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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13일의 금요일) 마을 도서관에서 거의 맨몸으로 피서하다가 해거름에 대구 역 뒤 쪽의 청송얼음막걸리 집으로 가 술을 마신 것 같다. 선영(from Germany), 성숙, 묵이, 준노, 은진 et bruce. 전에 없었던 희귀한 조합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장시간 술잔을 기울인 것 같은데 내 노화된 메모리엔 저장된 게 거의 없다. 함께한 상기 인사들, 이날 밤 무슨 언사가 오갔는지 아니면 무슨 사태가 벌어졌는지 쫌 언질해 주시오! 내 치기와 주책을 포함해서라도. (그리고 묵이 니는, 내가 부를 때 지발 사진기 좀 지참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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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ㅎㅎㅎㅎㅎ 잊어도 되는 진짜 사소하고 희한한 것들은 다 기억하면서 술 마셨다고 그렇게 몽땅 다 기억이 지워지는 선배가 진짜 이해 안되요. 술취했을 때 완전 쓰러지는 것도 아니던데 언표되는 내용이나 행동은 너무 멀쩡하던데 다음 날은 기억이 안난다 그러는 거, 그거 정말인가요?^^ 독일댁 선영이도 만났구나. 성숙, 은진까지.... 선영이 대구왔다고 그저께 경기도서 휴가중일 때 전화했던데... 준노씨는 참 오랫만이네. 간만에 아리따운 후배들과 삼대삼으로 술마신 남정네들 기분 좋았겠네요. 주력은 밥력에 비례한다는 거 잊지말고 평소 밥심을 늘리는데 주력하시길~~~
나도 그게 미스터리다. 나에 대해 다른 사람들은 알고 있는데, 정작 나는 모르고 있으니. 일종의 알콜몽유현상이 아닌가 몰라 ㅋㅋ. 아니면 내 속에 나와는 다른, 극히 맑고 건전한 das zweite Ich가 있어 그런 추태와 치기를 결코 용납하지 못해 기억을 지워버리는 지도 모르고. 그래도 이날 매우 인상적이었던 것은 성숙이의 성숙한 모습. 예전의 청순새침떼기에서 매우 비판적인 여인으로 변신했두만. 물론 그 비판의 주 타킷은 '잡설에 능한' 나 bruce였고. 충격적이었던 것은 그런 비판적 생각을 이미 DLF 할 때부터 품고 있었다는 사실. 이십오륙년 만에 포문을 여는데, 피할 길이 없어 무조건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고 ㅎㄱㅎㄱ
이렇게 초 저녁부터 본 성숙이까지는 담론의 내용도 어느 정도 기억이 나는데, 늦게 등장한 은진이의 경우 내 옆에 앉아 그 요염함으로 좌중의 시선을 끈 건 분명한 것 같은데, 어떤 주제를 설파했는지는 생각이 안 나네. 그러니 그보다 더 늦게 나타난 준노가 또 어떤 입담을 과시했는 지는 캄캄. 물론 선영이는 가장 일찍 만났으니 맨정신에 들은 사무적이고 일상적인 이야기는 기억이 나지만 플롯을 구성할만한 내역은 아니었던 같고. 하여간 오랫만에 사람을 만나면 늘 느끼는 것 한 가지는, 인간의 의식이나 정서가 이삼십년 안에는 거의 변하지 않는다는 점. 이게 왜 그런가를 해명하려면 저 무드셀라까지 올라가야 된다는 게 나의 주장.
그러니까 마음과 몸이 같은 속도로 늙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마음은 약 900살 정도에 맞춰져 있는데 무드셀라 이후 육체의 노화는 엄청나게 빨라진 거지. 그러다가 노아의 홍수로 지구생태가 크게 악화되면서 몸은 120세가 한계가 되었고 좀 더 세월이 지나자 100 이하로 떨어진 거고. 문제는 여전히 900에 조정되어 있는 마음은 나이 100 정도는 어린아이 단계라는 거지. 우리 할머니가 돌아가실때 '노망'이 들어 완전히 어린아이 같았는데, 이건 80이란 나이는 원래 어린아이 수준이라는 걸 증명하는 현실이고. 78세의 E.테일러가 서른살 연하의 남자랑 9번째 결혼을 한 것은 그녀의 의식이 완전히 청춘이었다는 걸 말하지.
말하자면 얼음막걸리 집에서 만난 저 인사들 처음 만난게 80년대이니까 거의 한 세대는 지났는데, 생각, 정서, 의식 등이 도무지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 비극인가 희극인가. 모든 비극의 원천이 아니겠는가. 즉, 인간의 비극은 저 무두셀라(969세) 때 맞춰 놓은 몸과 마음의 노화 템포가 재조정되지 않고 그대로라는 데 있는 거지. 몸의 노화에 따라 마음도 억지춘향으로 맞추려다 보니까 갈등만 커지고. 그런데 동창들을 만나면 이 갈등이 최소화 되는 바, 서로 마음의 노화를 연기하지(spielen) 않아도 되기 때문. 변하지도 늙지도 않은 마음을 애써 위장할 필요가 없으니 동창 만남의 미덕은 여기에 있지 않나 싶네.
만일 수십년만에 만난 동창이 예전과 너무 다른 정신세계를 가진 사람으로 변해있다면 무지 실망할지도 몰라요. 사람을 기억하는 방식은 그 사람의 이목구비가 아니라 결국은 그 사람의 이미지를 기억하는 가죠. 수십년간의 공백이 줄 수 있는 낯설음을 한방에 무너뜨리는 "하나도 안 변했네" 이 말은 서로가 주고 받을 수 있는 가장 안정된 찬사라 생각해요.
늙은 몸은 결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데 비해 마음은 한 순간에 회귀가 가능하더라는 이야기. 25년 전에 족구할 때처럼 다리는 결코 움직이지 않지만 그때를 생각하는 마음은 전혀 걸리는 게 없더라는 거지. 산다는 건 이 양자의 차이가 점점 커져 간다는 것일 테고.
선배! 뭐 현실적인 사진이 이미지가 중요한가? 마음의 사진이면 되지? 낸 사진을 하지만 그 분위기를 갖고 싶음이지 그 이미지는 맘으로만 남기고 싶어 특히 우리 동문들이랑의 만남은? 그러니 너무 이렇게 긴 어쩜 허구(?)적인 논리는 우리 맘에만 두자. 낸 다음에두 마음의 사진기만 가지고 갈끼다...ㅎㅎ
고상한척 하기는. 세월이 흐르고 기억이 다 쇠진한 뒤, 가장 확실하게 남는 게 뭐 있겠나. 사진이 가장 확실한 역사 아니겠나. 요즘 마르크스는 한 물 갔지만 여전히 '성적유물론'은 유효한 통찰, 성을 통한 존재계승과 물질적 실제만큼 역사를 분명하게 하는 게 어디 있겠나. '박자 박자' 하는 깊은 뜻이 어디 있겠나.
그냥 생각이 안나면 그만이제 그것을 뭐 그리 다시 되뇌이고 싶어? 낸 앞으로 할일이 억쑤로 많아서 인지는 몰라도 지나간 세계의 기억을 더듬을 여건이 안돼....ㅎㅎㅎ 그냥 선배 기분좋게 마셨구 또 그렇게 우리 인생을 짧게나마 반추했음 그것이면 되지 않을까? 내가 첨으로 만난 성숙, 은진후배. 그리고 졸업하고는 첨인 선영이, 자주 보는 준노, 그래도 또 자주 보는 선배랑의 시간이 '그냥 참 좋았어요' 야....
묵이 입장이 그리 분명하다면, 수용할 수밖에. 훌륭한 입장이고 생각이네. 다만 내가 이 카페에 운영자 노릇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좀 참작해 주길. 내걸어 둘 상품에 이미지가 안들어가면 장사가 안 되잖아. '보는 것이 곧 믿는 것이 to see ist to believe'라, 볼거리를 찾는 시대 아닌가. 생각해보니 덕분에 그날 즐거웠네.
경규 선배님~ 전에 없었던 희귀한 조합으로 저는 많이 많이 행복했답니다. 다시 한번 더 감사를 드립니다. danke!!!
경묵 선배님~ 그 날 그 사진, 마음의 사진을 저는 자주 들여다보고 혼자 행복해 하면서 지낸답니다. 아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