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과 폐의 관계…‘폐암수술 권위자’ 심영목 교수가 등산을 좋아하는 이유 |
많은 사람들이 등산을 다니지만 왜 좋은지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막연히 ‘건강에 좋겠지’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인간은 평소 호흡할 때 신체의 노폐물이 배출되지 않고 약 40%가량은 항상 남아있다고 한다. 그러나 깊은 호흡을 계속 할 때는 40%정도 남아있는 노폐물이 거의 배출된다고 한다. 그게 바로 등산이 좋은 점이다. 높은 산에 올라갈 때 수 시간 동안 계속 깊은 호흡을 할 수밖에 없다. 자연을 보며 맑은 공기를 마시는 등산을 통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신체의 노폐물이 배출돼 건강에 도움도 되고, 정신까지 상쾌해지는 경험은 누구나 했을 것이다.
폐암수술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삼성서울병원 심영목 교수가 자신의 사무실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폐암수술의 대가, 폐암 사냥꾼이라는 평가를 받는 삼성서울병원 암센터장 심영목(沈英穆·55) 교수가 왜 산을 좋아하는지, 등산을 자주 하는지 한번 들어보자. 그는 명실상부 국내 폐암·식도암 수술 1인자다. 그로 인해 삼성서울병원 암 수술팀은 국내에서 명성과 권위를 인정받을 뿐 아니라 암 완치율과 생존율 면에서 미국, 일본 등 세계적인 병원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 삼성서울병원을, 아니 암센터를 개원 1년 만에 세계적인 병원으로 끌어올린 장본인이며 일등공신이다.
폐와 산, 산과 폐에 대해서 그를 떠올려 봤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무척 상관관계가 높다. 산에 가면 폐와 심장이 좋아지는 건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높은 산에 올라가려면 기본적으로 폐활량이 많아야 한다. 또 외과 의사는 수술해야 한다. 수술은 기본적으로 냉철함과 강한 체력을 필요로 한다. 어머니 같은 자상함과 아버지 같은 배짱도 갖춰야 한다. 이 모든 것 다 아우르는 도전정신이 있으면 금상첨화다.
산과 수술, 수술과 산의 관계는 도전정신에서 시작된다.
적어도 심영목 교수에게는 그렇다. 그의 산 이야기부터 지금까지의 인생을 풀어보자.
캐나다의 아름다운 호수에서 부부가 함께.
그는 유전적으로 결함(?)을 갖고 있었다. 차를 타기 전까진 몰랐다. 어릴 때부터 차를 탈 때마다 차멀미를 겪었다. 차를 타는 게 싫었다. 차라리 걸어 다니자 싶었다. 웬만한 거리는 걸었다. 중학교 때 잠시 도봉산 근처에 산적도 있는데 산을 좋아했기 때문에 산에 수시로 오르내리며 걷는 습관이 자동으로 생겼다. 차를 타는 게 싫을 정도로 가속이 붙었다. 차멀미라는 유전적 결함으로 인해 걷는 습관은 길러졌고, 걷기에 가장 좋은 산행은 시작됐다.
고교 때도 산행은 계속 된다. 경기고 시절 한 친구가 이민 간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지리산에 같이 가 우정을 나누자"고 제의했다. 4명이 동참했다. 금요일 밤 완행 기차를 타고 구례까지 내려갔다. 버스로 다시 마천으로 이동했다. 산행 출발지였다.
세석평전에서 텐트를 치고 하루를 지냈다. 텐트는 2인용뿐이었다. 두 사람은 안에서 자고, 고교생 심영목과 친구 장하성(현 고려대 경영대 교수)은 텐트 밖에서 부둥켜안고 잤다. 때는 5월이었지만 그래도 지리산이다. 지리산에서의 5월 밤 추위는 만만찮다. 겪어본 사람은 안다. 아침에 일어났다. 가슴 부근에 하얗게 서리가 내려 있었다. 추워서 엎치락뒤치락했지만 그래도 잠은 들었던 모양이었다.
2003년 설악산에서 비박하며.
산행을 끝내고 서울로 밤 기차를 타고 올라왔다. 월요일 용산역에 도착하니 새벽 4시였다. 학교로 바로 갔다. 친구 두 명은 수업 중에 보이지 않았다. 나중에 보니 양호실에 누워 자고 있었다. 잊지 못할 추억의 산행이다.
심 교수는 "힘든 일일수록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법"이라며 "그 추운 곳에 잔 경험이 지금까지 비박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어려운 수술에도 두려움 없이 도전하는 힘의 원천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2007년 병원 산악회에서 운길산에서 눈이 펑펑 내리는 날 산행을 즐기며.
고교 때의 산행은 이뿐만 아니다. 산악부 소속이 아닌 데도 3학년 때 록클라이밍을 혼자 시작했다. 의지에 가까운 우연히 계기가 됐다. 북한산에 등산가서 인수봉을 오르는 클라이머들을 봤다. 우연이다. 재미있을 것 같고,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도전정신이 강한 소유자다.
오르기 위해선 자일이 필요했다. 남대문 시장 가서 넓적한 낙하산 줄 40m가량을 샀다. 그걸 이리저리 묶었다. 지고 인수봉에 올라갔다. 본인의 의지다. 그래서 의지에 가까운 우연이라는 거다.
2007년 바르셀로나 폐암학회에서. 뒤쪽은 국립암센터장인 이진수 박사 부부.
오른쪽은 국립암센터 폐암전문의와 그의 딸.
심 교수는 말한다. "무모하지만 도전정신은 무척 강했던 것 같아요. 클라이머는 퇴로가 없잖아요. 떨어지면 죽는 거고, 죽기 싫으면 올라가야 하는 외길이잖아요. 수술도 마찬가지예요. 외과의사가 일단 수술을 시작하면 수술 중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이겨내고 끝내야 합니다.
어렵다고 그만둔다면 환자의 운명은 그 순간에 끝나는 것이겠지요? 수술을 안 하면 죽을 수도, 죽는 것과 마찬가지로 살 수도 있어요. 그러나 수술하면 죽을 가능성보다는 제대로 살 가능성이 많죠. 그것 때문에 수술하는 겁니다. 도전과 결단과 배짱이 있어야 해요. 나의 그런 가치는 산에서 배운 것 아닌가 생각 듭니다."
실제로 그는 죽음을 얘기할 때도 담담하게 얘기했다. "사람은 항상 죽는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야 해요. 몇 년 전 고교 동창 의사 3명이 2달 사이 저 세상에 갔어요. 한 명은 흉부외과 의사였어요. 이빨 치료하면서 항생제 쇼크로 그만 갔죠. 모두 어이없어했지만 그게 인생 아닙니까.
또 다른 친구는 모임에 왔다가 가슴이 답답하다 했어요. 그 자리에 있던 친구 의사들이 '그럼 잠시 쉬어라. '고 했어요. '안 되겠다. '며 집에 간다며 나갔다 가는 길에 운명했어요. 참 얼마나 어이없어요. 하지만 담담하게 받아들여야죠. 모 대학 심장내과 교수는 산에 오르다 심장마비로 죽었어요.
심장전문의가 심장마비로 사고를 당한 거지요. 다른 사람들은 아쉬워했지만 난 '좋아하는 산에 오르다 죽은 게 어떤 면에서는 행복이 아닌가 생각해요. 인생은 알 수 없고, 단지 조금 조심해서 살 필요는 있다고 봐요."
2007년 덕유산 눈꽃산행하며 직원과 함께.
마치 달관한 노스님 같은 말씀이다. 너무 달관한 듯해서 한편으로 충격으로, 다른 한편으로 신선하게 다가왔다. 워낙 생과 사의 고비를 자주 봐 왔고, 현장을 지켰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닌가 싶었다.
아직 고교생 심영목의 산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혼자서 무모하게 인수봉에 오르는 재미를 붙인 그는 아예 활동 범위를 넓혀 갔다. 선인봉, 주봉 등으로 오를만한 곳에는 혼자 힘으로 올라갔다. 그게 도전하는 인간 심영목이다. 한 번도 후퇴한 적은 없다. 그가 한국에서 독보적 폐암·식도암 수술 권위자가 된 것도 이러한 성향 때문이다.
87년 원자력병원에 갔을 때였다. 당시 원자력 병원엔 흉부외과가 없었다. 없으면 만들어야 직성이 풀린다. 그곳에서 폐암·식도암 수술을 처음 시도했다. 의료 선진국에서도 1980년까지 식도암 수술은 100명 수술에 사망률이 30명 내외일 정도로 높았다. 하겠다고 했다.
주변에선 "제대로 가르쳐 준 스승도 없고, 잘못하면 죽기 일쑤고, 힘든 일을 왜 선택하려 하냐"고 만류했다. 그렇다고 그만둘 심영목이 아니었다. 그에겐 오직 '죽느냐, 하느냐' 두 가지만 있을 뿐이었다. 클라이머의 운명이다. 아니 클라이머는 위험한 고비엔 조심스럽게 하산하면 된다. 그의 하산은 바로 죽음이다. 클라이머보다 더 가혹한 운명의 산에 오르고 있었다. 그 스스로 선택이다.
그의 선택은 그를 세계적인 의학자로 만들었다. 보통 우리나라에서 식도암 환자가 연간 1,600여명 정도 발생하고, 그 중 600명 전후 수술을 받는다고 한다. 지난해 그가 수술한 환자가 170명이다. 일본에서 최고 유명한 병원의 식도암 수술 전체 건수가 100여건 정도밖에 안 된다. 그보다 그가 혼자 한 수술이 더 많다. 그의 업적이 이 정도니 더 이상 설명도 필요 없다. 그의 끊임없는 노력은 그래도 계속 된다.
2007년 눈 내린 마이산에서.
지난 3월초 대만 암센터를 벤치마킹하기 위해 갔다. 식도암 수술 평균 생존율이 22%며 세계적인 수준이라고 자랑했다. 심 교수는 20년 가까이 1,500명 정도 식도암 수술을 했다. 삼성서울병원에 와서 평균 생존율이 정확히 53%다. 세계 최고 수준이다.
"암센터는 정말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생존율은 미국에서 제일 좋다는 병원과 비슷한 수준이고, 시설은 더 우수합니다. 환자치료는 시설, 의료장비, 의사와 간호사를 포함한 의료진이 뛰어나야 가능한 일입니다. 암센터 개원 1년 만에 이 정도의 훌륭한 성과는 모두의 합작품입니다."
그의 록클라이밍은 대학시절에도 계속 됐다. 혼자서 오르던 고교생 심영목은 대학시절엔 간혹 동료와 같이 가기도 했다. 가면 무조건 톱이다. 강인한 체력과 무모한 도전은 그렇게 키워졌다. 무모한 도전은 상처를 남기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에게 상처가 없었다. 어쩌면 가혹한 운명도 그의 도전을 높이 사서 비켜 갔는지 모를 일이다.
클라이밍 하면서 3번이나 떨어졌다. 한번 떨어져도 죽을 수 있는 게 록클라이밍이다. 3번이나 떨어졌는데 어떻게 멀쩡할 수가 있나?
"그것도 한마디로 운명이라고 봐요. 3번 떨어진 건 실패예요. 실패는 성공의 밑거름이죠. 더 실패하면 안 된다는 강한 자책과 한 번 더 하면 진짜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배짱과 체력, 이 모든 게 산에서 키워졌어요. 그 힘으로 여태 유지하고 있죠."
그는 지금 삼성서울병원 산악회 회장을 맡고 있다. 산에 대한 끈은 놓지 않고 있는 것이다. 요즘 시간이 많지 않아 산에 갈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다. 그래서 집을 아예 산 가까운 곳으로 옮겼다. 병원엔 오전 6시까지 출근한다. 새벽 4시30분 어김없이 일어나 신문보고 준비를 한다. 여태 이 시간을 어겨본 적이 없다. 규칙적인 사람이 다 유명해지는 건 아니지만, 유명한 사람은 다 규칙적이다. 규칙적인 사람이 가능성이 훨씬 크다는 얘기다.
퇴근은 저녁 9시에 한다. 물리적으로 산에 갈 시간이 없다. 토, 일요일이나 시간 나면 바로 인근 불곡산에 간다.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책이다. 등산의 중요성은 누구보다 잘 안다.
"등산만큼 사람 몸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운동은 없어요. 수술 후 스트레스 해소도 등산으로 합니다. 정신건강뿐 아니라 육체적으로도 많은 도움을 줍니다. 많이 걷는 것은 몸에 무리를 주지 않으며 유산소 운동으로 유해성분을 배출합니다. 등산으로 키워지는 넓적다리 근육은 무릎관절 손상도 막아주고 몸의 균형을 잡아주죠.
특히 외과의사는 장시간 수술하기 때문에 체력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등산은 바로 체력과 근육을 동시에 길러줍니다."
산악회에 모처럼 동참할 기회가 있으면 동행할 레지던트들은 지레 겁을 먹는다. 워낙 빠르고 체력이 강하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월악산에 가을산행 갔을 때다. 금요일 저녁 늦게 출발했다. 밤 9시 현지 도착해서 즐거운 마음에 다들 새벽까지 무리했다. 모두 '다음날 간단한 산행으로 마치겠지. '라고 생각했다. 어김없었다. 새벽 6시 일어나 한명도 빠짐없이 출발했다. 제자 한명은 끈을 목에 두르고 중간에 휴지를 걸어 올라갔다. 토하며 닦고, 토하며 닦고,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는 장면이다.
그에게 왜 아직 산에 가느냐고 물어봤다. 한마디로 돌아왔다. "아름답고 좋은 걸 찾아서"라고. 등산은 인간이 즐기는 가장 보편적 방법이다. 덤으로 얻는 게 너무 많다. 돈 안 들고, 육체 정신 건강에 좋고 그는 특히 겨울 눈꽃 산행을 좋아한다.
고교생 때의 지리산 추억과 한참 세월이 흐른 후 겨울 덕유산 눈꽃 산행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눈꽃 산행의 위험에 대해서도 "좋아하는 산에서 죽으면 더 좋지 뭐"라고 답변이 돌아온다.
사람을 살리는 일이 직업인 심영목 교수. 항상 살리면서도 그게 가장 보람 있는 일이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30여 년 동안 사과 한번 못 먹던 환자에게 성공적인 수술로 사과 맛을 보게 했을 때 흐뭇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인간적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말은 '과거는 지나갔기 때문에 없고, 미래는 오지 않았기 때문에 없다. 항상 오늘 충실히 살아라. '이다. 오늘에 과거와 미래가 모두 녹아있다는 것이다.
산은 항상 '거기에' 있다. 어제도 거기 있었고, 미래에도 거기 있다. 산이 바로 오늘인 것이다.
산이 주는 무한한 교훈 중의 하나다. 바로 심양목 교수의 산이다
첫댓글은글 잘 읽고갑니다 오늘을 충실히 살아라 정말 좋은말이네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