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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양구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아마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군대, 최전방, 산골, 오지, 추위와 같은
키워드가 머릿속에 들어올 것이다. 필자도 사실 크게 다르지 않다. 몇년 전 '한반도의 정중앙'이라 하여 새롭게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기 시작하면서 군에서는 이미지를 바꿔보려 애쓰고 있지만, 한번 생긴 고정관념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특히 청춘의 일부를 국가를
위해 바쳐야 하는 남성들 입장에선 더 그럴 것이다.
이런 것들은
대체로 너무나 낯설고 딱딱한 틀 안에 묶이는데, 사실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교통이 상당히 불편하기로 악명이 높기
때문이다.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 살겠네 그래도 양구보단 나으리'라는 우스갯소리처럼,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인데다 남쪽과 서쪽으로는 호수가, 동쪽으로는 높은 고개가, 북으로는 휴전선에 막혀 어디도 쉽게 갈 수 없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겨울이 매우 혹독해서 10월부터 내린 눈은 5월까지 녹지를 않아 거의 1년의 절반이 주변 지역과 단절되어, 완전히 '육지 속의
섬'처럼 되어버린 것이다. 더군다나 외지인이 거의 찾지 않는 지역이라면 모를까, 우리나라 청춘들의 상당수가 '군생활'을 통해 이
지역의 실상을 겪어야만 했기에 양구의 악명은 특히나 더욱 잘 알려지게 되었다. 이들에게 있어 양구는 감옥이었고, 제대하고 그쪽
방향으로는 오줌도 안 눈다는 얘기가 나올 만큼 부정적인 이미지가 심어지게 되었다.
양구
입장에선 억울했을 것이다. 전통적으로 양구는 전혀 오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고려-조선시대의 주요 귀양지 목록에 양구는 찾아볼 수
없는데, 북한강과 소양강을 통하면 쉽게 서울 및 춘천으로 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도로가 불편한 옛날에는 수운이 발달했기 때문에
오히려 산골 치고는 교통이 발달했었다. 그러나 구한말 이후 건설된 철도 교통에서
소외되고, 1940년대 화천댐 건설로 주요 길목 하나가 물에 잠기고, 해방이 되자마자 분단이 시작되면서 6.25 이전엔 남쪽,
이후엔 북쪽 길이 가로막히게 되었고, 마지막 남은 소양강 길마저 1973년 수몰됨에 따라 사방으로 교통이 막혀버리게 된 것이다.
다행히
90년대 춘천-양구간 도로의 개량 계획이 나오고 2000년대부터 차츰차츰 개량되면서 사정이 나아지더니, 2012년 배후령터널이
개통되면서 최종적으로 모든 공사가 끝나 지금은 오지라고 할 수 없게 되었다. 이런 복잡한 역사를 온몸으로 겪은 양구터미널은 양구
사람들이 그나마 외부와 소통할 수 있게 해준 유일한 창구였고, 그래서 타 지역보다 버스터미널의 수요 비중이 훨씬 높은 곳이다.
매서운 칼바람이 잦아든 2월의 어느 날, 오랜만에 강원도를 찾았다. 그 첫 번째 목적지는 최전방 지역인 양구다. 사실 여기는 2년 전 여름에 찾아온 적이 있었다. 양구와 인제 일대를 돌면서 투어를 이미 했었는데, 하필 사진이 전부 날아가는 바람에 블로그에 올릴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래서 눈물을 머금고 같은 장소를 다시 오게 되었다. 그새 사진기를 새로 바꿔서 사진이 날아갈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
다행히 날씨가 너무 좋다. 날이 제법 풀려서 영상의
따스한 기온이었는데, 심지어 서울과도 별 차이를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 내가 알던 강추위의 그 양구가 맞나 싶었다. 또한
미세먼지 하나 없이 하늘에 깨끗하게 개어 여행을 하기에도, 사진을 찍기에도 더없이 좋은 날씨였다.
보다시피 주차장은 골목길 안쪽 건물들에 둘러싸여 있고, 버스
주차장과 택시 사업소가 붙어있다. 즉, 여기는 버스터미널이자 택시터미널이기도 한 곳이다. 안 그래도 좁은 주차장이 택시에
가로막혀 더 좁아 보이지만, 동네가 동네인지라 그리 붐비는 일은 없다. 주차장을 주로 이용하는 회사가 몇 개 없는데,
간이사업소까지 자리 잡고 있는 향토업체 강원고속과 양구 시민들의 발이 되어주는 현대운수가 이 주차장의 단골손님이다.
승차 홈이 따로 없어서 농어촌버스의 경우 주차장에서 미리 사람을 받고 출발하기도 하는데, 때마침 고방산, 송현리를 거쳐 방산면으로 들어가는 버스가 출발할 준비를 한다. '고방산리'라는 마을에 '두타연'이라는 계곡이 있는데 물이 맑고 경치가 빼어나기로 예로부터 유명했다고 한다. 여름에는 이 계곡으로 놀러 가는 사람들이 이 버스를 종종 이용하기도 한다.
인구가 적기로는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이 조그만 고장에 무슨 택시가 저리도 많은지 주차장의 빈틈을 절대 허용하지 않는다. 버스터미널 입장에선 옮기고 싶어 하겠지만, 택시 입장에선 바로 뒤에는 읍사무소, 지방법원, 군청이, 앞에는 번화가 거리가 있어 최고의 입지를 자랑하는 이곳을 떠나기는 싫을 것이다. 어차피 옮긴다 해도 여기서 사람을 태울 공간이 있어야 하는데 여기 말고는 세울 자리도 없다.
시외버스, 농어촌버스, 택시를 가리지 않고 받는 이 조그만 주차장에는 차들이 참 많기도 하다. 어디를 가려는 사람들이 주차장을 건너 미리 차에 타려고 신호를 보내고, 다른 곳으로 가는 승객들은 차를 기다리며 그 장면을 조용히 지켜볼 뿐이다.
옆을 돌아보니, 홍천, 양평을 거점으로 삼는 금강고속 차량도 여기에 와 있다. 분명히 그쪽 방향으로 나가는 차량일 것이다. 배후령터널이 뚫리기 전엔 신남을 거쳐 홍천으로 가는 길이 여기서 서울로 그나마 수월하게 갈 수 있는 길이었기에 이 노선의 역할이 컸지만, 지금은 춘천까지 길이 잘 뚫려 입지가 좁아졌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군인들은 휴가 갈 때 이 노선에 의존한다.
양구터미널의 승차장은 주차장과 구분이 없다. 즉, 맞이방의 문을 열고 나오면 곧바로 주차장이 나온다는 뜻이다. 1번, 2번 같은 승차 홈도 없고, 그냥 버스가 들어오면 알아서 타면 되는 간단한 구조다. 하지만 이 때문에 초면길인 행락객들은 자신들이 타야 하는 버스를 눈앞에서 놓쳐 발만 동동 구르는 상황이 종종 벌어지기도 한다.
맞이방으로 들어오면 이런 모습이 펼쳐진다. 2층 건물이지만 특이하게도 위로 올라가는 계단이 없고 밑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는데, 아직도 다방을 운영하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1층에는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2년 전에 찾았을 때는 없었는데 언제 개장을 했는지 좁은 맞이방 안이 그윽한 커피 향으로 가득 차 있었다. 같은 커피를 파는 곳인데 느낌이 심히 다르다. 둘 사이를 메꿔주는 것은 매표소다. 대부분 노인 아니면 군인들이 눈에 띄나, 간혹 젊은 여성들도 표를 사러 온다.
양구터미널에서는 농어촌버스가 들어온다. 하지만 모든 농어촌버스가 들어오는 것은 아닌 것 같다. 터미널 주차장 뒤편 골목길로 들어가면 곧바로 버스정류장이 하나 나오는데, 이쪽이 양구의 모든 지역으로 가는 군내버스가 오간다. 여기서는 주로 방산면, 해안면 또는 근처 오지 마을로 들어가는 노선을 취급할 뿐인데, 방산과 해안 가는 노선들은 전부 읍사무소보다 10분 늦게 터미널에 들어온다. 시간표에 있는 노선들 만으로도 상당수 마을들이 커버가 되지만 양구선착장(수인리)행 버스나 팔랑리행 버스처럼 몇몇 제외된 노선들도 있다. 해안면 가는 버스가 팔랑리행 노선과 경로가 거의 겹치지만 팔랑리까지만 가는 버스가 훨씬 자주 있으니, 웬만하면 읍사무소에서 타는 걸 권장한다.
하지만 시외버스는 당연히 여기를 이용해야 한다. 가장 수요가 많은 노선은 단연 서울 가는 버스로, 여기서는 모든 버스가 동서울터미널로 안내한다. 춘천방향과 홍천방향이 각각 절반씩 다니는데, 배후령터널 개통 이전엔 홍천방향 노선이 주된 경로였지만 터널이 뚫린 이후로는 춘천 쪽이 경로상 더 가깝고 길도 더 잘 닦여있다. 옆 동네 인제와는 달리 모든 노선이 여기를 종착지로 삼기에 양구터미널에 주차된 시외버스의 십중팔구는 서울로 가는 차들이다.
워낙 고립된 위치에 있어서인지 시외버스라 할지라도 노선은 얼마
없다. 전통적인 영향권이었던 춘천, 소양강댐 완공 이후 새롭게 길이 뚫린 홍천, 그리고 양양 경유 속초행이 전부다. 바로 옆
동네인 화천과 인제 읍내로 가는 버스도 없어 각각 춘천과 원통에서 환승해야 하고, 원주 경유 대전행이 서울, 춘천-속초선을 제외한
유일한 시외 노선일 정도로 굉장히 교통 편이 열약하다.
이
정도로 시외 교통망이 열약한 것은 서론에서 설명한 대로 분단으로 북쪽 금강산 가는 길이 막힌 것, 그리고 댐과 호수에 막혀 원래
있던 길이 모두 수몰된 것 때문이다. 만약 이 모두가 이루어지지 않았으면 춘천으로의 생활권 종속이 더 빨리 이루어져 지금보다
춘천 가는 길이 훨씬 편해졌을 것이고, 서울에서 속초로 가는 주 경로가 춘천-양구-원통으로 바뀌었을 테니 이쪽으로의 배차가 훨씬
많아졌을 것이다. 또한 분단이 안되었다면 철원이 중견급 도시로 성장했을 것이므로 철원-김화-화천-양구-원통-속초를 잇는 도로망을
통해 수시로 버스가 오갔을 테고, 서울과 춘천에서 내금강을 잇는 국도 노선의 중간에 있어 춘천과 내금강을 오가는 버스들도 수없이
다녔을 것이다. 이 정도만 해도 지금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수준의 교통망을 자랑하니, 얼마나 이러한 요건들이 양구라는 지역 전체를
옥죄고 있었을지 짐작해볼 수 있다.
현재로서는 불가능에 가까운 가정일 뿐이지만, 분명 실행이 된다면 이 요금소에 적힌 행선지는 이렇게 조촐하게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금강산과 설악산 가는 등산객들이 뒤섞여 두 개의 명산을 가려는 사람들로 북적일 것이다. 지금도 군인 수요 덕분에 인구에 비해서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지만, 수요층이 달라지기 때문에 분위기는 현재와는 너무나 다른 방향으로 갈라질 것이 분명하다.
지금 현재는 언제 어느 시간이던 항상 군인들이 나라 못지않게 이 자리를 지키고 있고, 상점이 있어야 할 위치에는 군장점이 자리잡고 있다. 군장점과 군인이 있으니 주변의 사물함, ATM기계까지도 예사롭지 않게 보인다. 현재의 위치로서는 이런 모습들이 너무 당연한 일상이지만 외지인 입장에서는 너무나 낯설고 때로는 긴장감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군인들은
서울로, 주민들은 춘천으로만 통하는 현재의 양구는 을씨년스럽고 엄중한 분위기이다. 다른 읍내들과는 그 속의 내용물이 분명 다르기
때문에, 최전방 특유의 칙칙한 느낌을 어떻게 할 수는 없다. 이렇게 사진상으로 보거나 대충 훑기만 하면 어느 평범한 산골의
읍내처럼 보일 수 있어도 조금만 여기에 있으면 그 분위기를 단숨에 눈치챌 수 있다.
인구가 전국에서 손에 꼽을 만큼 적음에도 프랜차이즈 점포가 많고, 중심가 거리는 젊음의 거리처럼 깔끔히 정돈되어 있다. 그리고 읍내 어디를 둘러봐도 옛날 건물을 찾아볼 수 없다. 옛 기와집을 개조해서 만든 듯한 낡은 집들도, 다 쓰러져 가는 것 같은 상가 하나 없이 온통 깔끔하게 단장된 건물들뿐이다. 그리고 그 건물들 안엔 군인과 관련된 가게들이 있고, 거리 어디서든 군인이 걸어가는 모습과 얼룩무늬 차들을 항상 볼 수 있다.
바로 이런 것들이 다른 읍내와는 차별화된 양구, 아니 최전방 특유의 분위기이다. 기존의 평범한 시골 동네들보다 활기는 더 느껴질지 몰라도 그 활기가 긍정적인 에너지가 아닌 뭔가 위압감을 주는 에너지라면 결코 누구든 두손 들고 반길 수는 없을 테다. 양구의 전반적인 느낌이 그렇고, 그 속을 연결해주는 양구터미널 역시 마찬가지다. 금강산 가는 길이 뚫려있대도 과연 이런 생김새였을까. 한반도의 정중앙이라는 별명에 걸맞는 색깔을 되찾아올 날은 과연 언제가 될까. 양구터미널, 사람도 많고 차들도 많지만 결코 활기가 느껴지지 않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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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10년이 젊어진다는 양구..국토정중앙 배꼽양구..터미널만 봐도 군시절 기억이 새록새록 나네요. 08~09년 2년을 양구에서..ㅎㅎ 배후령터널 한번 가보고 싶군요..ㅎㅎ휴가때 완도에서 양구까지 어찌 다녔는지..ㅎㅎ 잘 봤습니다!!
완도에서 양구까지 완전 국토종주를 하셨네요..ㄷㄷ 10년이 젊어진다는 문구는 놀리려고 만든건지 연고도 없는 저조차도 볼때마다 어이없어서 웃음만 나옵니다 ㅎㅎㅎ
주말에 원통을 오랜만에 다녀왔는데(12사단 출신임다 ㅎ) 양구처럼 간판들이 새롭게 화려하게 거의 변했더군요..
설악산 , 속초의 길목이기도 하지만 젊은 군인들의 지역이라 첩첩산중에 화려한 간판들.. 이색적인 풍광이었습니다.
2008년쯤 해안 가는 버스를 타고 도솔령을 넘으며 약간의 고소공포증을 느낀 기억이 납니다. 이젠 터널이 생겨 추억이 되었지만... 항상 사진과 느낌 있는 글 잘 보고 갑니다~
첩첩산중 속에 화려한 간판이 있고 거기로 지나가는 군인들을 보면 괜히 몇년 전의 제가 생각납니다. 돌산령 고개가 정말 험하죠. 넘어갈때 경치는 끝내주더군요 ㅎㅎ
@Maximum 그유명한 453도로네요.^^ 거기 꼭대기가 해발1050고지인데 거기에 21사단 도솔대대라고 있습니다. 전군 최악이라는..제가 거기서 이등병시절 보냈네요. 관광차들 저희 사격장 휴식할때 아주머니들이 간식 주시고 그랬네요..
2월에 찍은 사진인데 마치 파란하늘이 늦가을의 색감처럼 선명하니 좋군요. 양구터미널 기행, 함께 다녀온 기분입니다^^
너무 멋지고 감사한 답변입니다. 날씨가 좋아서 사진이 잘 찍혔던 것 같아요. ^^
91년부터93년까지 30개월
군생활했던곳인데
감회가 새롭네요
좋은글 읽고갑니다
감사합니다. 이쪽 방향으로는 오줌도 안 눈다는 한 분이셨군요. ㅎㅎ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곳인데 사진과 자세한 설명이 함께 하니 마치 다녀온 듯 합니다. ^^
현장감이 느껴진다니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
배후령터널 개통 후는 한번도 양구터미널 가본적 없어 아쉽네요
양구에서 화천읍 갈때 간동면 농어촌버스 환승 불가인지 가능인지 모르겠어요
배후령터널은 가도 가도 끝도 없는데, 2차선 길에 중앙분리대도 없어서 위험하긴 마찬가집니다. 환승할인을 말하시는 거라면, 일단 양구에서 간동면까지 가는 농어촌버스가 없습니다.
@Maximum 아. 양구-간척 시외버스, 간척-화천 농어촌버스 이런 환승이 되느냐는 뜻이에요. 환승할인 그런거 신경안쓰고요
교통량 때문에 배후령터널 왕복2차로로 건설한 듯요. 그래도 터널 있는게 어디냐고 할 수도 있지만
@안동 물론 간동에서 환승이 됩니다. 양구-춘천간 시외버스가 간동을 중간에 정차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모든 춘천행 버스가 간동에 서는게 아니고, 화천에서 간동가는 농어촌버스 또한 하루에 몇 대 없으니 시간을 맞추기가 힘듭니다. 반면에 춘천역, 춘천시외버스터미널에는 두 지역으로 가는 버스가 수시로 왔다갔다 하니까 그냥 편하게 춘천에서 환승해야 한다고 본문에 적어놓았을 뿐입니다. ^^
@Maximum 그렇군요.
대중교통이라면 그렇고(춘천역 시외버스 정류소를 말씀하셨으니...)
자가용이면 화천읍-양구읍 간은 간동면-추곡터널 vs 해산터널 둘 중 뭐가 더 나으려나요...
@안동 자가용이면 당연히 간동면쪽으로 가는게 낫겠죠. 그쪽은 다니는 차들도 많아서 제설도 금방금방 하고 길도 잘 뚫려있고, 무엇보다 거리상으로도 더 짧습니다. 해산터널 구간이 화천댐 수몰 이전의 길을 대체하기는 하지만 온통 첩첩산중이라 한참을 돌아가는 길이에요.
두번다시는 양구 안간다 했지만 저역시 전역하고 두어번 다녀왔었습니다. 사진 쨍하니 잘 찍어셧네요.. 후보정 하신 건가요? 혹시 카메라 어떤거 사용하시는지 궁금하네요..
가끔 군생활했던 지역이 어떻게 변했나 궁금해질 때가 있죠... 카메라는 캐논400D 구식 기본형 카메라구요~ 제가 올리는 모든 사진은 보정이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양구는 양구쪽에서 근무한 군인들은 물가 때문에 치를 떨죠 평상시에 5만원 하던 숙박 없소가 주말만 되면 10만원의로 올라 가고 pc방도 1000원 받던 요금이 2000받고 그리고 철없는
고등 학생들이 군인 한테 일부러 시비 걸고
오죽 하면 별명 군인 등골 브레이커 라고 했으니 2사단 나온 친구가 치를 떨더군요
바가지 씌우는 상인들이 위수지역 확대에 반대한다고도 들었어요
뉴스를 보니 아직도 심하다고 하더군요
답은 위수지역을 춘천 까지 확대 시겨야죠
@성남시민 위수지역을 춘천으로 늘리려 하는데 양구군수가 직접 2사단장, 21사단장한테 제발 풀어주지 말라고 통사정 중이었었는데.. 지금도 비슷할 겁니다. 그 동네 가게들 군인 휴가/외출 춘천으로 바뀌면 절반 이상 망하는 곳들 뿐이라.... 7사단처럼 병사들이 고삐리한테 맞고 오니까 과감하게 위수지역 풀어버려서 지역 날라리들이 군인 우습게 못 보게 해야 하는데.... 양구는 군수가 나서서 때만 되면 군부대 방문 + 읍소 하고 계신 데라..........
저도 이 문제를 알고 있어서 양구를 두 번 갔지만 돈을 한푼도 안쓰고 다녔습니다. ㅡ.ㅡ 아무리 생각해봐도 너무 괘씸한 일입니다. 이걸 보면 제가 군생활했던 지역은 바가지가 없고 오히려 물가가 싼 지역이었다는게 너무 다행이고 감사하네요.
@Maximum 도시랑 가까운 곳일수록 상인들이 군인들에게 바가지를 덜 씌우는 편이라 볼수있을까요
제가 전역하고서 저 문제가 공론화 되더군요. 바가지 알면서 쓸수 밖에 없는게 참 난감합니다.
군생활을 인제 현리에서 했는데, 예하 부대가 양구 읍내에 있어서 매달 양구를 출장 다녔던 경험이 있습니다.
얼룩무늬 군토나 타고 원통에서 넘어가는 언덕 힘겹게 올라갔다 내려갔던 기억이 많이 나네요.
터미널 근처 식당들 탐방도 다니고.. 계급장 달고 식당 들어가면 밥먹던 이등병이 큰소리로 "충~썽~" 외쳐서 살짝 답례만 하고 저 끝 테이블에 앉아서 밥 먹고 그랬었네요 ㅎㅎㅎㅎ (대위였거든요. 행정 업무차 종종 갔지요)
대위까지 다셨더라면 굉장히 오랜 기간 경험한 것들이 많으시겠네요. 원통에서 양구가는 길이 많이 험하긴 하죠. 특히 군용차면 힘도 딸려서 빌빌댈텐데요. 밖에서 생판 모르는 병사들한테 경례를 받는게 괜히 제가 다 민망해지네요. ㅎㅎ
@Maximum 그나마 광치령 터널 없었으면 더욱 힘들었을 듯 하려나요
@Maximum 군의장교로 간 거라 군 생활이 길지는 않았어요. 처음부터 대위로 시작이고, 전역 또는 소령 진급 중에 고르는 건데.. 99% 는 전역하죠 ㅎㅎ 다른 사람들은 의무대에 앉아서 찾아오는 병사들 감기약이나 지어주고 한다는데 어쩌다보니 저는 행정쪽으로 풀려서 여기저기 많이 쏘다녔습니다. 작전 범위가 넓어서 홍천 / 양구 / 양양 / 가끔 원통 이렇게 다니구요. 교육 관련으로 항의원도 가 보고... 이런저런 업무 때문에 몇몇 군 작전은 구체적인 내용도 알고 있어야 하고 그래서.. 의사보다는 군인으로 살았던 시절이었드랬었죠.
음....만 42세까지 예비군 하는 건 함정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 ㅠㅠ
@민상준 간부 전역자가 예비군 편성 해당년도가 길더군요.
@민상준 군의장교로 들어가셨는데도 고생을 많이 하셨네요.. 작전 범위가 말이 저렇지 실제 넓이로 따지면 엄청나기도 하고요. 예비군 기간에서 눈물이 납니다. 한번 가는것도 서러운데 ㅠㅠ
양구하면 해안면 펀치볼이 떠오릅니다. 동서울행이 춘천방향과 홍천방향으로 이원화 되어 있는게 특이하군요.
최전방 이미지에 가려져서 그렇지 펀치볼을 비롯해서 볼만한게 많던데요~ 동서울행이 선택의 여지가 있어서 좋네요 ㅎㅎ
저 군생활하던시절 생각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