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치려는 마음을 버린 혜월 스님
부산 혜월(慧月) 노장(老丈)님은 견성(見性)한 스님이다.
한번은 절에서 산꼭대기 절 근방에 논을 몇 마지기 일구어 놓고 농사를 지었는데
산돼지가 벼를 전부 뜯어 먹어도 놓아두므로 한 수좌가 노장님 보고
『저 산돼지 좀 지키십시오.』
『그러지.』
이렇게 대답하고는 옆에 가만히 서서 돼지가 오면 돼지 잘 먹으라고 숨도 크게 안 쉬고 있다.
나중에는 노장님이 왔다 갔다. 해도 돼지가 도망을 가지 않는다. 스님들이 와서
『노스님 돈을 얼마나 들여 해놓은 농사인데 돼지가 다 먹으면 어쩌라고 그럽니까.』
『우리는 이 벼가 아니라도 먹을 게 있지 않은가.
돼지란 놈은 농사를 짓나 장사를 하나 천생 좀 먹어야 할 게 아니냐.』
그런 식으로 나온다. 또 마당에 벼를 널어놓고 새가 오면 그것 좀 쫓아 달라고 하면
『그리하지』하고 서 있는데 노장님 앞으로 새가 몰려와 주워 먹고 있다.
그거 먹으면 안 된다고 손을 내저어 쫓으면 저쪽으로 가서 주워 먹고
그리 가면 또 이쪽으로 오고 새가 그 노장님을 전혀 겁내지 않는다.
사람이 살생할 마음으로 해물지심(害物之心)이 없어지면 그렇게 된다.
남을 해칠 마음이 없어지면 온갖 것이 나에게 따르는 법이다.
또 그 노장님이 있던 어느 절, 위에 한참 올라가면 암자가 있는데
가는 길에 바위 모퉁이를 지나야만 법당으로 올라간다.
그런데 혹 바위 모퉁이에 시퍼렇게 생긴 살모사 한 마리가 웅크리고 앉아 있다가
부처님께 올리는 마지(摩旨)를 들고 아이들이 올라가면 머리를 딱 쳐들고
짝짝 소리를 내고 씩씩거리며 혀를 내두르고 있어서 지나갈 수가 없게 되면 아이들이
『노스님 저 나쁜 독사 놈 좀 쫓아 주십시오.』
『그리하지, 나쁘기는 너희가 나쁘지, 독사가 나빠.』하고
이 노장님이 가서 독사를 쓰다듬어 주면서
『너를 나쁘단다. 저희가 나쁜 줄 모르고 그러니 참 뭐가 나쁜지 모르겠다.』 이래 가면서
독사 머리를 들고 있으면 이놈이 죽은 모양으로 흔들지도 않고 축 늘어져서 가만히 있다.
저쪽으로 가만히 놓으면 그쪽에 가만히 도사리고 앉아 있다.
그렇게 해도 평생을 앓지도 않고 솔방울 같은 거나 따 먹고 빗자루 만들어서
가난한 집에 나누어 주고 그런 게 일이다. 평생을 그렇게 지냈는데 일화(逸話)가 한둘이 아니다.
중국에 누구누구 일본에 어떤 선사라 하지만 우리나라에 참 희한한 얘기가 많다.
한 번은 그때 돈으로 이십오 원을 들여 가지고 산골짜기를 돌, 나무로 막아 놓고
그 위에 흙을 져다 부어 놓고는 팥을 갈았는데 가을에 팥을 타작해 보니까 반말 닷 되 나왔다.
옛날 돈으로 이십오 원이면 팥을 여러 섬 살 때이다. 수좌들이 모두 한마디씩 한다.
「아, 노스님, 돈 이십오 원을 들여 가지고 고생만 하시고 겨우 이것뿐이니 이거 밑지는 장사가 되었습니다.」
「그러면 멍텅구리 아니냐. 돈 이십오 원은 이 세상 어디에 그대로 있어. 팥만 반말 공짜로 생겼지.」
일평생 사는 게 그런 식으로 산다.
저 북간도에 가서 돌아가신 수월(水月) 스님이라는 도인(道人)이 있었는데,
내가 젊어서 평생 모시고 도를 배우다 같이 죽으려고 내가 그때 개운사강원(開運寺講院)에 있다가
여름방학을 이용해서 한 번 갔는데 그분은 평생 40년 동안 그곳에서만 계신다. 그 스님이 누구에게나
「나한테 농사지은 양식이 있으니까 탁발(托鉢)하지 말고 이거 먹고 공부하라」고 늘 이랬는데,
어찌 된 일인지 나한테는 나가라고만 하셔서 아마 일부러 시험해 보는 게 아닌가 하고
별짓을 다 했는데도 나에게는 기어코 나가라고만 하시는 것이다.
가만히 보니까 진짜로 나가라는 것 같아서 나오기로 작정한 뒤에
동량이나 한 댓새 해서 양식이나 좀 보태드리고 떠나야겠다고 동량을 나섰다.
그곳에서 조금만 더 가면 흑룡강(黑龍江)이 나오고 한국 독립군들의 근거지인데
일본 토벌대들이 비행기를 가지고 가서 만주 사람 한국 사람 무수히 죽인 바로 그 뒤에서
무서운 개를 많이 기르고 그런다.
여러 사람에게 「수월 스님을 어떻게 아느냐.」 이러니까
나이 많은 노장님 한 사람이 동량이나 해 먹고 사는 분으로 알지 별사람으로 안 본다는 것이다.
모두 수월 노장을 이렇게 모른다고 하기에
내가 우리 고국(故國)에서는 굉장한 도인으로 안다고 수월 스님에 관한 얘기를 해주니까
그때에야 얘기를 듣고 보니 정말 도인인가 보다. 라고 하면서 이 얘기를 한다.
만주 개는 셰퍼드보다 더 무섭단다.
사람을 잡아먹을 정도이고 키도 셰퍼드보다 더 큰데 그 개한테 내가 혼이 난 적이 있다.
수백 리 먼 길을 가게 되어서 길을 묻고 싶어도 개가 나올까 봐
일부러 다른 곳으로 피해서 산을 넘어 다니고 그런다.
그곳에 한국 사람이 한 7백 호 살고
중국 사람이 한 3백 호 사는데 수월 노장님의 모습이 참 기이하다는 것이다.
옷도 다 떨어져서 빨간 것, 푸른 것, 흰 것, 모두 누덕누덕 기어 입고
짚신도 상주(喪主)들 신 모양으로 불룩하고,
머리에 쓴 것도 이상스럽게 걸레인지 모자인지 모를 정도로 이런 걸 쓰고 오는 걸 보면
그야말로 죽은 개도 기겁을 해 짖게 생겼는데도
그렇게 사나운 개들이 그 노장님 보고는 가만히 엎드려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수월 스님 보고는 무서운 개가 짖지 않는다고 하는 소문이 있다는 것이다.
이와-같이 탐진치(貪嗔痴)의 삼독(三毒)이 뿌리째 딱 떨어지면 호랑이와 함께 있을 수가 있고,
토끼나 노루가 그 사람 앉아 있는 곳에 뛰어 들어오고 그러는데 그렇게까지 없어져야 하는 것이다.
그때 나는 나를 보고 자꾸 짖어대는 개를 보고 속으로 참 부끄럽고 고개를 못 들었다.
명색이 장삼 입고 수도하는 중이라면서 개가 짖도록-되어 놨으니 이게 말이나 되는가.
그 해물지심(害物之心)이 남아 있어서 그런다.
지금도 우리가 정화(淨化)한다고 이러지만 교단종풍(敎團宗風)을 바로 잡아서
앞으로 이제 무수한 도인이 나오도록 하느라고 전체를 위해 하는 짓이지마는
한쪽으로는 많은 사람이 싫어하는 짓을 기어코 하였으니, 남한테는 나쁜 과보(果報)도 생기기도 한다.
그런 시기심(猜忌心)이 있고 해물지심이 있으면 개가 짖는다.
가령 사냥꾼이 아무리 목욕을 깨끗이 하고 몸에 향수(香水)를 바르고
새 옷을 입고 다녀도 개가 틀림없이 그 사람만 오면 문둥이 오는 것처럼 짖어댄다.
-청담 스님- <금강경 강의>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