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년 나해 6월9일 토.[(백)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 기념일]
제1독서
<나는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하리라.>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61,9-11
복음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41-51
◈ [서울]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 기념일
건강검진을 받았습니다. ‘시력, 심전도, 폐활량, 혈압, 안압, 청력,
초음파, 신체계측, 혈액, 위장’에 대한 검사를 받았습니다. 어떤 곳은
양호하다고 합니다. 어떤 곳은 지켜보자고 합니다. 어떤 곳은 추적
검사를 하자고 합니다. 자세한 결과는 2주 후면 알 수 있을 거라고
합니다. 건강을 위해서는 몸의 각 지체가 기능을 잘하고 있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건강을 위해서는 건강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몸의 지체들은 마음에 영향을 받기 마련입니다. 여기까지 온 것에
대해서 감사드리고,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개선하려는 마음을 가지면
됩니다.
어머니께서는 제가 길을 잃어버렸던 이야기를 하시곤 합니다.
어머니와 가족들은 모두 놀랐다고 합니다. 5살 때의 일이기에 저도
기억은 납니다. 저는 큰길에서 버스를 탔고 어딘가에서 내렸습니다.
당연히 돌아가는 버스를 알지 못하였습니다. 길을 걷다가 파출소로
들어갔고, 다음날 아버님께서 저를 찾으러 오셨습니다. 이것이 저의
기억인지, 부모님께서 제게 들려주신 기억인지 지금은 잘
모르겠습니다. 확실한 것은 제가 길을 잃어버렸다는 것이고, 제가
파출소에서 하루 지냈다는 것입니다.
몸의 건강은 건강검진을 통해서 돌볼 수 있습니다. 목적지는 지도와
내비게이션이 있으면 찾아갈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마음입니다. 마음이 길을 잃어 방황하는 때가 있습니다. 세례를 받고
신앙인이 되었으면 우리의 마음에 주님께서 함께하셔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은 다른 곳을 찾아서 헤매곤 합니다. 재물에
우리의 마음이 머물기도 합니다. 명예에 우리의 마음이 머물기도
합니다. 권력에 우리의 마음이 머물기도 합니다. 재물, 명예, 권력이
우리의 마음에 들어와 있으면 주님께서 함께하실 자리가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의 마음 앞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걱정 때문에, 근심 때문에, 불안 때문에, 욕심 때문에, 시기심
때문에 마음의 문이 닫히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크지만,
하느님의 자비가 온 세상에 가득하지만, 우리의 마음이 닫혀 있으면
들어오시지 못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 예수님의
마음은 언제나 하느님과 함께하셨습니다. 성모님의 마음은
어떠하셨을까요? 성모님께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
언덕을 오르시기를 원하셨을까요? 십자가의 무게가 무거워
3번씩이나 넘어지면서도 끝까지 십자가를 지고 가시기를
원하셨을까요? 옆구리를 창에 찔리시기를 원하셨을까요? 제자들도
다 도망가고, 혼자서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하시기를 원하셨을까요?
아니면 평범하게 직장을 구하고, 좋은 여자 만나서 가정을 이루기를
원하셨을까요? 손자, 손녀들의 재롱을 보면서 살기를 원하셨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성모님의 마음을 헤아려서 그렇게 고난의 길을
가셨을까요?
예전에 학생운동을 하던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좋은 대학교에
입학했고, 졸업만 하면 좋은 직장에 취직을 할 수 있던 친구들입니다.
그런 친구들이 민주화를 외치며, 데모했고, 데모하는 과정에서
형사들에게 쫓기게 되었습니다. 학생들은 수배자가 되었고,
교도소에도 가게 되었고, 학교에서 제적을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좋은 직장은 구할 수 없게 되었고, 그들이 그렇게 바랐던 민주화는
이루어졌지만 많은 학생은 아직도 고문의 후유증을 겪고 있으며,
가난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 학생들의 어머니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자식의 건강, 성공, 출세, 결혼을 바랄
것입니다. 그것은 당연한 생각입니다. 하지만 어떤 아들은 세상의
것들을 추구하기보다는 하느님의 뜻을 먼저 생각합니다. 가난한
이들을 돕는 일, 불의한 일에 저항하는 일, 벗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일을 합니다.
성모님께서는 하느님의 일을 먼저 하였던 예수님을 위해서
기도하였습니다. 억울하게 비참하게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신
아드님을 가슴에 묻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모님의 마음을 티
없으신 마음이라고 말을 합니다. ‘천주의 성모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시고,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소서! 복되시고
영화로우신 동정녀여!’
- 서울 대교구 성소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 [수원]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변하려는 마음만 있다면
2018년 나해 6월9일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 기념일
<변하려는 마음만 있다면>
복음: 루카 2,41-51
얼마 전에 저보다 나이어린 신부님이 사제직에 대해 고민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저에게 가장 크게 다가왔던 말은 ‘닮고 싶은 사제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닮고 싶은 사제가 없어 자신도 어떻게
사제직을 해 나가야할지 두려움만 앞선다고 했습니다. 저도 그
신부님에게는 한 명의 선배로서 닮고 싶은 사람이 되어주지 못한
것에 부끄럽기도 했고 또 한 때 저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어서
공감이 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것이 사제직에 대해 고민하게 만들 핵심적인
문제인가?’라는 생각이 들고, ‘다른 더 큰 이유가 있는데 그런 것을
핑계로 삼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사제들의 모델은 예수 그리스도이시기에 내가 그분을 닮아 후배
사제들이 닮고 싶어 하는 사제가 되어야겠다.”라고 생각하면 안
될까요? 마음만 있다면 모든 신부님들 안에서 내가 배워야 할 점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변해야한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으로는 변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이런저런 핑계들이 생겨나는
것은 아닐까요?
오늘은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성심 기념일입니다. 어제는 예수 성심
기념일이었습니다. 예수 성심은 ‘신랑의 마음’입니다. 신랑은 신부를
위해 목숨을 바치려는 마음입니다. 신랑은 신부를 위해 세상에서
피땀을 흘려 돈을 벌어옵니다. 신랑의 내어줌으로 신부가 사는
것입니다. 그 예로 어제 강론에서 자살하려는 한 시민을 살리기 위해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던 사람이 위험을 무릅쓰고 역주행까지 해가며
그 사람을 설득시킨 이야기를 소개하였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는 신랑으로서 교회를 위해 당신 피를 내어주셨습니다.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이웃들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 우리는
예수성심을 청해야합니다.
미사 때마다 신랑이신 그리스도의 피로 맺어지는 계약은 바로
혼인계약입니다. 교회는 신랑이신 그리스도 앞에서 신부의 마음을
지녀야합니다. 신부는 신랑의 말을 가슴에 담고 순종해야합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 예수님의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라고 말합니다. 성모님의 마음에 하느님의 말씀이 담긴
것입니다.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은 신부의 역할입니다.
말씀을 받아들임은 ‘순종’을 의미합니다. 순종은 말씀을 ‘머리’가 아닌
‘가슴’에 간직할 때 일어납니다. 머리로는 이해하는 것으로만
끝나지만 가슴으로 받아들이면 행동이 변하게 됩니다. 그래서 신부는
신랑의 말씀을 가슴, 혹은 마음에 받아야합니다. 성모님의 마음이 티
없이 깨끗하시다는 뜻은 예수님의 모든 말씀에 순종할 준비가
되어있었다는 뜻입니다. 성체를 영하고 성경을 읽어도 삶이 변하지
않는 이유는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마음이 아니라 머리로 받아 모시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내어주지 않는다면 머리로 이해하더라도 삶이
변화하지 않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이사야는 신랑이신 그리스도 앞에서 신부인
교회의 노래를 소개합니다.
“나는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하고 내 영혼은 나의 하느님 안에서
즐거워하리니 신랑이 관을 쓰듯 신부가 패물로 단장하듯 그분께서
나에게 구원의 옷을 입히시고 의로움의 겉옷을 둘러 주셨기
때문이다.”(이사 61,10)
신랑이 신부에게 관을 씌워주듯 패물로 단장했다는 말은 하느님께서
성모 마리아께 성령을 보내셨다는 뜻입니다. 그 성령으로 아드님을
잉태하셨는데 그 아드님이 바로 의로움의 겉옷입니다. 성모 마리아는
구원받았다는 기쁨에 언제나 주님을 찬미합니다. 그런데 이 찬미는
마음으로 그분께 순종하여 내 자신을 변화시키려는 이에게만
유효합니다. 말씀을 통해 그리스도처럼 변화되려는 마음, 그것이
깨끗하신 마리아 성심입니다. 그 성심에 참여하는 이들이 교회입니다.
그리고 성모성심에 참여하여 교회의 일원이 되었다면 성모님처럼 매
순간이 구원되었음에 기쁠 수밖에 없고 이렇게 성모님의 노래를 함께
부를 수밖에 없습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며, 나를 구하신 하느님께 내 마음 기뻐
뛰노나니 당신 여종의 비참함을 돌보셨기 때문입니다.”
http://www.수원교구영성관.com/
- 수원 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 -
◈ [기타] 슈퍼맨 S : 오늘의 능력말씀
2018년 6월9일 토요일
슈퍼맨 S
오늘은 “슈퍼맨 S”라는 내용으로 은혜의 시간이 되겠습니다.
하박국 2장 2절 말씀에 “여호와께서 내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슈퍼맨 하면 무엇이 떠오릅니까?
아마도 슈퍼맨 가슴에 새겨진 ‘S’자 일 것입니다.
사실 이 S자 문장은 영어 알파벳이 아니라 슈퍼맨이 살던 행성의
문자라고 합니다.
슈퍼맨 가슴에 항상 바로 이 ‘S’자 문장이 딱 붙어있듯이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가슴 판에 있어야 합니다.
쉽게 붙였다 떼었다 하는 스티커 식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내
마음대로 필요하면 붙였다가 필요 없으면 떼어버리는
그런 성도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어떻게 해야 이 복음의 말씀이 떨어지지 않게 지속적으로 계속
붙어있게 할 수가 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 뜻대로 했다가
금세 내 뜻대로 하는 그 변심을 멈추어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이다 하고 순종할 때 바로 그 말씀이 내 가슴 판에
있을 때 달려가도 떨어지지 않고 말씀대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 인천 부평 사랑밭 교회 권태일 목사 -
◈ [수도회] 천국에도 뒷문이 있다!
2018년 나해 6월9일 토. 티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 기념일
천국에도 뒷문이 있다!
올봄 본의 아니게 성모님에 대한 졸저(拙著) 두권을 내게 되었습니다.
‘성모님과 함께라면 실패는 없다’와 ‘성모님을 사랑한 성인들’입니다.
제가 책을 낼려고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3년 간에 걸쳐 월간지
‘생활성서’에 연재한 글들을 생활성서사 가족들이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 주신 책들입니다.
정작 책들이 나오니 성모님 앞에 참으로 송구스러웠습니다. 그분
앞에 언제나 큰 불효자라는 것, 그분을 향한 제 신심이 너무나
미약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참으로 부끄러웠습니다.
그래도 다시금 천천히 읽어보니, 큰 부끄러움에도 불구하고, 성모님을
향한 감사의 정이 샘솟았습니다. 참으로 보잘것 없는 책들, 말마디
그대로 졸저(拙著)들이지만, 성모님을 향한 작은 봉헌이라는 생각에
기뻤습니다.
솔직히 성모님이란 주제는 지극히 민감한 주제여서, 글을 쓸 때도 늘
조심스러웠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이단으로 빠지기 십상이어서, 늘
살얼음판 걷는 듯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고를 쓸 때는,
초심자의 마음으로, 가급적 쉽고 편안하게 쓰려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특히 성모님에 대해 크게 오해를 하고 있는 개신교 신자들이나
일반인들의 공격 앞에 가톨릭 신자로서 어떻게 대응할 수 있겠는지,
염두에 두고 원고를 썼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모님의 군사들이신 레지오 단원들께서 성모님이 어떤
분이신지 이미 잘 파악하고 계시겠지만, 좀 더 그분의 실체를 정확히
파악하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책을 만들었습니다.
‘천국에도 정문과 뒷문이 있다’는 꼭지에 이런 글을 만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 언젠가 이 땅을 떠나 천국 문 앞에 설 것인데,
문 앞에는 천국의 열쇠를 쥐고 계신 베드로 사도가 딱 지키고
서계십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많은 레지오 단원들이 베드로 사도로부터 직천당
티켓을 받는 것이 아니라, 연옥행 티켓을 받는답니다.
그런데 천국의 문 근처에는 낯익은 분이 서성이고 계신다네요. 우리
레지오 단원들이 평생 그 이름을 불러왔던 성모님이십니다.
성모님께서는 연옥행 티켓을 받고 울며 애통해하는 레지오 단원들의
옷자락을 슬그머니 붙잡고 어디론가 데리고 가신답니다.
그곳은 바로 천국의 뒷문입니다. 성모님께서는 혹시라도 베드로
사도가 보면 어떡할까 노심초사하시면서, “어여, 빨리 안으로
들어가라!”며 레지오 단원들을 천국의 뒷문으로 밀어 넣으신답니다.
이런 성모님을 어머니로 모시고 있는 레지오 단원들과 가톨릭
신자들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농담 같지만 진담입니다. ^^
성모님을 어떤 존재로 생각하십니까? 성(聖요)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에 따르면 “성모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거울 같은 분이십니다.
성모님의 얼굴은 하느님의 구원 업적을 가장 맑고 투명하게 반영하는
거울입니다.”
바꿔 말하면 성모님의 얼굴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담겨있다는
말입니다. 성모님의 삶 속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들어가 있다는 말입니다. 결국 성모님의 마음은 예수님의
마음이요, 예수님의 마음은 곧 성모님의 마음입니다.
오늘도 성모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향한 큰 측은지심으로 우리의
고통과 결핍, 우리의 상처와 눈물을 바라보십니다. 우리의 고통이 곧
성모님의 고통이요, 우리의 눈물이 곧 그분의 눈물입니다.
그리고 성모님께서는 어떻게 하면 우리를 도와줄 수 있을까,
노심초사하시고 고민하십니다. 언제나 예수님 옆에 바짝
붙어앉으셔서, 우리의 회개와 성화를 위해서, 우리의 구원과 영생을
위해 예수님께 집요하게 청하십니다. 이런 분이 바로 우리의
성모님이십니다.
오늘도 성모님께서는 어떡하면 우리를 예수님께 잘 소개해드릴까
고민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죄 앞에, 우리의 부족함 앞에,
성모님께서는 마치 우리의 전속 변호사처럼 이런 말씀을 예수님께
건네고 계십니다.
“그때는 애가 너무 어려서 그랬을 거예요. 그때는 애가 컨디션이
너무 않좋아서 그랬을 거예요. 그때는 여러모로 상황이 꼬여서
그랬을 거예요. 한번 더 기회를 주면 어떨까요? 아마도 앞으로는 잘
할거예요. 꼭 좀 부탁드립니다.”(양승국 스테파노 SDB)
-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 [수도회]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루카 2, 51)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강론 묵상
2018년 나해 6월9일 토. 티 없이 께끗하신 성모 성심 기념일.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루카 2, 51)
소리없이 사랑하시는 성모 성심을 만납니다.
성모 성심은 모든 것을 받아들이십니다.
예수님의 죽음까지도 끌어안습니다.
성모 성심은 주님 말씀에 기반을 둡니다.
주님 말씀에서 힘을 얻습니다.
주님 말씀과 함께 깊어 가십니다.
주님 말씀으로 자라납니다.
성모 성심에서 무엇에도 비길 수 없는 뜨거운 마음을 만나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전부가 되는 마음입니다.
성모 성심에서 생명의 의미를 깨닫게됩니다.
마리아의 품에 안기셨던 예수님을 만납니다.
아플수록 빛나는 성모님의 마음입니다.
어머니가 되어 세상을 바라보는 소중한 여정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오늘도 티 없이 께끗하신 성모 성심은 우리의 눈물을 닦아 주십니다.
-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 -
◈[청주] 마음 속에 간직 하였다 |반신부의 복음 묵상
2018년 나해 6월9일 토요일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 기념일(루카2,41-51)
마음 속에 간직하였다.
어린 시절 운동을 하였습니다. 지금은 왜소하게 보이지만 초등학교
때에는 다른 아이들에 비해서 키가 큰 편이었습니다. 그래서 운동을
하게 되었는데 마라톤도 하고 씨름을 하게 되었습니다. 시합을
앞두고는 늦게까지 연습하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연습 후에는
찐빵과 만두가 준비되어있었기에 견딜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시합에 ‘이겨라’ 고 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시합 날 입고 간
팬티에는 어김없이 헝겊 한 조각이 붙어있었습니다. 그것은 제가
갓난아기 때 입었던 ‘저고리’의 한 부분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부적이나 다름없는 것이었습니다. ‘이겨라’고 말씀은 하지
않았지만 그것은 꼭 이길 것이라는 간절한 믿음을 담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몰랐었지만 지금은 어머니의 큰
사랑으로 받아들입니다. 그것이 소위 미신행위였다고 할지라도.
오늘 우리는 우리 모두의 어머니 성모님의 마음을 기억하며
기념합니다. 성령으로 인하여 예수님을 잉태하시고 낳으신 후 그
지상 삶의 여정과 죽음에까지 누구보다도 가까이서 그분의 모든 것을
지켜보시고 그분의 마음을 헤아리시며 오로지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길 기다리신 어머니의 마음, 아들 구세주 그리스도의
협력자로 일생을 봉헌하시고 아들의 십자가 밑에 서 계셨던 어머니의
마음을 기억합니다. 어머니의 위대함은 삶의 여정에 예기치 못한 많은
일들이 벌어졌지만 늘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리라는 믿음이
살아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도 날마다 순간마다 믿음이
살아있기를 기도합니다.
성경을 보면, 파스카 축제 때에 예루살렘으로 가셨던 예수님의 부모는
길 잃은 예수님을 찾아 사흘이나 헤맸습니다. 마침내 예수님을 찾아
어머니가 “얘야, 우리에게 왜 이렇게 하였느냐?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애타게 찾았단다.” 하자, 그가 부모에게 말하였습니다.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저는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께서 한 말을 알아듣지 못하였습니다
(루카2,48-50). 사실 요셉이 아버지인데 또 아버지가 따로 있다니
정말 뚱딴지 소리였습니다. 따라서 그 신비로운 진실을
알아듣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때를
기다리며 부모와 함께 나자렛으로 내려가, 그들에게 순종하며
지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도 순종의 생활로써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로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습니다. 지금은 잘
알아들을 수 없으나 아들에 대한 한없는 사랑은 한결같았습니다.
그리고 간절한 마음으로 아들을 찾아 헤맨 사랑의 울타리 안에서
또한 모든 것을 마음속에 간직한 어머니의 큰 품에서 아들은
커갔습니다. 루가복음 사가는 “예수님은 지혜와 키가 자랐고
하느님과 사람들의 총애도 더하여 갔다”(루카2,52)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결국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과 동료 인간들의 총애를 받았고
그분은 자라면서 사회 안에서 당신의 자리를 잡아나가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아들에 의해 어머니의 마음도 인정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 일상 안에서도 마음속에 간직하여 되새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요? “간직한다는 것의 의미는 삶에서 일어나는 일을 통해 이
말씀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지 항상 묵상한다는 뜻입니다. 이
순간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주님께서 이 순간 나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이 상황은 하느님 말씀과 대조하여 어떻게 이해할 것이지
찾는 작업입니다. 이는 삶을 하느님 말씀으로 읽어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내 삶에서 하신 모든 일을 기억하는 것은 하느님
말씀을 간직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프란치스코교황). 하느님의 뜻과
내 뜻이 상충될 때가 많습니다. 당연히 하느님의 뜻을 헤아려야
함에도 내 일의 성공과 업적을 위해 하느님을 이용하기도 합니다.
나와 다른 너를 받아들이기 위해서,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마음속에 간직하여 되새기는' 시간을 꼭 챙길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 청주교구 반영억 라파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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