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의 산
파주-양주 형제봉(546.8m)
호젓한 산길 따라 걷는 삼각산 조망 명산
지난 주말부터 추적이기 시작한 때아닌 눈비는 삼일절 오후가 되어서야 움직임을 멈춘다. 기온이 빙점 이하로 뚝 떨어진 이튿날 아침, 취재팀은 고양시 덕양구 벽제에서 양주시 장흥면으로 넘어가는 39번 국도에 자리한 목암고개로 향한다. 목암고개에서 오르는 길은 인근 군사시설로 인해 접근이 허락되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라서 잘 알려지지 않은 길이다. 인적 드문 이 길을 따라 오르면, 형제봉이 손을 잡아끌고 반색하며 맞아줄지 모를 일이다.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산은 시간이 지날수록 반질반질해진다. 잘 정비된 산길은 그곳을 찾는 등산인들에게 고마운 일이지만, 자칫 산의 향내보다 사람냄새가 진동하는 곳으로 둔갑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가끔은 잘 알려지지 않은 산이나 한적한 흙길을 밟으며 '자연 그대로의 산'을 느껴보는 것도 좋겠다. 여기, 그에 매우 어울리는 산이 있다.
9시30분, 일행은 아직 문을 열지 않은 목암미술관 앞에서 산행준비를 한다. 동쪽으로 조금 가니 남양참치 건물이 보인다. 건물 뒤 후미진 길로 들어선다. 영 심심해 죽겠다는 표정의 백구 한마리가 취재팀을 보자 반가운 듯 꼬리를 흔든다. 그 옆으로 날씬한 산길이 보인다. 이번 형제봉 취재산행에 본지 트위트를 통해 알게 된 프리랜서 사진작가 김종오씨가 함께한다.
10분쯤 오르니 단정한 벤치가 있는 첫 쉼터가 등장한다. 땀 한방울 흐르지 않지만 그냥 지나치기엔 아쉽다. 아직 봄이 오지 않은 듯 마른 낙엽 냄새가 그득한 산길은 오솔길을 연상시키듯 부드럽게 이어진다. 뺨과 마주하는 바람은 차지만 빛은 따뜻하다. 빛을 쫓아 고개를 들어본다. 고요한 푸른빛. 누군가 푸른색 물감으로 유쾌한 붓질을 한 것 마냥 비온 후 하늘은 더 없이 맑다.
첫 쉼터에서 30분을 오르고서야 비로소 첫 이정표를 만난다. 그런데 '형제봉'이란 단어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안 보인다. 아직 정상은 한참인 모양이다. 올ㄹ오던 길을 돌아보니 도봉산의 오봉과 사패산이 보인다. 얼마 오르지 않았음에도 조망이 근사하다. 정상이 기대된다.
얼마나 걸었을까. 호젓한 글 끝에 생각지 못한 내리막길이 나타난다. 생뚱맞기 그지없다. 며칠 눈비가 내렸던 탓에 흙이 질고 눈도 쌓여 있어서 꽤 미끄럽다. 얼마나 다시 치고 오르려고 이리 내려가는지, 덜컥 겁이 난다.
'형제봉 1.2km' 라고 적힌 이정표를 지나 30분쯤 오르니 드디어 형제봉 정상석이 보인다. 정상석 바로 앞에 허름한 막사가 있다. 바람을 프해 막사로 들어서니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다. 아무래도 볕에 탄 모양이다. 줄곧 겨울 태를 채 벗어나지 못한 풍경만 보여주더니 햇볕은 봄의 문턱에 와 있는 건가. 차가운 철문에 얼굴을 댄다.
막사 안 흙바닥에 불을 피운 듯한 흔적이 보인다. 그 위로 점점이 숨 쉬는 햇빛. 막사에 난 작은 구멍들 사이로 빛이 새어 들어온다. 신준식 기자가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탐정소설의 명석한 주인공이 되어 무언가 꼭 추적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다.
정오, 산자락이 더욱 뚜렷해진다. 북동쪽으로 훤칠한 한북정맥의 한강봉과 챌봉이, 동남쪽으로는 사패산과 북한산 인수봉이 눈인사를 건넨다. 마치 내 눈이 확대경이 된 듯하다. 인수봉의 얼굴 생김새가 세세하게 들어온다. 목암고개에서 형제봉에 이르는 산길은 한북정맥의 옆자리로 그 형제자매 혹은 절친한 친구쯤 되겠다.
허기가 지기 시작한다. 애당초 하산 후 늦은 점심을 먹기로 계획하고 간식 정도만 챙겨서 올랐기에 서둘러 산을 내려가기로 한다. 오를 때는 쌓인 드문드문 보이는 정도였는데 하산길은 온통 눈밭이다. 바람이 매섭게 느껴진다. 그때 반대쪽에서 올라오는 노부부를 만난다. 인적이 드문 산길을 택한 탓인지 산행 내내 도무지 사람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더니, 반갑기 그지없다. 인근 주민인 그들에게서 하산길에 대한 정보를 자세히 듣는다.
얼마 가지 않아 송암천문대의 깔끔한 뒤태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런데 조밀한 철조망으로 등산인들의 출입을 막아놓아 천문대 안을 구경하는 것은 어렵겠다. 무슨 이유에선지 허리가 꺾인 나무 아래로 반듯한 나무계단이 이어진다. 계단을 지나 20분쯤 내려가니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봉긋한 묘소가 나타난다. 하늘 위로 번지는 구름에 산행 흔적을 꾹 눌러 남긴다.
*산행길잡이
목암미술관-(5분)-남양참치-(10분)-쉼터-(1시간)-국수봉-(30분)-형제봉-(20분)-송암천문대-(15분)-나무계단-(5분)-이정표(권율장군묘 0.8km)-(20분)-권율장군묘
형제봉은 고령산(앵무봉, 622m)으로 행하는 남쪽 능선길에 자리하고 있는 작은 봉우리다. 산에 군부대 시설물이 들어서 있어서 목암고개에서 형제봉에 이르는 등산로가 자주 통제되곤 한다. 그래서 보광사에서 고령산을 오른 뒤 원점회귀하는 산행이 일반적이다.
형제봉을 오르는 등산로는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편안한 흙길 따라 산책하는 듯한 기분을 만끽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한북정맥이 뚜렷이 조망된다. 한북정맥은 백두대간이 남으로 뻗어오다 두류산을 지나 식개산 분수령에서 남서쪽으로 갈라져 나온 산줄기다. 남으로 향하는 백운산, 운악산 자락은 다시 호명산, 도봉산으로 이어진다. 형제봉에서는 이 산자락이 오롯이 바라다 보인다.
*교통
340번, 700번 버스가 목암고개 앞을 지난다. 그러나 배차간격이 길기 때문에 703번, 7731번 등의 버스를 타고 벽제동으로 이동한 후 목암미술관까지 택시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날머리인 권율장군묘 앞에서 15번, 360번 버스를 타고 '장흥'에서 하차한 후 다시 340번이나 700번을 탄다. 승용차는 서울외곽고속국도를 이용해서 의정부, 고양동 방면으로 간다.
*잘 데와 먹을 데
날머리인 권율장군묘 인근 장흥유원지에 식당과 숙박시설이 즐비하다. 송추가마골(031-826-3311), 길손(855-5619), 작은영토(855-5670), 초가마을(855-1124) 등이 있다. 숙박시설로는 에버그린관광호텔(855-0321), 겨울연가(855-5755), 원두막펜션(836-0282) 등이 있다.
*볼거리
목암미술관 목암미술관은 1993년 11월20일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장을 지난 고 김찬식 선생이 한국 현대조각의 발전과 지역의 미술문화 발전을 위하여 건립하였으며 현재는 아들인 김성래 선생이 대를 이어 운영하고 있다. 조각가 김찬식의 작품이 연대기적으로 소장되어 있어 '인체와 생명력'을 모티브로 한 직업의 변천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조각가들의 기획전과 개인전이 꾸준히 열리고 있으며 조각분야에 관련된 연구논문 등을 발간한 바 있다. 조각전문 미술관으로서 꾸준히 전시기획과 논문발행을 통해 미술문화발전에 기여할 계획이다. 969-7686.
송암천문대 다양한 프로그램과 시설을 즐길 수 있는 송암천문대는 언제든지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천체관측소다. 아련하고 멀기만 했던 우주를 현실로 만들어내는 기술의 중심이자 국내 최초 자체기술력으로 제작된 60cm 대형 Ritchey-Chretien망원경과 Takahashi, Meade사의 최고급 망원경으로 무한한 우주의 모습을 비추어 볼 수 있다. 894-6000~2.
글쓴이:정희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