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을 걷다
친구들과 번개팅을 가졌다. 2월의 끝남과 3월의 새로움을 기약하며 충동적으로 기획한 모임이다. 이제 현직에 남아있는 동기들도 거의 없다. 모두가 새로운 소위 ‘제3의 인생’을 시작해야 하는 시기이다. 가끔 언론에 등장하는 100세 넘은 철학자 김형석의 말에 의하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고 보람이었던 시기가 60세에서 75세까지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약 10년에서 15년이 인생의 황금기라는 말이다. 각자의 사정은 다르겠지만 남은 날들이 삶의 재미를 넘어 ‘의미’를 찾는 시간이길 기원해보고 싶다.
온 몸에 쩌며드는 술기운을 씻어내기 위해 ‘군산’으로 갔다. ‘군산’은 과거에는 횟집을 방문하기 위해, 새만금 방조제를 보기 위해, 근대화 거리를 탐방하기 위해 찾던 곳이다. 현대 중공업 공장이 문을 닫은 뒤, 군산은 더욱 쪼그라들고 있다.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쇠락을 관찰할 수 있는 ‘군산’의 중심으로 갔다. 시청 옆 모델에 숙소를 정하고 군산시청에서 내항이 있는 근대화 거리까지 답사를 시작했다.
1. 군산의 중심을 걷다(군산 시청에서 군산 근대화거리까지)
군산시청에서 내항쪽으로 걷는다. 내항 근처는 군산의 가장 대표적인 근대화거리가 있다. 일요일어서 거리는 한산하고 조용하다. 중앙로에 가까워져서도 여전히 사람들은 많지 않다. 근대화 거리가 가까워지자 그때서야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근대 박물관은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모여든 젊은 학부모들의 발길이 눈에 띈다. 일요일임에도 식당은 오후 3시부터 5시까지의 브레이크 타임을 충실하게 지키고 있다. 거리의 벽화에는 채만식의 <탁류>장면이 장식되어 있었다. 읽어보지 못한 근대 한국의 대표적인 장편소설이다. 휴일이고 관광지임에도 활기는 무언가 부족하다.
유독 사람들이 줄지어 서있는 곳을 발견했다. 빵집이다. 군산의 대표적인 명물인 <이성당>이다. 사람들이 이곳에만 몰려 있는 듯하다. 아이러니 한 것은 바로 옆에 있는 제법 큰 ‘군산초등학교’의 폐교 안내문이다. 군산의 중심에서 학교는 사라지고, 남은 것은 언론에 관심을 받는 ‘관광지’만 남아있다. 하지만 이 곳뿐이다. 다른 곳은 철저하게 외면받고 있었고, 제대로 된 식당은 관광지를 제외한 시내에는 없었다. 상업적인 수요와 공급의 원리 때문일 것이다. 군산을 비롯해 전북은 대표적인 인구 감소지역이다.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 주변에는 많은 모델이 있다. 어떤 모델 앞에 붙어있는 안내문에는 ‘대실 13,000원 숙박 25,000원’이라고 써있다. 어떤 지역보다도 저렴한 가격이다. 수도/전기료도 안 될 비용이다. 그만큼 손님이 없다는 증거일 것이다. 내가 구한 숙소도 45,000원으로 상대적으로 비싸지만 그만큼 다른 모델보다는 제법 깨끗한 편이었다.
2. 군산, 금강호에서 금강을 걷다
한 동안 한강(북한강/남한강) 답사를 했다. 춘천의 북한강에서 여주의 남한강까지 한강의 상류쪽을 향해 걸었다. 여유로운 한강의 흐름과 그 사이에 보이는 정갈한 중부지역의 특색을 천천히 눈에 담았다. 올해부터는 다른 강의 본격적인 답사를 시작할 예정이다. 첫 번째 답사로 ‘금강’의 하굿둑에서 출발한다. 군산 금강호에 주차하고 금강의 상류 쪽으로 걸어간다. 금강의 하류는 한강보다도 풍성하고 넓고 여유롭다. 군산 지역에 만들어진 ‘금강 자전거길’을 이용한다. 강 건너편 쪽에는 충남 서천이 보인다.
금강길은 강과의 거리가 가깝고 전경이 개방적이다. 금강대교의 웅장한 모습이 금강길에서 볼거리를 제공한다. 강을 따라 걷는 길은 자칫 지루하고 단조로울 수 있다. 비슷한 물줄기와 똑같은 모양의 길을 따라 걷기 때문이다. 그때 길의 활력을 넣어주는 것이 주변 풍경과 인공적인 건축물이다.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보여주는 아름다운 광경을 보여주는 것이다. 금강대교가 그렇다. 다리가 있음으로 강은 특별한 이미지를 창출하고 기억으로 남게 된다.
금강길 ‘군산’구역의 또 다른 볼거리는 강과 나포평야 사이에서 걷는 여유로움이다. 한 쪽에는 강의 흐름이 다른 한 쪽에는 넓게 펼쳐진 평야의 고요함이 공존한다. 시야를 막는 어떤 방해물도 없이 확 트인 강과 평야는 걷는 내내 가슴을 시원하게 만들어준다. 길 중간에 만들어진 ‘탐조회랑’은 이곳에 많은 새가 서식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한 무리의 새떼가 강 위를 날고 있다. 돌아오는 노선이 없기 때문에 약 2시간 조금 더 걷고 귀환했다. 이런 코스는 계속 걷는 것이 좋지만 교통표지판의 버스 간격은 약 240분이라고 써있다. 언제 올지 알 수 없는 버스라는 것이다. 날씨도, 길도, 여유로움도 좋았던 답사였다. 술에 찌들은 몸에 부담을 주지 않는 코스이다. 피곤한 몸에 등산은 무리이기에 술을 마신 다음 날 이런 곳이 좋을 것이다. 또한 체력이 떨어져서도 걸을 수 있다는 점에서 ‘걷기 좋은 길’에 등록한다.
3. 화순 운주사와 화순 도곡온천의 숙소
다음 날 ‘경전선’ 역답사를 위해 화순에 숙소(여기서도 숙박비는 저렴했다. 3만원에 도곡온천 무인델에 숙소를 얻었다)를 정했다. 숙소로 가기 전에 화순의 신비스런 운수사를 찾지 않으면 후회될 것같아 저녁 무렵에 운주사로 갔다. 역시나 입구부터 다른 절과는 다른 기운과 형세로 맞이한다. 온갖 다양한 돌들의 신비스러움이 결집되어 있는 천년 사찰 ‘운주사’의 역사와 비밀은 아직도 밝혀지고 있지 않았다고 한다.
곳곳에 만들어진 불상과 탑을 보면서 유독 이 곳의 석상들은 날씬하고 유연하게 생겼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마치 아프리카나 오세아니아 지역의 원시 조각상처럼 이국적인 형태와 표정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납작한 몸체에 길쭉하게 새겨진 얼굴은 서산 마애불의 통통하면서도 온화한 한국적인 얼굴과는 대비되는 운주사 부처님들의 독특한 개성이다. 하지만 그 얼굴은 또다른 한국인의 얼굴일 것이다.
첫댓글 - 천불천탑의 극락 세계로 가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