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장
엄니 꽃 — 추석 보름달 아래 강강술래
추석이다.
추석이 다가오면
내 마음에는 먼저 둥근 보름달 하나가 떠오른다.
송편을 빚던 손길도 떠오르고,
객지에 나갔던 형들이 고향집으로 돌아오던 모습도 떠오른다.
평소에는 조용하던 마을 골목에
멀리 서울이며 타지에 나가 살던 형들과 누나들이 하나둘 돌아오면
마을은 오랜만에 사람 사는 소리로 가득해졌다.
집집마다 웃음소리가 넘쳐나고,
그동안 못다 한 이야기들이 밤늦도록 이어졌다.
그러나 추석을 생각할 때
내 마음속에 가장 오래 머무는 풍경은 따로 있다.
추석 보름달 아래,
손에 손을 맞잡고 둥글게 원을 그리며
강강술래를 하던
고향 아낙네들의 모습이다.
어린 시절,
갯머리 마을에 추석 보름달이 떠오르면
온 마을이 은빛 달빛에 잠겼다.
수확을 기다리는 들판 위로
달빛이 소리 없이 내려앉고,
영산강 물결 위에도
둥근 달 하나가 흔들리고 있었다.
아이들은 모처럼 만난 친구들과
골목과 들판을 뛰어다녔고,
남정네들은 오랜만에 돌아온 이들과
막걸리 한 사발을 나누며
밀린 이야기에 웃음꽃을 피웠다.
어디선가는 씨름판도 벌어졌다.
임시로 마련한 모래판 위에서
청년들이 샅바를 잡고 힘을 겨루면
구경꾼들의 함성이
달빛 아래 마을을 들썩이게 했다.
그리고 그 한쪽에서는
마을의 여인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명절을 준비하느라
하루 종일 쉴 틈도 없었을 사람들.
송편을 빚고,
음식을 장만하고,
객지에서 돌아온 자식들의 밥상을 차리고,
온 가족의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누구보다 바빴을 여인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추석 보름달 아래 모였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손과 손을 맞잡고 둥근 원을 만들면,
“강강술래…
강강술래…”
낮게 시작된 노랫가락이
보름달을 타고
마을과 들판으로 번져 갔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둥근 달 아래
둥근 원이 천천히 돌아갔다.
장단이 조금 틀리면 어떠랴.
발걸음이 조금 늦으면 또 어떠랴.
누구 하나 흉보지 않았다.
몸이 이끄는 대로,
마음이 흐르는 대로,
웃음이 나는 대로
손을 맞잡고 돌면 그만이었다.
그것이 강강술래였고,
그것이 우리 고향 여인들의 춤이었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그 춤은 단순한 명절놀이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평생 가족을 위해 살아온
여인들의 짧은 해방이었는지도 모른다.
새벽이면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논으로 나갈 식구들의 밥을 짓고,
아이들의 옷을 기워 입히고,
시부모를 모시고,
들판에 나가 김을 매고,
해가 져서 집에 돌아오면
다시 저녁밥을 짓고,
모두가 잠든 뒤에야
비로소 허리를 펼 수 있었던 사람들.
그들에게는
자신을 위해 웃을 시간도,
마음을 내려놓을 자리도
많지 않았을 것이다.
더구나 추석은
그 여인들에게 쉬는 날이 아니라
어쩌면 평소보다 더 바쁜 날이었을 것이다.
객지에서 돌아오는 자식들을 기다리고,
가족이 먹을 음식을 마련하고,
상을 차리고 치우기를 반복하다 보면
정작 자신의 명절은 어디에도 없었을지 모른다.
그래서였을까.
모든 식구가 배불리 먹고
하루의 분주함이 조금씩 잦아든 밤,
보름달이 마을 위로 높이 떠오르면
그제야 여인들은 집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그 순간만큼은
누구의 아내도 아니고,
누구의 며느리도 아니고,
누구의 어머니도 아닌,
그저 한 사람의 여인으로
달빛 아래 서 있었을 것이다.
나는 문득
우리 어머니도 그 둥근 원 안에 계셨을까 생각해 본다.
내 기억 속 어머니는
늘 일을 하고 계셨다.
부엌 아궁이 앞에 앉아 계셨고,
들판에서 허리를 굽혀 김을 매셨고,
자식들 밥을 챙기느라
당신 밥은 늘 나중이었다.
나는 어머니의 손에
호미가 들려 있던 모습은 기억하면서도,
그 손이 다른 여인의 손을 잡고
강강술래를 하던 모습은
왜 기억하지 못할까.
어머니에게도 젊은 날이 있었을 텐데.
고운 치마를 입고 싶던 날도 있었을 것이고,
친구들과 웃고 싶던 날도 있었을 것이고,
달빛 아래 아무 걱정 없이
노래 한 자락 부르고 싶던 밤도 있었을 텐데.
어머니도 한때는
누군가의 어머니가 아니라
꿈 많던 한 소녀였고,
한 여인이었을 텐데.
그런 어머니도
추석 보름달 아래에서는
잠시나마 삶의 무게를 내려놓고 싶지 않았을까.
이웃 아주머니들과 손을 맞잡고,
둥근 달을 바라보며,
“강강술래…”
한마디를 부르면서
가슴속 깊이 묻어 두었던
서러움과 한숨을
그 둥근 원 안에 내려놓고 싶지 않았을까.
나는 그렇게 믿고 싶다.
추석 보름달은
그 모든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여인들의 웃음 뒤에 숨은 눈물도,
말없이 삼켜야 했던 서러움도,
가난한 살림을 꾸려 가며
남몰래 흘렸던 눈물도,
자식 하나 잘되기만을 바라며
당신의 삶을 뒤로 미뤄 두었던 마음도.
달은 모두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날 밤만큼은
더 크고 둥글게 떠올라
그 여인들을 환하게 비추어 주었는지도 모른다.
마치 이렇게 말하듯이.
“오늘만큼은 마음껏 웃어라.”
“오늘만큼은 너희를 위해 춤추어라.”
손과 손이 맞닿을 때마다
사람의 온기가 전해지고,
그 온기가
오랜 세월 굳어 있던 마음까지
조금씩 녹여 주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날의 강강술래는
춤을 추는 일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을 위로하는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여인이 여인의 손을 잡아 주는 일이었고,
말하지 않아도
“나도 안다”고 서로의 삶을 보듬어 주는 일이었으며,
다시 내일을 살아갈 힘을
서로에게 나누어 주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추석날의 강강술래를 떠올리면
흥겨운 춤보다 먼저
어머니의 삶이 떠오른다.
평생 가족을 위해 살아오신
한 여인의 젊은 날이 떠오른다.
혹시 하늘나라에도
추석 보름달이 뜬다면,
우리 어머니도 그곳에서는
부엌 걱정도,
논 걱정도,
자식 걱정도,
모두 내려놓으셨으면 좋겠다.
고운 저고리와 치마를 입고
함께 세월을 견뎌 온 이웃 아주머니들과 손을 맞잡고,
환하게 웃으며
강강술래를 하고 계셨으면 좋겠다.
그날만큼은
누구의 어머니도 아닌,
누구의 아내도 아닌,
그저 한 사람의 여인으로
마음껏 웃고,
마음껏 노래하고,
마음껏 춤추셨으면 좋겠다.
그 웃음만큼은
누구에게도 양보하지 않는
오롯이 어머니 자신의 웃음이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달빛 아래에서
평생 가슴속에 담아 두었던
모든 슬픔과 서러움을 내려놓고,
둥근 보름달처럼 환한 미소만
얼굴 가득 피어났으면 좋겠다.
세월이 흘러
나는 이제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뉴욕 하늘 아래에서 살아간다.
그래도 추석 보름달이 떠오르면
나는 그 달을 한참 올려다본다.
어린 시절 갯머리에서 보았던 달과
지금 뉴욕에서 바라보는 달이
다를리 없다.
그 달빛 어딘가에는
고향의 들판도 있을 것이고,
영산강도 있을 것이고,
손에 손을 맞잡고 돌던
그 시절 여인들의 웃음소리도
아직 남아 있을 것만 같다.
그래서 나는
달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작은 말을 건넨다.
“엄니, 이제는 자식 걱정 내려놓으소.”
“평생 우리를 위해 사셨으니
이제는 엄니를 위해 사소.”
그리고 한마디를 더 보탠다.
“오늘 밤만큼은 엄니가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한 여인이 되어
달님 아래서 마음껏 강강술래를 하소.”
그러면 어디선가
아주 희미하게 들려오는 것만 같다.
“강강술래…
강강술래…”
달빛을 따라
고향 들판을 건너고,
영산강을 건너고,
긴 세월과 먼 바다를 건너
뉴욕의 내 마음까지 찾아오는 그 노랫소리.
나는 이제야 알 것 같다.
강강술래의 둥근 원처럼
어머니의 삶도 그렇게 우리를 품고 있었다는 것을.
당신은 평생 그 원의 한가운데서
가족을 품으셨지만,
정작 당신 자신은
늘 가장 바깥에 세워 두고 사셨다는 것을.
그래서 오늘 밤만큼은
그 둥근 원의 한가운데에
어머니를 모셔 드리고 싶다.
보름달보다 환하게 웃으시는
한 여인의 모습으로.
그 모습이야말로
내 마음속에서 영원히 지지 않는,
추석 보름달 아래 피어난
또 한 송이의 엄니 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