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참 무식하지. 긴 세월 살아오면서 시도 때도 없이 생활용어로 무심코 써왔던 '고단하다'라는 동사의 어근(語根)인 '고단'이란 단어가 한글인 줄 알고 있었는데, 이 글을 쓰면서 알게 되었으니 그게 '孤單'이라고 쓰는 한자어라는구만 글쎄.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고독할 '고(孤)' 자에 하나라는 뜻의 홑 '단(單)'가 붙었으니 혼자 있어 외롭다는 의미라고 할 것인 바, 사전적 의미에서도 '고단하다'는 '단출하고 외롭다'로 적혀 있으니 뭐 같은 의미라고 봐야겠지.
마음 붙일 곳 없어 천하를 떠돌아다니며 온갖 험한 일에 부대끼며 지내던 자식이 어머니를 찾으니, 어느 하루 자식 걱정에 마음 편한 날 없이 살아왔던,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던 어머니는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다. 하지만 통나무에 환자복을 감은 듯 누워있는 어머니는 언제나처럼 여린 미소로 자식을 반기니...차라리 다음 생엔 내가 어머니로, 어머니가 자식으로 태어나서 서로의 아픔을 이해하고 보듬길 바라지만, 하지만 한 많은 인간세(人間世)의 어느 생(生)에, 어느 누구로 태어난들 고단한 삶이 없을까.
2022년 계간지 '문학사상'에서 신인상을 수상한 시인 조성래의 시「창원」을 그의 시집『천국어사전』(타이피스트, 2024)에서 옮겨 적어본다.
창 원
창원으로 갔다
이제 두 달도 더 못 산다는 어머니
연명 치료 거부 신청서에 서명하러 갔다
아무리 먼 곳이라도 일단 도착하면
나는 그곳과 너무 가까운 사람이었다
먼 곳은 먼 곳으로 남겨 두기 위하여
나는 아무 데도 가고 싶지 않았다
먼 곳이 너무 싫어서 먼 곳을 견딜 수가 없어서
세상의 모든 먼 곳으로 가고 싶었다
속속들이 모든 먼 곳을 다 알고 모든 먼 곳을 파악하고
모든 먼 것들의 사정을 다 이해하고 용서하는
전지하신 하느님께
합장하고 기도 올리는 성모마리아······
파티마 병원에 어머니는 누워 계셨다
빗자루에 환자복을 입혀 놓은 것처럼 바싹 말라서
아직 살아 계셨다 내 손을 잡고 울다가
자기가 죽을 것을 알고 있다는 듯이······ 그러다 조금 뒤면
자기가 죽을 것을 까맣게 모르는 사람처럼······ 내가 하나도
밉지 않은 듯이, 어제도 날 본 사람처럼 웃었다
다음 생에는 안 싸우고 안 아픈 곳에서 함께 있자고
이제 당신이 내 자식으로 태어나라고 내가 당하겠다고
당신도 당해 보라고
눈물이 끝 모르고 흘렀다 눈물 흘릴 자격이라도 있는 것처럼
마치 자식 된 사람인 것처럼······ 그 시각 모든 일이 먼 곳에서
동시에 벌어지고 있었다 거기선 엄마도 죽고 나도 죽고
끔찍한 날 피해 자리를 비킨 동생도
죽고 모두 죽어서
죽고 나서 웃고 있었다 모두 지난 일이라는 듯
모두 지나야 했던 일이라는 듯······ 그러나 그건
나 혼자서 듣는 소리였다
어머니는 홀로 죽을 것이며
나는 여전히 어떤 현실들에 마비된 채
살아도 되는 사람처럼 살아서
살아 있는 것 같은 사람들 사이를 걸어 다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