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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영동을사랑하는모임(영사모) 원문보기 글쓴이: 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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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천이 운반·퇴적하는 토사로 이루어진 지형을 충적지형(沖積地形)이라고 하며, 충적지형 중에서 가장 보편적이고 우리의 생활과 밀접한 것이 범람원(flood plain)이다. 범람원(汎濫原)은 홍수 시에 하천이 범람하는 저습지(低濕地)이다. 범람원에는 자연제방과 배후습지가 발달한다. 범람원은 지형적으로는 평탄하며 하천에 가깝게 위치한다. 표층은 하천에 의해 운반된 미고결 물질로 되어 있으며, 수문학적으로는 정기적인 홍수의 침입을 받는 지역이다. 그러나 흔히 말하는 범람원이란 곡류천에서 측방 이동(lateral shift)에 의해 측방 침식(lateral accretion)이 일어나는 지역으로 자연제방, 배후습지, 우각호와 같은 지형 경관이 나타나는 지역을 말한다. 따라서 범람원은 홍수 등에 의해 퇴적 작용이 활발한 하천 중,하류 지역에서 형성되기 쉽다. 홍수 시에 물이 하도(평상시 물길)를 흘러 넘칠 때는 유속이 격감하여 부유 하중으로 운반되던 토사 중에서 모래(細砂)와 실트(silt ; 입자가 아주 작은 모래)가 하도 가까이 쌓이며, 이로 인해 하천 양안에는 지면이 약간 높은 자연제방(自然堤防 ; natural levee)이 형성된다. 그리고 하도에서 멀리 떨어진 곳은 토사의 유입이 적어서 고도가 낮게 유지되며, 그 중에서도 낮은 곳은 배후습지(背後濕地 ; back marsh), 즉 ‘늪’으로 남아있게 된다. 자연제방은 인공제방과는 달리 지면이 넓고 평평하여 우리의 눈에 ‘제방’으로 들어오지 않으며, 큰 홍수가 지나갈 때만 가끔 물에 잠긴다. 이러한 곳은 취락의 입지에 유리하고, 어디서나 예로부터 농토로 이용되어 왔다. 반면에 배후습지는 수초가 자라는 ‘늪“에 해당하는 지형으로 매년 발생하는 작은 홍수가 지나갈 때에도 물이 역류(逆流)되어 물에 자주 침수된다. 우리나라에서는 하천의 범람을 막기 위해 인공제방을 쌓고 물을 빼내어 대부분 배후습지가 비옥한 농토로 전환되었고, 도시지역에서는 주택지로도 개발되었다. 따라서, 배후습지는 거의 전부 농경지나 그 밖의 용지로 개발되어 자연상태로 남아 있는 경우는 드물다. 오늘날 ‘상습적인 침수지역’이라고 일컫는 곳 중에는 과거 배후습지였던 곳이 많다. 이렇게 강의 유역에서 유속의 격감으로 운반하던 토사를 강의 중간에 쌓아 강이 분류(分流)되어 나타나는 것을 하중도(河中島)라 한다. 영동천(주곡천, 삼봉천, 양정천 합류)과 초강천(석천, 난곡천, 추풍령천, 어촌천, 궁촌천, 고자천 합류)이 2㎞의 간격을 두고 금강 본류에 합류한다. 영동군지역에서 발원한 영동천과 초강천이 직각 방향으로 금강 본류와 만나면서 유속의 감소를 가져오고, 물길을 억제하여 자연제방과 배후습지, 하중도의 발달을 가져왔다. 초강리의 하중도는 남북으로 길게(1,800m× 700m) 나타나 있는데, 하천에 접한 주변부는 중앙부에 비해 조금 높고 평탄한 모양이다. 하중도가 있는 곳은 금강의 중상류 지역인데, 계절과 장마나 홍수에 따른 유량의 변화가 크기 때문에 지도의 제작 연도에 따라 하중도의 모습이 약간 다르게 표현된다.(위의 <그림5-6-11 : 1919년>과 <그림5-6-12 : 현재> : 1919년과 현재 지형도 비교 참조) 1996년부터 건설하고 있는 금강 상류지역의 용담댐이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담수하기 시작하여 유량이 줄어들었으며, 태풍 루사(2002.08.31)는 소백산지를 따라 북상하다가 강릉지방으로 빠져나가면서 영동지역의 영동천과 초강천 유역에 집중호우를 내리고 엄청난 풍수해를 입혔는데, 금강 본류 유량의 증가보다 영동천과 초강천 유량의 증가가 상대적으로 더 많았고, 하중도는 3m 정도 물에 잠겼으며, 영동천의 유수가 직접 본류에 합류하면서 하중도 위쪽의 우측 유로가 막히는 현상이 나타났다. 따라서, 본류의 물줄기는 분류하지 못하고 하중도 좌측 유로만 남아 있으며, 우측 유로는 지금은 기능을 잃어 물이 흐르지 않고 고여 있다. 우측 유로변의 초강리는 영동천과 초강천 사이에 위치한 지역으로 금강변의 자연제방 위에 인공제방으로 보강하였다. 초강리의 제방 인근은 안쪽에 비해 조금 높아 심천중학교, 초강초등학교와 초강리 마을이 형성되어 있는데, 밭농사가 중심을 이루고 제방에서 멀어질수록 논농사가 이루어진다. 이렇듯 오늘날 원시적인 지형 그대로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며, 특히 인구 밀집지역에서는 시각적으로 그 흔적을 찾기 힘들다. 배후습지의 모습이 약간 남아있는 곳은 구양강교의 호서루 옆 등의 하중도 부근이다. 이 곳에서 심천면 초강리로 통하는 도로는 자연제방 위에 인위적으로 제방을 보강하여 포장한 것으로, 주변의 논은 배후습지를 개간한 곳이다. 둑 아래에는 물이 있는 늪(둠벙)이 있고, 둑을 따라 물이 흐를 수 있도록 수로를 만들어 놓았다. 이러한 정도의 흔적만이 겨우 남아 있는데, 지역 촌로의 말씀을 들어보면 홍수 시에 본류의 물이 역류하여 수시로 침수되는 지역이었으며, 습지 지역이 점점 줄어들어 경작지가 넓어졌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심천면 소재지에서 지탄 쪽(장동리)으로 하중도에 의해 갈라진 물이 다시 합쳐지는 지점을 지나 오른쪽에도 배후습지의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고, 배후습지의 일부는 인공제방을 쌓아 유료 낚시터로 활용되고 있거나 점차 매립되어 가는 실정인 반면에, 극히 일부가 <그림5-6-18>과 같이 배후습지 원형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안타까운 일이기는 하지만, 최근 용담댐의 방류로 인한 우리 지방의 저지대 침수 피해도 이러한 범람원에 해당되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볼 수 있다. 다음 인용 기사에 나오는 심천면 초강리 '지몽골' 이라고 부르는 곳이 바로 앞에서 언급한 하중도에 해당한다. 용담댐 방류 농민들 피해 속출 1. 건설부 국립지리원(1980), 1:50,000 지형도 심천 도폭, 국립지리원 발행 2. 권혁재 외(2000), 한국지리, (주)교학사, pp.256 3. 자연지리학사전편찬위원회 엮음(1996), 자연지리학사전, 한울아카데미, pp.49, 64, 194 4. 정장호(1977), 지리학사전, 경인문화사, pp.17∼18, 37∼38 5. 조선총독부(大正8年, 1919), 1:50,000 지형도 영동 도폭, 육지측량부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