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노자 차별하는 민족주의
우리는 반만 년 역사를 단일 민족으로 살아 왔다고 자랑한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단일한 혈통도 아니다. 다른 민족들과 접촉하는 과정에서 숱하게 혼혈을 경험한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대체로 순수한 한민족의 핏줄을 공유하고 있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예나 지금이나 외모를 가지고 혈통을 구별하기는 불가능할 정도로 비슷한 모습을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냉전 체제의 해체 이후 지구촌 곳곳에서 끊이지 않는 민족 분규는 솔직히 우리에게 피부에 직접 와 닿지 않는 먼 나라의 일로만 여겨졌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한민족이라는 믿음이 최소한의 통합을 지탱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사회에 수많은 종교들이 있지만 인도나 파키스탄에서와 같이 목숨을 걸고 싸우는 종교 전쟁은 발생하지 않는다. 우리와 비슷한 상황의 일본 사회도 자세히 보면 아이누 족 같은 소수 민족이나 부라쿠민 같은 천민 집단이 아직도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사회의 결속을 위해 천황이라는 초월적 상징 체계를 계속 유지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장치가 없이도 동일한 혈통의 단일 민족이라는 확신이 강하다. 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우리의 비교적 굳건한 민족 의식 및 정서에 기반한 문화적 정체성은 경제 성장과 사회적 안정을 확보하는 데 중요한 바탕이 되었다. 재빨리 선진 산업 국가를 따라잡기에 총력을 기울여 온 지금까지는 우리의 민족적 동질성 또한 그에 대한 믿음이 긍정적으로 작용한 면이 많았다. 만일 피부색이나 언어가 서로 다른 집단이 내부에 공존했다고 가정해 보자. 그 집단 사이에 벌어지는 엄청난 갈등으로 산업화에 지장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어쩔 수 없이 이질적인 것들과 공존해야 하는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피부색과 관습과 언어가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 공존의 기법을 터득하지 않으면 지구촌 사회에서 고립될 수밖에 없다. 국제 무대에서 한국의 자리는 어디인가? 외국인들의 눈에 비친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이러한 질문은 더 이상 그냥 지적인 호기심에서 던져지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이제 우리 민족의 국제적 운명을 좌우할 만큼 심각한 문제가 되었다. 전혀 낯선 ‘타자(他者)’를 그 나름으로 이해하고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나’를 상대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안목이 긴요하다. 자아와 세계를 보다 객관적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보편 감각’이 요청되는 것이다.
과거 외세로부터 숱하게 수난을 당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우리의 민족주의는 다분히 저항적이고 수세적인 것이었다. 다른 민족은 일단 백안시(白眼視)하고 보는 편이 안전했다. 외국에 대한 무조건적인 배척은 우리가 약자일 때는 우리 스스로의 안위를 위해 필요했고 또한 정당한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비약적인 경제 성장을 달성하고 세계에서 몇 째 안에 들어가는 산업 국가로 발돋움한 지금의 시점에서 이야기는 달라진다. 한때 정당했던 민족주의는 우리보다 약한 민족에 대해서 하나의 우월 의식으로 나타날 수 있다. 점점 많아지는 국내의 외국인 노동자들과 해외에 진출한 한국 기업에 고용된 현지 노동자들이 이미 그 피해를 보고 있다. 심지어 같은 민족인 연변 조선족들도 단지 우리보다 못산다는 이유만으로 서럽게 차별당한다.
과연 우리가 이러한 모습으로 21세기를 이끌어 나갈 수 있을까? 지금과 같은 의식 상태는 갈수록 긴밀하게 하나로 엮여 가는 지구촌 사회로 나아가는 데 결정적인 걸림돌이 될 것이다. 우리의 지독한 자민족 중심주의는 결국 우리 스스로를 비좁은 우물 안에 계속 가두어 두는 족쇄가 될 것이다. 이제 세상은 점점 많은 것이 열리고 바깥으로 드러나 서로가 서로를 훤히 들여다볼 수 있는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 우리의 삶도 속속들이 지구촌의 다른 주민들에게 노출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들은 우리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그 시선을 의식하지 못하면 우리는 세계인으로 나아갈 수 없다. 지금껏 익숙해진 우리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보편감각’을 육성하지 않으면 한국인은 지구촌의 소외된 벽지 주민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첫댓글 나의 주장이 아님. 그냥 예시하는 거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