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길어진 코, 재빨라진 몸짓, F-4E
미 공군의 F-4D는 미사일 뿐만 아니라 SUU-23 기관포 포드도 함께 사용하게 되며 근거리의 격투전에서 미그기와 싸울 때 한결 쉽게 전투를 풀어나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조종사들 입장에서는, 외부에 탑재하는 기관포 포드가 중량과 공기저항 증가의 원인이 된다는 점이 여전히 아쉬웠다. 더불어 항공기 자체의 문제도 있었다. 팬텀은 애시당초 근거리에서의 격투 상황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써서 만든 전투기가 아니다 보니 기동성이 뛰어난 편은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격렬한 급기동 중에 종종 비행 불능 상태에 빠지는 경우도 있었다. 실제로 이 비행불능 상태에 빠지는 바람에 추락하는 팬텀의 숫자도 무시 못할 정도였다. 이런 팬텀의 종합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미 공군은 맥도널 더글라스에 다시 한 번 팬텀의 대대적인 업그레이드를 주문했다. 그 결과물이 바로 F-4E 팬텀이다. | ||||
| ||||
이전의 팬텀과 F-4E의 외관상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기수 부분이다. 종전의 뭉툭한 느낌의 기수 대신 매우 날렵하고 길쭉한 형태로 기수가 바뀌었다. 이러한 길쭉한 기수 형상은 F-4E를 위해 처음 개발한 것은 아니고, 이미 개발해서 운용중이던 RF-4C(팬텀의 사진정찰기 버전)의 것을 다시 개조한 것이다. 실제로 F-4E의 개발을 위한 실험기인 YF-4E는 RF-4C 정찰기를 개조하고 여기에 기관포 실험을 위해 F-100 전투기의 기관포 조준 시스템을 임시로 붙여 놓은 것이었다. (RF-4C는 정찰기이므로 레이더나 기관포 조준 시스템이 없다.) | ||||
| ||||
길쭉하고 가늘어진 기수 안에는 AN/APQ-120 레이더가 들어갔다. 이 레이더는 발전된 기술 덕에 레이더의 안테나 크기를 종전 모델 보다 더 작게 만들면서도 미 공군이 원하는 만큼의 성능을 내었다(단 초기에 생산된 F-4E 30대는 레이더 생산이 늦어지는 바람에 레이더가 없는 상태로 일단 미 공군에 전달 된 다음, 나중에 레이더를 장착했다).
이러한 기수 밑 부분에는 M-61 기관포가 들어갔다. F-4E 팬텀은 외부에 따로 기관포를 장착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사실 팬텀의 원형기인 F3H만 해도 20mm 기관포를 탑재하고 있었고, 이후 1961년에도 맥도널은 미 공군에 고정형 기관포를 탑재하는 팬텀을 제안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미 공군은 이런 기관포를 탑재하는 제안을 거절했었고 이 잘못된 선택의 결과를 베트남전에서 몸으로 뼈저리게 겪어야만 했다. | ||||
| ||||
하지만 기수에 기관포를 탑재하면서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기관포가 엔진 공기흡입구보다 앞쪽에 있다 보니 발사시 발생하는 가스가 엔진흡입구로 들어가 버리는 것이었다. 이런 뜨겁고, 이물질이 잔뜩 있는 가스가 엔진으로 빨려 들어가면 엔진의 성능이 떨어지거나 심지어 꺼져버리기까지 했다. 또 기관포구 부근으로 공기가 지나가면서 큰 바람소리를 냈는데, 이 소리가 멀리 지상에서도 들릴 정도였다.
그래서 같은 F-4E라도 뒤에 생산된 버전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관포 탑재부의 형상이 바뀌었다. 또한 팬텀의 기수 앞쪽에는, 기관포 부근에 신선한 공기를 공급하고 가스가 빨리 빠져 나갈 수 있게 하도록 작은 공기흡입구가 추가되었다. 이 공기흡입구는 평소에는 닫혀 있다가 기관포를 발사하고 나면 약 30초간 열리는 방식으로 작동했다. 더불어 기관포 발사시 엔진에 이상이 생길 것 같으면 자동으로 기관포를 멈춰버리도록 하는 전기적인 장치도 덧붙었다. 또 기관포가 기수 쪽에 추가되다 보니 기수 부분으로 무게중심이 너무 쏠렸다. 그래서 동체 뒤쪽에 작은 연료탱크를 추가해서 무게중심을 맞췄다. 근접 격투전을 위해서 엔진 앞쪽에 있던 앞전 플랩 형상도 바뀌었다. 맥도널 더글라스는 본래 있던 BLC 방식의 앞전 플랩을 없애 버리고 대신 슬랫(Slat) 방식의 앞전 플랩으로 바꿨다. (팬텀 2화의 고양력장치 참조) 슬랫 덕분에 F-4E는 종전 팬텀시리즈보다 더 빠르게 선회할 수 있었으며, 급기동 도중 비행불능 상태에 빠질 위험도 줄일 수 있었다. 초기에 생산된 몇 몇 F-4E는 기존의 불어내기식 앞전 플랩을 단 상태로 공장에서 출고되었으나, 이내 군 부대에서 이 슬랫 방식 플랩으로 개조되었다. 물론 이 외에도 F-4E는 종전 F-4D와 비교해서 많은 부분이 개량되었다. 엔진은 더 힘이 센 J79-GE-17로 바뀌었다. 이것의 엔진 노즐 부분은 종전 엔진 모델들보다 더 긴데, 이 때문에 ‘칠면조 깃털’이란 별명이 붙었다. | ||||
| ||||
수평꼬리날개(수평은 아니지만) 앞쪽에도 틈이 생겼다. 이것은 슬랫처럼 작동하는 것은 아니고 항상 고정된 형태로 틈이 있는 것인데, 하는 역할은 마찬가지다. 다만 주날개 쪽과 다른 점은 날개 위가 아니라 날개 아래쪽의 공기 흐름을 개선시킨다는 점이다. 이는 전투기가 급기동하거나 이착륙할 때 수평꼬리날개는 아래로 누르는 힘을 잘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뒤쪽에 있는 수평꼬리날개 부분이 아래로 내려가야 앞쪽의 기수가 위로 들린다. 시소를 생각해보시라.)
적 레이더를 역으로 탐지하는 레이더 경보 수신기나 항법 장비 같은 각종 전자장비들도 종전 팬텀 보다 더 신형인 모델로 교체되었다. F-4E 모델 중 중간 정도부터 생산된 기체들은 자동 봉합식(Self Sealing) 연료탱크를 사용했다. 이것은 연료탱크에 구멍이 나도 벽 안쪽에 들어 있던 다른 물질이 구멍을 막아주는 것이다. 이미 2차대전 때부터 등장했던 물건이었으나 팬텀은 사용하고 있지 않다가 F-4E 중, 후기형 모델들이 사용하기 시작했다. 다만 이 연료탱크는 벽의 두께가 두껍다 보니 내부 용적이 줄어들었다. 결과적으로 연료 탑재량은 약 10% 정도 줄어들었다. 71년 경부터 생산된 F-4E는 날개에 TISEO (전자 광학식 표적 식별 시스템 : Target Indentification System, Electo-Optical)라는 장비가 달렸다. 이것은 쉽게 생각하면 일종의망원경 같은 것으로, 적기의 기종을 좀 더 먼 거리에서 식별할 수 있었다. 특히 당시에 종종 문제가 되던, 아군기에 대한 오인 사격을 막는데 효과적이었다. (아군기인지 아닌지 전파로 구분해주는 IFF 장치가 있었지만 항상 정상 작동하는 것은 아니어서 오인사격 사고가 제법 많았다) | ||||
| ||||
일부 F-4E는 지상공격을 위해서 종전의 패이브 스파이크(Pave spike)보다 발전된 AN/AVQ-26 패이브 택(Pave Tack)을 동체 중앙에 장착할 수 있었다. 이 장비는 페이브 스파이크와 비교해서 레이저로 목표물을 조준하고 거리를 측정할 수 있다는 점은 같았지만, 승무원이 한번 목표를 지정하면 자동으로 계속 추적하는 방식인데다가 야간에도 적외선으로 목표물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 달랐다. | ||||
동체 중앙에 페이브 택을 달고 비행중인 F-4E의 모습. | ||||
| ||||
비상동력장치는 풍력발전 방식인 R.A.T (Ram Air Turbine)에서 배터리로 작동하는 모터로 바뀌었다. 이 모터로 유압펌프를 이용하면 엔진이 꺼진 비상시 자세를 바로 잡을 수 있는 정도의 동력은 제공해 줬다. R.A.T처럼 비행기가 활공하는 동안 계속 동력을 만들지는 못했지만, 엔진을 재시동 걸거나, 아니면 비상탈출 할 시간을 벌어줄 만한 수준은 되었다.
마지막으로 항공기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날개를 접는 유압장치들이 제거되었다. F-4E는 항공모함에서 운용하는 것도 아니다 보니 날개를 굳이 접을 일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필요하다면 정비사들이 서너 명 달라붙어서 잠금장치를 풀고 날개를 직접 접을 수는 있었다. | ||||
| ||||
| ||||
미 해군의 신형 팬텀. F-4J
미 공군이 팬텀 업그레이드에 열을 올리고 있을 때 미 해군도 가만히 놀고만 있지는 않았다. 미 해군은 F-4J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팬텀 시리즈를 개발, 1966년부터 운용하기 시작했다. 먼저 F-4J는 F-4E와 마찬가지로 이착륙 성능 향상 등을 위해 꼬리날개에도 틈이 있는 형상으로 바꿨다. 하지만 근접전을 위한 고정형 기관포는 끝내 탑재하지 않았는데, 미 해군으로서는 레이더의 크기를 줄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또한 F-4E가 사용한 주 날개용 슬랫 역시 사용하지 않았는데, 이것을 사용하면 공기저항이 더 커지기 때문이었다. | ||||
| ||||
레이더는 종전 레이더보다 더 강력한 AN/APG-59를 사용했는데, 이 물건은 종전 레이더들에 비해서 지표면 근처를 따라 낮게 나는 항공기를 훨씬 잘 찾아냈다. 지금은 당연시 되는 기술이지만 당시 레이더는 적 항공기에서 반사되어 돌아오는 레이더파와, 지면에서 반사되어 돌아오는 레이더파를 잘 구분하지 못해서 지면 근처로 낮게 나는 적 항공기를 잘 찾지 못했다. 그래서 베트남의 미그 전투기는 일부러 지면 근처로 낮게 날다가 팬텀이나 다른 미군 전투기(혹은 폭격기) 근처에서 갑자기 솟구쳐서 기습공격을 하고는 다시 낮은 고도로 빠져나가는 전술을 사용했다. | ||||
야외에 전시된 미해병대 소속의 F-4J. 수평꼬리날개 앞쪽에 틈을 만드는 구조가 있다. | ||||
AN/APG-59를 사용하면 이런 기습공격을 사전에 알아차릴 확률이 더 높아졌다. F-4J는 F-4E와 같은 고정형 기관포를 다는 것을 포기한 대신, 낮은 고도로 비행하는 적기를 찾는 능력을 강화한 셈이다(F-4E의 레이더에도 이러한 기능을 추가하려 했으나 기술적인 어려움 탓에 결과가 신통치 않았다).
F-4J는 기관포를 탑재하지 않는 대신 단거리 공대공 미사일인 사이드와인더의 성능을 향상시키는 장비를 탑재했다. 1969년부터 F-4J에 탑재된 SEAM (사이드와인더 확대 획득 모드 : Sidewinder Expanded Acquisition Mode) 장비는 더 업그레이드 된 사이드와인더를 사용할 수 있게 했다. 특히 이것은 VTAS (시선 목표 획득 시스템 : Visual Target Acquisition System)과 연동할 경우 사이드와인더 미사일의 성능을 대폭 향상시켰다. VTAS는 조종사가 바라보고 있는 방향(더 정확히는 조종사의 헬멧이 향하고 있는 방향)을 알아낸 다음, 자동으로 레이더나 미사일의 탐색기 등이 그 방향을 바라보게 하는 장치다. 사이드와인더는 발사하기 전, 이것의 탐색기가 목표물의 적외선을 감지해야 했기 때문에 탐색기가 바라보는 방향 쪽에 적기가 있어야 했다. 그런데 종전의 사이드와인더의 탐색기는 항공기의 정면만을 바라보거나, 아니면 레이더가 바라보는 방향만 바라보거나, 그것도 아니면 자체적으로 사방을 훓어보다가 무언가 적외선이 감지되면 그 쪽을 바라보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VTAS를 사용하면 조종사가 고개를 돌리는 것만으로 사이드와인더의 탐색기가 정확히 목표물을 바라보게 할 수 있었다. 즉 적기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미사일의 조준이 완료되는 것이다. 이는 0.1초를 다투는 급박한 공중전 상황에서 매우 큰 장점이었다. 참고로 이러한 장비는 F-4의 VTAS 이후로 별로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당시 기술로는 너무 무거워서 조종사가 급기동 중 큰 중력을 받으면 머리나 목에 무리가 갔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시스템은 전투기 조종사 보다는 공격헬리콥터 조종사들이 주로 사용했다. 공격헬리콥터는 전투기 수준의 하중을 받지는 않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기술의 발전으로 소형화, 경량화됨에 따라 이런 헬멧과 연동되는 조준장치를 다시 전투기에도 사용하는 추세다. | ||||
| ||||
늘어난 중량을 감당하기 위해 엔진은 J79-GE-10으로 바뀌었다. 이것 역시 F-4E의 것처럼 노즐이 더 길어진 ‘칠면조 깃털’ 형태였다.
F-4J도 F-4E처럼 동체 뒤에 작은 연료탱크가 추가되었다. 다만 F-4J의 경우에는 추가되는 각종 전자장비와 컴퓨터를 넣을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종전의 것과 비교해서 앞쪽 연료탱크 일부를 줄였다. 그래도 전체적인 연료탑재량은 F-4B보다 더 늘어났다. 베트남에서의 팬텀 베트남에서 팬텀은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많은 단점을 드러내기도 했다. 팬텀은 당시 미 공군의 주력 전폭기였던 F-100이나 F-105보다도 지상공격능력이 탁월하면서도 주력 요격기인 F-106보다도 뛰어난 공중전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즉 공중과 지상, 모든 적을 상대할 수 있는 다목적 전투기로서의 능력을 과시했다. 그러나 미사일 만능주의라는 잘못된 생각 탓에 초반에는 북베트남의 MIG-17이나 MIG-21 같은 더 작고 값싼 전투기에게도 고전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앞서 본 바와 같이 초반에는 기관포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믿었던 미사일마저 명중률이 형편없었다. 더불어 오인사격을 막으려고 군 수뇌부는 팬텀 조종사에게 ‘레이더로 포착한 물체가 정말 적기인지 눈으로 확인 한 다음 쏘라’는 명령을 내렸다. 눈으로 보이지 않을 만큼 먼 거리에서 싸우는데 적합하도록 만든 팬텀더러 처음부터 불리하게 적기에 가까이 접근하라는 소리였다. | ||||
| ||||
게다가 군은 근거리에서의 격투전은 옛날 방식의 전투라고 생각해서 조종사들에게 이런 훈련을 별로 시키지 않았다. 아무리 뛰어난 전투기를 가지고 있더라도 훈련이 부족하면 실전에서 당황하기 마련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근거리 전투 위주로 실전적인 훈련을 시키기 시작했다. 미 공군은 레드 플래그(Red Flag), 미 해군은 영화로도 유명한 탑건(Top Gun)을 만든 것도 바로 이런 훈련을 전문적으로 하기 위해서였다.)
스패로우, 사이드와인더, 기관포 등 다양한 무장을 이용, 베트남에서 팬텀은 총 107.5대의 적 항공기를 격추시켰다. (0.5대는 다른 항공기와 공동으로 격추시킨 경우다) 손실률은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는 3:1인데, 즉 팬텀이 1대 떨어질 동안 적 전투기 3대를 떨구었다는 소리다. 이 수치는 미군이 훨씬 막강한 전력을 갖추고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실망스러운 수준이었다. 특히 1966년 말엽에는 팬텀의 피해가 극도로 심해서 손실률이 1:1 수준까지 떨어졌었다. 그러나 개량형 팬텀의 등장, 전술과 훈련과정의 변화 등에 힘입어 1972년 경에는 6:1 수준으로 다시 높아졌다. | ||||
| ||||
팬텀은 지상 공격부분에서 로켓, 비유도폭탄 및 유도폭탄과 공대지 미사일 등을 이용, 다목적 전폭기로서의 능력을 과시했다. 그러나 지상공격 임무 중 피해도 적지 않았는데, 특히나 초반에는 북베트남군의 저고도 대공포에 맞아 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베트남전 발발 이후 2년 동안에 미 공군은 총 54대의 팬텀을 잃었는데, 이는 미 공군이 가지고 있던 F-4C의 40%에 해당하는 엄청난 숫자였다. (물론 그 만큼 새로운 팬텀들이 투입되었다.)
베트남이라는 실전 무대에서 팬텀은 경험을 토대로 빠르게 진화하였으며, 특히 이 진화의 정점에 이르렀었다고 볼 수 있는 F-4D와 F-4E는 해외로도 많이 수출되었다. | ||||
| ||||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 이야기. : 북베트남 공군의 전술. 북베트남 공군은 전쟁 초반에 소수의 MIG-17 전투기만 가지고 있었다. 이 전투기는 MIG-15 보다 개량되었지만 미사일도 없고 초음속 비행도 할 수 없는 구식 전투기였다. 그러나 선회능력은 매우 뛰어났기 때문에 일단 근접전에 휘말리면 미군 전투기들도 대응하기 쉽지 않았다. 또 최대속도 자체는 느리더라도 순간적으로 속도를 높이는 가속력이 좋다 보니 미군의 폭격기만 골라서 공격한 다음 빠져나가는 전술을 주로 사용했다. 초기에 미 공군이 폭격기 효위용으로 사용하던 F-100 수퍼세이버는 초음속 전투기지만 가속력은 좋지 못해서 속도를 높이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다 보니 MIG-17이 갑자기 나타나면 미처 대응하지 못하고 폭격기가 당하는 것을 바라만 보는 경우가 있었다. | ||||
| ||||
이후 북베트남은 소련의 원조로 각종 지대공 미사일과 초음속 요격기인 MIG-21을 장비하게 된다. 당시 북베트남에 배치된 SA-2 지대공 미사일은 본래 폭격기를 요격하기 위해 개발된 것이기 때문에 팬텀 같은 전투기를 종종 놓치곤 했다. 실제로 북베트남이 요격한 전체 미군 항공기 중에 지대공 미사일로 격추한 숫자는 5% 대에 불과했다. 특히 이 지대공 미사일은 발사 후에 가속하는데 시간이 걸렸기 때문에 아직 고도가 낮을 때는 기동성이 특히 떨어져서 낮게 날면 회피하기가 한결 쉬웠다. 하지만 이렇게 낮게 날아가는 미군 전투기들은 지상에서 올라오는 대공포에 걸려서 큰 피해를 입기 일쑤였다. 즉 지대공 미사일로 미군 전투기들을 대공포가 깔려 있는 저고도로 몰아넣었던 셈이다. | ||||
| ||||
| ||||
| ||||
MIG-17, MIG-21 전투기들은 적극적으로 미군 전투기들과 싸우려고 들지는 않았다. 수적으로 불리했기 때문에 같이 싸우려 들다가는 점차 전투기를 소모해서 한 대도 남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대신 저고도로 접근하다가 갑자기 솟구치는 전술을 사용했는데, 당시 전투기들의 레이더는 낮게 나는 항공기를 잘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북베트남의 전투기들은 지상의 관제소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이들 전투기들은 레이더가 없거나 아주 가까운 거리의 적기만 찾을 수 있었기 때문에 스스로 적기를 찾아 나서는 것은 불가능했다. 대신 지상의 레이더가 적기를 찾아내면 이들 전투기들에게 적기의 위치를 알려주어 요격에 나서도록 하는 전술을 택했던 것이다.
한편 북베트남 조종사들은 도망칠 때 미군 전투기들이 추격해오면 일부러 북베트남의 지대공 미사일이나 대공포가 많은 지역으로 유인하기도 했다. | ||||
| ||||
| ||||
북베트남 조종사들은 미군 전투기와 근거리에서 격투전을 벌이게 되면 대부분 수평면에 원을 그리듯 수평선회를 시도했다. 당시 미군 전투기 중에는 F-8 크루세이더 외에는 미그기들의 수평선회를 따라가지 못해서 곧 미그기들에게 뒤를 보이곤 했다. 하지만 미 공군/해군쪽 조종사들은 곧 해결책을 찾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미군 조종사들은 팬텀 같은 전투기로 굳이 잘 못하는 선회로 미그기를 뒤쫓는 대신, 강력한 엔진 힘을 이용하여 미그기보다 더 높게 위로 솟구친 다음 아래로 내리꽂히면서 미그기들을 공격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북베트남군은 미군 측에 비해 장비나 수적인 면에서 불리했으나 지상의 레이더, 대공포, 지대공 미사일과 전투기가 조화를 이루어 끊임없이 미군 전투기와 폭격기들을 괴롭혔다. 한편 이런 전술에 자극 받은 미군은 적의 레이더와 지대공 미사일 기지를 전문으로 사냥하는 전투기들을 개발하는 한편, 값싼 경전투기도 나름 쓸모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어 나중에 F-16이나 F/A-18 같은 경전투기를 개발하게 된다. | ||||
필자 이승진 어려서 부터 항공기에 관심을 갖다가 96년 서울 에어쇼를 보고 전투기에 푹 빠졌다. 그 뒤로 항공우주공학과로 대학에 들어갔으며 군 복무를 위해 공군 기체정비병으로 근무하였다. 전역 후 남은 학부과정 및 석사 과정을 거치고 현재는 방위산업 관련 업체에서 근무 중이다. 스타워즈를 배경으로 한 게임 , X-WING을 즐겨서 xwing이라는 아이디로 블로그 활동 중이다. |
http://blog.naver.com/p47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