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677) - 3∙1절 100주년을 맞는 소회
- 아이 엠 소리 한 마디가 그렇게 힘들까
3∙1절 100주년을 맞아 전국 각지에서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졌다. 고향의 군정소식지는 정의로운 고장에서 선열들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기억하고 고귀한 정신과 희망을 전해주기 위해 ‘우리가 지킨 100년의 역사, 희망의 시작’아라는 주제로 동리국악당에서 3∙1운동 100주년 기념식과 ‘봄, 그리고 다시 봄’이라는 테마 공연을 한다고 알려준다. 한편 내가 살고 있는 청주의 큰 교회는 3월 1일 오후 2시에 무심천에서 3∙1절 100주년 나라사랑 시민걷기대회를 온 교회가 합심하여 준비하였다.

종로 거리를 가득 매운 3∙1절 100주년행사 참가자들
3월 1일, 이른 아침에 태극기를 게양한 후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로 향하였다. 한국걷기연맹이 주관하고 국가보훈처가 후원하는 제12회 3∙1절 100주년 만세걷기에 참가하기 위해서. 이날 행사는 3∙1 만세운동의 발상지 탑골공원을 출발하여 한강변 따라 10km, 30km, 60km, 120km를 걷는 강행군의 극기 훈련이기도 하다.
오전 10시 반경 탑골공원에 도착하니 여러 기관과 단체의 기념행사가 겹쳐서 공원 전체가 태극기의 물결로 가득하다. 수십 명으로 이루어진 사물놀이패가 흥을 돋우고 공원 안에 꾸며진 100년 만세길 홍보판이 눈길을 끈다. 서울특별시가 마련한 100년 만세길 팸플릿에는 ‘만세소리는 그날 이곳 탑골공원에서 시작되어 종각, 덕수궁, 서울역, 창덕궁을 거치면서 서울 전역에서 울려 퍼졌습니다. 서울은 그 자체로 거대한 만세도시였습니다.’고 적혀있다.
오전 11시, 탑골공원 팔각정 앞에서 500여명의 걷기참가자들이 기미독립선언문의 ‘우리는 이에 조선이 독립국임과 조선인이 자주민임을 선언한다’로 시작하는 본문과 공약 3장을 우렁차게 낭독하고 만세를 불렀다. 이어서 몸 풀기를 한 후 ‘걷자, 걷자, 힘차게 걷자’를 외치며 탑골공원을 나섰다. 공원 앞의 대로는 민족대표 33인 및 희생선열 추념식 참가자들의 가두행렬이 연도를 꽉 매우고 이를 선도하는 사물놀이패의 북소리가 요란하다. 걷기일행은 행렬을 뚫고 길을 건너 청계천에 들어섰다. 화창한 봄볕에 걷기 좋은 날씨다.

탑골공원 팔각정에서 가진 만세걷기 출발식
나는 30km걷기, 청계천을 빠져나와 한강변의 잠실과 광나루 지나 덕소에 이르는 먼 거리를 중간에 김밥 한 줄 먹고 꾸준히 걸으니 저녁 6시가 지났다. 다른 참가자는 덕소에서 함께 저녁식사 후 팔당대교까지 걸어서 위례강동길 뚝방 거쳐 60km는 잠실대교에서, 120km는 마포대교 지나 가양대교까지 갔다가 옥수역 거쳐 청계천 한빛광장에 이르는 아득한 길을 밤새워 걷는다. 120km를 완주한 이가 100여명. 걷는 중 지나던 이들이 다가와 관심과 흥미를 표하며 성원을 보내기도. 큰 행사를 주관한 관계자들의 노고가 컸고 참가자 모두 뜻깊은 발걸음이었다.
3∙1절 100주년을 기리는 다양한 이벤트에도 불구하고 우리 앞에 펼쳐지는 상황은 녹록하지 않다. 큰 기대로 지켜본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은 복잡한 셈법으로 결렬되었고 한∙일간의 미묘한 갈등은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 체 얽혀 있다.
회담이 마무리되는 날인 2월 28일의 신문 칼럼에서 ‘하노이 북∙미회담의 큰 결실이 쉽지 않은 이유’를 읽으며 기우이기를 바랐는데 그것이 현실이 되어 아쉽다. 주목하여 살핀 칼럼의 요지는 이렇다.
‘하노이 회담에서 북한 비핵화에 실질적 진전이 이루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본다. 두 가지 근거 때문이다. 첫째, 이번 회담을 위한 사전 준비 과정은 싱가포르 회담 때의 과정을 거의 그대로 답습했다. 하노이 회담에서 두 정상이 공동선언을 한다는 보도가 있기는 하지만, 비핵화 협상의 세부사항을 조율하는 사전 논의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다. 둘째,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노골적으로 비핵화 속도 조절을 언급했다. 그는 “서두르지 않는다. 북한이 궁극적으로 비핵화가 되는 것을 보고 싶을 뿐이다”고 말했다. 하노이 정상회담에서는 어떤 일이든 벌어질 수 있지만, 필자는 큰 성과를 기대하지 않는다. 문득 궁금해진다. 100년 전 일제에 대항해 용감하게 독립운동을 벌인 조선인들은 이 회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당시 조선인들은 하나의 자유로운 번영국가를 꿈꿨다. 그런 노력과 희생으로 지켜낸 조국이 100년 후에 두 나라로 분열돼 있고, 그중 한 나라 국민은 탄압과 빈곤에 시달려 있고, 이 두 나라의 운명은 머나먼 나라인 미국의 변덕스러운 대통령과 북한독재자에게 달려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그들은 통곡하지 않을까.’(중앙일보 2019. 2. 28 존 에버라드 전 평양주재영국대사의 시사평론에서)

노딜로 끝난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3∙1절에 즈음한 아내의 술회, ‘한일우정걷기 때 재일동포 여성에게 물었다. 일본 왕이 식민통치로 피해를 준 것을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한 마디만 하면 될 것인데 왜 그리 못하는가. 재일동포의 대답, 일본인은 사무라이 정신에 묶여 사과는 죽음보다 나쁘다는 생각이어서 일왕의 사과는 불가능한 일이다. 문희상 국회의장도 이번에 똑같은 말을 하네요. 일본군 위안부문제와 관련, “한 마디면 된다. 일본을 대표하는 총리 혹은 곧 퇴위를 앞둔 일왕이 사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그런데 일본인들은 강력하게 반발하는군요.’ 이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3월 3일, 서울역 광장에서 유관순열사 정신선양 주한일본인회 소속 회원들이 3·1운동 100주년과 유관순 열사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서훈을 기념해 ‘유관순 열사 정신선양 대행진’을 벌였다. 이 단체의 대표는 '유관순 열사는 나라를 사랑하는 참된 애국자의 표상이며, 국가를 위기에서 구한 아시아의 잔 다르크다. 일본인들도 이런 역사적 사실을 바로 알아야 한다'(동아일보 2019. 3. 4)고 말했다. 한일 양국이 이들에게서 힌트를 얻었으면.
복잡한 남북문제(북미, 한미관계를 포함한)와 미묘한 한일관계, 3∙1절 100주년에 우리 모두가 슬기롭게 대처해야 할 까다로운 숙제다. 합의 없이 회담을 끝낸 트럼프의 전용기가 하노이 창공으로 날아오르는 모습을 지켜보며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기를 떠올린 것은 나만의 느낌일까. 1994년 7월, 남북정상회담을 20여일 앞두고 고심하던 김일성이 급서하여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진 전철을 되밟는 일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또한 한일 양국의 지혜를 모아 100년 넘게 지속된 질곡과 갈등의 역사를 화해와 우호로 전환하는 묘수를 찾아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