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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방 스크랩 레미제라블 (1) -빅토르 위고-
한국문학예술박남권 추천 0 조회 243 12.05.15 11:59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책부족 3월의 책.

빅토르 위고레 미제라블’(Les Mis?rables)Full Text (동서문화사의 6권 짜리)로 읽었다.

완독후, 그 방대한 내용중 무엇에 초점을 맞추어 독후감이랍시고 끄적거릴까 좀 난감해 지는 기분이다.

 

어쨌거나 얼마나 친근한 캐릭터인가.

장발장이라는 인물은.

장발장뿐인가, ‘미리엘 주교’ ‘꼬제뜨’ ‘자베르’ ‘마리우스’ ‘떼나르디에’ ‘에뽀닌느’...

어린시절 ! 무정이라는 책이름으로 읽었던 동화(童話)장발장이라는 제목의 학원사 소년문고, 그리고 두권짜리 소설 레미제라블’.

장발장으로 분()장가방’ ‘리노 벤추라’ ‘장 폴 벨몽도’ ‘리암 니슨의 영화들과 뮤지컬로 귀에 익은 노래들...

 

6권짜리라고 전혀 다르게 읽힐리야 없겠지만 역시 풀 텍스트의 레미제라블은 느낌의 강도(强度)가 달랐다.

세상을 증오하던 무식한 전과자가 어느 주교의 감화로 개과천선하여 교양과 지혜와 용기와 관대함을 갖춘 완벽한 인간으로 다시 태어난다.

그가 벌이는 감동적인 행각(行脚), 땀을 쥐게 하는 추적과 도피사랑과 갈등과 용서, 비열한 악당들과의 쟁투와 모험...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과 드라마틱한 반전이 있는 스토리.

레미제라블의 줄거리는 어찌 보면 사뭇 신파적(新派的)이다.

그렇지만 이 신파의 스토리가 통속(通俗)에 머물러 있었다면 어찌 세계명작의 반열에 오를수 있겠는가.

 

정밀한 리얼리즘이 녹아 있는 간결하고 힘있는 문체로 그려 낸 이 이야기는 격조(格調) 높은 시정(詩情) 대로망이었다.

그리고 대목 대목마다 설파(說破)하는 빅토르 위고의 박학강기(博學强記)에는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그의 철학적 사유는 무거웁고 인간과 역사에 대한 통찰이 있었으며, 박물학적 지식은 다양한 곳을 넘나들며 뽐내고 있었고 고금(古今)을 넘나드는 백과전서적 지식은 행간 행간에서 빛을 발하였다.

시대적 고뇌가 서려있는 대혁명과 제정과 왕정복고와 공화정에 관한 생각들, '빠리'라는 도시를 그려낸 풍경화와 풍속사(風俗史), 심지어는 은어(隱語)에 관한 언어학적 논설(論說)까지.

한마디로 빅토르 위고는 읽는 자를 압도하였다.

대문호(大文豪)의 면모 여실한 '레미제라블'이었다.

 

'빠리'

혁명과 사상과 낭만과 민중의 도시 '빠리

수백년, 왕권신수설(王權神授說) 층층 계급사회의 족쇄에 묶여 신음하였던 도시.

1789년을 기점으로 하여 인간정신은 고양(高揚)되었다.

자유 평등 박애라는 세계사적 혁명이념은 빠리의 공기 속에도 배어 있게 되었다.

위고는 빠리의 그러한 진보적가치에 대한 자부심과 더불어 빠리를 진정으로 사랑한 사람이었다.

빠리의 골목들과 술집들과 거대한 지하하수도, 심지어 빠리의 건달패와 부랑아들 까지도 그는 혁명의 숨결로써 사랑하였던 것이다.

 

악당 떼나르디에의 아들인 빠리의 꼬마 양아치 가브로슈’.

이 소년을 묘사한 대목을 읽으면서 내게는 곧장 어떤 그림이 떠올려 졌다.

‘7월 혁명(1830)’을 그린 것이라는 낭만파 화가 '드라끄로와''민중을 이끄는 여신'.

그림을 보라.

젖가슴을 드러낸 여신의 왼 편에서 양손의 권총을 휘두르며 바리케이드를 넘어 전진하려는 소년이 보일 것이다.

빠리와 혁명과 소년.

빅토르 위고의 심상의 어떤 그림, 그 상징하는 바를 유추해 낼수 있을것만 같다.

위고는 드라끄로와의 그림에서 차용하여 '가브로슈'라는 소년을 창작하지 않았을까.

 

빠리의 부랑아는, 여기서 강조해 두거니와 표면상으로는 확실히 마멸되고 상처 입고 있지만 그 내부에는 거의 아무런 상처도 없다,

프랑스 민중혁명의 찬란한 성실성 속에 빛을 떨치는, 생각만 해도 멋진 사실은, 바닷 속에 포함된 염분과 마찬가지로 빠리의 공기 속에 포함된 관념이 만들어 내는 일종의 비부패성이다.

 

빠리는 비상한 쾌활함이 있다,.... 빠리는 당당한 위용을 지니고 있다, 빠리는 세계를 해방하는 훌륭한 714일을 가지고 있고, 모든 국민에게 테니스코트의 선서(헝법제정일의 맹세)를 하게 하고, 84일 밤(1789년 이날 밤 귀족의 특권폐지가 결의되었다)에는 불과 세 시간 만에 천년의 봉건 제도를 허물어뜨렸다....빠리는 그 빛으로 각국의 독립투사를 가득 채워준다. 워싱턴을, 코스큐스코(러시아에 대한 반란을 일으킨 폴란드 장군), 볼리바(스페인의 지배를 물리치고 볼리비아를 세운 장군), 보싸리스(그리스 독립전쟁의 영웅), 리에고(스페인 장군이며 애국자), 벰을, 마닌(오스트리아 지배에 저항한 이탈리아 애국자), 로페츠를, 존 브라운(미국의 노예 폐지론자, 교수형에 의한 그의 죽음으로 인해 남북전쟁이 촉발되었음), 그리고 가리발디(오스트리아 및 나폴리 왕국과 투쟁한 이탈리아 애국자).

 

빠리는 미래의 불이 켜지는 곳이라면 세계 어디에든 존재한다.

1779년에는 보스턴(1773년에 일어난 미국 독립전쟁에 관한 사건), 1820년에는 레옹섬(1839년 니카라과 공화국 독립에 앞서는 사건), 1848년에는 뻬스트(항가리 독립), 1860년에는 빨레르모(이탈리아의 통일)에 빠리는 존재했다.

빠리는 지상의 위대한 것을 빛나게 한다, 바이런이 미쏠롱기에서 죽고, 마제트(페스트를 연구한 프랑스 의사)가 바르셀로나에서 죽은 것은 빠리의 입김에 불려간 것이다, 빠리는 미라보의 발 아래서는 연단이 되고, 로베스삐에르의 발 아래서는 분화구가 된다, 빠리의 책과 연극과 예술과 과학과 문학와 철학은 인류의 지도서이다, 빠리는 빠스깔, 레니에, 꼬르네이유, 데까르트, 장 자끄 루소를 가지고 있고, 매 순간을 통해서 볼떼르를, 각 세기를 통해서 몰리에르를 가지고 있다,

빠리의 지붕 위로 올라오는 연기는 세계의 사상이다.... 단호하게 행동할 것, 진보는 이것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웅대한 정복은 많든 적든 모두 대담성의 대가이다. 혁명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몽떼스끼외가 혁명을 예감하고, 디드로가 그것을 설명하고, 보마르셰가 선전하고, 꽁도르세가 계획하고, 아루에(볼테르)가 준비하고 루소가 깊이 검토하는 것만으로는 아직 부족하다. 당똥이 그것을 단행하지 않으면 안된다, “과감하게!”라는 이 부르짖음은 이른바 성서의 빛이 있으라이다. 빠리는 행동하였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전후, '빠리'야 말로 혁명의 세계수도였다.

온갖 정치적실험이 가능태로서 나타났다 스러졌다.

 

레 미제라블에는 종교와 철학과 사상과 행위에 있어서의 많은 개혁가의 이름이 등장한다.

요한 후스, 루터, 데까르트, 볼테르, 꽁도르쎄, 로베스삐에르, 마라, 바뵈프, 쌩 시몽, 로버트 오웬, 푸리에...

 

혁명과 반혁명.

피보라 치는 숙청.

그리고 교차적으로 등장하는 반동(反動).

격동의 도시 파리.

 

고리오 영감에서도 말한바 있는데, 1789년 프랑스 대혁명으로부터의 프랑스사에 나는 상당한 흥미를 가지고 있다.

혁명에 관한 문학과 음악과 그림은 늘 내 가슴을 뛰게 한다.

그 옛날 중고교적의 세계사와 역사선생의 노가리는 조금도 내 가슴을 덮여주지 못하였었지만.

 

소설은 1815년 장발장의 출옥(出獄)으로부터 시작하여 1832년 장발장의 죽음으로 막을 내린다.

레 미제라블 시대적 상황 속에서 탄생한 소설이다.

역사를, 시대정신을 도외시하고서 '레미제라블'을 들여다 본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1789714: 파리시민이 바스띠유감옥을 공격함으로 대혁명의 봉화는 올랐다.

17929자코뱅당에 의하여 국민공회가 성립되어 공화정을 선언하였다, 이른바 로베스 삐에르의 1차 파리코뮌이다.

1793루이16가 처형되고 다음해 왕비 마리 앙트와네트 역시 길로틴에 목이 잘렸다.

1794: 이제는 로베스 삐에르가 숙청되어 그도 역시 길로틴에 목이 잘렸다.

1795~1799: 도독(都督)정부가 수립되어 공화주의적 부르주아지가 주도권을 잡았다.

1799: 쿠데타로 집권한 나폴레옹이 제1대 집정이 되어 집정(執政)정부가 성립되었다.

1804~1815나폴레옹 1세가 황제로 등극하여 제국이 들어섰다.

1806: 나폴레옹에 의하여 신성로마제국은 멸망하였다.

1812: 나폴레옹은 러시아원정에서 패퇴하였다.

1813: 나폴레옹은 라이프찌히에서 연합국과 교전하였다.

1815: 나폴레옹은 워털루 전투에서 패하여 세인트헬레나로 유배되었다.

1815~1824: 부르봉왕조가 망명에서 돌아와 루이 18(루이 16세의 동생)가 왕이 되었다.

 

왕정복고 첫해인 1815년.

장발장은 감옥에서 나왔다.

혁명(1789) 무렵, 본시 장발장은 무지랭이 날품팔이 노동자였다.

누이와 7명의 조카를 부양하며 살던중 굶주리는 조카들을 위하여 빵을 훔치다가 체포되어 5년형의 선고받았으나 수차례 탈옥을 시도하다가 형이 늘어 19년만에 만기출옥한 것이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은 엄밀하게 말한다면 인민의 혁명이 아니었다.

부르주아 혁명이었다.

마르크스의 프로레타리아 혁명이 발아(發芽)하기에는 변증의 역사는 아직 요원하였다.

프로레타리아 계급적 이념은 커녕, 개념조차 성숙되지 않았던 것이다.

우선은 역사 속에 부르주아 이념이 무르익어야만 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인민의 삶은 여전히 피폐하였다.

권력과 법률과 제도는 여전히 인민을 궁핍케 하였다.

장발장은 힘이 장사이며 또한 영리한 사나이였다.

결코 나쁜 천성으로 태어난 사람이 아니었다.

궁핍이 그를 감옥에 가두었던 것이다.

"목에 차는 칼, 붉은 작업복, 족쇄, 피로 물든 감방의 나무판 침대"

그리고 참혹하기 그지없는 감옥생활이 그를 세상을 증오하는 사람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빅토르 위고'는 그러나 그러한  민중 속에 잠재된 미래를 보았다.

그리하여 '레미제라블'을 썼을 것이다.

 

사회에는 법률과 풍습으로 말미암은 처벌이 존재하며 그것이 문명 속에 인위적으로 지옥을 만들어내어(감옥을 말하는 ) 신성한 운명을 인간의 불행으로 뒤엉키게 하는 한, 그리고 이 시대 3가지 문제, 프롤레타리아의 탓으로 남자가 낙오되고(장발장을 말하는 듯), 굶주림으로 여자가 타락하고(고제뜨의 어머니 팡띤느를 말하는 듯), 어둠 때문에 아이들이 비뚤어지는 (악당 뎨나르디에의 아들 가브로슈를 말하는 듯) 3가지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한, 또 어떤 지역에서 사회의 질식상태가 생길 가능성이 있는한, 다시 말해 넓게 보아 이 지상에 무지와 비참이 있는한 이러한 책들이 쓸모없지 않을 것이다. -186211일 오뜨빌하우스에서 빅토르 위고-

   

민중은 대부분 글을 읽지 못한다, 그렇다고 빛이 이 집단을 꿰뚫을수는 없는 것인가?

, 철학자들이여 가르쳐라. 비춰라 불태워라. 생각하는 바를 숨김없이 털어 놓아라. 큰 소리로 말하라. 민중과 광장과 친하라. 교육을 시켜라. 권리를 선언하라. 마르세예즈를 노래하라. .이 군중들은 훌륭하게 승화될수 있으리라, 정성을 다하라. 그리고 사상으로 하여금 하나의 선풍을 일으키게 하라. 이 군중들은 훌륭히 승화될수 있으리라. 때로 번득이며 세차게 진동하는 저 광대한 주의(主義)와 도의의 불바다를 이용할줄 알지 않는가. 그 맨살이 드러난 발과 팔, 누더기, 무지, 비참, 비천함, 암흑 이러한 것들은 이상을 얻기 위해 쓰여질 것이다, 여러분이 발 밑에 짓밟고 용광로 속에 넣어서 녹이고 끓이는 이 하찮은 돌멩이도 머잖아 찬란한 결정체가 될 것이다, 갈릴레오나 뉴턴이 천체를 발견한 것도 실로 이 모래알 덕택이다.

 

1815년의 왕정복고

나폴레옹은 공화의 이념으로 부터 탄생하여 제국을 건설한 황제였다.

적어도 나폴레옹은 '앙시엥 레짐'은 아니었다. (나폴레옹 법전을 보라)

위고는 부르봉왕조의 부활에 더욱 절망하였을 것이다.

 

독재정치의 종말, 유럽의 한 체제는 완전히 허물어졌다.

제국은 멸망해가는 로마처럼 암흑 속에 쓰러졌다.

사람들은 암흑시대처럼 다시 심연을 보았다.

멸망한 제국은 사실대로 말하면 사람들의 눈물을 자아냈다.

더욱이 용감한 사람들 눈에 눈물을 흘리게 했다.

만약 영광이 제왕의 칼 속에 들어있는 것이라면 제국은 지난날 영광 그 자체였다.

제국은 압제자가 줄 수 있는 모든 빛을 지상에 흩뿌렸다.

그것은 어두운 빛, 아니 더 나아가 깜깜한 빛이었다.

그러면서도 그 어두운 밤의 소멸은 일식같은 인상을 주었다,

루이 18세는 다시 빠리로 돌아왔다.

코르시카인이라는 말은 베아른인(부르봉가문의 발상지)이라는 말과 대조를 이루었다.

뛸르리 궁전 둥근 지붕에 나부끼는 기는 흰 기가 되었다.

망명자가 왕좌에 앉았던 것이다.

 

제왕들은 다시 왕위에 오르고, 유럽의 지배자는 우리 속에 갇히고(세인트 헤레나), 구체제는 신체제가 되고, 지상의 모든 빛과 그림자는 완전히 그 위치를 바꾸었다,

 

허위가 1789(대혁명)과 결혼하고, 신권설(왕권신수설)이 헌법의 탈을 쓰고, 가짜제도는 입헌적이 되고, 편견과 미신과 저의는 헌법14(왕은 국가의 최고 수령으로서 육해공군을 통솔하고, 선전포고를 하고 평화와 동맹과 통상조약을 체결하고, 관리를 임명하고, 법률의 적용과 국가의 안녕을 위하여 필요한 규정 및 명령을 내린다)를 핵심으로 하여 그 위에 자유주의를 칠해 놓았다. 구렁이가 허물을 벗는 식이었다, 인간은 나뽈레옹에 의해 위대해 졌으며 아울러 왜소해 졌다, 이상은 화려한 물질의 지배 아래 있으면서, 공상이라는 기묘한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미래를 웃음거리로 만든 것은 위인의 중대한 실수였다. 그래도 민중은 대포에 몸을 바치면서도 그 포수를 열렬히 사랑하고 있어, 그를 눈으로 찾고 잇었다. <그는 어디 있는가, 그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마렝고와 워털루에서 싸운 어느 상이군인에게 지나가던 한 행인에게 물었다.

 

 

낡은 유럽이 도다시 옛날로 돌아갔다.

1815년 빈회의에서 조약을 만들고, 우럽은 그것을 복고라고 이름 지었다.

황제(나폴레옹)가 경멸하던 미래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오늘은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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