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예술 3월호>
노금선 시인의
『그대 얼굴이 봄을 닮아서』를 산책하다
김 영 희 (아동문학가)
쉼표가 필요한 날에는 노금선 시인의 두 번째 시집 『그대 얼굴이 봄을 닮아서』(2015,시와 정신)를 읽어보시기 바란다. 첫 시집 『꽃멀미』(2012)가 나온 지 삼년 여 만에 선보인 이번 시집은 산문시 총125편을 4부로 나누어 ‘봄’(그대 얼굴이 봄을 닮아서), ‘여름’(장마가 오겠지요, 그대처럼), ‘가을’(가을에게 그대를 물었습니다), ‘겨울’(하얗게 웃으며 겨울이, 사랑하라 합니다)의 부제를 붙여 실었다, 조해옥 비평가의 해설을 덧붙이고, 시편들 사이사이 여백에는 김해선 화가의 그림들을 배치해 시와 그림을 함께 읽고 감상할 수 있게 구성해 놓아 마치 작은 갤러리를 한 바퀴 돌아 나온 느낌을 주는 시집이다.
저자 노금선 시인은 여고시절 돌샘문학에서 문학 활동을 시작으로 첫발을 내딛는다. 평양 출생으로 1·4후퇴 때 아버지를 따라 피난 내려온 후 갑자기 3·8선이 가로 막히면서 어머니와의 생이별을 겪어야 했고 힘겨운 어린 시절을 보내야만 했다. 사춘기 시절 글 쓰는 취미로 다소나마 마음의 상처를 달랠 수 있었던 시인은 돌샘문학 활동에 열심히 참여하며 산문 잘 쓰는 소질을 인정받은 덕에 이덕영 시인의 주선으로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 특기 장학생으로 입학하게 되면서 본격적인 문학수업을 받는다.
졸업 후에는 잠시 MBC·KBS 아나운서로 사회생활을 시작하였으나 결혼과 동시에 사표를 내야 했고, 결혼 일 년 만에 남편의 사업실패로 큰 어려움을 겪기도 하지만 늘 새롭게 도전하며 끊임없이 자기 검열의 과정을 통해 성장하는 삶을 선택한 그는 마침내 한국화 화가로, 시낭송가로, 시인으로, 최근엔 칠십이 넘은 나이임에도 한남대 대학원에서 문예창작 박사 과정을 공부하는 등 문학에로의 끈을 놓지 않는다. 한편 시인은 장애인복지시설과 노인요양시설을 설립해 돌봄이 필요한 노인과 장애우 들에게 편안한 쉼터를 제공하여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며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는 시인은 바쁜 일과 사이 꽃길을 서성이며 시냇물소리에도 가던 길 멈추어 귀 기울이는 문학소녀다.
노시인의 시집 『그대 얼굴이 봄을 닮아서』에 실린 시편들이 전체적으로 아우르고 있는 주제는 역시 ‘사랑’이다. ‘사랑은 모든 치유의 근본’이라고 머리말에서 밝히고 있듯, 시인에게 있어 사랑은 중요한 삶의 과정이며 지향점으로 자리한다. 어느 땐 연인이었다가, 절대자였다가, 자연이었다가, 소외된 이웃이었다가, 만날 수 없는 어머니였다가, 다양한 대상으로 치환되어 현현될 뿐 시인에게 있어 ‘사랑’은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어린 시절 어머니의 부재에서 오는 충격에서 비롯된 결핍이 사랑에 대한 끊임없는 희구로, 고착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우리 모두의 타향인 지구라는 섬에서 만나 사랑하며 산다는 것은 정말 꿈같은 일’ (「정각」전문)로 인식하고 있는 시인의 태도로 미루어 보아, 어느 정도의 어려움으로 인한 깨달음을 통한 경지에서 감지된 인식 같다. ‘날마다 초록빛 산자락에 흐르는 샘물처럼 사랑으로 다가오는 사람’이 더 없이 소중하기도 하여 ‘세상 다 하는 날 마지막까지 부르고 싶은 사람’으로 곁에 두고 싶은 순수한 사랑의 마음이지만 ‘그리움으로 가슴 저리도록 보고픈 사람’으로 늘 현실의 간격은 안타깝게 비켜있어 애간장을 태운다. 꼭 멀리 있어서가 아니다. 곁에 있어도 늘 고무되어 출렁이는 시인의 심상이다. ‘저 산하의 푸른 눈빛 좀 보세요. 두근거리는 파동, 얼마나 아름다워요.’(「그대 오는 소리」 부분) 사랑의 힘으로 생성되는 생명의 파동을 누구보다 예민하게 느끼고 갈구하는 시인의 마음은 늘 허전함이 공존하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는데 그렇다고 결코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는 미덕을 지니고 있다. 또 다른 형태의 사랑을 통해 극복해가며 새롭게 태어나고자 하는 삶의 열망이 긍정적이며 결연하다. 사랑이란, 결국 시인 자신이 진실하게 드러내 놓고 상처를 치유해 가며 극복해 가야할 삶의 과정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은 참 다행한 일이다.
시인의 시들은 진정성 있는 자기 고백적 문체를 통해 독자들이 감추고 싶어 하는 마음을 진솔하게 드러내 줌으로서 많은 공감을 준다. 거추장스런 기교를 사용하지 않고 동양 시학에서 중요시하는 ‘사무사思無邪’의 자세를 견지한다. 그러면서도 본성을 건드려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하는 묘한 이끌림이 있어 고무적이다.
또한 집착에서 오는 허망함을 깨닫게 하는 성소로서의 삶의 현장인, 자신이 운영하는 요양원에서 자주 목격하게 되는 죽음을 통해서 누구나 인간으로서 맞이하게 될 나약한 모습을 보며 부질없는 욕망을 내려놓는 성찰을 하게 된다. 욕망으로 채워진 것들이 한 순간 우주 속으로 어떻게 날아가는지를 확인하며 ‘찰나를 살다가는 신기루처럼, 어느 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바람 같은 인생’ 앞에서 오히려 아름답게 사랑을 가꾸겠다는 시인의 결연한 의지는 죽음을 초월하면서도 용기 있는 가치를 실현하려는 시인 나름의 깨달음에서 오는 결정일 것이기에 아름답다.
끝으로 ‘작가는 작품에서 자신을 죽여야 진정한 의미에서 독자가 탄생한다.’ 고 한 프랑스 작가 롤랑 바르트의 말의 의미를 기억해 주기 바란다. 문학의 속성상 작품 속 내용과 작가의 삶이 일치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작품 속에서 작가를 완전히 몰아내고 감상하기를 권한다. 하지만 이번 『그대 얼굴이 봄을 닮아서』 시집에서는 진정성으로 무장한 강한 흡인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아무래도 작가로부터 멀리 도망치기는 어려울 듯싶다. 벌써 시인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진다.
첫댓글 노금선 시인을 조명해 김영희님이 올려주신 글 잘 읽었습니다.
한 작가를 말한다는 게 아주 소중하지요.
작가는 자꾸 조명되어야 합니다.
대단하십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