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美 역대 대통령 첫 ‘머그샷’ 불명예
2020년 미국 대선 당시 자신이 패했던 조지아주에서의 선거 결과를 뒤집으려는 시도를 한 혐의로 기소된 도널드 트럼프 전 미 대통령이 24일(현지 시간) 애틀랜타 풀턴카운티 구치소에서 전현직 대통령 최초로 찍은 ‘머그샷’(범인 식별용 사진). 잔뜩 화난 얼굴로 정면을 응시하며 눈을 부릅떴다. 그는 보석금을 내고 약 20분 후 풀려났다.
‘수감번호 P01135809’ 20분 수감후 보석
트럼프, 美대통령 최초 머그샷 찍혀
눈 부릅 뜨고 화난 얼굴에 정면 응시
‘X’에 머그샷 올리며 복귀 알려
조회수 1억건 16만개 넘는 댓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지지자가 24일(현지 시간) 그가 이날 약 20분간 일시 수감됐다가 보석으로 풀려난 조지아주 애틀랜타 풀턴카운티 구치소 인근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주황색 수의를 입은 모습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그의 기소에 반대한다는 뜻을 표했다. 옆에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내년 대선 승리를 기원하는 문구 ‘트럼프 2024’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은 사람이 있다. 애틀랜타=AP 뉴시스
‘P01135809’.
미국 남동부 조지아주(州) 풀턴카운티 보안관실이 24일(현지 시간) 공개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수감자 번호다. 그는 이달 초 2020년 대선 당시 자신이 패한 조지아주의 국무장관에게 전화로 “선거 결과를 뒤집을 방안을 찾아내라”고 압박한 혐의로 4번째 형사 기소를 당했다. 이에 이날 풀턴카운티 구치소에 약 20분간 일시 수감된 후 ‘머그샷’(범인 식별용 사진)을 찍었다. 미 전·현직 대통령 중 최초로 형사 기소됐으며 역시 최초로 머그샷까지 찍은 대통령이란 불명예를 안았다. 머그샷과 지문을 찍고 신체 기록 절차 등을 거친 그는 사전 합의한 보석금 20만 달러(약 2억6000만 원)를 내고 곧 풀려났다.
그는 이날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에 자신의 머그샷과 ‘선거 개입. 절대 굴복하지 말라!’는 글도 올렸다. 취재진에도 “나에 대한 기소는 정의를 희화화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머그샷 공개와 일시 수감을 지지층 결집 용도로 사용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 화난 얼굴로 눈 부릅뜬 사진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날 북동부 뉴저지주에서 전용기를 타고 조지아주 애틀랜타에 도착했다. 오후 7시 34분경 풀턴카운티 구치소에 자진 출두해 간단한 신체 검사 등 체포 절차를 밟았다. 수감자 기록에 따르면 그의 키는 6피트 3인치(약 190㎝), 몸무게는 215파운드(약 97.5㎏), 눈 색깔은 파랑, 머리카락 색깔은 금발 혹은 딸기색이었다.
그는 앞선 세 차례의 기소에서는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모두 머그샷 촬영을 면제받았다. 하지만 “모든 피고가 같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풀턴카운티 측 원칙에 따라 머그샷을 찍었다. 그의 개인 변호사인 루디 줄리아니 전 뉴욕 시장, 마크 메도스 전 백악관 비서실장 등 공범 18명 등도 머그샷을 촬영했다.
머그샷에서 그는 흰색 셔츠에 빨간 넥타이 차림으로 입을 굳게 다문 채 눈을 부릅뜨고 정면을 응시했다. CNN은 트럼프 캠프에서 사전에 그가 머그샷을 어떤 표정으로 찍을지 논의했으며, 특히 웃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전했다.
약 20분 후 풀려난 그는 공항에서 취재진에게 2020년 대선 결과가 사기라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그는 “우리는 부정하다고 생각하는 선거에 도전할 모든 권한을 갖고 있다. 나를 기소한 것은 미국에 매우 슬픈 일이며 선거 개입”이라고 했다. 내년 대선에서 맞붙을 가능성이 높은 조 바이든 대통령이 자신에 대한 음해 공작 차원에서 4차례의 기소를 했다는 주장이다.
● “트럼프 머그샷, 모나리자보다 유명해질 것”
트럼프 전 대통령은 풀턴카운티 측이 자신의 머그샷을 공개하자마자 곧바로 X에 올렸다. 트위터 측은 2021년 1월 6일 그의 지지자가 미 의회에 난입하자 당시 그가 지지층을 선동하는 글을 트위터에 계속 올렸다는 이유로 그의 계정을 정지시켰다. 트위터는 지난해 11월 계정 정지를 해제했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은 그간 게시물을 올리지 않다가 이날 사진과 글을 올렸다.
이 게시물은 1억 건이 넘는 조회 수를 기록하고 16만 개가 넘는 댓글이 달려 화제성을 입증했다. 그가 지지층을 규합하고 자신에 대한 동정 여론을 고조시키기 위해 일부러 머그샷을 찍고 구치소에 일시 수감됐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한 공화당 지지자는 로이터통신에 이 머그샷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명화 ‘모나리자’보다 유명한 이미지가 될 것이라고 평했다.
다만 그의 사법 위험은 점점 커지고 있다. CNN에 따르면 4번의 기소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받고 있는 혐의는 모두 91개에 이른다. 또 조지아는 사면 규정을 엄격히 적용하는 주여서 설사 내년 대선에서 이긴다 해도 사법 위험이 상당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에 트럼프 전 대통령 또한 이날 변호인을 교체하고 재판 연기를 요청했다. 바이든 대통령 또한 같은 날 소셜미디어에 “내 캠페인에 기부하기 좋은 날”이라며 역시 지지층 결집을 독려했다.
애틀랜타=AP 뉴시스, 워싱턴=문병기 특파원
“절대 굴복 안 해”… 트럼프 ‘분노의 머그샷’ 연출
미국 도박꾼들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머그샷(피의자 식별 사진)을 놓고 각종 내기를 걸었다. 그가 입고 나올 옷, 그가 지을 표정 등이 모두 초미의 관심사였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가장 남자답고 잘생긴 머그샷이 될 것”이라고 큰소리쳤다. 어제 공개된 실제 머그샷 속 트럼프는 입술을 꾹 다문 채 매서운 눈매로 카메라를 노려보고 있다. 치밀하게 계산해 사전에 연습, 연출한 각도와 표정일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전직 대통령이 형사 기소된 것도 전례가 없거니와 그의 얼굴을 머그샷으로 접하는 것은 미국인들에게 사상 초유의 일이다. 앞서 인공지능(AI)으로 합성한 주황색 죄수복 차림의 가짜 머그샷이 온라인에 퍼졌지만, 실제 사진이 주는 충격은 상당하다. 그를 2020년 대선 방해 혐의로 기소한 조지아주 풀턴카운티 지방검찰의 워터마크가 선명하게 찍혀 있다. 기소장에서는 나올 수 없는 시각적 각인 효과가 작용한다. “미국 대통령이 어디까지 추락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는 한탄이 쏟아졌다.
▷머그샷은 최대한 무표정하게 찍는 것이 재판 전략상 유리하다. 밝은 표정은 진지하지 않다는, 성난 표정은 죄를 뉘우치지 않는다는 인상을 주기 쉽다. 그래도 공인들은 머그샷 공개를 염두에 두고 특정 메시지 발신을 시도하기도 한다. 루디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은 양복에 성조기 핀을 달았는데, 이는 9·11테러 당시 자신의 위기 대응 활약을 상기시키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분석됐다. 트럼프의 측근으로 함께 기소된 여성 변호사는 립스틱을 바르고 미소 띤 얼굴로 머그샷을 찍었다. 트럼프가 담고자 한 이미지는 그가 SNS에 썼듯 “절대 굴복하지 않는다”는 강함이다.
▷머그샷 굴욕은 시작에 불과하다고 현지 언론은 전한다. 풀턴 카운티 교도소는 화이트칼라 범죄자보다는 살인, 강간 등을 저지른 흉악범들이 많이 수감돼 있는 곳이다. 노후한 시설과 위생 불량으로 악명이 높다. 4월 사망한 수감자의 유가족이 “감방에서 빈대에게 뜯어먹혔다”며 소송을 내기도 했다. 이런 교도소 안에서 트럼프는 다른 수감자와 똑같은 취급을 받게 될 것이라고 검찰은 공언했다. 트럼프는 20만 달러의 보석금을 내고 20분 만에 석방됐지만, 재판 결과는 장담할 수 없다.
▷트럼프의 현재 지지율은 51.6%로 공화당 대선 후보 중 압도적인 1위를 달리고 있다. 성추행 입막음부터 간첩 혐의까지 4차례 기소 때마다 “정치적 마녀사냥”이라고 주장하며 지지층을 결집시켰다. 그의 머그샷을 앞세워 후원금을 모금하고, 티셔츠와 기념품을 만들어 팔려는 시도들도 계속되고 있다. 이런 머그샷 활용법이 비판자와 지지자 양쪽에 각각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쏠리는 관심도 그만큼 커진다. 차기 대통령 선택을 넘어 미국 민주주의의 미래까지 함께 걸린 문제여서일 것이다.
이정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