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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어떤 교회가 될 것인가?
본문: 에베소서 2:11-22
설교: 임명수목사(여수주은혜교회담임목사)
오늘 저녁부터 우리 지금 교회의 기원이며 처음 그리스도인이라고 칭함을 받던 초대교회의 모습들을 살펴보면서 오늘의 우리 교회가 어떤 생활을 하여야 하며 어떤 교회가 되어야 합당한가를 살펴 연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교회의 이전 형태로는 구약에서부터 내려오는 성소 즉 성전이 있어서 하나님께 직접 제사를 드리는 곳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교회를 성전 "거룩한 전"으로 부르기도 합니다마는 지금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사신 성전이기 때문에 우리들의 예배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열랍 되어진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이 시간에는 구약에서의 교회와 신약에서의 교회의 차이점과 교회라는 어원을 알아보고 이러한 교회 속에서의 생활양태를 차이를 살펴보겠습니다.
교회란 말은 참으로 여러 가지 의미로 불리워지고 있습니다. "교회에 갑시다"라고 말할 때의 교회는 어떤 곳을 말하는 것이며 "우리 교회에서는 아동부를 위해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할 때의 우리 교회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이고 "나는 매일 교회 앞을 지나갑니다"에서 교회는 무엇을 말하고 있으며 "나는 교회에서 자라났습니다"라고 할 때의 교회란 어떤 의미일까?
이와 같은 여러 가지 표현들 속에서 "교회"는 분명한 의미를 잘 나타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교회란 과연 무엇입니까? 오늘 날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교회와 교회당을 구별하지 않고 혼돈하여 사용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교회를 어떤 건물로 어떤 단체로 어떤 웅변을 듣기 위해 모이는 곳이라고도 합니다. 종교적 병원으로 인생 상담소로 도덕 수양하는 곳으로 알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여러 가지 생각들을 다 합한다고 치더라도 신약성경이 말하고 있는 교회란 말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교회란 무엇인가를 성경을 통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구약성경에는 교회를 나타내는 단어가 둘 있는데 그 하나는 카할(Kahal)이며 이 뜻은 "불러내다"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에다하(Edhah)입니다.
그 원래 뜻은 "지명하다. 만나다. 지정된 장소에 함께 모이다."라는 뜻입니다. 영어로 교회라는 단어는 Church인데 이것은 신약시대의 헬라어 키리아콘(Kyriakon)에서 파생되어서 독일어로는 Kirch 라고 불리우고 영어로는 Church로 불리게 된 것입니다.
그 뜻은 "주의 것, 주에게 속하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신약성경에서 단 한가지(Ekklesia) 라는 단어로서 "소환된, 불러냄을 받은 회중"의미 합니다.
Ekklesia란 단어는 ( ~로부터 from) 와 (불러내라 Tocall out)의 합성어로서 신약 성경에 115번이나 사용되었습니다. 이 에클레시아는 많은 사람들 중에서 하나님의 선택받은 사람들을 지적하는 교회로 사용이 되었습니다. 즉 이스라엘은 열국들 중에서 하나님의 선택받은 사람들을 지적하는 교회로 사용이 되었습니다.
즉 이스라엘 열국들 중에서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으로 불러냄을 받았음을<로마서 9:4>에서 명확히 말해주고 있기도 하는 것입니다. 신약성경을 기록한 사람들은 이를 사용하지 않았을 때는 "주님께 속한 사람들" (The people who belong to the Lord)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이 라는 단어는 하나님의 에클레시아 (The ecclesia of God), 혹은 주님의 에클레시아(The ecclesia of the Lord)로 많이 나타내는데 구약에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의미가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고 신앙 고백함으로서 그에게 속한 사람들을 "메시아의 에클레시야" 즉 참된 이스라엘로 표현하였습니다.
교회가 형성되기 시작할 때는 아브라함의 피가 흐르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인 옛 이스라엘과 예수 그리스도를 主로 영접하는 새 이스라엘로 구별하였습니다. 옛 이스라엘은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야로서 받아들이지 않고 죽음의 자리에 내어놓기까지 핍박하며 저주했지만 새로운 새 이스라엘은 예수를 메시야로 신앙을 고백하여 영접하고 그가 죽음을 박차고 부활하신 참된 사실을 믿는 사람들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로 인하여 옛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속한 특별한 백성으로서의 특권을 상실(잃어버림)하고 말았고 이제는 그리스도의 교회가 진정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인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응답하고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임을 당했지만 생명의 부활로 영원히 사신다는 것을 믿음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예수의 부르심과 생에와 죽음과 부활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고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을 예수의 사람들이 됨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바울이 에베소 교회의 교인들을 향해 <행20:28>에서 "주께서 자기 피로 사신 교회"라고 하였으니 교회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공동체임을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 속에는 여러 곳에서 교회를 가리켜 그리스도의 몸, 성경의 전, 새 예루살렘, 새 이스라엘, 진리의 기둥과 터, 하나님의 권속, 그리스도의 신부 등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구약성경에는 성전이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만나시기도 하며 백성들이 이곳에서 제사드림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난 곳으로서 거룩하신 하나님과 죄악 중에 처해 있는 인간이 온갖 관계를 맺으며 그 관계를 유지하던 곳입니다.
그런데 이 구약성전은 본래의 뜻인 하나님과의 교제의 장소가 되지 못했고 그래서 다른 더 좋은 성전으로 대치 될 것을 예수께서 <마24:2>에서 말씀하셨습니다.
그 다른 성전이 예수 자신의 몸을 의미하신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파괴되고 부활에 의하여 의미하여 다시 지어진 후에는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독생자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인간을 만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거룩하신 하나님과 죄악스런 인간이 관계를 맺으며 유지할 수 있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입니다.
하나님께 갈 수 있는 길은 옛 지성소를 통해서가 아니라 이제는 부활하신 예수의 성소를 통해서임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한마디로 이스라엘의 역사에 비교 할 수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압박을 받으며 종살이하는 중에 해방이 되어 홍해를 건넌 후 광야 생활을 하며 요단강을 지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으로 들어간 것과 같이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악에서 해방되는 새로운 출애굽을 경험한 사람들의 집단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본질적으로 모인 사람들에게 적용이 되지 결코 건물은 아닙니다. 가장 넓은 의미로는 "온 세상에 흩어진 신앙의 무리"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가장 좁은 의미로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들이며 세상에서는 그리그도의 증인들로서 "불러냄을 받은 자들의 모임"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하나님의 소유이고 제사장들의 나라이며 거룩한 백성으로 열방에 하나님의 빛을 전할 자들로서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한 사람들입니다.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돌이신 예수에게 나아와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신령한 제사를 드릴 "사람들" 이기도 합니다.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전하게 하기 위함으로서 세워진 사람들을 말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교회를 교회의 생명과 교회가 사회에서의 해야할 역할을 중심하여 생각하면 4가지 유형의 교회가 나옵니다.
첫째는 무덤과 같은 교회입니다.
한 어린이가 자기 형에게 무덤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형은 "죽은 사람들이 사는 곳" 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어린이들의 대답처럼 영혼이 죽어 있어서 영적으로 생기가 없는 교인들이 모여있는 교회가 있습니다. 요한 계시록 3장에 있는 사데 교회가 이런 교회여서 "너희가 살았다는 이름은 가졌지만 실상은 죽은 자"로 책망 받았습니다. 이런 교회는 방랑하고 적막하고 변화가 없는 교회입니다.
그리스도가 없으므로 믿음이 없고 소망이 없고 사랑이 없고 하나님이 없는 상태에서, 그리스도를 소유함으로서 마음의 할례인이 되고(골2:11), 그리스도 안에 살고 하늘 시민귄을 가지고(빌3:20)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은 새 언약에서 살고(눅22:20), 영원한 소명을 가지고(벧전3:15) 하나님과 같이 살게 되었는데 그리스도가 없던 옛날이나 지금이나 그저 그렇고 그런 교회가 죽은 교회입니다
있으나 마나한 교회 본문 앞의 1절 말씀처럼 "허물과 죄로 죽었던 자신들을 생각하지 못하고 그 허물과 죄를 벗고자 아니하며 벗으려는 마음조차 없는 교회를 의미합니다.
(딤전5:6) 말씀에 보면 "일락을 좋아하는 이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 말한 것처럼 열락 만 좋아하고, (고후3:7) 처럼 죽게하는 의문에만 매여 있고,(딛전6:16) 처럼 생명의 주님은 실상 안 계시는 교회며 믿음은 있다고 하기는 하나 실천이 없어서 죽은 교회인 것입니다.
(약2:17)-행함이 없는 믿음도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2. 둘째는 박물관과 같은 교회도 있습니다.
전통과 역사만을 중요하게 여기며 항상 과거만 돌아보고 지금은 발전할 생각조차 않고 의식 과 추억에만 사로잡힌 교회를 말합니다.
옛것 위에 새것을 새우지 못하고 그릇된 옛것을 바꾸지도 못하는 교회이며 옛것이 오늘에 의미하는 바를 모르고 새것은 무조건 나쁘다고 하는 이조시대 쇄국정책을 펴서 나라를 발전 시키지 못하고 후회시킨 대원군처럼 고집 불통의 교회입니다.
지금 상태로 만족하고 과거의 좋았던 시절만으로 만족하고 새롭게 일하는 하나님의 뜻과 섭리에는 눈과 귀가 둔하고 막혀서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교회입니다. 변화산에서 베드로는 초막 셋을 짓고 싶었습니다. 그곳에서 살고 싶었고 예수님과 모세와 엘리야를 그곳에 가두어 모시려 했던 사실을 (마17:4)에서 보면서, 이와 같은 교회도 믿음을 한곳에 붙들어 가두어 놓고 성장과 발전이 없는 교회가 됨을 알게됩니다.
3. 셋 째는 연극공연장 같은 교회입니다.
무슨 듯이냐 하면 배우처럼 몇 사람만 활동을 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극장 표 사듯 돈이나 내고 관람하는 관광객 같은 교회라는 뜻입니다.
설교자는 설교만 하고 그래서 교회는 설교자 앞에 일하는 몇 사람의 교회일 뿐입니다.
전해 주는 데로 듣고 찬송하는 데로 감상이나 하고 시키는 데로 앉고 서며, 인사하면 받고 손내밀면 악수하고, 다른 것은 내가 알 바가 아닙니다. 내 스스로 기도하며, 찬양하며 각각 맡은 부서에서 봉사하지 않고 그런 교회입니다. (맡기면 시킨다고 불평, 제대로 맡은 일을 하지도 않고)이런 교회는 아직 어린 교회이며 스스로 자라낼 줄 모르는 교회임을(히5:12-13) 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4.네 번째는 한 식구와 같은 교회입니다.
본문 말씀은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임을 19절에 말하고 있습니다. 한 교회의 성도는 앞뒤에서 당기고 밀며 한일을 책임 완수하는 살아 움직이는 교회이며 이들이 모여 한 식구 되듯 한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마12:50)에 "누구든지 하늘에 게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 이니라"고 하신 예수님의 이 말씀처럼 한 교회의 모든 사람들은 한 형제요 한 자매입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맺어졌으므로 사랑과 관심을 서로 가져야 합니다.
(고전12:26)의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는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도 즐거워하나니..."라고 말했던 것처럼 같이 기뻐하고 같이 슬퍼하는 교회가 한 식구 교회입니다.
그리고 본문 20절에 있는 말씀처럼 "사도와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셨느니라"고 한 그런 교회가 한 식구 교회입니다.
한 진리 위에 세우심을 받았고 예수님이 그 중심이 되는 교회입니다. 또한 22절에 있는 말씀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는 말씀과 같이 예수 안에서만이 발전과 향상이 있습니다.
온 전을 향하여 쉴 사이 없어 자라납니다. 생명이 있고 예수님과 사도와의 선지자 위에서 자라며 모두가 사랑과 관심으로 얽혀서 뭉쳐있는 교회입니다.
이런 교회가 "한 식구, 한 모임, 한 무리"의 교회입니다. 그럼 우리는 과연 무덤처럼 영혼이 죽은 냉냉한 변화 없는 교회와 과거 경험만으로 만족하는 박물관과 같은 교회와 교회에 관심을 갖지 않는 연극 장과 같은 교회와 서로 관심을 가지고 발전과 성장과 그리스도의 사랑과 피로 뭉처진 한 식구의 교회 중에서 어느 것이 될 것인가 생각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모두 한 식구, 한 지체되어 날로 새로워지고 질적으로 진리 안에서 봉사와 책임을 다하고 양적으로 영혼의 수에 성장이 있는 교회가 되기를 우리 모두 노력합시다
(여수 주은혜교회 임명수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