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0일 도보여행 3일째. 오늘은 거제도를 떠나 통영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하는 날입니다. 통영 미륵산을 등반하여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와서 해저터널과 동피랑 등을 둘러보고 저녁에는 공연까지 계획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더위에 아이들이 지쳐서 공연은 취소하고, 캠핑장 풀장에서 물놀이를 하고 야식을 먹는 것으로 대신하였습니다.
↑ 이튿날 아침. 7시에 일어나서 분주하게 텐트를 걷고 9시 조금 넘어 통영으로 출발하였습니다. 아무래도 텐트를 걷는 것이 치는 것보다는 쉬웠습니다.
↑ 10시가 조금 넘어서 통영의 미륵산 용화사광장에 도착하였습니다.
↑ 중무장을 하고 생수 한 병씩 배급받아 산을 오를 준비를 합니다.
↑ 산 초입부터 각도가 제법 날카롭습니다.
↑ 어제 저녁에 내려온 정민아빠와 해완이어머니가 등반 행렬에 합세합니다.
↑도솔암으로 향하다가 잠시 옆길 저수지로 방향을 틀어 호흡을 조정하고 다시 산을 오릅니다.
↑ 민재가 목이 타나 봅니다.
↑ 도솔암 부근에서 미륵치까지는 완만한 산길이어서 걷기가 아주 좋습니다. 짙은 녹음에 더위가 파고들 틈이 없습니다. 그러나 미륵치를 지나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다시 가팔라집니다.
↑ 1시간이 조금 더 걸려 미륵산 정상에 도착하였습니다. 경주 남산 정도의 높이라 오르는데 크게 힘들지는 않았지만 정상에 올라서도 기대했던 시원한 바람이 없어서 단체 사진도 한 장 없이 바로 케이블카 승강장으로 내려옵니다.
↑ 미륵산에서 본 통영시. 아름답기 그지없습니다. 통영의 원 이름은 용두포(龍頭浦)였습니다. 용머리를 닮은 포구라는 뜻입니다. 임진왜란 전까지만 해도 고성현에 속한 작은 어촌 마을이었지만 임란이 끝난 1604년 제6대 통제사인 이경준이 이곳에 통제영을 설치한 후로 292년 동안 남해안 방어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통영은 바로 삼도수군통제영이 있다 하여 얻은 이름입니다.
↑ 미륵산 정상을 오르내리는 케이블카. 정식 명칭은 '통영 미륵산 한려수도 조망 케이블'입니다. 총길이는 1,975m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케이블카로 알려져 있습니다. 2008년에 개통을 한 이래 승객이 꾸준이 증가하였으며 특히 거가대교가 개통된 이후로는 탑승객이 30% 이상 증가하여 2016년 4월 26일 1,000만명을 돌파하였습니다.
↑ 바다 건너편의 섬이 한산도입니다. 한산도는 임진왜란 발발 다음해인 1593년에 삼도수군통제영이 처음으로 설치된 곳입니다. 초대 수군통제사는 이순신입니다. 이순신 장군은 한산도를 본거지로 하여 한산도대첩 등을 승리로 이끌어 남해의 제해권을 장악합니다.
그러나 한산도 통제영은 2대 수군통제사인 원균이 칠천량해전에서 패퇴하면서 일본군에 의하여 유린되고 맙니다. 다시 이순신 장군이 3대 수군통제사로 부임했을 때는 복구가 불가능하여 완도 고금도에 통제영을 설치합니다. 그곳을 거점으로 하여 이순신 장군은 유명한 명량대첩을 일궈냅니다. 이순신 장군이 전사하고 왜란이 끝난 후 통제영은 한산도에서 가까운 용두포(현 통영)로 옮겨갔습니다.
↑ 한산도 제승당 앞바다. 2011년 2월 28일 역사기행 때 찍은 사진입니다. 제승당은 통제영이 처음으로 들어선 곳입니다.
↑제승당 옆의 충무사. 이순신 장군은 기리는 사당입니다. 충무사는 이곳 뿐만 아니라 여수나 순천, 해남 등지에도 있습니다. 지난 2011년 이곳을 순례하였을 때 아이들이 장군의 영정에 참배하는 모습입니다. 이곳 사당은 일제시대 때 통영의 유림들이 자발적으로 성금을 내어 지은 것이라 합니다.
↑ 바람이 없고 너무 더워서 정상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바로 케이블카 승강장으로 내려갑니다. 승강장으로 내려가는 길은 모두 나무 데크로 조성되어 있습니다. 오른쪽에 있는 돌무지는 과거 봉수대가 있던 자리입니다.
↑ 내려가는 길에 박경리 선생의 시가 눈에 띕니다. '풀먹인 모시 적삼같이 싱그럽다'는 싯귀가 마음을 끕니다. 저런 비유도 이제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겠지요. 풀먹인 모시 적삼을 본 적이 오래 되었습니다.
↑승강장 야외 휴게소. 바람이 일듯 말듯 합니다.
↑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찾아 매점으로 들어섰지만 입추의 여지가 없습니다. 겨우 자리를 비집고 앉아 아이스크림 하나를 입에 뭅니다.
↑ 비로소 아이들의 얼굴에서 열기가 가라앉습니다. 아이스크림은 해완이어머니가 찬조하여 주셨습니다.
↑ 진욱이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납니다.
↑ 이제 승강장으로 가서 차례를 기다립니다.
↑ 한 시간을 넘게 힘들게 올라왔는데 내려가는 데는 10분 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 점심으로는 충무김밥을 먹었습니다. 땀을 많이 흘리고 김밥이 잘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 걱정을 하였는데 이외로 아이들은 잘 먹습니다. 23명이 30인분도 넘게 먹은 것 같습니다. 계산을 해완이어머니가 하셔서 정확한 양은 잘 모르겠습니다.
이번 도보여행은 텐트를 치고 식사를 준비하였기 때문에 중간중간에 어쩔 수 없이 식당에서 먹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외로 경비가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후원을 해 주신 분들이 많아서 아이들이 먹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크게 받지 않은 듯합니다.
↑ 점심을 먹고 해저 터널을 들어섭니다. 약간 습한 곰팡내가 났지만 그래도 터널 안으로 시원하였습니다.
↑ 이 해저 터널은 바다 밑을 동굴을 파듯이 공사를 한 것이 아니라, 좁은 해협 양쪽을 막고 콘크리트로 터널을 만든 후에 흙을 덮고 바닷물을 통과시켰으므로 그리 깊지는 않습니다.
↑ 더운 여름이어서 그런지 제법 많은 사람들이 해저 터널을 찾았습니다.
↑ 세병관 쪽에서 본 동포루. 해저터널을 나와서 동피랑으로 오르는데 마침 그 다음날부터 시작되는 한산도대첩축제 준비로 해안 주차장을 모두 봉쇄하여 차를 세울 곳이 마땅치 않아 거의 한 시간을 주위만 돌다가 겨우 동포루에 올랐습니다.
↑ 이곳을 구석구석 돌아볼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바로 동포루에 올라 얼음 생수를 한 병씩 마시면서 주위를 한 번 설명해 주고 내려 와야 했습니다. 그런데 2011년도 통영 답사 때 찍은 사진을 찾아보니 재미있는 사진이 있었습니다. 가솔이가 아주 어릴 때 였습니다.
↑ 그 당시 입구에 걸려 있던 통영 사투리 간판. 통영 사투리를 소개한다고 했지만 실지로는 주민들의 사생활을 과도하게 침해하는 이곳 방문객들에 대한 일종의 경고였습니다. 지금은 사정이 좋아졌는지 모르겠습니다.
↑ 동포루에 본 세병관. 중앙에 있는 큰 건물이 국보 305호 세병관입니다. 삼도수군통제영의 객사입니다.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수군통제사(종2품)가 이곳에서 임금이 있는 대궐을 향하여 절을 올리는 망궐례를 행하였습니다. 이러한 기능으로 인하여 객사는 통상 지방의 관아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화려하게 조성되었습니다.
↑ 동피랑에서 나오면서 맛집에 들러 시원한 냉면을 한 그릇씩 먹고 캠핑장으로 들어옵니다. 저녁 식사를 하시고 해완이어머니는 가시고 그 자리를 나은이가 메웠습니다. 제법 빠르게 텐트를 치고 풀장에서 한 시간 정도 물놀이를 하고 나고니 배고 고픕니다.
↑ 아이들이 주먹밥을 만들어 맛있게 먹습니다.
↑ 규용이와 희수가 밥을 볶고 희주가 주먹밥을 만듭니다.
↑ 주먹밥 하나가 의무량이었는데 대개는 2개 이상을 먹었습니다.
↑ 덕분에 남아 있는 밥이 모두 처리되었습니다.
↑ 이러고도 아이들은 정민아빠가 사준 통닭 너댓마리를 또 해치웠습니다. 이날 밤에는 전날보다 더 편하게 잤습니다. 적응이 된 것인지 아니면 날이 덜 더워서인지 모르지만 아이들은 조금씩 익숙해져가는 것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