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자는 주관을 위한 관찰도 중요하지만 표현을 위한 배려에서 객관적 요인이 작용해야 한다. 관찰 대상에는 자연현상, 사회현상, 사물 등이 있지만 미래에 대한 예측기능도 중요하다. 따라서 이 모든 관찰대상을 주관적으로 관찰을 하면서 객관적 입장에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주관에 너무 몰입하여 객관성을 무시하게 되면 시를 쓴 자신만이 아는 악성 난해시가 된다. 악성 난해시란 시의 가치가 없는 난해시를 일컫는다. 일반적으로 시란 고도의 정신적 산물이며 논리의 비약과 문장의 응축으로 성립되는 만큼 산문보다 난해하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그러나 시를 쓸 때 너무 주관에 파묻혀 논리의 비약을 시도한 나머지 문학의 범주를 일탈하는 결과가 되어 시가 아닌 잡문으로 몰락하는 경우가 생긴다. 붓세(K.Busse)는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다.
산 너머 저 쪽
산 너머 저쪽 하늘 멀리
행복이 있다고 말들 하건만
아 남 따라 행복 찾아갔다가
눈물만 머금고 돌아왔네
산 너머 저쪽 하늘 멀리
행복이 있다고 말들 하건만
붓세의 관찰은 상상에 의한 것이다. 즉 시인의 예측기능의 소산이다. 산 너머 저쪽은 실제의 장소가 아니라 상상의 장소다. 그러므로 관찰에 있어서 예측기능은 시인에게 있어서 산문을 쓰는 경우와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붓세는 시적 표현에서 상상임을 나타내지 않고 실존으로 그렸다. 실존으로서 상상으로의 유도는 시작에 있어서 기교에 속한다. 허황된 사람에게의 경고를 자신의 주관적 견해에다 객관적 요소(말들 하건만)를 접합해서 결론으로 유도했다. 나의 시 가운데 '씀바귀'가 있다.
씀바귀
남은 날
모두 주고
얻고 싶은 단 한 사람
이룰 수 없는
엉겅퀴 가로 놓여
생으로 앓다가
쓰디 쓴
그리움은
하얗게 익어간다
뿌리가
더 쓴
씀바귀라던가
사랑은
위 시의 관찰대상은 씀바귀라는 실물과, 사랑, 그리움이라는 무형체이다. 즉 실제 관찰한 것을 경험을 통한 예측기능으로 접목시켜 하나의 시로 완성시켰다. 관찰은 씀바귀지만 표현은 사랑과 그리움이다. 그러므로 관찰과 표현을 직결시킨 것이 아니라 관찰대상물을 그리움과 사랑에 응용한 것이 된다. 이 점이 바로 시문이 산문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보기가 된다. 즉 시의 기교에 있어서 은유(Metaphor)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은유법은 표현에 있어서 가장 흔히 사용되는 수사법의 하나이다. 은유를 간단하게 표현하자면 바로 비유법이라고 하면 알기 쉽다. 즉 사물의 본뜻을 숨기고 표현하려는 대상을 암시적으로 나타내는 방법인데 우리나라 현대시에 있어서 가장 흔하게 사용되는 수사법이다. 가령 시 씀바귀 끝 연 '뿌리가 더 쓴 / 씀바귀라던가 / 사랑은'에서 사랑을 씀바귀로 비유한 따위가 바로 은유법이다.
국어사전의 은유법 설명에서 예를 든다면 '내 애인은 한 송이 장미'등이 있다. 직유법의 경우와는 상반되는 경우라 하겠다. 직유법은 비슷한 성질이나 모양을 가진 두 사물을 '같이' '처럼' '듯이'와 같은 연결어로 결합하여 직접 비유하는 수사법인데 예를 들면 '그 여자는 여우처럼 교활하다' '쟁반 같이 둥근 달' 따위다.
이 두 경우 시의 표현에 있어서 은유법이 더 많이 사용되고 있는 것은 시가 갖는 함축성 때문이다. 그러나 은유법이 지나치면 시를 쓴 사람이나 읽는 사람 다 같이 뜻 모르는 시가 되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이른바 악성 난해시가 그것이다.
우리나라 현대시 시단에서 그런 경향이 유행병처럼 번져 시인 자신이 무슨 철학적 식견을 가진 것처럼 우쭐대는 경향이 한때 풍미했다. 아직도 그 병폐가 이어지고 있다. 이는 바로 시인의 오만에서 기인한 결과다. 은유법이 시 표현에서 소중하지만 사용 시 고뇌하는 자세가 전제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