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혁형님께 모임문자를 계속 받고도 이제야 소식을 올립니다..
출산여행기
12월 1일 둘째아기 푸름이를 낳았습니다.
예정일은 12월 4일인데 첫째 하은이가 1주일 전에 나와서 둘째도 비슷하게 나올거라고 했습니다. 11월 27일 정도로 예상하고 있었는데 김장공급을 모두 끝마친 다음날 새벽 진통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새벽 4시. 아내가 진통을 느끼고 오늘 나올 것 같다며 빨리 밥먹자고 하여 옹기가마솥에 밥짓고 미역국을 끓였습니다. 어른들이 부산하니 세 살배기 하은이도 일어나서 같이 밥먹었지요. 그 새벽에
아침 7시. 조산원 원장님이 진통이 7~8분 간격으로 될 때 오라고 하였습니다. 한 30분 정도 간격이어서 다시 잤습니다.
오전 10시. 푹 자고 일어났습니다. 전날까지 김장공급을 하느라 피곤하였는데 피로가 좀 풀렸습니다.
잠깐 김장공급을 말하자면, 1년 중 가장 바쁜 행사지요. 제가 있는 한살림과천은 11월 18일날 했는데 물량이 워낙 많아 한살림서울에서 지원을 와 주었지요. 물론 품앗이지요. 서울은 25일부터 1주일간 하는데 도와준 만큼 우리도 30일까지 일하러 갔습니다. 한살림서울도 제 사정을 알아서 일찍 나오면 바로 출산휴가로 들어가는 건데...
ꡐ결국 다 끝나고 나오는구나!!! , 아비 좀 봐 주면 안돼나?ꡑ
야속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정오. 출산준비물은 미리 준비를 해 놓았는데 그래도 혹시 빠진거 없나 살펴보고, 내복챙기고 양말챙겼습니다. 10분~15분 간격이었는데 내가 빨리 가자고 했다. 조산원이 부천에 있으니 1시간 정도 걸리고, 왠지 내 기억에(드라마, 사건tv) 차안에서 양수가 터지는 것이 있어 먼저 가기로 했습니다.
가는 도중 마음을 고쳐 먹었습니다. 푸름이는 자기 때에 나오는데 내가 김장공급 다했다고 심술부릴것이 아니지. 그리고 도움을 받은 만큼 도와줘 깨끗이 정리하는게 더 낫지.
(여기서부터 반말로 씁니다)
1시. 부천 열린가족조산원. 원장님이 왜 이렇게 일찍 왔냐며 돌아가랍니다. 밤늦게나 나올 것 같다고.
2시. 근처 E마트. 조산원에 일찍 온 사람들은 대게 근처의 중앙공원이나 이마트, 백화점을 돌아다닌다. 그게 코스다. 어떤 경우 영화도 보고 온단다. 날이 추웠다. 그래서 이마트로 갔다. 이마트서 불량식품으로 점심을 먹다.
3시 30분. 현대백화점. 역시 같은 아이쇼핑이라도 품격이 다르다. 화장실부터 다르다. 장모님이 출산기념으로 옷 하나 사주라고 한다. 순간 움찔했다. 근데 결혼하고 제대로 옷하나 사준 적이 없었는데... 결심했다. 하나 골라라. 출산 후 몸매를 만든 다음 산다고 한다.
4시 30분 아이스크림가게. 백화점 7층에서 유기농아이스크림 먹다.
5시 다시 조산원으로 왔다. 진통이 좀 짧아졌다. 조산원에 다실이 있어서 차를 음미하다. 산청 야생녹차. 내가 차 마시는 것은 좀 봤다. 제법 폼을 잡으면서 먹었다. 열 몇 잔은 마신 것 같다. 아내도 좀 많이 마셨다.
5시 30분. 한 5분 간격 진통. 진통이 올 때 마다 기마자세로 버틴다. 차 마시기가 힘들 정도다. 조산사가 이제 분만실로 가란다.
6시 ~6시 30분.
진통이 빨라진다. 3분정도. 서원심원장님이 들어왔다. 자궁문을 확인해보더니 곧 나올 것 같단다. 설마 했는데 7시 안에는 나올 것 같다고 한다.
장모님이 아내가 참을성이 너무 많다는 이야기를 했다. 너무 참지 말고 아프면 소리를 지르라고 했다. 절대로 이 악물지 마라고. 진통이 심해지자 아내가 눈물을 흘렸다.
그래도 진통시간은 2분을 넘지 않는다. 하나님이 그나마 쉴 여유를 주는갑다. 진통시간 다 합쳐도 2시간이 넘지 않는다고 했던가. 3년전 교육 받은 내용이라 정확치 않다. 잠깐 열린가족조산원이야기를 하자면.
어떻게 이곳은 알았는지는 지금 기억나지 않는다. 내 직장인 한살림을 통해서인지 우리가족이 다니는 새터교회를 통해서인지. 한 살림사람들과 새터사람들이 이곳에서 아기를 많이 낳았다. ‘생태적 출산, 자연스러운 출산’ 이렇게 표현하면 되나?
보통 출산하면 떠오르는 영상은 아내는 가족도 출입금지인 분만실로 이동침대를 타고 들어가고 남편과 가족은 밖에서 초조하게 기다린다. 안에서는 비명이 들리고 밖에서는 애타게 왔다갔다 하다 아이울음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의사가 나와서 공주나 왕자의 출산소식을 전한다. 분만실을 자세히 보면 수술대가 있고 천장에는 밝은 수술용 조명이 있다. 아이는 세상에 나오자 마자 이런 세상을 만나게 된다. 요즘에는 많이 좋아졌다고 한다. 우리 첫째 하은이도 아내의 빈혈이 있어 병원에서 낳게 되었는데 그정도 까진 아니었다. 분만실에서 가족이 함께 진통을 하다가 분만 순간엔 침대에서 출산기계(정신병원환자처럼 大자로 사지를 벌리게 하는 무식한 것)로 옮기고 가족은 밖에 나가 있으란다. 산모는 옴짝 달짝 못한다. (문을 빼꼼히 열고 봤는데) 장모님 입에서 욕이 나왔다. 아픈데 이리비틀고 저리비틀고 해야지... 아이를 낳고선 다시 들어가서 탯줄을 자르고 아이 한번 안아보고 아기는 신생아실로 간다.
열린가족조산원에선 출산전에 부모교육을 한다. 출산과정안내, 출산준비사항(호흡법, 맛사지법등), 아기가 태어날 때 읽어줄 편지작성 등등. 한살림도 가입할려면 소개교육을 하는데 여기는 4주에 걸쳐서 한다. 아기가 세상에나와서 바로 엄마품에 안길수 있도록 하고, 눈이 부시지 않도록 은은한 조명을 하고 가족들이 함께 참여할 수 있게 한다. 단 출산후에는 신생아와 남편만 함께 있을 수 있다.
다시. 분만상황.
원장님이 낮에 어디갔다왔냐고 묻는다. 이마트와 백화점에 갔다왔다니 불량식품 먹었겠네 하신다. 아내가 유기농아이스크림으로 먹었다고 했다. 원장님이 갑자기 유정란을 주문못했다고 걱정하신다. 내일 익복이형이 진찰온다기에 연락해보겠다고 했다. 양수가 터지고 다시 진통이 시작됐다. 난 처음봐서 놀랬다. 그리고 진통의 강도도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진통이 가시자 유정란 3판 좀 갖다 달란다. ‘한판이 몇 개지? 60개인가 아니지 15개 짜리 그걸로 6판으로 갖다주세요. 6판!’. 다시 진통이 시작. (참 원장님도. 나중에 이야기하면 안 돼남. 15개짜리로 6개면 3판입니다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자궁이 꿈틀거린다. 검은 물체가 조금 보이기 시작했다. (뭐지). “얘도 엄마아빠 머리가 검어서 검은머리가 나왔네”. 내가 겪는 새로운 세상이 시작되었다. 나도 고도로 집중,긴장,호기심... 몇 번의 진통이 있었다. 힘을 주니 점점 많이 나오고 진통이 없으면 다시 들어갔다.
참고로 푸름이는 이날 조산원에서 4번째 아기였다. 좋은 날이어서 아기들이 나오는 것같단다. 바로 전에 아기는 4.1kg 였는데 산모가 진통을 31시간이나 했다. 양수가 터지고 진통이 있어야 아기가 나온다. 만약 진통이 없다면 위험할 수가 있다. 진통이 아이를 나오게 한다. 아니 아이가 나오려니 진통이 있다.(뭔가 큰 철학적 의미가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앞의 산모는 양수가 터진 후 한동안 진통이 없었다고 한다. 원장님이 심각하게 고민을 했단다. 이런 경우가 아주 가끔 있단다. 병원으로 가자고 산모와 의논했으나 산모는 한사코 여기서 낳겠단다. 그래서 가능한 시간까지 있어보기로 하고 아기를 출산했단다. 나중에 우리아기와 옆에 나란이 둬봤는데 거짓말 조금 보태 두배는 되는 것 같다.
다시 진통. 원장님은 96%, 97%, 98% 이렇게 점점 많이 진척돼었다고 얼마 안남았다고 아내를 위로한다. 난 아내 뒤에서 손을 잡아주고 있었다.
다시 진통. 이젠 내 눈에도 아기 머리로 보였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오기 시작했다. 이때는 힘줘서가 아니라 아기가 스스로 나온다. 모두 숨죽여 보고 있다. 아내만 가쁜 숨을 내고 있고. 경이롭다. 이때 힘 주면 큰일 난단다. 다 찢어진다. 머리가 나오고 어깨가 나왔다. 이놈이 세상에 드디어 나왔다. 6시 33분. 입속에 이물질을 빼내고 수건으로 닦은 후 엄마 품에 안겼다.
난 노래로 아이의 탄생을 축복했다.
‘ 푸름이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하심이 크고 크도다 크시도다 크고 크도다 크시도다’
하은이도 함께 있었다. 방구석 할머니 무릎에 앉아서 이 과정을 함께 했다. 아기가 나오니 뭔가 이상하고 불안한갑다. 가까이 오게 해서 안아줬다. 그제야 손가락으로 아기를 가리키면서 ‘ 아~기~’ 이런다.
정리.
이 출산여행 앞자리에 앉아서 참여해서 고맙다. 감사하다.
푸름이가 세상에 나온지 오늘로 9일째다. 사실 하은이 혼자일 때 보다 엄청 힘들다. 큰형수님이 아이 한명은 장난삼아 키우는 거고 둘은 돼야 엄마란다. 정말 두 놈 키우기가 만만찮다. 박후임 목사님 말씀 중 제일 기억에 남는 게 ‘ 아이는 셋은 낳아야 한다’는 말이다. 엄두가 안난다.
그렇지만 진통은 새로운 생명을 낳는 힘이다. 푸름이가 태어나서 나도 새로 태어났다.
첫댓글 푸름이의 탄생을 축하하고 잘 키우세요. 정말 둘은 힘들어....ㅎㅎㅎ
신명아 축하한다.
하은이 동생이 생겼 더욱 행복한 가정이 되겠습니다. 축하합니다.
축하드려요~ ^^
류신명 축하한다..나도 3달 있으면...니 글 읽는데 왜이리 감정이 북받쳐 오르냐..
축하합니다 류하은, 류푸름 건강하고 맑고 밝게 성장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