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다니엘 블레이크> 감독-켄 로치. 출연-데이브 존스,헤일리 스콰이어 외
/우리는 희망의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다른 세상이 가능하다고 말해야 한다/ 켄 로치 칸 영화제 황금 종료상 수상 소감 중.
오늘은 안양을 다녀왔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라는 영화를 보러 갔다. 어제 밤샘 근무에 좀 더 자고 싶었지만, 어쩌면 오늘 보지 못하면 몇 개 남지도 않을 영화관을 찾아 차를 한 두 번 더 갈아타고, 추운날 골목을 헤맬지도 모를 것 같아 무작정 가기로 했다. 다행인지 영화관은 안양역과 맞붙어 있었다. 택시비를 아낀 셈이다. 근처 24시 편의점에 들러 천 원 하는 커피를 한 잔 마셨다. 화장실에 들렀고, 코를 풀었다. 영화 보는 중에 콧물이 나와서는 곤란한 일이다. 손수건을 챙겨가지 못해 화장실에서 일회용 티슈를 두겹 주머니에 넣었다. 난 요즘 부쩍 눈물이 많아저서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기 위한 용도였다. 요사이 일주일 동안 내가 선택한 자질구레한 일들 중에 그나마 나은 선택이었다. 몇 번을 울컥하고, 찔찔 짰는지 모르겠다. 갈수록 강한 사람이 되어야 할텐데 걱정이 앞선다. 마지막 영상까지 다 보고 영화관을 나왔다. 돈을 지불하엿으니, 끝까지 보아야했다. 이 잠깐 동안이 내게는 무엇보다 소중한 시간이다. 감정을 추스릴 시간이고, 영화에 잠깐이나마 경의를 표하고, 반추할 수 있는 시간이다. 세상은 더 없이 분주하다지만, 이 오분을 포기한다는 것은 내가 도저히 양보할 수도 타협할 수도 없다. 언제나 나를 안도하게 하는 '귀가' 전철을 타기 전에 화장실에 들렀는데, 젊은 여자분, 분명 젊었다. 제복을 입었던 것 같다. 나는 무안하여 고개를 들 수가 도저히 없었다. 여자분 그것도 젊은 여자분을 꼭 남자 화장실 청소를 맡겨야 했을까? 염치도 예의도 없는 세상이다.
오는 길에 헌 책방을 들렀다. 언제나 헌 책방은 나를 배반하는 장소다. 나는 이런 배반이 좋다. 원했던 책은 없고, 몇 번을 망설이다가 네 권을 사왔다. 나는 평소에 돈을 쓸 때도 계획이 없지만, 특히 두 곳에서는 내 수입에 견줘 과소비를 하는 경향이 있다. 술집과 서점이다. 그나마 서점은 다행히 뭔가 남지만, 술집에서 쓰는 돈은 텅빈 지갑과 지독한 숙취만을 남긴다. 다행스런 일은 요즘은 술집에 거의 가지 않는다. 구입한 책 중에 이태준의 <無序錄(무서록)>이 있다. '두서 없이 쓴 글'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내맘독/이라는 조잡한 이름을 버리고 '무서록'이라고 하고 싶었지만, 아직 그 정도까지 뻔뻔할 수가 없어서, '잡록'이라 變名 하기로 했다.
"나는 의뢰인도 고객도 사용자도 아닙니다. 나는 게으름뱅이도 사기꾼도 거지도 도둑도 아닙니다.나는 보험 번호 숫자도 화면 속 점도 아닙니다. 내 이름은 다니엘 블레이크입니다. 난 묵묵히 책임을 다해 떳떳하게 살았습니다. 난 굽실대지 않았고 동등한 입장에서 이웃을 도왔습니다. 자선에 기대지 않았습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 개가 아니라 인간입니다. 그렇기에 내 권리를 요구합니다. 나는 요구합니다. 당신이 나를 존중해 주기를. 나는 한 명의 시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평생 목수로 살았던 다니엘 블레이크가 질병 수당을 매 번 거절 당하고, 구직 수당이라도 타기를 원하지만 여의치 않게 된다. 그 동안 집에 있는 가구까지 팔아 연명하다가 질병수당 거부 결정에 항고를 한다. 심사 자리에서 읽기 위해 종이에 적어간 글이다. 심사를 앞두고 긴장하여 세수를 하기 위해 화장실로 간 다니엘 블레이크는 화장실에서 심장마비로 죽는다. 다니엘 블레이크는 심장 이상으로 질병 수당을 받고자 했지만, 매번 여러 이유로 거절 당했다. 결과적으로 심장마비로 죽어 질병을 증명하였지만, 끝내 살아서 수당을 받지 못한 것이다. 그들이 원했던 것은 이것이었을지 모른다.
이 '항소 이유서'는 '최후 변론'이 되었고, '유언장'이 되어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장례식을 한다는 아침 9시에 성당에서, 그의 이웃이자 친구인 두 명의 아기를 혼자 키우는 케이티가 읽는다. 케이티는 노숙 쉼터에서 두 명의 자식과 함게 2년 넘게 살다가 막내가 불안 증세와 이상 증세를 보여 이곳으로 이사을 왔다. 다니엘 블레이크가 질병수당을 신청하러 기관에 갔다가. 담당자가 케이티에게 제 시간에 당도하지 못했다고 생계수당을 지불하지 못하거나 삭감하겠다는 대화를 듣고 다니엘 블레이크가 항의 하다가 이 둘은 만난다. 다니엘 블레이크는 자신도 공과금이 밀렸으면서, 전기 요금을 내지 못해 정전이 된 케이티를 위해 돈을 주고 집을 수리해 준다. 그러나 케이티는 굶주림과 가난을 견디지 못해 매춘의 길에 접어든다. 매춘까지 가야 했던 케이티의 그 고단한 과정을 영화는 담담하게 그려낸다. 담담하게가 중요한다.
켄 로치 감독의 다른 영화도 그렇지만,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평범한 인물들이다. 성실하게 살아왔고, 도둑도 아니고 게으름뱅이아니고, 구걸도 자선도 원하지 않고 그저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내 이웃들이다. 기발한 아이디어도 대단한 풍경도 없고 스펙터클도 해피엔딩도 없다. 카메라는 익숙한 골목길과 평범한 이웃들과 그들이 먹고살기 위해 다니는 경로를 따라갈 뿐이다. 켄 로치 감독에 늘 거장이라는 이름을 붙이지만, 그것이 켄 로치 감독의 재능인지, 아니면 이런 평범한 일상과 삶 속에 위대함이 감추어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게 인간들의 삶의 모든 것이고, 가장 소중하고 중요하다. 성공하기 위해서 부자가 되기 위해서 사는 게 아니다. 우리는 모두 평범한 시민으로 살아간다. 그런데 이 평범한 시민들이 모욕 받고 '살해' 되고 있다.
아주 아주 좋은 영화다.
첫댓글 내맘독이 잡록으로 바뀌는 거네요.
사람이 그리 눈물이 많아서야 ㅋㅋ
약간 멋을 내보느라? 멋적
@아아 잡록, 잡초가 생각나는 아주 멋진 제목.
젊은 여자는 몇살일까?
본문은 읽지 않았음.
내가 어떻게 알아? 무안해서 도망치다시피 나왔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