손을 올릴라 치면 서둘러 그 자리를 피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는 그렇지 않았
다.
「저, 저기…….」
아이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그 입 안의 온도는, 차가운 바람과 눈님의 심술로 따뜻한 입김
을 내고 있었다. 심술로 인한 김이 신기한 것은 계속되었는지, 장난을 치고 싶었으나 내게 사
과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는 듯이 우물거렸다.
아이를 보면서 나는 그냥 그저 나이가 어리니 그랬겠지 가 아니라 얼른 사과해 라는 눈으로
아이를 쳐다보았다. 아이는 결국 붉게 상기된 볼을 감싸며 말했다.
「죄, 죄송해요. 저기, 그러니깐 그게…….」
「됐다. 모른 척 다른 짓을 하는 것보다는 낫지. 잘 가거라. 꼬마야.」
아이들은 가만히 나를 보았다. 나는 약간 겸연쩍은 점이 없지 않았기 때문에 즉시 김밥 집을
향해 걸어갔다. 한발자국, 두발자국. 얼마나 걸어갔을 까? 막 스무 번째 발자국을 눈 위에 찍
으려던 참이었다. 아까의 그 사내아이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저씨, 내일도 꼭 여기 나와 계셔야 해요!」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고개가 끄덕거리는 것을 느껴졌다. 그리고 눈이 휘둥그레 해졌다.
내가 언제부터 정이라는 것, 귀여움이라는 감각에 눈을 떴었지? 언제? 그런 것은 어릴 적, 소
싯적, 그런 때로 넘겨야 할 것이 아닌 가? 나는 내 직분에서 떨어졌고, 그것이 언제였는지 기
억이 없다. 게다가 더불어서 나는 내가 언제부터 이런 일을 시작 했는지도 잊어버렸고, 뭘 했
었는지도 기억이 없다. 나는 집에 일체 들어가질 않는다. 그 안에 들어가 보았자 다 죽어가는
사람 한명이 누워있을 뿐이니 말이다. 나는 그 자가 누군지도 모른다. 단지 그가 날 본때마다
애처롭게 변하는 눈이 싫을 뿐이었다.
아이의 말에 나도 모르게 가만히 자리에 서 있었나 보다. 몇몇 사람들은 얼굴을 찌푸리며 지
나갔고, 얼마 안 되는 인간들은 신기하다는 듯 흘끔흘끔 쳐다보며 나를 지나쳐갔다. 그리고
나는 한 사람이 내게 소리쳤을 때에야 그곳을 떠날 수 있었다.
「이봐요. 그렇게 길 한가운데에 서있으면 어떻게 합니까?」
「예? 아, 예. 죄, 죄송합니다.」
나는 고개를 꾸벅 숙이며 구석 쪽으로 향했다. 목을 움츠리고 몸을 움츠리고, 추위에 나 자신
을 움츠리고, 가시 돋은 그 말들에 움츠리고.
한걸음, 한걸음. 다리는 제 멋대로 움직였다. 내가 먼저 도착한 곳은 슈퍼. 그래, 아무래도 분
식집은 사람이 많을 것이다. 나는 슈퍼에 들려 빵을 사들었다.
그리고 그 건너편에 있는 자판기에서 코코아를 뽑아들었다. 땡그랑 소리와 함께 오백 원을 삼
킨 자판기는 이백 원을 돌려주었다. 탁 소리가 들리며 컵이 나왔고, 주르륵 코코아가 쏟아졌
다. 이백 원을 주머니에 쑤셔 넣고는 코코아 잔과 빵 봉지를 들었다.
거리 한 편에서 식사를 마치고 일어섰다. 이제 내가 자야할 곳은 그곳. 넓고 긴 그것이 지나가
는 곳이다. 사람도 많고, 나와 같은 자들도 몇몇 있으며, 그중에는 안면이 있는 자들도 있다.
그곳의 터지기 들과 가끔 만나기도 하지만, 역시나 나는 혼자서 이런 공상을 하는 것이 제 맛
이다.
「아이고! 이게 누군감? 반가운 손이 찾아왔구먼! 그래, 어쩐지 어제 꿈자리가 좋더라니. 글쎄 돼지가 떡하니 나타나선 내게 손을 내미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그게 자네가 올 징조였나 보이.」
「터지기들 보단 저 같은 철새들의 얼굴은 보기가 힘들긴 하죠. 그런데 꿈에 그렇게 떡하니 나타났다니. 혹시 예언가가 아닌가요?」
「때기! 사람하고는. 남을 함부로 놀리면 못쓰는 거야. 아무리 꿈자리 몇 번 좋은 거라 해소 로니 점쟁이가 되겠나?」
사람 좋은 얼굴을 한 이곳의 터지기, 털보가 웃어젖혔다. 그 웃음은 호탕하기도 하고,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무언가가 있는 웃음이었다. 아마 대기업이나 중, 소기업 사장쯤 되는
자였을 듯싶었다.
마음 편하게 해주는 웃음을 듣고 나니, 아까 그 형용할 수없는 기분은 이미 저 멀리로 눈과 함
께 날아가 버린 뒤였다.
「오늘도 결국엔 울고 말았습니다. 너무나도 끔찍한 기억만이 덩그러니 남겨진 이곳. 다신 둘러보기 싫었기에, 오늘도 역시 고개를 돌려버렸습니다.」
- SNOW IS SEND PRESENT TO ME -
2
아침이다. 그래, 아침이었다. 눈은 신기하게도 오늘도 내려주고 있었다. 어떤 이들에겐 기쁨
이, 어떤 이들에겐 짜증이, 어떤 이들에겐 무감각한 하루가 시작되는 아침. 나는 무감각한 편
이었다.
축복의 하얀 함박눈이 내리는 날, 오늘은 우울한 날이었다. 오늘 같은 날엔 또 사람들이 많이
나오는 편이니 수입도 꽤나 짭짤할 것이다.
털보에게 인사를 한 뒤, 넓고 긴 것이 지나가는 곳을 빠져나와 다시 길거리에 자리를 잡았다.
사람들은 벌써부터 돌아다니고 있었고, 개중에는 아이들 몇몇이 벌써부터 나와 놀고 있었다.
이곳저곳 자리를 둘려보면서 오늘따라 명당이 비어있는 것을 보았다. 아마 내가 일찍 나와서
일 것이다. 그곳에 자리를 잡자마자 몇몇 사람들이 벌린 손 안으로 지폐나 백은 화를 주었다.
수입이 좋긴 좋다. 명당에 자리 잡은 지 몇 시간이 지났을 까? 아직 오전 때라는 것을 라디오
가 알려주고 있었다. 흘러나오는 방송에서 사람들은 깔깔 웃으며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재미
없는 주제로 토크쇼를 벌이기도 하고 있었다.
돈도 잘 벌리고, 심심하지 않게 라디오도 흘러나온다. 그러나 왠지 마음이 허전했다. 마치 지
키지 못한 약속이 있듯, 이 텅 비어 너덜거리는 마음이 울고 있다.
<아저씨, 내일도 꼭 여기 나와 계셔야 해요!>
꼬마의 목소리가 자꾸만 걸리고 있었다. 도대체 왜 그런 말을 남겨가지고는 사람을 곤란케 한
담? 정말이지, 그 꼬마 녀석이 사과만 하지 않았다면 계속 이 자리에서 버티며 저녁때 까진
많은 돈을 벌 수 있었을 것이다.
내 손은 이미 제 멋대로 움직여 돈을 움켜쥐어 잠바 주머니 속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자리에서 일어서서 내 옆에 앉아있는 사람에게 그 자리를 건넸다. 그냥 옆에 앉으시
오- 하는 것이다. 뭐, 그렇다고 달라질 바는 없겠지만, 내가 가로챈 돈을 그 사람이 이제 받을
것이다.
그는 연신 고개를 꾸벅거리며 내가 갈 때까지 날 살펴보았다. 그래, 나도 그랬었지. 이젠 아무
렇지도 않지만 말이다.
내 발걸음은 터벅터벅 구린 자리로 향하고 있었다. 라디오 소리는커녕 시끄러운 아이들 소리
로 북적대는 그 동네에 도착하자마자, 어제의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까 명당자리에서
번 돈은 그대로 속주머니에 넣었다. 그곳을 조금 더 뒤적였지만, 며칠 전에 받았던 담배 한 개
비는 보이질 않고 있었다. 한참을 뒤적거리다가 포기하고 잠바 자크를 올렸을 때, 그제야 생
각났다. 그건 내가 그제 피워버렸다는 것을 말이다. 조금 아깝다는 생각이 들면서, 어제의 그
꼬마가 다시 윗자리에 오길 기다렸다. 만일 오지 않는 다면, 털보가 있는 쪽의 지하철을 둘러
보아야 할 것이다.
손을 벌리고, 또 내밀었다. 주어지는 것은 아까와는 달리 작은 백은 화와 구리동전. 이따금씩
벼가 그려진 작고 귀여운 동전이 내밀어 졌지만, 백은 화를 주는 것은 오직 아이들뿐이었다.
라디오 소리도 들려오지 않고, 앞에는 군밤장사도 없어 구경거리 하나 없이 따분히 시간을 돈
받는 것으로 보냈다. 그리고 배꼽시계가 울려지는 대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그리고 그대
로 매일같이 가는 그곳으로 향했다. 몇 걸음 가다가 미련이 남아 뒤를 돌아보았으나, 꼬마들
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속은 건가? 상관없다. 어차피 명당자리, 내일 잡으면 그만인 것을.
빵 한 봉지와 코코아 한 컵을 들고 그 아파트로 돌아왔다. 빵과 코코아를 들고 다시 그 자리에
앉아 점심을 대충 해결하고 다 식은 코코아를 들이켰다. 꼬마 녀석이 오지 않는 것이 섭섭했
다. 명당자리 따위 필요도 없다. 단지 그 꼬마 녀석이 괜스레 보고 싶어질 뿐이었다. 시원한
알코올주가 아닌 것이 아까운 종이컵을 구겨말아, 근처 휴지통에 버렸다. 사람들이 가끔씩 힐
끔거렸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아까의 그 자리로 돌아왔다. 누가 뭐라 하건 나는 남이 보건말건
내 뜻대로 사는 사람이 아닌가.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있는 그곳 근처에서 가만히 앉아, 가끔 손을 내밀다가 내가 받은
것은 동전 몇 개뿐이었다. 그리고 오후. 왠지 시간이 더디게 가는 듯한 기분이었다. 저녁이 가
까워져가는 시간대. 오후 4시. 이제야 심심했는지, 막 라디오를 켠 옆 점포 아저씨 덕에 시간
을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시간은 점점 더 느리게만 가고 있었다.
꼬마 녀석들이 짜증스러웠다. 눈은 눈대로 오고, 몸은 으슬으슬한 게 감기에 걸린 듯했다. 내
가 무슨 돈이 있다고 병원 따윌 가겠는 가. 그냥 가기 싫은 집에서 누워있다 나오는 것이다.
시간은 더디게 흐르다가 결국 6시를 향해 달리고만 있었다. 이쯤 되면 잠자리 경쟁이 조금 치
열해질 즈음. 그렇다면 이제 자리를 털고 일어서야겠지 않는 가. 털보에게 다시 잠자리나 얻
어야 할지도 몰랐다.
하늘을 보니 눈발은 아직도 흩날리고 있었다. 그리고 날씨는 점점 추워지고 있었다. 혹시 올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내가 앉아 있던 덕에 움푹 파인 자리에 다시 엉덩이를 붙였다. 라디오
에서 어렴풋이 흘러나오는 소리는 역시나 재미없는 토크쇼였다.
저녁 7시. 늦었다. 지금 가면 가장 끄트머리이자 추운 자리하나 얻을 수 있을 지나 궁금할 정
도로 이미 자리경쟁이 끝난 시각이다. 그리고…… 내가 가장 저주하는 나의 집으로 가야 될
시간. 이 이상으로 밖에 있다간 얼어 죽기 십상이다. 아니, 근처 경찰 소에 맡겨졌다가 집으로
돌아가야 될 최악의 조치가 내려질 수도 있는 일이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저씨, 내일도 꼭 여기 나와 계셔야 해요!>
젠장, 자식아. 불렀으면 와야지. 세상에 불러놓고 사람을 기다리게 하는 녀석이 어디 있나?
늦더라도 내가 늦은 것이 아니라고. 기다리는 척이라도 해주면 어디가 덧나느냐? 이 물러터
진 꼬맹이 같으니라고. 너 덕에 털보의 좋은 자리가 아닌 다른 터지기를 찾아가야 하지 않느
냐. 그들과는 그다지 안면 따위는 없단 말이다. 뭣하면 빼빼마른 강시 녀석에게 빌붙어 자야
될지도 모른다는 소리다!
<아저씨, 내일도 꼭 여기 나와 계셔야 해요!>
그래, 나왔잖느냐? 꼭 나와 있었다고. 중간에 오긴 했지만, 너희 같은 경우엔 오후에도 놀지
않느냔 말이다. 그래, 그래서 내가 이렇게 왔잖니. 넌 결국 오지 않겠다는 소리냐?
한숨이 절로 나온다. 그 바보 멍청이 꼬맹이를 믿은 내가 바보였지. 한숨이 푹푹 쉬어 나오는
하루였다. 집으로 터벅터벅 발걸음을 향했다. 버스를 타고 갈 수도 있겠지만, 그냥 걸었다. 내
몸에서 나는 더러운 내도 그러했고, 사람들의 눈길을 받기도 싫었기 때문이었다.
한참을 걸어 도착한 아파트, 지하 방에는 달빛이 희미하게 새어나오고 있었다. 냉한 기가 흐
르는 방에는 어느 한 사람이 누워서 나를 역시나 슬픈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못 먹
은 몸으로 나를 부른다. 내 역겨운 내가 싫지는 않는가 보다. 이상한 사람인가? 나를 아는 자.
그러나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자. 도대체 이자는 누구인가.
「…….」
아무 말도 못한 체, 그저 손만 휘적휘적 거리는 자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눈앞이 컴컴해짐을
느꼈다. 끊겨버린 필름이 연결된다. 그리고 돌아온 집의 불쌍한 자, 내가 아나 기억하지 못 하
는 자.
다 필요 없다. 그냥 이 기억만으로도 눈시울이 붉어질 뿐이다. 뚝뚝 흐르는 액체가 뭔지 궁금
하지도 않다. 그냥 잃어버린 감정이 되돌아온 감이 좋을 뿐이다. 그리고 그 자의 손을 꽉 잡았
다. 돌아오기 싫었던 이유. 이제야 떠올리고 만 것이다. 더럽게도 운이 없지.
오질 나게 운이 없었다고 생각하며 즉시 자리에서 일어섰다. 불쌍한 자의 팔은 여전히 허공을
휘휘 저으며 내게 돌아오라고 하고 있었다.
그의 방을 지나쳐나오려다가 오랜만에 화장실에 들려 씻었다. 수도공급이 끊긴지가 오래되
어, 약수터에 다녀오느라고 고생 많았다. 찬 물로 온 몸이 얼도록 씻고나 서, 새 옷을 입었다.
그렇다 해도, 푸른곰팡이가 슬고 있는 좀 먹은 옷이다.
방을 보니, 아직도 슬픈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놈이 보였다. 오랜만에 이불에서 편히 드
러누워 잠에 빠져들었다. 앙상히 매말은 녀석은 아직 청년이라는 것을 말하듯 풋풋한 내가 나
고 있었다.
「네. 어제부터 굉장한 눈이 내린다고 하죠?」
「맞아요! 그 눈이 펑펑 내리는 데 어찌나 예쁘던지.」
언젠가 털보에게서 얻은 건전지를 내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재산인 소형 라디오에 넣었다. 그
리고 주파를 맞추어 재미없는 토크쇼를 틀었다. 그리고 눈이 어쩌고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토
크쇼 소리를 자장가 삼아 눈을 잠시 감았다. 품 안에서는 풋풋한 내가 풍기는 앙상히 매마른
청년이 꿈지럭거리고 있었다.
「하얀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눈은 흰 천사가 내려올 길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천사들이 당신들께 축복을 내리기를 빌면서, 버림받은 자들을 천사의 길과 같이 만들겠지요.」
- SNOW IS SEND PRESENT TO ME -
3.
아침 일찍 일어나 교회로 향했다. 버림받았지만, 슬프다고 생각되는 날은 꼭 가는 곳이 그곳
이었다. 내가 가진 것들 중 가장 소중하다고 여기는 라디오는 청년의 손에 쥐어주었다. 그리
고 어제 벌은 돈으로 헌금을 냈다. 찬양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그 아름다운 목소리가 겹치
어 눈시울을 붉힌다. 레미제라블. 언젠가 읽었던 소설. 내가 굉장히 좋아했던 소설. 마치 그
소설의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이다. 그곳의 주인공처럼, 내게는 아직 청년의 풋풋한 내가 풍
기는 죽어가는 자가 있고, 그 죽어가는 자는 육체로만 썩어갈 뿐, 그 안의 정신과 영혼은 썩지
않은 채 아름다운 향을 뿌리며 곤히 잠들어있다.
내 육체는 살아있으나 영혼이 영원한 잠에 빠졌듯, 나는 감정 또한 그리하게 만들었다. 더 이
상 느끼는 것이라곤 허기와 추위, 더위. 생리적 현상에만 의존하거나 하진 않고, 다행이도 이
런 공상이나 생각, 상상을 하는 것이다. 그랬기에 이날 이태까지 살아왔을 거라 생각한다.
교회완 촛불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점점 더 밝아지는 불들. 새벽녘이라 그러한지, 사람
들은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길고 긴 시간, 그러나 짧기도 하며, 평소 지금 나왔다면 명당에 앉아 돈을 받았을 시간. 나는
새벽예배라는 것을 마치고 밖으로 나와 잠시 고민했다. 어디로 가야하지? 내 갈 길은 어디지?
마음속은 아이와의 약속장소를, 몸은 명당을 향하고 있었다.
<아저씨! 내일도 꼭 여기 나와 계셔야 해요!>
「제길. 그 빌어먹을 꼬맹이 녀석.」
결국 아이와의 약속장소로 향하는 두 골목의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몸을 옮겼다. 개 소리가
들려오기도 하고, 싸우는 듯 쨍그랑 소리도 들려온다. 목소리를 높여 세탁을 외치는 세탁소
주인과 우유배달원도 간간이 보였다. 그래. 아직 새벽이다.
그 동네, 그 자리. 낯익은 곳에 자리를 펴고 앉았다. 눈은 조금 더 펑펑 내리고 있었다. 그런
것에 개의치 않고 다니는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크리스마스. 적선한답시고 착한척이라
도 해볼까 하는 이들과, 진심으로 선행을 하는 자들의 빳빳한 지폐들이 모여들었다. 이정도면
스무 살 청년 내가 나는 녀석에게도 뭘 좀 먹일 수는 있겠지.
시간은 빠르게 흐르고 돈도 점점 더 많이 모였다. 아니, 시간은 빠르게 흐르다가 점점 더디게
흐르고 있었다. 으슬으슬 떨리는 몸이 그 이유를 알려주고 있었다. 입술이 차갑다. 혀로 계속
해서 말라가는 입술에 침을 바르며 손을 내밀었다. 내가 옆에 있는 것을 알아주듯, 점포 아저
씨가 라디오를 틀었다. 그 소리는 내 심심함을 달래주고 있었다.
10시. 아직 10시다. 밥은 아까 대충 때웠고, 청년은 도대체 뭐로 밥을 먹는 지, 여태 아사할 뻔
한 적도 없는 것 같다. 그래, 그래도 장한 자식이지.
눈은 더 하얗게 오고 있었다. 하얀 눈은 역시나 나를 더럽다고 생각하였나보다. 날 덮는 새하
얀 눈을 털어버리고 그냥 집에 있을 까 생각도 해봤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깨게 하는 것이 있
었으니, 그것이 바로 아이들이다. 아이들은 11시쯤 되자, 몰려나와 쌓인 눈으로 다시 장난질
을 해댔다. 그리고 개중에는 그 녀석들의 또래로 보이는 녀석들도 있었다. 아이들은 얼굴이
빨개짐에도 불구하고 눈을 가지고 장난질을 해대고 있었다.
「오질 나게 춥군.」
투덜대며 녀석들을 기다렸다. 1시간. 12시다. 점심. 그래 점심도 먹어야겠지. 뭘 먹을 까 하다
가, 내가 점심을 사러간 김에 아이들이 올까 싶어서 옆 점포에서 빵과 데워진 커피를 사들었
다. 씁쓸한 커피맛과 곰보빵 소보루의 달콤한 맛이 퍼지면서 허기를 채워주고 있었다. 대충
때운 점심 찌꺼기를 버릴 곳을 찾았다. 보이지 않는다. 정말 쓰레기통 적은 아파트이다. 옆에
두고는 대충 눈으로 쌓아놓았다. 누군가 치우겠지. 그러기에 누가 쓰레기통 하나 없게 하랬
나? 속으로 투덜대며 다시 손을 내밀어 돈을 받았다. 여기저기서 차가 빵빵거리고 시끄럽다.
아이들은 재잘대면서 놀았고, 그런 그들을 보면서 웃는 어른들도 몇몇 보였다. 아마 소싯적
그들의 어린시절이 생각나는 듯.
심심하다. 몇몇 사람들이 돈을 던져주었지만, 눈 때문에 찾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그래
서 나도 근처 눈을 모아 그릇을 만들었다. 떨어진 동전을 찾아 손을 더듬거렸고, 이내 500원
짜리 두엇 개가 손에 집혔다. 사람들은 내 앞의 눈 그릇을 보더니 돈을 그곳에 던져 넣는다.
그리고 흘끔흘끔 그것을 쳐다보면서 가는 것이다. 뚫어져라보면 자신들의 체면에 해가 될까
걱정인가보다.
돈을 던져주는 것을 확인하고는 근처에 있는 눈으로 또다시 무언가를 만들었다. 어릴 적부터
없었던 것이 바로 그림 실력이었다. 그래도 인간은 본능적으로 그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가.
눈을 뭉치고, 손톱으로 깎고. 그래서 완성된 것이 눈사람이었다. 눈을 크게 뭉쳐 깎아내어 만
든 눈사람은 눈 모자와 눈 목돈이, 눈 입과 눈(雪)으로 된 눈(目). 그리고 눈으로 된 팔과 몸뚱
이, 얼굴이었다. 손은 그것을 만들기 위해 쉴 새 없이 움직인 탓인지, 아니면 장갑도 끼지 않
은 체 한 탓인지, 새빨갛게 부어 있었다. 움직임이 더디고 칼날과도 같은 추위에 몸을 맡겨서
그러한지 여간 시린 것이 아니었다.
「쳇. 결국 안 온다는 건가? 도대체 오라한 이유가 뭐야?」
입을 삐죽거려 보았지만 소용은 없었다. 녀석들이 오기 싫다는데 어쩌겠는 가. 청년에게 줄
따뜻한 무언가를 사고 나서 집으로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동전을 잠바 주머니에 집어넣고,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서는 데, 무언가가 내 옷깃을 잡아당긴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꼬마 녀
석들이었다. 이마엔 뭘 했는지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었고, 볼은 보다 못해 새빨갛게 익은 사
과와도 같았다.
「뭐냐?」
「해에- 죄송해요. 이거.」
꼬마 녀석의 손에 들려있는 것은, 동그란 스트로 폼으로 만든 삼단 눈사람이었다. 검은 신사
모자와 가짜 나무로 만든 손. 그리고 조그맣고 동그란 부직포로 만든 단추. 그 외에도 헌 헝겊
으로 만든 듯한 목돌 이와 가짜 당근으로 만든 코, 콩으로 만든 듯한 눈이 달려 있었다. 그 모
습은 기상천외하기도 하고, 어찌 보면 귀엽기도 했다. 녀석들이 만든 것은 아닐 것이다.
「무, 물론 이건 저희가 직접 만든 건 아녜요.」
내가 의심스런 눈초리로 바라보자 아이는 솔직히 자신이 만든 것이 아니라고 실토했다. 그리
고 그 옆에 있던 꼬마아이가 무언가를 건넸다. 그것은 특이하게도 눈으로 만든 천사였다. 하
얀 날개와 하얀 머리. 얼굴. 몸. 옷까지. 엉망이었지만 내게는 조금 특별한 것이었다. 설마 내
가 이런 것을 받을 줄이야. 날개는 길이가 맞지 않고, 옷도 몸도 뚱뚱한 조금 특이한 천사를
바라보다가, 두개 받기는 뭣하다는 생각에 아까 만들어둔 눈사람을 건넸다. 아이들은 놀란 듯
하면서도 해맑게 웃고 있었다. 웃다. 웃는다. 까르르 웃음소리가 터지고, 아이들과 오랜만에
즐거움이란 기분을 만끽했다.
가끔은 이런 것도 좋을 것이다.
천사와 가짜 눈사람을 들고서, 죽어가는 자의 집으로 도착했다. 그리고 문을 열자, 청년과 또
다른 사람이 있었다. 또 다른 자는 ,내가 들어온 것을 보고선 멍히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이
자가 누구인지를 모른다. 단지 녀석이 청년과 친할 것이라는 예감 뿐. 눈으로 만든 천사와 가
짜 눈사람을 청년에게 건네주었다. 냉기가 풍기는 집안이라 그러한지, 천사는 녹지 않고 처음
의 그 모습 그대로였다. 청년과 또 다른 사람은 휘둥그레진 눈으로 천사와 눈사람을 보았다.
청년의 눈에서 그때와 같은 것이 흐르자, 나는 그것들을 청년의 머리맡에 놓여진 낡고 조그마
한 상 위에 올려놓았다. 뚱뚱한 천사의 모양 이상한 웃음과 가짜 눈사람의 모습을 보면서 청
년은 내 손을 굳게 잡고 있었다.
거리의 불빛은 반짝이고 있었고, 나는 그 모습을 벙히 보면서 청년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아직도 곤히 자고 있다. 또 다른 자는, 역시나 청년과 친한 자라는 것을 밝히고는 돌아갔다.
아마 날 굳게 믿고 있는 듯하다. 뭘 해야 할지 모른다. 그러나 분명히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근처에 있는 아무 종이나 집어 들고 남은 석탄연필로 생각을 쏟아 부었다. 종이가 빽빽
이 생각으로 차고 있었다. 휘갈기고 대충 적힌 그 모습은 내가 생각해 보아도 나열되지 않는
나의 공상과도 같았다.
즐거운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냉기어린 방 안. 청년은 그 속에서 곤히 잠들어 있었다. 얼마 안
되는 종이 위에는 나열된 글자들이 들어서고 있었다.
『얼음으로 된 천사를 본 적이 있습니까? 그들은 뚱뚱한 배와 언뜻 보기엔 이상한 웃음을 짓고 있지만, 그들이 주는 것은 웃음이라는 축복입니다.』
『오늘도 고개를 돌려버렸지요. 많은 눈이 쌓이는 어느 추운 겨울 날. 즐겁기만 한 아이들의 모습은 내게는 지독한 고문이었습니다.』
『내가 받은 것은 엉망이고, 얼마 안 되는 손재주로 만들어진 눈 천사가 아니었습니다. 내가 받은 것은 아이의 순수한 마음이 만들어낸 축복의 천사였습니다. 그 어떤 자가 만든 명작이라는 것들보다도, 훨씬 더 아름다운 천사였습니다.』
얼마 안 되는 종이 위로 쓰인 문장들은 이어지고 이어져, 하나의 글을 만들었다. 몇 장 안 되
는 종이. 그것이 바로 내가 처음으로 내 생각을 쏟은 곳이었다.
청년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고, 비틀거리는 그를 보면서 아까 사온 냉한 죽을 꺼내들었
다. 도저히 데울 수가 없었다. 가스가 끊긴지 오래되었을 것이고, 물 또한 데울 수가 없다. 자
리에서 일어서 청년의 머리를 근처 이불에 옮겨놓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옆집의 문을 두드
렸다. 문이 열렸지만, 아주머니는 냉정이 문을 닫아버렸다. 그 옆집의 문을 두드렸다. 그곳에
서 나온 사람 또한 그러했다. 또다시 문을 두드렸다. 두드리고, 또 두드리고. 열리지 않는 문
과, 열려서도 냉정히 닫혀버리는 문이었다. 거의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다른 집의 문을 두드렸
다. 문이 열리고 조그마한 키의 백발 할머니께서 나오셨다. 나는 조심스레 할머니께 부탁을
했고, 다행이도 여기는 가스가 나오는 지 할머니는 친절하게도 죽을 데워주셨다. 고개를 꾸벅
숙이며 계단을 걸어 올라갔다. 급하다는 생각에 발걸음은 점점 더 빨라지고 있었다. 문을 열
어 젖히고 들어서자, 청년이 몸을 가누지 못하고 괴로워하고 있었다. 플라스틱 숟가락으로 데
워진 죽을 조금 식혀 청년에게 먹였다. 간신이 벽에 기대어 숨을 헉헉 몰던 청년은 죽을 조금
씩 받아먹기 시작했다. 플라스틱 숟가락에 입을 대는 청년의 모습은 딱해 보이기까지 했다.
「조금만 더.」
싫다고 고개를 저어대는 청년에게 끝까지 죽을 다 먹였다. 거부한다 해도 어쩔 수 없이 다 먹
어야 한다는 사실을 청년도 인정한 듯, 결국 그 죽을 다 먹었다. 그리고 숨을 몰아쉬면서 물을
찾았다.
약수 대신 슈퍼에서 파는 물을 먹이고는 다시 눕혀주었다. 머리를 댄지 얼마 안 되어 다시 곤
히 숨을 쉬는 청년을 보면서 아까 하던 것을 마저 끝냈다.
냉한 기운에 천사는 전혀 녹지 않고 있었다. 사이좋게 서 있는 가짜 눈사람을 바라보면서, 빙
그레 나도 모르게 웃음이 절로 났다. 정말 웃기는 세상인 게다. 그런 게야.
천사와 눈사람을 보면서 청년의 옆에 드러누웠다. 눈을 감자, 피곤함이라는 것들이 몰려들어
나를 잠재웠다.
밤새 꿈에는 천사와 눈사람이 함께 나타나 내게 미소지어주고 있었다.
「그대가 본 것은 더러운 것이 아닙니다. 당신이 말한 것은 쓸모없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란 존재에 대해 강한 믿음을 가지고, 그대가, 당신이 한 것에 대해 열망을 가지십시오. 그것이야 말로 당신을 일으켜 세우는 하루의 원동력이 아니겠습니까.」
-SNOW IS SEND PRESENT TO ME-
4.
천사가 건네주는 것은 축복이지만, 그 안에 든 것은 희망이다. 누군가가 내게 해주었던 말들
중 하나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기도 하며, 지금 내게 맞는 말이라고 생각하기도 하는
말이다.
꼬맹이들이 준천사는, 냉기어린 방에서 녹지도 않고 장하게 살아 있었다. 청년은 꿈틀거리며
나를 쳐다보았고, 청년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기 위하여 고개를 숙이고 허리를 굽혔다. 청년은
내 투박한 손길이 좋기만 한두 가만히 눈을 감고 있었다. 피식 웃으면서 다시 천사를 보았다.
여전히 냉기가 날리는 방 안이라 그러한지, 눈사람만 가끔 내가 만들어준 눈 받침대에서 바람
이 센 듯, 흔들거릴 뿐이다. 어지간히 춥지 않으면 입김도 없으련만, 하- 하는 장난 한번에 심
술 맞은바람과 추위가 입 안의 따뜻한 공기를 구름 피워 올려 보낸다.
꼬맹이 녀석들과 놀던 것을 떠올리며 잠시 미소를 지었다. 아래를 슬쩍 내려다보자, 청년 또
한 기분이 좋은지 활짝 웃고 있었다. 앙상한 얼굴에도 불구하고, 그 웃음은 아름다워 보였다.
아무래도 저 앙상히 마른 이상한 증세가 끝이 나면 괜찮은 인상일 듯 하다.
달력을 보니 벌써 한겨울이었다. 내 나이가 몇인지도 잊어버렸다. 내 이름이 뭐였는지도, 이
제 기억하지 못한다. 단지 철새들 중의 우두머리라고 불리는 것만이 내 호칭이라 기억한다.
그게 어떤 것인지도, 어떤 직위인지도 필요 없지만, 그나마 그렇다고 대우해주는 인간들이 있
으니 나아 보일 뿐이다. 그게 철새들의 우두머리니까. 터지기 들의 말을 들어보면 하나같이
나에게 머무를 것을 권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거부한다. 그들의 이유가 뭐였든 지간에 나
는 돌아다니는 것이 제일 좋으니깐 말이다. 그런 만큼 여기 있는 청년을 보면서 이러고 있는
시간이 왠지 서운하기도 하고, 좋기도 할 뿐이다. 그런 게 그런 게지.
「흐음. 여기 있으니 할 일도 없네.」
아파트 값도 밀렸다. 얼마 안 있으면 쫓겨날 신세. 내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 지, 왜 그렇게
되었던 지는 전혀 기억이 없다. 왜 이럴까? 머리를 톡톡 두들기다가 어제 쓰다만 종이에 다시
끼적거리기 시작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단 한 가지. 지금 이렇게 종이에 낙서 아닌 낙
서를 할 뿐. 그 이후엔 나도 어찌될지는 모른다. 그렇게 지냈기에 지금 이런 상태일지도 모르
지만, 전혀 개의치 않는다. 그럴 이유가 있었으리라 생각했기에.
오늘도 요란한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어김없이 찾아온 복덕방 김 할머니가 초인종 대신에 문
을 두드리고 있었다. 그 소리는 청년의 괴로움을 더해주고 있었고, 나는 청년에게 이불을 조
금 더 덮어준 뒤, 찬바람이 쌩쌩 부는 복도에는 김 할머니가 목도리를 뱅뱅 두르고 서 있었다.
나는 그녀가 어떤 존재인지는 모른다. 다만, 저번에 올적에 자신이 누군지를 밝혔다는 정도만
이 여일히 기억하는 것이다. 아니, 그 사건 이후로 기억하는 것들 중에 하나일지도.
「아니! 지난 월세들 다 어쩔 겨? 응? 도대체 얼마나 밀린 줄이나 알아?」
「이보시오, 김 할머니. 할머니는 도대체 뭘 하는 사람이오? 내 몇 번을 말했소? 나는 이 집을 샀다고 말했건만, 아직도 돈을 받는 거요?」
그러자 할머니는 장부를 뒤적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저번에 청년의 친구라는 녀석이
돈을 주고 여길 샀다는 말이 맞는가 보다. 그것도 청년의 이름으로 돈을 냈으니 이 집은 저 청
년의 것이다. 월세 밀린 것도 내주었다 하니, 그 정도의 친구를 사귄 것은 청년이 받은 선물이
리라.
김 할머니는 혀를 차고 머리를 흔들더니만 에잉- 하는 소리와 함께 계단 위로 사라졌다. 역겨
운 곰팡이 내가 풀풀 풍기는 복도에서 다시 집 안으로 들어왔다. 비실거리는 청년 옆에 있는
월마다 보내준다는 정보의 보조금에 의해 냉한 방 한 편에 모셔둔 핫 팩 하나를 풀었다. 희멀
건 기체가 피어오르더니만 점점 뜨거워지면서 굳어가려고 하였다. 나는 그것을 재빨리 주무
르면서 청년에게 주었다. 청년은 그것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듯하였고, 나는 어쩔 수 없이 그
것을 청년 근처에 있는 천으로 대충 휘감아 품 안에 넣어주었다. 상당히 추운 듯, 꼭 끌어안고
자는 폼이 어째 션찮아 보였다.
그러나 어쩌겠는 가. 그렇게 된다는 데. 청년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죽 한 그릇을 꺼냈다. 보
온 명에 담아둔 것이라서 그러한지 아직 따뜻한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었다.
컵에 조금 따라서 그에게 건네주었다. 그러나 그는 아직 잡을 힘조차도 없는 지, 고개를 수그
리는 것으로 자신이 직접 먹겠다는 의사를 거부하였다.
마루로 가서, 널려있는 플라스틱 숟가락들 중 하나를 가져왔다. 비닐을 뜯고 청년을 흔들었
다. 청년은 내 손에 들려있는 숟가락을 보고 빠끔 내민 고개를 전부 들어냈다. 내가 건네주는
미지근한 죽을 잘도 받아먹으면서 청년은 빙그레 웃고 있었다. 정말 앞으로 뭘 해야 할지 모
르겠다. 내가 뭘 해야 하는 지도 모르겠다. 내일이 어떻게 되는 지마저도 궁금하다. 나는 어떻
게 되는 걸까. 이대로 가다가 청년까지 대리고 나서서 철새로 활동하게 해야 하나? 아니면 여
기서 곱게 자라도록 해야 할 것인가. 청년이라지만, 아직은 소년티도 조금 나는 녀석이다. 이
제 어찌해야하나. 고민뿐이다.
손을 내민다. 건네지는 것은 백은화. 둥그렇고 조금 큰 크기가 눈길을 끈다. 멋지다고 생각되
는 디자인은 아니지만, 그래도 하루 양식을 살 수 있는 돈이다. 하루 양식이 얼마나 되겠는가.
할 일도 없다. 정말 내가 뭘 해야 할도 모른다. 희망을 건네준 천사는, 냉기 흐르는 방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 아이들은 눈이 오지 않자, 거의 보기가 힘이 들다. 동네 놀이터에서 죽치고 있
는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아마 그네 부모들이 다신 만나지 말란 말을 했겠지. 그 어떤 말을
듣고 행동했었든, 지금 나는 나로서 충분하니 그만 두자. 청년을 먹여 살릴 수는 없지만 여기
서 평생 이러고 있을 수는 없잖은가. 좋아서 이러고 있지는 않으니 말이다.
「아?」
누군가가 또 탄성을 내뱉었다. 분명 내 뒤에 있는 포스터를 보고선 한 말이 틀림없을 것이다.
누가 그린 포스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인기는 많은 듯하다. 다시 손을 내밀었고, 다들 내 손에
동전을 건넸다. 오늘따라 백은화가 많다. 건네주지 않는 이들 또한 있으며, 그냥 힐끔 보다가
사라지는 자들도 있다. 그게 그거지만 상관은 없다. 그들이 무얼 하던, 내가 어떤 존재건, 알
바는 아니니.
그러나 목은 내 의지를 거절하고 뒤를 돌아 포스터를 본다. 그것은 포스터가 아니었다. 단지
일할 사람을 구한다는 전단 지였을 뿐이다. 그 전단지에 적힌 문자와 숫자 따윈 필요 없지만,
이미 전화를 걸어보는 사람도 있고, 전단지 체로 뜯어가려다가, 여러 사람들의 눈치로 번호만
적어가는 사람들도 몇몇 눈에 띄었다.
<필요도 없건만, 뭐가 이리 답답한 것이냐.>
씁쓸해질 모습에 입맛만 다시다가, 박스 안에 사는 아저씨에게 동전을 내밀고 캔 커피를 샀
다. 쌉쌀한 맛이 입 안에 퍼져나갈 무렵. 다시 한번 더 포스터, 아니 광고를 보았다. 여전히 똑
같은 문자와 숫자. 똑같다. 똑같다. 똑같다. 똑같아서 지겹고, 지겨워서 고개를 돌리고, 고개
를 돌렸으나 뭔가가 걸려서 다시 한번 바라보게 되는 것. 정말 묘한 광고다.
다시 손을 내밀었다. 주어지기도 하고 주어주지 않기도 하다. 그 어떤 이유를 막론하고 여러
사람들이 내 뒤를 본다. 그리고 내게 동전을 내밀기도 한다. 내가 저 광고의 내용과 전혀 상관
없는 자라는 것을 알아서이기도 하고, 은근히 운을 바라면서 건네는 것일지도 모른다. 상관은
없다.
상관없다. 상관없다. 필요 없다. 내가 모르는 이야기들. 필요 없다. 제기랄!
빵을 사러 나섰다. 갈무리한 돈들이 주머니에서 짤랑짤랑 소리를 내며 정겹게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목적지인 슈퍼가 눈에 띄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작은 문구점이 놓여 있었다. 가게에 들려 빵을 사고 나오려고 하는 데, 문구
점 앞에 놓인 물체로 인하여 몰린 아이들의 안타까운 함성과 운이 좋아 몇 개 얻은 동전만한
쇠 원반을 들고서 팔랑팔랑 가게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발걸음을 옮겨 문구점 안으로 들어섰다. 안에는 여러 기이한 것들이 있었고, 특유의 냄새가
풍겨오고 있었다. 볼펜과 메모지를 사려 했으나, 메모지의 가격은 상상을 초월하고 있었다.
때문에 내가 쥔 것은 천 원짜리 수첩이었다. 가격을 치루고 나온 밖은 왠지 암담해 보였다. 조
금도 나아가고 싶지 않은 곳. 그러나 발걸음은 그것을 무시하고 아까의 그 자리로 향하고 있
었다.
골목가에 놓인 그 광고에 적힌 몇 마디. 그리고 전화번호. 바람에 펄럭이는 종이를 부여잡고
겨우 써낸 것들을 보면서 자리에 앉았다. 손을 내밀고 받는 동안에도, 광고는 몇 번씩이나 사
람들의 눈길을 부여잡고 있었다.
<뚫어지겠군, 뚫어지겠어.>
연신 투덜대면서도, 나 자신도 모르게 그것을 계속해서 보고만 있었다. 어쩌면 '그것' 이 그에
겐 필요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때문일지도. 못 얻는 다면이야 상관은 없었다. 단지 그는 그
에게로 가서 어떻게 해야 하는 지만 찾으면 되니 말이다. 그래, 그러면 다 얻는 것이다. 굳게
믿으며 열심히 손을 내밀었다. 현실에 충실 하라는 좌우명만은 바뀌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겨울이 내게 건넨 것은 작은 기회이기 전에, 나 자신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볼 기회였다.
「또 밤샛네, 또 밤샛어. 추워죽겠는데 제발 난방 좀 틀자.」
내 눈 밑의 다크 서클을 보고선 하는 소리이다. 그래도 어찌하겠는 가. 얼른 작업 끝내고 그
일을 마저 해야 하는 데 말이다.
방에는 아직도 냉기가 흐르고 있었다. 때문에 천사는 아직도 살아있다. 춥다고 투쟁하는 녀석
의 머리를 비벼준 다음에, 다시 컴퓨터로 고개를 돌렸다. 아직도 해석 못한 부분이 수두룩하
다. 연결되지 못하여서 뻣뻣한 녀석들도 보이고, 마치 나처럼 드문드문 반듯한 녀석들도 있
다. 스트레스 따윈 없다. 단지 이런 작업을 한다는 것에 의미를 부여할 뿐이다.
옆에서 따뜻한 무언가가 닿았다. 그리고 옆을 보니 방금 나갔다가 들어온 듯한 녀석이 서 있
었다. 손에는 막 데운 캔 커피가 들려 있었다.
「쉬엄쉬엄 해. 사실 마감까지 엄청 많이 남았잖아?」
「그 쉬엄쉬엄 하는 시간마저도 아까울 정도로 너무나도 촉박한걸.」
웃음이 터진다. 미소가 번지고, 예전의 나라면 못했을 농담이 나온다. 즐겁다. 즐겁다. 즐겁
다. 새벽같이 일어나서 명당으로 향하던 내 모습은, 눈으로 만든 눈 천사(雪天使)가 내려준 선
물을 받아들인 덕에 변화되었다. 그게 어떻게 되었던 지는 나도 모른다. 단지 그것을 기억하
고, 그 방법을 따랐기에 이리 앉아있지 않을 지. 단지 그것에, 그리 하리라는 확신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자르기엘. 눈(雪)의 역할의 천사의 이름이라고 한다. 눈으로 만들어진 천사, 아이들이 건네준
천사가 쟈르기엘이라는 것을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들이 표현하고자 했던 것이 그 어떤
것이던 간에 내가 받아들인 것은 쟈르기엘이라는 존재이니 말이다.
「또 딴생각 하지. 눈 딴대두고 멍하니 있는 것이. 커피 다 식는다. 얼른 마시고 일하시라고. 나도 바쁘다, 바빠. 다 낳았는데에도 불구하고 병원 의사가 부르잖아? 나 원 참.」
그 말을 마치며 내게 미소를 지어주는 녀석. 그리고 문을 조용히 닫으면서 나간다. 즐거운 미
소. 번역 하던 것을 최소화시키고, 깊숙히 숨겨둔 파일을 켰다.
[SC]
그 안에 들어있는 메모 장을 틀었다. 내가 원하는 것이었기에 그것을 받아들였고, 그것을 받
아들였기에 있을 수 있는 일.
여태 써온 글과 함께, 누렇게 좀먹은 종이에 꾹꾹 눌러 썼던 말들까지 하나하나 적혀있는 내
보물이다. 보물인지, 아닌지. 언젠가는 누군가에 손에 들려 세상을 볼지도 모르는 녀석. 상관
따윈 없다. 그냥 그렇기에 그런 것이지.
아직도 남아있는 상관없어 의 버릇은 여전한가보다. 상관없다 생각하면서도, 그럴 것이 다란
생각이 떠오르면 은근히 기분 좋아지는 것은 숨길 도리가 없으니 말이다.
피식 웃어넘기며 오늘도 열심히 자판을 두드려댔다. 하나하나 적히는 문자가 내게 조금 더 희
망을 건넨다. 빙그레 떠오르는 미소를 비집고 나온 '훗' 하는 소리 하나로 인하여 오늘도 즐거
이 보낼 뿐이다.
「어떻게 됬는 지는 저도 기억치 못합니다. 단지 그 방법을 알 수 있었기에 이렇게 서 있으리라 생각하는 것뿐이지요. 제 주머니엔 아직도 그 마지막 날의 동전들이 들어있습니다. 어떻게든 기억하기 위해서지요. 겨울이 준 첫 번째 기회와 마지막 기회를 말예요.」
-SNOW SEND PRESENT TO ME-
에필로그(또 다른 이야기.)
손을 쭉 내민다. 건네지는 것은 동전하나. 그리고 작은 욕설이나 동정의 눈길. 무심한 눈도 가
끔 보인다. 여전하다. 이 썩어빠진 세상에, 척박한 인심들은 말이다. 저 딱딱하게 굳은 얼굴들
을 보아라.
세상사에 찌든 저 얼굴들에 가련히 썩어 사라져가는 나 같은 불쌍한 인간들에게 욕하며 스트
레스를 푸는 인간들. 저 역겨운 얼굴들에 오늘도 손을 내민다.
딱딱하다. 딱딱하다. 밝다? 딱딱하게 굳어진 얼굴들 사이로 밝아 보이는 얼굴이 보였다. 뭐랄
까, 직감이랄까, 예감이랄까? 분명 오늘로 저 세상살이에 빨려 들어가게 된 불쌍한 어린 양일
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자가 나를 보았다. 내 뒤에 붙은 강아지를 찾아달라는 어이없는 것(강아지를 찾아
달라는 전단지.)을 보는 것일지도. 그러나 그는 무릎을 굽혀서 나와 눈을 마주치려했다. 고개
를 돌리려다가 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에게도 다른 사람에게 하듯, 손을 내밀었
다. 그 손을 빤히 쳐다보는 그. 점쟁인가 보다. 제길. 여태 번 돈들이 날아갈 수도 있었다. 손
을 거두려하자, 오히려 손을 잡는다. 그리고 그 위에 올려지는 오백 원짜리 하나. 운이 좋은
건가?
「겨울이 준 첫 번째 기회와 마지막 기회를 기억하세요.」
미친 인간인가? 겨울이 준 첫 번째 기회와 마지막 기회라니. 전에 이런 인간이 한명 더 있었
던가. 같던데. 나 역시 그 말은 여전히 기억한다. 그게 작년 겨울이었으니 말이다.
미친 인간이 건넨 동전. 왠지 아까워서 특별히 안주머니에 넣어두었다. 그리고 무언가가 그제
야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내게 동전을 건넨 미친 사람이었다. 이태가의 내 표정 변화와 행동
을 본건가?
별 미친 인간을 다본 다는 표정으로 내가 다시 다른 사람들에게 손을 내미는 동안, 그는 사라
졌다.
기분도 꿀꿀하고, 돈도 벌었는데. 털보에게 가서 술이나 한잔 하자고 해야겠다.
저녁때가 다 되었다. 그리고 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정말 오질 나게 추운 날씨다. 이렇게
추운 날엔 술에 흠뻑 취해서 털보와 함께 술주정을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 썩은 세상사
욕하면서도 그것을 그리워하게 되는 오늘 같은 날에 말이다.
[겨울이 준 첫 번째 기회와 마지막 기회를 기억하세요.]
얼굴이 절로 찌푸려진다. 뭐, 기억하라고? 겨울이 준 첫 번째 기회와 마지막 기회라. 후. 날 세
상사로 끌어들이려는 수작인가? 아니, 그럴 인간들은 단 한명도 없지. 그럼. 그렇고 말고.
나 같은 인간들이, 그들 말로 개심하여 다시 직업을 갖기 까지는 아무 일도 없을 것이다. 그
어떤 누구도 내가 재벌이 될 때까지 무시할 것이고, 재벌이 된 후에도 그 재산만을 탐내어 볼
것이다. 때문에 그들이 싫다. 그들이 싫어.
애꿎은 밤하늘을 쏘아본다. 오랜만에 별이 보임에도 얄궂게 보인다. 지금 저 밤하늘에 떠 있
다는 이유만으로 달도 쏘아보아준다. 오랜만에 보지만, 싫다. 싫어.
온갖 궁상을 떨어가면서 도착한 곳은, 어느 자식의 말씀으로는 무슨 기다란 것이 지나가는 곳
이란다. 그래, 카드를 주고받는 행위도 참 맛깔 나게 표현한다는 털보의 말도 있었지.
주위를 둘러보니 막 털보가 자리를 잡기위해 눈치를 보고 있는 장면이 보였다. 나는 털보에게
달려갔다. 너무 큰 소리를 냈다간 큰 일이 날 터이니 조용히, 조심히 다가서야한다. 이건 내
경험은 아니지만, 어느 녀석께서 친히 말해준 것이다. 물론 털보에게 전해 들었지만.
「털보 씨! 털보 씨! 저에요, 저.」
「오오! 이게 누구야? 우리 텃새 아니가? 그래, 오늘은 또 어딜 방황하다가 나한테로 왔나?
뭔 불만이 또 있는 게야?」
「에이, 제가 매일 불만 때문에만 왔었나요? 술이나 한잔하자고요.」
「늘 와선 '에이, 제가 매일 불만 때문에만 왔었나요?' 하곤 술 한 잔 하자고 하잖아? 그리고 불만이나 다른 녀석들 만난 이야기도 하고.」
이크! 저 털보는 허구한 날 나만 관찰하나? 왜 저렇게 잘 안담? 내가 쭈뼛대며 입을 삐죽대자,
그제야 그 특유의 웃음을 터트리며 밖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오랫동안 마실 수는 없겠지만,
지금은 그 씁쓸한 맛이 너무나도 그리울 뿐이다.
근처 포장마차로 향했다. 나 같은 철새나 터지기 들이 잘 들리는 곳이기 때문에, 이곳 아주머
니의 인심 또한 푸짐하고 잘 대접해주는 편이다.
「아주머니, 여기 소주 두병 주소.」
「아니, 텃새 아냐? 또 마시우? 어째, 만날 슬픈 일만 있는것 같으이.」
「모르오, 모르오. 그냥 안주나 푸짐히 얹어 주시우.」
술이 나온 즉시 뚜껑을 따서 잔에 따랐다. 그리고 그 상태로 들이켰다. 씁쓸한 맛이 입 안에
감돌다가 사라진다. 한잔 더 따라서 들이키고는 나도 모르게 커- 하는 소리를 낸다. 맛은 좋
다. 아까의 그 미친 녀석이 한 말 따윈 잊어버리고 오늘 흠뻑 취하는 거다.
씁쓸한 맛이 감돌고 추웠던 주위가 따뜻해진다. 앞에 놓인 쥐포를 뜯어 먹으면서 털보가 삭막
하게 잔 내리는 소리를 들었다. 그냥 취하자니 뭣하다. 안주가 있고, 술이 있으면 뭐하는 가.
말할 거리가 있어야 진심으로 취하는 것이 아니겠는 가.
「털보 씨! 오늘 미친 녀석을 보았다오.」
「으응? 미친 녀석? 미친 녀석이라니. 네가 간 곳이 어디길 레 미친 녀석이 있다는 게야.」
「명당에서 갈림길 왼쪽으로 가다보면 나오는 버스카드 충전하는 곳 알이오? 거기 앉아서 돈을 받는 데 웬 녀석이 나한테 오는 게야. 그리고 내 눈을 맞추데? 그래서 손을 내밀었지. 그런데 손을 빤히봐? 그래서 점쟁이 인가 같아서 손을 빼려했지. 그런데 갑자기 손을 잡데? 그리곤 동전을 올려 주더구먼. 오백 원짜리로 말이야. 그리고는 녀석이 하는 말이.」
술을 한 모금 더 들이켰다. 씁쓸한 맛이 입에 착착 감긴다. 맛은 좋다. 좋기 그지없다. 털보가
재촉하듯 쥐포를 물어뜯는다. 그리고 그것을 질겅질겅 씹어댔다. 피식 웃음이 나기에 나도 쥐
포 하나를 쥐고 물었다. 짭짤하고 단 맛이 퍼지며, 생선 비린내도 난다.
「'겨울이 준 첫 번째 기회와 마지막 기회를 기억하세요.' 라고 하는 게야. 왠지 더러운 기분이 들길에 그냥 그 동전은 보관해두고 있어.」
털보의 얼굴이 급속도로 굳어져갔다. 그의 모습은 마치 고민하는 듯하여서, 나는 소주 나발채
물고 그대로 들이켰다. 맛 좋다. 정말 씁쓸한 맛이 내 기분을 대변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빙그레 웃으면서 쥐포를 뜯고는, 아직도 망설이는 털보에게 말했다.
「털보씨이! 왜 그러는 게야아? 크크큭. 벌써어 술기운이 도나보아아아. 정말 나는 말이지- 이렇게 술에 약한게 서업서업 하다고오오. 이이잉. 쥐포 다 먹어야 하는 데에에에에.」
벌써 술은 다 마셨다. 쥐포도 내가 물어대고, 털보가 물어댄 탓에 얼마 남지 않았다. 쥐포를
씹어 삼키면서, 두개를 남겼다. 그리고 그 두개에 손을 대려는 참에 털보의 제지를 느낄 수 있
었다. 털보는 그 두개를 전 광속과도 같이 입에 넣고는 우물우물 씹어댔다. 그리고 소주를 나
발 째로 삼켜마셨다. 술을 그리 즐기는 편이 아닌 그였기에, 그것은 나도 놀랄만한 일이었다.
「털보오씨이이! 왜에 그리 수를 마시는 게양? 나는 그 미친 녀석 감정도 못 푸러 써.」
눈앞이 돈다. 어지럽다. 그냥 잠들고 싶다. 눈을 가고 탁자 위에 머리를 뉘였다. 그리고 이젠
놓아달라는 정신을 놓아주려는 참에 들은 소리. 그냥 헛들은 거겠지. 졸리니 일단 누워서 자
고보자. 돈은 털보가 내겠지. 그리고 나는 내일 그에게 그 양의 돈을 주면 되는 것이다.
「이보게, 텃새. 자네 전에 누가 철새들 중의 우두머리였는지 아나? 난 아직도 그를 기억한다네. 그가 아직도 그리워. 그가 나 대신에 자넬 먼저 보았다는 것에 화가 나네. 녀석이 붙여준 이름이나 관련 표현은 이제 아예 입에 붙어버렸거든.
내가 말해준 그 녀석, 아직도 기억하나? 맛깔 나게 표현한다는 녀석. 그가 나에게 그랬어. 겨울이 되면 늘 그랬듯이, 눈이 내리면 늘 그랬듯이 말이야.
'겨울이 준 첫 번째 기회와 마지막 기회를 기억하세요.' 아마 그 의미가 바뀐 듯하네. 의미가 바뀐 듯하이. 왜 내게 먼저 안 왔던 겐지. 너무하네, 너무해.」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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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 썼던 이야기입니다. 단편이나, 기타 방이 너무 썰렁하기에 올립니다. 클클.
비평이나 지적 해주실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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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기고란
단편
SNOW IS SEND PREJENT TO ME
a움하하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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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22 21:55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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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엔터 신공의 압박.
제목 영어, 좀 많이 틀린 것 같네요.
어디다 올린 걸 옮겼더니 저리 됫어요; 영어 뭐 틀렸는지 알려 좀 주시지!
SNOW IS SEND PREJENT TO ME 가 무슨 뜻인겝니까.. 일단 prejent라는 단어는 사전에 없는 단어이고.. 눈이 보냈다. 선물을. 나에게.라고 억지 해석이 되긴하는데.. 털썩.. 본인이 영어는 잘 모르겠으니 알아서 지식즐에 물어보던지..
저 영어 제목 일부러 틀리게 쓰신거죠? 어디다 올린 걸 여기다 올리실려면 공지 사항을 먼저 읽어보시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