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릿한 릿지등반의 묘미
관악산 육봉 팔봉
서울시 관악구와 금천구, 경기도 과천시와 안양시 에 걸쳐 있는 서울의 대표적인 명산 관악산(632m)은 예로부터 개성 송악산, 파주 감악산, 포천 운악산, 가평 화악산과 더불어 '경기 5 악'의 하나로 불려 왔다 그만큼 험난하고, 바위 경치가 뛰어나기 때문이다. 또 골짜기마다 사찰과 암자가 자리잡고 있어서, 어떤 산행 길을 선택하는가에 따라 매번 새로운 맛을 느낄 수 있다. 이 때문에 북한산ㆍ도봉산 ‧ 수락산 ‧ 청계산 등과 함께 관악산은 서울과 수도권 시민들의 휴식처로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대표적인 산이다.
관악산 등산코스는 과천-연주대 코스, 서울대 입구-연주대 코스, 사당역-연주대 코스, 낙성대-연주대 코스, 관양동-연주대 코스, 과천-육봉 팔봉-서울대 입구 코스 등 매우 다양한데 이중 육봉 팔봉 코스는 짜릿한 리지등반을 즐길 수 있는 관악산의 백미이다.
육봉 팔봉능선은 필자에게는 특히 뜻깊은 등산코스이다. 필자의 경우 오래전 이곳 육봉-팔봉 암릉에 매료되어 암벽등반을 시작하게 됐다.
육봉-팔봉 암릉은 릿지등반코스이기는 하지만 그렇게 어렵지않아 경험자와 함께 가면 암벽장비 없이 일반등산객도 충분히 오를 수 있는 코스이며, 우회로가 있어 초보자의 경우 바위를 타지않고 워킹산행으로도 가능하다.
육봉능선을 오르려면 지하철 4호선 과천 정부종합청사역(7번 출구)에서 국사편찬위원회 지나 기술표준원 옆, 백운사 입구 표지판 우측 좁은 샛길을 따라가면 들머리 공터가 나온다. 공터에는 '중앙공무원 교육원-등산로 시점'이라고 표시된 표지목이 서 있고, '백운사' 방향 화살표시와 함께 '용운암 마애승용군 200m'표시의 이정표도 보인다.
들머리공터에서 잠시 몸을 푼 후 우측 등산로로 방향을 잡으면 바로 목제다리가 나타나고, 다리를 건너면 '신계 리선평 도조 성묘'라고 표시된 무덤도 보인다. 무덤 좌측 계곡옆 숲길을 따라간다.
들머리 공터에서 15분 쯤 오르면 두번째 목제 다리에 이른다. 다리 건너에는 '목교2'라는 표지목이 보인다. 이곳에서 문원폭포 마당바위 200m, 연주암까지는 2km거리이다. 조금 더 올라가면 육봉능선의 우람한 자태가 보이기 시작한다.
들머리 공터에서 1km, 25분 정도 거의 평길을 오르면 조그만 폭포 뒤로 넓은 마당바위가 보인다. 이곳이 문원폭포 지점이다. 문원폭포에는 폭포가 두개 있다. 앞에 조그만 폭포가 있지만 폭포라 부르기에는 규모가 아주 작으며, 마당바위 뒤에 있는 직벽폭포가 헐씬 크고 멋지다. 마당바위 우측에는 문원폭포 이름과 함께 '연주암 1.7km, 1시간'이라고 표시된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이정표를 따라 직진하면 연주암 방향, 좌측으로 오르면 육봉 방향이다. 직벽폭포를 지나 육봉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문원폭포에서 바위능선을 타고 약 30분쯤 오르면 능선위에 솟아있는 넓은 바위쉼터에 이른다. 이곳에 오르면 주위경관이 트이면서 우측으로는 케이블능선이 보이고 정면에는 우리가 올라야 할 육봉암릉 초입의 장관이 한 눈에 들어온다. 1봉 암릉을 오르는 등산객들의 모습이 까마득하게 보인다. 주위 조망이 좋아 나름대로 '전망바위'라 불러본다.
전망바위에서 사진도 찍고 잠시 쉰 후 육봉암릉을 향해 본격적인 릿지등반을 시작한다. 이 1봉 오르는 초입코스는 우회로가 없는 바위능선이라 릿지초보자의 경우 경험자와 함께 오르는 것이 좋다. 암릉 상단의 경우에는 약간의 공포감이 느껴지기도 하는 곳이다.
전망바위에서 10분 쯤 거친 바위를 오르다 뒤돌아 본다. 발 아래 멀리 과천 시내가 보이고 우리일행이 지나온 전망바위도 보인다. 카메라 줌을 당겨본다. 전망바위는 마치 바다위의 외딴 섬처럼 숲 속에 우뚝 솟아 있고 전망바위 가운데에는 소나무 한그루 외롭게 서 있다. 전망바위 좌측으로는 이름모를 기암들도 눈에 띤다.
바위절벽을 요리저리 발디딤과 손잡이를 찾아 오르다 보면 드디어 1봉 암봉 정상에 이르고 바로 위험한 암릉으로 이어진다. 이곳에서 무심코 직진하기 쉬운데 직진하면 제법 까다로운 릿지코스이다. 릿지경험이 없는 사람은 좌측으로 내려서서 우회로를 타는 것이 좋다. 1봉부터 4봉까지 계속 좌측허릿길로 우회로가 있다.
1봉 암릉 중 가장 어려운 구간은 뜀바위이다. 릿지초보자들에게는 상당히 공포감을 주는 곳이다. 특히 다리가 짧은 여성등산객들의 경우에는 뜀바위를 건너기가 쉽지않다. 손잡이도 마땅치가 않고 내리막이라 떨어질까봐 다리가 잘 벌려지지가 않는다.
1봉을 넘으면 바로 2봉 직벽구간이다. 발디딤과 손잡이(홀드)가 좋아 차분하게 홀드를 찾아 오르면 보기보다 위험하지는 않다.
3봉을 넘어서면 앞에 칼날 모양의 날카로운 암릉이 보인다. 이 아름다운 봉우리가 4봉이다. 6봉능선 중 이곳 4봉이 1봉과 함께 가장 스릴이 있다. 오르는 것은 어렵지않은데 내려오는 것이 만만치 않다.
4봉을 내려오는 루트는 제법 공포감이 느껴지는 직벽인데 자세히 보면 홀드가 있다. 제일 아래 한 키 정도의 절벽이 가장 조심해야 할 구간이다. 이곳은 사고가 종종 나는 곳이기도 하므로 각별한 주의를 요한다. 이곳 때문에 일행 중 경험자가 특히 필요하다.
4봉을 넘으면 바로 5봉을 지나 6봉 정상에 이른다. 6봉 정상에는 태극기가 세워져 있어 국기봉이라고도 부른다.
6봉 정상에 서면 좌로는 안양 평촌 시내가 보이고 우측으로는 관악산 주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정면 건너에는 팔봉능선과 함께 멀리 삼성산도 보인다. 팔봉 아래에는 불성사가 아담하게 자리잡고 있다.
6봉 정상 주변에서 간단히 점심식사를 한 후 팔봉능선을 탄다. 관악산 주능선을 10분 남짓 따라가다 보면 팔봉갈림길이 나타난다. 갈림길 좌측으로 보이는 팔봉능선 역시 장관이다. 우람한 암봉이 앞을 가로막는다.
팔봉능선도 매우 거친 바위능선이지만 육봉에 비해서는 덜 험한 편이다. 경험자와 함께 조심해서 타기만 하면 굳이 우회길를 택하지않아도 된다.
빨래판이 비스듬히 눕혀져 있는 모양의 바위마당에 올라서면 깎아지른 절벽 위로 말등처럼 생긴 웅장한 암릉이 한눈에 들어온다. 바위절벽으로 병풍을 두른 것 같은 모양의 암릉이다. 주위 어디에도 바위이름을 소개하는 팻말이나 이정표가 보이지않는다. 병풍처럼 생겨서 필자가 임의로 '병풍암릉'이라 이름붙여 본다.
팔봉 암릉의 경관이 멋지다. 자주 오르는 산인데도 새삼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서울 근교에 이처럼 웅장하고 아름다운 산들이 있다는 것은 서울 및 수도권 시민들에게는 행운이다. 북한산, 도봉산, 수락산, 불암산, 관악산 등 모두가 전국의 어느 명산에 뒤지지않는 명산들이다. 관악산의 육봉-팔봉능선 역시 설악산 공룡능선의 축소판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경관이 수려하다.
또 수락산 하강바위와 비슷한 바위도 보인다. 이 역시 그냥 '하강바위'라 불러본다. 수락산 하강바위는 규모가 이보다 헐씬 크다. 수락산의 경우 거대한 바위가 절벽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져 있는 모양이고 자일하강하는 암벽등반자들을 볼 수 있는데 이곳 팔봉 하강바위는 비교적 안전하게 앉아있다. 이곳에서는 자일하강하는 사람들도 보이지않는다.
팔봉의 명물은 역시 '왕관바위'이다. 모양이 왕관 처럼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다. 왕관위에 올라 사진을 찍으면 멋있는데 오늘은 아무도 보이지않는다.
팔봉암릉을 따라 내려오면서 계속 기암괴석들을 볼 수 있다. 하강바위를 지나면 바위를 탑처럼 층층으로 쌓아올린 듯한 암봉도 보인다. 모양이 지네같아 '지네바위'라고 불리워지기도 한다. 지네가 꿈틀거리며 하늘로 기어오르는 모습이다.
팔봉 내려가는 마지막 능선에는 '해산바위' 또는 '개구멍바위'라는 이름의 암봉이 서 있다. 서울대 쪽에서 보면 팔봉 중 제1봉에 해당하는 암봉이다. 바위봉우리에 서 있는 등산객의 모습이 아슬아슬하다.
해산바위에 올라서면 바위 봉우리 사이로 매우 좁은 통로가 있어 해산바위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 같다. 여자가 해산할 때 아기가 나오는 통로를 뜻하는 이름이다.
오랫만에 해산굴을 통과해 본다. 필자의 몸이 그렇게 뚱뚱한 편이 아닌데 배낭을 벗었는데도 빠져나오기가 쉽지않을 정도로 좁다. 몸을 쥐틀면서 겨우 빠져나온다. 북한산 백운대 아래 호랑이굴이나 홍천 팔봉산 해산바위와 매우 흡사하다. 그곳들 역시 배낭을 벗고 몸을 쥐틀어야 겨우 빠져나올 수 있다. 해산굴을 통과하지않고 바로 바위봉우리를 넘어가도 된다. 어른 키 정도의 직벽이지만 홀드가 좋아 내려가는데 그렇게 위험하지는 않으며, 무리하고싶지않을 경우에는 우측으로 우회로도 있다.
해산바위를 지나 숲길을 조금 내려가면 계곡을 만난다. 시간은 오후 3시. 암릉이라 천천히 조심스럽게 넘어오다 보니 정부종합청사 들머리에서 이곳까지 4시간 정도 걸렸다. 계곡에서 등산화를 벗고 흐르는 물에 발을 담가본다. 발끝을 타고 오르는 시원함이 짜릿하다. 하루의 피로가 말끔히 풀리는 것 같다. 계곡에서 잠시 쉰 후 다시 발길을 재촉한다. 서울대 정문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계곡에서 30분 쯤 내려가면 제4야영장이다. 넓은 공터가 있는 제4야영장은 서울대 쪽에서 연주대 방향으로 오르는 갈림길이기도 하다.
야영장을 지나 계속 30분 정도 더 내려가면 서울대 옆 호수공원에 이른다. 이곳에서 하루산행을 마무리한다. 육봉-팔봉을 넘어 이곳 호수공원까지 약 5시간 소요됐다.(글,사진/임윤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