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10. 9. 1. 20:17
■ 이철이(李哲伊)
[생졸년] 1909년 ∼ 1968년.
양화가(洋畫家)로, 본관은 경주(慶州)이고, 강원도 횡성 출생이다.
춘천고등보통학교를 거쳐 1932∼1934년 일본 동경의 가와바타화학교(川端畵學校)에서 수학하였다.
이어서 분카학원(文化學院) 본과 미술부에 진학하여 1937년에 졸업하고 돌아와 조선미술전람회(鮮展)에 풍부한 색감의 다분히 표현주의적인 정물화와 풍경화가 거듭 입선하면서 양화계에 진출하였다.그 시기에 일본의 미술학교 유학생들의 조직이던 재동경미술가협회(在東京美術家協會) 서울전에도 참가하였다.
그러나 1945년 광복후에는 중·고등학교 미술교사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함으로써 작품활동에 제약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화가로서의 적극적인 자기관리를 기피하려고 한 소극적 성격으로 국전(國展) 등도 멀리하며 참가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주로 학교 미술실에서 과일이나 꽃 등의 수채화와 유화 소품을 그리는 정도로 자신의 화가 위치를 유지하다가, 1954년 김종하(金鍾夏)·변희천(邊熙天)과 3인전, 1957∼1963년 조선일보사 현대작가초대미술전 출품, 1958∼1959년 신조형파전(新造型派展) 참가와 현대적 추상주의 시도 등으로, 내재적 예술의욕과 새로운 작품 추구의 면모를 나타내었다.
그러나 그 시도들은 조형적 표현감성과 창작성의 저력을 보여주었을 뿐, 충분한 자기실현을 성립시키지 못하던 가운데 죽음으로써 좌절되었다.말년기인 1962∼1969년에는 미술교사들의 단체인 신기회전(新紀會展)에만 참가하여 활동하였다.
[참고문헌]
◇李哲伊(이철이화집간행위원회, 1991)
◇李哲伊의 한계와 재평가의 측면(李龜烈, 李哲伊遺作展, 19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