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사와 아키라의 1952년도 작품, [이키루]. 굳이 한국어로 풀이할 경우, '산다는 것'이라는 어줍잖은 제목이 돼버리고 만다. 성북구 아리랑정보도서관 소장 구로사와 아키라의 DVD들 중 맨 마지막으로 보게된 작품이다. 앞서 본 [라쇼몽], [가케무샤], [란], [7인의 사무라이]는 모두 시대극이다. 영화 [이케루]는 현대극(?)이다. 반세기가 지난 작품이기에 시대극이라고 불러도 어색할리 없을테지만 그의 시대를 생각할 때 현대극이라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언급한 기계적 이유를 제외하더라도 영화 [이케루]는 현대극으로 불릴 수 있다. 사전적 정의는 제쳐두고, '현대극'이라는 용어를 내멋대로 정의 내릴 경우에 말이다. 오늘날에도 통용될 수 있는 가치나 감성 등을 제공할 수 있다면 어느 영화나 '현대극'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당돌한' 정의에 의하면, 구로사와 아키라의 다른 작품들 또한 현대극일 것이다. 구로사와 아키라가 숱한 영화들을 통해서 말하고자 했던 바는 '휴머니즘'이기 때문이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다른 영화들에서 휴머니즘을 찾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물론, 영화들마다 휴머니즘의 깊이는 다르다. 구로사와 아키라가 영화들마다 보여주고자 했던 바가 조금씩은 달랐을테고, 관객들 또한 제 각자의 눈으로 바라보고 판단할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 [란]과 [라쇼몽]에서 구로사와 아키라는 직설화법을 사용한다. 반면 영화 [가케뮤샤]와 [7인의 사무라이]에서 그는 간접화법으로 말한다. 내게 있어서 영화를 보는 와중의 충격은 [란]이 제일이었고 [라쇼몽]이 그 뒤를 쫓았다. 반면, 가장 오랫동안 여운을 남긴 영화는 [7인의 사무라이]였다. 영화 모든 Scene들의 힘이 대단한 탓에 머릿 속에서 한 동안 그 그림자를 지우기란 쉽지 않았다.
구로사와 아키라를 예찬하는 게 조금은 우스운 짓일 수도 있지만, 그의 영화가 지닌 힘을 한 번이라도 체험했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이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수많은 역작 중에서도 보는 동안 가장 충격적이었으며, 가장 오랫동안 내 가슴에 흔적을 남긴 영화는 단연코 [이키루]이다.
영화 [이키루]는 전후 시대 한 시청 공무원의 이야기다. 30 년이 넘도록 시청에서 일해온 남자. 불연코 찾아온 죽음의 그림자. 자신이 '암'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그 남자는 당면한 현실에 마주할 자신이 없다. 아니, 그는 삶의 현실과 단 한번도 제대로 마주한 일이 없다. 무한히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그는 죽은 삶을 살온 것이다. 죽음의 턱 밑에서, 삶의 현실과 마주한 중년의 남자. 수 십년 간 자식만을 위해서 일벌로 살아온 그에게 자식은 너무나도 먼 타자였다.
사실 자식에게서 삶의 의미를 부여해왔던 것도 아니다. 죽음 앞에서 자식에게 삶의 의미를 찾으려 했지만 실패했을 뿐이다. 구로사와 아키라는 여자 직원의 입을 빌려서 말한다. "자식을 탓 해서는 안 된다." 자식이 그런 삶을 살라고 강요한 일은 없다. 남자 스스로 선택한 '죽은 삶'이다.
지루한 시청 공무원 생활을 그만두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찾아 나선 여자 직원이 부러운 남자. 그녀는 그 남자에게 동경의 대상이다. 남자는 묻는다. "어떻게 당신처럼 살 수 있는가?" 아무도 대답해 주지 않는다. 남자의 갑작스러운 깨달음. 그는 다시 태어났다. 남자가 새로이 태어나는 Scene에서 여학생들의 생일축하 파티가 배경으로 등장한다. 이 장면에서 생일 축하송을 삽입한 선택은 훌륭한 것이다.
여자 직원이 지어준 남자의 별명은 '미라', 지난 30년을 '미라'로 살아왔다. 하지만 이제 남자는 가까운 죽음을 향해서 살아간다. 남자는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고 마을 사람들의 숙원 사업인 공원 건설을 해내고야 만다. 남자는 완성된 공원 아래 그네에 앉아서 죽음을 맞는다.
남자가 공원 완성을 위해서 동분서주하는 모습은 그가 죽은 후 장례식장에 모여든 주변 사람들의 입을 빌려 나타난다. 모두 남자의 열정과 헌신을 내심 인정하고 있지만 바깥으로 꺼내기를 주저한다. 하지만 한 사람 한사람 남자에 대한 존경을 표현한다.
남자가 일했던 시청 분위기는 남자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변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열정과 헌신의 에너지를 불어넣어 주었던 남자의 퇴장으로 시청은 다시금 미라들로 가득차게 된다. 죽은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은 언제나 아찔하다. 볼 수 없으면 좋으련만. 그 모습을 보는 이는 괴로움에 사무칠 수밖에 없다. 남자의 죽음을 계기로 한 부하직원은 내적 변신을 한다. 그러나 현실의 장벽은 결코 만만하지 않다. 부하직원은 죽은 남자가 그의 삶을 쏟아내 만든 공원에 간다. 부하직원 너머 하늘이 보이는가?
남자는 하늘을 보며 "아름다워, 너무 아름다운 하늘이야. 수십년 동안 알지 못했어. 아름다움을 즐기기에는 시간이 없다."라고 말한다. 남자는 공원을 기필코 만들고 말겠다는 신념을 가지고서 발길을 옮긴다. 구로사와 아키라는 마지막 Scene에서 관객에게 하늘을 보여준다. 삶은 한 순간이다. 미라로 살아서는 안 된다. 구로사와 아키라는 마지막 Scene에 남자가 사랑했던 아름다운 하늘을 관객들에게 보여줌으로써 휴머니즘을 다시금 이야기한다.
영화 [이키루]의 수많은 Scene들에 주제를 표상하는 장치들이 등장한다. 때로는 청각적으로, 때로는 시각적으로 구로사와 아키라는 관객에게 말하고자 하는 바를 여러 번 반복한다. 영화 [이키루]에서 동일성의 변주를 느낄 수 있다. 구로사와 아키라가 이야기하기 위해서 사용한 수많은 방법들을 찾아가는 과정은 즐거운 여정에 견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