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열의 나라 스페인(Spain/España)<6>
<5> 세비야 시청사
세비야 도심 누에바 광장(Plaza Nueva)에 있는 세비야 시청사(市廳舍)는 스페인의 플래터레스크(Plateresque) 건축의 거장이었던 건축가 리아뇨(Diego de Riaño)가 15세기 말에 건축을 시작해 16세기에 완성한 유서 깊은 시청사로, 에스파냐에서 대표적인 플래터레스크 양식의 건축물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
플래터레스크(Plateresque)는 원래 은세공을 뜻하는 단어로 16세기에 스페인에서 유행한 고딕, 르네상스, 이슬람의 여러 요소를 건물의 외관이나 내부 장식에 사용하는 건축기법이다.
현재 누에바 광장 쪽의 시청사 정면은 건축가 리오스(Demetrio de los Ríos)와 마론(Balbino Marrón)이 19세기에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새롭게 조성한 것이라고 한다.
이 시청사는 세비야의 대표적인 관광 명소이자 랜드마크(Landmark)라고 하는데... 글쎄 나는 골목길의 자그마하고 아기자기한 성당들이 훨씬 더 예뻐 보인다. 시내 가운데쯤에 누에바 광장(Plaza Nueva)이 있는데 그다지 크지는 않지만 시민들의 좋은 휴식처가 된다. 광장 한쪽에는 12세기 초 카스티야 왕국의 왕이었던 페르난도 3세(Pernando III) 기마상이 우뚝 솟아있다.
세비야 도심 풍경 / 세비야 시청사 / 페르난도 3세 기마상
페르난도 3세는 스페인 서북부에 있던 조그마한 레온왕국(Kingdom of León)을 카스티야왕국과 완전히 통합시킨 위대한 왕으로 알려져 있다. 스페인은 12세기에 아라곤(Aragon) 왕국, 나바라(Navarra) 왕국, 카스티야(Castilla) 왕국 그리고 남부 안달루시아지방의 무슬림 왕국인 그라나다(Granada)의 네 나라가 있었지만 우리나라 부족국가 시대처럼 그 이전에는 훨씬 더 많은 작은 나라들이 있었다고 한다.
2. 고대 도시 코르도바(Córdoba)
알카사르 성채와 정원 / 코르도바 메스키타 대성당 / 로마교
안달루시아 지방의 중앙에 위치한 코르도바는 세비야에서 약 135km 북동쪽에 위치한 고대도시로, 세계 최대 규모의 메스키타(Mezquita/회교 모스크)와 중정(中庭)이 아름다운 알카사르 성채, 도시 가운데를 흐르는 과달키비르 강에 설치된 로마교 등이 볼만하며, 무데하르 이슬람 양식과 유럽 여러 고대 건축양식들이 복합적으로 사용된 건축물들로 들어차 있는 도시는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코르도바는 7세기, 이슬람에게 점령되는데 아브드 알 라흐만 1세(Abd ar-Rahman I)는 우마이야 왕국을 건설하고 수도로 삼았다. 서양의 칼리프라고 불리던 라흐만 1세에 의하여 코르도바는 유럽 최대의 도시로 발돋움 하였고, 유럽에서 가장 앞선 문화를 꽃피웠던 도시로 알려져 있다.
13세기 들어 카스티야의 왕 페르난도 3세에게 정복되어 그리스도교 국가인 스페인에 합병되었고 1482년 스페인 최초의 종교재판소가 설치되었으며, 1492년, 이사벨 여왕이 이슬람 최후의 보루였던 그라나다를 공략하여 이베리아 반도에서 무어인들을 최종적으로 몰아낼 당시 이사벨 여왕 부부가 머물렀던 곳이라고 한다. 같은 해 콜럼버스가 이사벨 여왕으로부터 후원을 받아 신대륙 탐험을 떠나기 전에 이사벨 여왕과 페르난도 왕을 알현한 곳도 이곳이라고 한다.
알카사르(Alcázar)는 성이라는 스페인어로, 도시마다 거의 있는데 이곳 코르도바의 알카사르가 가장 아름답다고 알려졌고 성곽 자체의 웅장함이나 아름다움 보다 중정(中庭:정원)이 특히 아름답다. 메스키타(Mezquita)는 원래 스페인어로 모스크(Mosque)를 뜻하는 일반명사인데 특히 이곳 코르도바에 있는 이슬람사원의 모스크를 일컫는 고유명사로 사용된다고 한다. 그러나 이 이슬람 사원은 가톨릭 성당으로 개조되었고 이슬람 모스크는 가톨릭 성당의 종탑으로 개조되었는데 스페인에 남아있는 메스키타(모스크/종탑) 중에서 최대 규모라고 한다. 현재 이 성당의 명칭은 ‘코르도바 산타마리아 성당’(Catedral de Santa María de Córdoba)이다.
도심의 과달키비르 강을 가로지르는 로마교는 2천 여 년 전 로마 아우구스투스 황제 때 건설된 다리라고 하는데 16개의 아치가 있고 길이는 223m라고 하는데 너무나 아름답다. 다리 옆에는 로마교를 지키기 위하여 세웠다는 요새인 칼라오라탑(Torre de la Callahorra)이 있다.
3. 지브롤터의 항구도시 타리파(Tarifa)
스페인의 최남단이자 유럽대륙의 최남단인 타리파(Tarifa)항은 지브롤터(Gibraltar) 해협을 지키는 요새로 옛날부터 바람이 거세게 부는 곳으로 유명하다. 타리파항에서 배로 20분 남짓이면 아프리카의 최북단 모로코의 탠지어(Tanger:탕헤르) 항에 닿는다. 무슬림인 무어인(Moors)들의 유럽진출 발판이 되었던 타리파는 당시 무슬림과 기독교들 간의 치열한 쟁탈전이 벌어졌던 곳이다. 타리파 항에는 구스만성(Castillo de Guzmán/Castle of Tarifa)이라는 성이 아직도 제법 온전한 모습으로 있는데 서기 960년 당시 코르도바를 점령하고 있던 무슬림의 칼리프 라흐만 3세(Abd-ar-Rahman III)가 처음 건설했다고 한다.
구스만 성 / 산초 4세 좌상 / 타리파 항구모습
1292년에는 카스티야의 왕 이었던 산초 4세(Sancho IV)가 무슬림 세력을 몰아내고 점령했고, 다시 구스만(Alonso Pérez de Guzmán)이 이어받아 증축한 후 구스만 성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 구스만에 의하여 무슬림이 차지하고 있던 지브롤터 해역은 750년의 이슬람 지배에서 완전히 벗어나 스페인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 공로로 구스만(니에블라 백작)은 스페인 통일의 어머니 이사벨 1세로부터 지브롤터 문장(紋章)을 수여받았다고 한다. 구스만성 입구에 가면 분수 가운데 네모난 좌대(座臺) 위에는 사자를 쓰다듬고 있는, 왕관을 쓴 산초 4세의 좌상이 있다. 타리파(Tarifa)는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 카디스 (Cádiz) 주의 도시로, 인구는 2만 명 정도이다. 타리파에서 배로 20분이면 아프리카 탠지어로 갈 수 있다.
4. 피카소의 고향 해변도시 말라가(Malaga)
스페인의 대표적인 화가 피카소의 출생지인 남부 항구도시 말라가는 기원전 13세기 페니키아인들이 건설했다고 하는 고대도시인데 현재는 인구 60만 정도로 스페인에서도 제법 큰 도시에 속한다.
말라가는 피카소 미술관, 대성당, 고대 로마 원형극장, 알카사바 요새 등이 유명한데 기후가 온화하고 인근의 말라게따(Malagueta) 해변은 여름철 휴양지로 이름이 나서 많은 피서객들이 찾는 휴양도시이다.
피카소 미술관은 그의 가족이 살던 집터로 피카소는 이곳에서 10살까지 살았다고 한다. 2003년 10월, 피카소가 죽은 후 그의 어릴 적 꿈이었다는.... 생가를 고쳐 미술관으로 개관하였는데 그의 유족인 며느리 크리스티네(Christine Ruiz-Picasso)가 133점, 손자 베르나르드(Bernard Ruiz-Picasso)가 22점을 기증하여 총 155점의 피카소 작품을 전시한 미술관으로 운영하고 있다. 전시품은 주로 1901~1972년 사이의 작품이고 말년에 그린 소품들과 미완성품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고 한다.
로마극장과 알카사바 성채 / 피카소 미술관 입구 / 히브랄파로 성곽
로마극장 유적 / 말라게따 해변 / 말라가 대성당
말라가 대성당(Catedral de Málaga)은 1528년에 짓기 시작하여 1782년에야 완공된 성당이라니 완성되기까지 실로 250년이라는 기간이 소요된 성당이다. 건축 양식은 르네상스형식인데 안달루시아지역에 남아있는 건축물 중에서 가장 훌륭한 것으로 손꼽힌다고 한다.
1528년에 실로에(Diego de Siloé)가 처음 설계할 당시에는 남쪽과 북쪽에 두 개의 탑을 세우기로 계획했으나 자금부족으로 북쪽의 탑만 세우고 중단하고 말았다. 그래서 양쪽에 균형을 잡고 있어야 할 탑이 하나밖에 없어 ‘외팔이 여인(La Manquita)’이란 별명을 얻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탑은 안달루시아지역 성당들 탑 중에서 두 번째로 높은 탑이라고 한다. 말라가 대성당은 고딕, 바로크, 르네상스 양식이 잘 조화를 이루고 있고, 성가대석과 조각상, 부속 건물들도 아름답기로 소문이 났다. 말라가의 또 하나의 자랑꺼리는 알카사바 성채(Alcázaba de Málaga)와 히브랄파로(Gibralfaro) 성, 그리고 로마 반원형 극장유적(Teatro Romano)이다.
언덕 위에 견고하게 축조된 알카사바 성채는 너무도 웅장하고 멋질뿐더러 그 성벽 아래 축조된 로마시대의 극장유적 또한 눈길을 사로잡는다. 알카사바 성채는 11세기 중반 이슬람에 의해서 지어졌다는데 이미 2세기에 지어진 로마시대의 반원형 극장유적을 허물지 않고 그 뒤편에 성채를 지었다.
알카사바 성채에서 언덕 위를 한참 오르면 히브랄파로 성까지 볼 수 있는데 외관도 무척 인상적이고 아름답지만 성 안의 정원이 특히 아름답다. 이 요새는 스페인이 통일되기 전인 1487년, 이사벨 1세(Isabel I)와 남편인 페르난도 2세(Fernando II)의 군대를 맞아 말라가 시민들이 결사 항전을 벌였던 장소로 유명하단다.
말라가 시민들은 3개월 동안이나 포위되어 배고픔에 지친 나머지 결국 항복했고 요새는 기독교도의 수중으로 넘어갔다. 이후 이사벨 1세는 한동안 이 요새에서 살았는데 육중한 돌로 쌓은 튼튼한 방벽이 요새까지 오르는 지그재그 형태의 가파른 산길을 따라 길게 이어져 있다. 히브랄파로 성은 고대 페니키아인들이 기원전에 세웠던 요새가 무너진 자리에 14세기 초엽 새롭게 세운 대규모 요새로, 높이 131m의 산 정상에 자리 잡고 있다.
당시 그라나다(Granada) 왕국을 통치하던 이슬람 군주 유수프 1세(Yusuf I)가 건설했는데 ‘히브랄파로’라는 명칭은 ‘빛나는 바위’라는 뜻의 고대 페니키아어 히벨파로(jbel-faro)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정상 부근에 전망대가 있는데 말라가 항구를 포함한 시내 전경과 드넓은 지중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어 관광객들에게 매우 인기 있는 장소이다. 무어인들의 성(城)이었던 알카사바는 훗날 대대적인 보수를 하고 다시 쌓아 박물관과 정원으로 이용되고 있지만 히브랄파로 성채는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