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3: 14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현대 과학이 그들의 오염되어서 부패한 이성과 함께 거절하며 부정할지라도 하나님의 존재 그 자체가 우리에게 무한하신 은혜의 성격으로 있습니다. 인생을 창조하시고 자유의지를 주신 것도 은혜의 형식으로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부부관계도 은혜의 형식입니다. 그들에게 주신 환경으로써 모든 우주와 만물도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부분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의 범죄란 이런 은혜의 모든 것을 거절해 버림입니다. 그 후에는 은혜가 전적으로 단절되어 버렸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아직도 삼위일체 하나님이 계십니다. 천사들도 있습니다. 우주와 만물이 그대로 있습니다. 인생의 범죄로 탄식하며 회복의 때를 기다리기는 하지만 아직도 은혜의 성격으로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기 계시 자체도 은혜입니다. 가까이 오심도 은혜입니다. 의사로써 오시고 말씀하십니다. 아담 스스로, 하와 스스로 할 수 없음으로 하나님이 오셔서 해주십니다. 하나님은 사단을 억압하시고 저주하십니다.본문 14절은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육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종신토록 흙을 먹을지니라” 입니다.
1. 하나님께서는 앞에서 남자와 여자에게 하신 것과는 달리 뱀에게도 의문형으로 묻지 않으십니다.
그것은 동물에게 양심이나 죄의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단에게 용서하고자 하는 의도를 두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의 말을 듣지 않으시고도 그 권위로써 그들에게 선고를 내리실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구원에 대해 전혀 관심을 갖고 있지 않았다면 무엇 때문에 그들을 불러 심문하시겠습니까? 이러한 교훈은 우리의 유익을 위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정죄하기 위해서 원인을 규명하는 심문을 하거나 어떤 엄숙한 형식을 취해 심판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자백을 강요하시지만 심판자라기보다는 의사로써 행동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형벌을 내리시기 전에 뱀에게 물은 이유도 똑같은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보게 되겠지만 하나님께서는 죄에 대한 적절한 형벌을 내리시기 위해 차이를 두셨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가 회개하도록 하기 위해서 내려진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종류에 대한 것이 전혀 없습니다.
2. 그런데 이 말씀이 누구에게 하신 것인지 의문스럽습니다.
다시 말해서 뱀인지 아니면 사단인지 명료치 않다는 것입니다. 사실 모세는 뱀이 능란하고 교활한 짐승이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사단이 인간을 파멸의 구렁덩이에 빠뜨리려고 계획했을 때, 뱀은 사기성이나 사악함에 대해 죄가 없다는 것도 확실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이 구절이 우화적으로 해석되어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모든 상황을 신중히 고찰해야 합니다. 건전한 판단력을 부여받은 신자라면 이 구절의 표현에 혼합적인 특징이 있다는 사실을 쉽게 인식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뱀에게 하셨던 최후의 언급이 사단에게 속한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만일 다른 존재의 잘못에 대한 형벌을 야수에게 강요하는 것이 불합리한 것처럼 보인다면 그 해결책은 아주 간단합니다. 즉 야수는 인간의 유익을 위해 창조된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이 인간의 멸망에 이용당한 그 순간부터 저주받은 것은 부당한 처사가 아니라는 설명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보복 행위를 통해 인간의 구원을 얼마나 높이 평하시는지를 입증합니다. 이것은 마치 어떤 아버지가 자기 아들을 죽인 저주스러운 칼을 가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기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피조물에 대해 가지고 계시는 권위는 물론 그들을 창조하신 목적도 고려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하나님께서 직접 재가하신 자연의 질서에 달려 있습니다. 버림받은 자들은 이러한 방법으로 그 몸이 영원한 불에 던져질 것입니다. 그 몸은 스스로 택한 것이 아니더라도 죄악을 범한 도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람이 아무리 사악한 죄를 저질렀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그의 손에서 기인된 것입니다. 그 결과 손이 더럽혀졌다고 간주됩니다. 한편 이 손을 타락한 마음의 충동에 지배를 받아 이미 속에 품고 있던 것을 실행하는 경우가 아니고서는 홀로 행동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추리 방법에 근거한다면 사단이 도구를 이용해서 했던 것을 뱀이 실행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만일 하나님께서 야수에 대해 인간의 멸망을 그처럼 혹심하게 보복하셨다면 모든 죄악의 장본인인 사단을 가차없이 처벌하셨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이것은 본문의 결론 부분에 아주 명백히 드러나 있습니다.
3. “네가 모든 육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에서 이러한 하나님의 저주는 뱀에 대한 강력한 조처를 의미합니다.
이것은 하늘과 땅에서 거의 용납될 수 없는 비참한 저주입니다. 그리고 끊임없는 공포에 직면하여 두려움에 싸인 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 혹독한 형벌입니다 그밖에도 뱀은 인류의 가장 악명 높은 원수로서 우리에게 증오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다른 동물과도 격리되어 자연과 싸워야 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뱀이 너무나 양순하여 여자가 전혀 도망치지 않고 친밀하게 접근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형벌로 선포하신 것, 다시 말해서 뱀은 이제부터 배로 기어다니며 흙을 먹고 살아야 한다는 것은 아주 자연스럽게 보이므로 더 큰 어려움이 뒤따르게 되었습니다. 박식하고 능력이 있는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설명에 반대하여 뱀이 사단에 의해 이용당하기 전에는 몸을 똑바로 세워 걸어다녔다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뱀이 이전의 상태로 다시 환원되었으며 그러한 상태에 자연적으로 순응하게 되었다고 추측하는 것도 전혀 무리는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형상에 대적하여 자신을 높이려 했던 뱀이 본래의 위치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마치 “너는 천박하고 더러운 동물인데도 모든 세상의 피조물을 다스리도록 임명한 인간을 감히 대적했다. 또한 너는 땅에 국한되어 있는데도 감히 하늘이라도 침투해 들어갈 수 있는 것처럼 반기를 들었다. 그러므로 이제 나는 네가 빠져나오려고 했던 곳으로 다시 던져보낼 것이다. 너는 거기에서 네게 주어진 운명에 만족하면서 사는 것을 배우고 더 이상 네 자신을 높여 인간을 비난하거나 해치지 못하게 될 것이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뱀의 오만무례한 행위로 인해 배로 기어다닐 수밖에 없게 된 것을 상기시키며 동시에 영원한 오명을 벗지 못하리라고 하십니다. 또한 흙을 먹는다는 것은 아주 비열하고 추잡하다는 증거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도 이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사65:25). 그는 그리스도의 통치 아래서 건전하고 잘 형성된 성품이 완전히 회복될 것이라고 약속하면서, 무엇보다도 흙이 뱀의 양식이 될 것이라고 기록했습니다. 그러므로 모세가 여기에서 언급하고 있는 내용에서 어떤 새로운 변화를 추구할 필요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