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잃어버릴 때까지 쓰기로 했다. 혹한에 아이를 낳다가 죽은 엄마에 대해 들었다. 그 아이는 누구일까. 나는 나를 잊어버릴 때까지 생각하고 모든 생각을 겨울 속에 파묻었다. 봄이면 껍데기 속에서 돌아오는 엄마가 있었다. 생각은 곳곳에 진흙이거나 진흙에 슬어놓은 알이었다. 본능적으로 어디에 달라붙어야 하는지 아는 마음은 가장 인간적이었다. 목초지가 잡아먹은 동물의 뼈가 주위엔 산재하고 아직 머물러야 한다. 자궁 속에서도 길을 잃을 수 있으므로 목초지를 계속 걸어 목초지를 지나가야 한다. 멀리서 들려오는 목소리에서 숨의 일부가 쉼 없이 죽어가는 음악이 되고 북을 찢는 고대의 벽화 속에서 흐르는 구름. 나와 잃어버릴 나 사이의 침묵은 흐를 수 있다. 붉은 포도주의 비극과 눈에 보이지 않는 감각-청각. 신을 모시는 빈 잔을 가득 채운다. 하나의 쌍을 이루는 죽음의 이중성에서 소외되는 것. 연꽃은 물 위에 비치는 연꽃이라는 결말을 쓴다. 어두운 저 깊이가 존재를 겨냥하고 있다고 쓴다. 연꽃은 저 깊이에서 모두 금이 간 항아리처럼 깨진다. 나와 나 사이의 침묵은 차례를 기다린다. 물결 위에 소리를 띄우며 감각-시각을 잃어버려야 다음 계절이 온다. 침묵은 저수지에서 맴도는 연꽃의 부재. 혹한에 아이를 낳다가 죽은 엄마가 떠오르고 궁금한 껍질 바깥에서 나는 나를 잃어버릴 때까지 쓰기로 했다.
- <99가지 기분과 나머지> p.87-8
지난주 토요일 시산맥 전국행사에 참석했습니다. 강주 시인님을 직접 뵙고 사인본 시집도 받았습니다. 표지디자인까지도 하나하나 참 섬세하고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며 오는 길 내내 시집을 붙들고 있었습니다.
그 뒤 수생식물원에서 수련을 보는데, 이 시가 떠올랐습니다. 시인님이 바라 본 연꽃이라는 결말이 막 피어나는 수련과 겹치며 한참을 서 있게 만들더군요.
첫댓글 물결 위에 소리를 띄우며 감각-시각을 잃어버려야 다음 계절이 온다. 연꽃의 부재가 슬프게 와 닿는 아침입니다.
정성껏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