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BC 384~BC 322)
고대 그리스 최대의 철학자. 스타게이로스 출생. 17세 때 아테네에 진출, 플라톤의 학원(아카데미아)에 들어가, 스승이 죽을 때까지 거기에 머물렀다. 그 후 여러 곳에서 연구와 교수를 거쳐(이 동안에 알렉산드로스대왕도 교육), BC 335년에 다시 아테네로 돌아와, 리케이온에서 직접 학원을 열었다. 지금 남아 있는 저작의 대부분은 이 시대의 강의노트이다. 스승 플라톤이 초감각적인 이데아의 세계를 존중한 것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에게 가까운, 감각되는 자연물을 존중하고 이를 지배하는 원인들의 인식을 구하는 현실주의 입장을 취하였다. 그러나 이 두 철학자가 대립되었다는 생각은 피해야 한다. 왜냐 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스승의 철학에서 깊은 영향을 받아 출발하였고, 뒤에 독자적인 체계를 구축하는 데도 플라톤의 철학적 범주 안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의 사상적 특징은 소여(所與)에서 출발하는 경험주의와 궁극적인 근거에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근원성, 지식의 전부분에 걸친 종합성에 있다.
논리학
학문적인 인식은 사물이 지닌 필연적인 관련을 그 원인에 따라 인식하는 것에 있다고 생각하고, 그 방법으로서 3단논법의 형식을 확립하여 형식논리학의 기초를 닦았다. 그리고 3단논법이 이러한 논리에서 출발해야 하는 제1전제를 말한 공이론(公理論)도 뛰어났다. 그의 논리학서는 《오르가논:Organon》이라는 이름으로 후대에 전하여졌다.
자연학
운동·변화하는 감각적 사물의 원인연구가 자연학이라고 불린다. 그는 여기서 네종류의 원인[四因論]을 들었다. ① 질료인(質料因:사물이 ‘그것’에서 되어 있는 소재), ② 형상인(形相因:사물이 ‘그것’으로 형상되는 것으로, 사물의 정의가 되는 것), ③ 동력인(動力因:‘그것’에 ‘의하여’ 사물이 형성되는 원인이 되는 힘), ④ 목적인(目的因:그 사물 형성의 운동이 ‘그것’을 지향하여 이루어지는 목적)이 그것이다. 이 가운데 ②, ③, ④는 자연물에서는 하나이므로, 결국 질료와 형상으로 자연물은 이루어지고, 질료 내에서 형상이 자기를 실현해 가는 생성 발전의 과정으로서 자연의 존재는 파악된다. 질료는 거기서 형상을 수용할 수 있는 능력 디나미스[可能態]로, 최종 목적에 따라 파악되므로, 최종목적(텔로스)인 엔텔레케이아[完成態], 에네르게이아[現實態]야말로 자연 존재의 우월하는 원인이라고 한다(목적론적 자연관).
형이상학
존재자의 일부를 대상으로 하는 특수학에 대하여, 존재하는 모든 사물에서 으뜸되는 원인들을 탐구하는 학문을 소피아(지혜) 또는 제1철학이라고 부른다. 그것은 동시에 보다 고귀한 존재자를 다루는 학문으로서 신학이기도 하다. 신(神)은 으뜸되는 존재자이기 때문에 모든 사물의 존재 원인이기도 하다. 신은 질료에서 떠나, 영원 불변한 관조(觀照) 안에 머무는 자기사유자(自己思惟者)로서 최고의 현실태이고, 그것 자신은 부동이면서 ‘사랑을 받는 것’으로서 일체의 것을 움직이는 ‘부동의 제1동자(動者)’이다. 그것은 자연계를 초월하는 자연계의 근거로서의 종극목적이다. 이 학문은 뒤에 형이상학(메타피직스)이라고 불렸는데, 그 이름은 이 학문이 뒤의 전집 편집에서 주어진 위치에서 유래된 것이다.
윤리학
행위의 종극 목표는, 신의 자기사유의 활동을 모방하는 이성적 관조에 놓여 있으나, 이것은 약간의 사람에게 일시적으로 허용되는 것에 지나지 않고, 일반적으로는 일상의 행동 속에서 이성적 질서를 실현하는 중용(中庸)으로서의 덕이 행위의 목적이다.
정치학
인간은 국가적 동물이다. 공공의 생활 가운데서 인간의 선(善)은 실현된다. 그런까닭에, 윤리학은 정치학의 일부를 이룬다고 생각되고 있다. 중산계급을 중심으로 하여 다스림을 받는 자가 교대로 다스리는 자가 되는 곳에서 실현될 수 있는 최선의 나라 제도가 있다고 한 정체론(政體論)은 온건한 민주주의의 뛰어난 이론적 뒷받침을 한다고 할 수 있다.
시학
창작의 본질은 모방(模倣)에 있다. 비극은 숭고한 행위의 모방이며, 숭고한 인물이 불행에 빠져가는 과정을 모방함으로써, 관객 가운데서 일어나는 연민과 공포의 정을 이용하여 이와 같은 정서를 정화(淨化)하는 것을 본질로 한다.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희극은 악인의 모방이다.
우스운 것은 추악한 것의 일종인 것이다.
우스운 것은 타인에게 고통이나 해악을 끼치지
않는 일종의 과오 혹은 추악이다."
나는 그를 만나고 싶은 욕망을 감출 수 없다.
사람들은 실용적으로 현실적으로 될 때에도
결국은 그를 넘어설 수 없다.
그는 차가운 심장의 소유자인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 384 마케도니아 근처 칼키디케 스타기로스~BC 322 그리스 에우보이아 칼키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과학자.
아리스토텔레스, 그리스 원상을 보고 코 부분을 복원한 로마의 ...
플라톤과 함께 그리스 최고의 사상가로 꼽히는 인물로 서양지성사의 방향과 내용에 매우 큰 영향을 끼쳤다. 그가 세운 철학과 과학의 체계는 여러 세기 동안 중세 그리스도교 사상과 스콜라주의 사상을 뒷받침했다. 17세기말까지 서양 문화는 아리스토텔레스주의였으며 수백 년에 걸친 과학혁명 뒤에도 아리스토텔레스주의는 서양사상에 여전히 뿌리 깊게 남아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연구한 지식 분야는 물리학화학 생물학동물학심리학정치학윤리학논리학형이상학역사문예이론수사학 등 매우 다양하다. 가장 큰 업적은 형식논리학과 동물학 분야의 연구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동물학은 이제 낡은 것이 되었지만, 19세기까지는 관찰과 이론 면에서 그의 연구를 넘어선 사람이 없었다. 철학 분야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아직도 살아 있다. 삼단논법론은 이제 형식논리학의 작은 부분일 뿐이지만, 그의 윤리학정치학형이상학과학철학 등은 현대 철학자들 사이에서도 논의되고 있다.
생애
아버지 니코마코스는 필리포스 2세의 아버지이자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할아버지인 아민타스 3세의 시의(侍醫)였다. 당시 의술은 가업을 잇는 전통적 직업이었기 때문에 아리스토텔레스도 의술을 배웠을 가능성이 크다. 훗날 아리스토텔레스가 세운 학교인 리케이온에서는 의술과 실제 의료행위를 연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 같이 어릴 때부터 의술과 마케도니아의 궁정생활을 접한 탓에 아리스토텔레스는 생물학의 영향이 강한 철학사상을 내놓았고, 왕자들과 궁정에 대한 깊은 혐오감을 여러 번 표현했다.
제1기(아테네의 아카데메이아 시절)
아리스토텔레스가 어릴 때 아버지가 죽자 친척으로 추정되는 프로크세노스가 후견인이 되었고, 프로크세노스는 BC 367년 그를 아테네에 있는 플라톤의 아카데메이아에 보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곳에서 20년 동안 있었다. 이 기간은 그의 지적 성장의 제1기였으며, 플라톤과 그의 동료들의 영향을 크게 받은 시기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틀림없이 아카데메이아의 모든 활동 영역에 관심을 가졌을 것이다. 때때로 수사학 공부에도 몰두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아카데메이아와 경쟁한 이소크라테스 학파에 맞서 글을 쓰기도 했다. BC 348(또는 347)년 플라톤이 죽자 그의 조카 스페우시포스가 아카데메이아를 이끌었고 그뒤 곧 아리스토텔레스는 아테네를 떠났다. 아테네를 떠난 동기는 플라톤의 후계자가 되지 못한 불만 때문이라는 해석이 있으나 이 해석은 근거가 없다. 왜냐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외지인이었으므로 처음부터 학파의 우두머리가 될 자격이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필리포스 왕이 BC 348년 그리스 도시국가 올린토스를 노략질한 뒤에 일어난 아테네의 반(反)마케도니아 감정 때문이라는 해석이 더 그럴 듯하다. 아테네를 12년 동안 떠나 있었던 탓인지 그는 플라톤의 아카데메이아의 동료들보다 여행을 함께 한 사람들, 특히 제자이자 동료인 에레소스의 테오프라스토스를 더 높이 평가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과학
스타기라(Stagira) 출신의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은 고대 그리스에서 서양 근대에 이르기까지 유럽의 근 2천년동안 유럽인들의 사고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그가 끼친 영향은 그의 사상체계만큼 그 범위가 넓고 또한 깊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마케도니아王의 시의(侍醫)의 아들로서 18살의 나이에 아테네에 있는 플라톤의 아카데미(Academy)에 입학하여 20년간 그곳에서 수학했다. 플라톤이 죽은 후, 소아시아의 한 참주의 주선으로 한 때 그의 궁전에 머물렀으나 후에 마케도니아의 필립왕의 요청으로 그의 아들인 알렉산더의 스승이 되었다. 왕이 된 알렉산더가 그리스를 정복한 후, 아리스토텔레스는 다시 아테네로 자리를 옮겨 리케이온(Lykeion)이라는 독자적인 학원을 개설하고 후진 양성과 연구에 종사했다. 이 학원에서는 강의의 일부를 산책을 하면서 했기 때문에 사람들로 부터 "소요학파"(Peripatetic School)라는 칭호를 얻었다. 알렉산더 대왕이 사망한 후 아리스토텔레스는 아테네인들의 적대적인 태도로 인해 다시 자신의 학원을 제자인 포기하고 아테네를 떠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스승인 플라톤의 사상의 많은 부분을 이어받았으나 어떤 면에서 중대한 수정을 가하기도 했다. 그의 학문은 철학, 논리학, 정치학, 윤리학, 미학, 물리학, 천문학, 동물학 등 방대한 영역에 걸쳐 유기적인 체계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여타의 부분을 전혀 언급함이 없이 어떤 한 부분만을 따로 떼어서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스승인 플라톤과는 달리 아리스토텔레스는 실증적인 과학 분야에서 많은 업적을 남겼는데, 실제로 그의 과학이론은 형이상학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아래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과학을 자연관과 방법론, 천문학과 역학, 그리고 생물학으로 나누어 설명하기로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관과 과학방법론
플라톤이 뛰어난 시적인 상상력의 소유자라면 아리스토텔레스는 논리적이고도 꼼꼼한 경험적인 기질을 지닌 학자였다. 그런한 기질상의 차이는 플라톤이 가정한 생성,변화가 없는 완벽한 이데아의 세계가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한낱 공허한 시적인 비유"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일거에 부정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쉬지 않고 변화하는 감각적인 세계 이외에 다른 세계는 없으며 그 세계에 존재하는 것--그것들을 아리스토텔레스는 실체(substance)라고 불렀다--이외에 다른 존재는 없다. 그는 실체가 겪을 수 있는 일체의 변화를 '운동'이라고 불렀는 데, 운동의 종류로 ① 생성과 소멸, ② 증가와 감소, ③ 한 실체에서 다른 실체로의 변형, ④ 공간적인 장소의 이동으로서 좁은 의미의 운동 등 네가지를 들었다. 그러한 각종의 변화의 원인을 설명하고 이해하는 것이 아리스토텔레스에 있어서 과학의 소임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스승이 제안한 세계의 구조를 거부했지만 감각적인 자연계의 변화를 설명하는 목적론적인 방식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플라톤과 마찬가지로 아리스토텔레스도 이전의 밀레토스 학파 이래 자연철학자들이 엠페도클레스와 아낙사고라스처럼 사물들에 작용하는 힘과 같은 것이 있음을 인정한 학자도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사물을 이루는 근원적인 물질에만 관심을 지녔던 것을 강하게 비판했다. 자연의 변화를 설명함에 있어 그 못지 않게 중요한 요소는 자연에 내재한 목적이다. 자연의 합목적성을 강조하기 위해 그는 "자연은 쓸 데 없는 일을 전혀 하지 않는다"고 누누히 역설했다.
자연이 지닌 합목적성에 비추어 볼 때, 자연의 변화 과정을 어떤 공예품이 만들어 지는 과정과 비교하는 것이 가능하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공예품에 제작과정에 관해서는 ① 그것을 만들 때 어떤 재료가 사용됐는가?, ② 어떤 모델에 따라 만들어 졌는가?, ③ 누구에 의해 제작되었는가?, ④ 어떤 목적을 위해 만들어 졌는가? 등 네가지 질문에 대한 답변을 얻음으로써 완벽하게 설명이 된다. 위의 네 질문에 대한 답변이 되는 것을 아리스토텔레스는 "원인"(cause)이라고 불렀다. 네가지 원인은 질문의 순서대로 각기 ① 질료인(material cuase) 혹은 질료(matter), ② 형상인(formal cause) 혹은 형상(form), ③ 운동인(efficient cause), ④ 목적인(final cause)으로 불리우는 데, 자연적인 현상에 대한 과학적인 설명도 이 4원인을 제시함으로써 완벽하게 달성된다. 질료인, 형상인, 운동인은 플라톤의 경우 각기 '용기', '이데아', 그리고 조물주인 '데미우르고스'에 대응한다. 목적인은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새로 추가된 것으로서 그는 자연적인 사물의 변화에 있어 목적인을 어떤 다른 원인보다도 중시했다.
플라톤은 이데아와 조물주같은 초월적인 존재자를 형상인과 운동인으로 설정했지만 감각적인 자연의 세계 이외에 다른 어떤 세계도 인정하지 않은 아리스토텔레스로서는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그의 해결책은 결국 자연적인 현상에 있어서는 질료인이외에 다른 세 원인이 한데 통합되어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체의 자연의 변화란 변화가 일어나는 기체(基體, substratum)로서의 질료에 처음에 존재하지 않았던 형상이 존재하게 되는 과정으로 설명된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있어 형상(eidos)은 플라톤의 초월적인 이데아와는 달리 사물에 내재하는 본질이면서 동시에 그 스스로 사물의 변화를 이끄는 원인이기도 하다. 플라톤이 서로 상이한 두 개의 세계를 인정한 것과 대조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상의 두가지 존재방식을 도입함으로써 자연현상의 변화를 설명하려 했다. 그에 의하면 형상은 현실적으로(actually) 질료와 결합되어 있지 않은 경우에도 잠재적으로(potentially) 존재할 수도 있다. 잠재적인 존재로서의 형상은 절대적인 의미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달걀에서는 닭의 형상도 오리의 형상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오리의 형상은 달걀에서는 잠재적으로도 존재하지 않지만 닭의 형상은 잠재적으로 있다. 잠재적인 존재로서의 닭의 형상이 달걀의 변화를 이끈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적인 성장이 저지되지 않는 한, 달걀은 반드시 닭이 되지 오리로 성장하지는 않는다. 모든 질료는 질료인 한에서 변화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으며 위의 설명에 비추어 모든 변화는 존재하지 않던 형상의 존재과정이자 동시에 잠재적으로 존재하던 형상이 현실적으로 존재하게 되는 과정으로 묘사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이해 경험적인 세계 배후의 초월적인 세계가 제거되고 자연 현상에 대한 학적인 인식의 가능성이 인정됨으로써 과학은 경험적인 학문으로서의 위치를 찾았다. 그가 학문의 보편적인 방법으로서 삼단논법이라는 불후의 연역논리체계를 완성했음에도 불구하고--삼단논법은 그 후 근대 일부 학자들에 의해 비판을 받기까지 서양에서 보편적으로 타당한 유일의 학문적 방법으로 인식되어 왔다-- 실제 그의 과학적 탐구에서는, 특히 생물학의 분야에서는 경험적인 관찰이 연역적인 추론 못지 않게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특히 역학에서 보듯이 경험적인 관찰에의 지나친 의존은 과학에서 필수적인 추상적인 사고를 저해했으며 그 결과 아리스토텔레스의 과학이론은 일상적이고도 상식적인 관찰의 피상적인 일반화에 머무르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경험주의는 또한 관찰의 대상을 지각할 수 있는 사물들의 지각가능한, 양적으로 규정할 수 없는 "성질들"로 국한시켰다. 그의 이론이 상식과는 잘 부합하기는 하지만 정성적(定性的)인(qualitive) 기술에 그친것은 그로 인한 불가피한 결과였다. 자연의 변화를 질료와 현재 결합되어 있는 형상이 잠재적으로 존재하는 다른 형상에 의해 대체되는 과정으로 묘사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론은 정성적인 설명의 표본이라고 할 것이다. 한마디로 아리스토텔레스의 과학 방법론은 목적론적이라는 면에서 플라톤 이전의 자연철학자들의 그것과 비교되며 특히 정량적(定量的)이고(quantitive) 수학적인 기술을 자연에 대해서는 타당하지 않은 것으로 한사코 거부했다는 점에서는 플라톤과도 좋은 대조가 된다.
천문학과 역학
천체와 지구의 형태에 관해서는 과학이 시작된 때부터 많은 추측이 있어 왔다. 탈레스는 지구가 물 위에 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낙시만드로스는 높이가 폭의 3분의 1밖에 안되는 원통 모양의 지구가 하늘 한가운데 떠 있으며 그 주위를 살이 빠진 바퀴 형태의 별들이 돌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 바퀴의 내부는 불로 가득차 있으나 구멍이 뚤려있어 그 곳을 통해 불이 뿜어져 나오고 있는데, 우리에게 보이는 별의 모습은 바로 그 불이며 일식이나 월식은 그 구멍이 막힐 때 관측되는 현상이라고 보았다.
초기의 피타고라스 학파는 지구를 포함한 모든 천체들이 구형(球形)이며 지구 이외에 다른 천체들은 우주의 중심에 정지해 있는 지구 주위를 돌고 있다는 지구중심설(geocentrism)을 믿고 있었다. 그러나 후기 피타고라스 학파에 속하는 필로라오스(Philolaos)는 지구중심설을 배격하고 지구를 비롯한 10개의 천체가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중심불(central fire)--그는 그것을 '제우스(Zeus)의 집' 혹은 '신들의 어머니'라고 불렀다--을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돌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우주는 우라노스(Uranos), 코스모스(Cosmos), 올림포스(Olympos)의 세부분으로 나뉘어 진다. 올림포스는 우주의 제일 바깥을 차지하는 영역으로서 가장 순수한 원소만을 포함한다. 반면에 제일 안쪽에 있는 우라노스는 변화와 생성의 세계라고 할 수 있다. 그 사이에 위치한 영역이 태양과 달, 그리고 다섯개의 행성 등이 자리잡고 있는 코스모스인데 코스모스는 글자 그대로 조화와 질서의 세계이다. 그렇기 때문에 코스모스를 이루는 천체들은 형태가 완전한 기하학적인 도형인 구형으로 생겼을 뿐더러 원형의 궤도를 등속도로 운행한다. 이처럼 우주는 <완전한 세계>와 <불완전한 세계>로 나뉘어지며 불완전한 세계는 생성과 변화를 본질로 하는 반면, 완전한 세계는 생성 변화가 없으며 모든 물체가 등속원운동을 한다는 생각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거쳐 근대에 이르기까지 서양인들의 사고를 지배했다.
필로라오스는 중심불과 지구 사이에 또다른 지구(counter-earth)가 지구와 보조를 맞춰 돌고 있기 때문에 중심불이 지구에서는 보이지 않으며 또다른 지구 또한 지구가 그것을 등지고 있기 때문에 지구에서 볼 수가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같은 피타고라스 학파의 히케타스(Hicetas)와 에크판토스(Ecphantos)는 환상적인 중심불과 또다른 지구의 개념을 제거하고 지구를 서쪽에서 동쪽으로 자전하게 하는 대신 다른 천체를 정지시킴으로써 천체의 운동을 설명하려고 했다.
그러나 플라톤 시대에 이르러서는 천체가 지구를 중심으로 하는 동심원의 궤도를 일정한 속도로 돌고 있다는 가정으로는 즉각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불규칙한 행성의 운동이 상당히 관찰되었다. 따라서 그 가정에 입각하여 이른바 "현상을 구제하기 위해"(save the appearances) 한때 플라톤의 아카데미의 문하생이었던 유독소스(Eudoxos, B.C. 408-355)는 대담한 기하학적인 천체모델을 제안했다. 유독소스는 지구를 중심으로 한 동심의 천구(heavenly spheres)가 각기 일정한 축을 중심으로 회전하고 있다고 가정한 다음, 그가 한 천체 관측 결과와 부합하도록 동심천구의 수와 회전축을 결정하는 방식을 취했다. 그는 결국 자신이 관측한 천체의 운동을 충분히 설명하기 위해 27개의 천구를 도입했다. 유독소스는 경험적인 관찰보다 이성적인 사변을 강조한 플라톤의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천문대를 만들어 정력적으로 천체관찰에 종사했는 데, 지구를 중심으로 하는 동심천구가 존재한다는 가정하에 관찰 결과에 따라 그 구조를 계속 복잡하게 다듬어 가는 유독소스의 방식은 근대 천문학의 탄생 직전까지 계속 이어졌다. 유독소스의 체계는 그러나 지구와 금성과 같은 행성까지의 상대적인 거리가 변한다는 관측 결과를 설명할 수 없었다. 따라서 헤라클레이데스(Heracleides)는 수성과 금성은 태양 주위를 회전하지만 태양을 비롯한 다른 행성과 달은 지구 주위를 회전하며 지구는 매일 한번씩 그 축 주위를 자전한다는 이색적인 모형을 내어 놓았으나 별반 호응을 얻지 못했다.
유독소스가 제안한 동심천구의 체계는 그 후로 계속된 관측의 결과 천체의 새로운 주기 현상이 발견됨으로써 좀 더 복잡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칼리포스(Callipos, B.C. 370-?)는 동심원구의 수를 도합 33개로 늘림으로써 유독소스 체계의 결함을 보완하려 했다. 그러나 유독소스나 칼리포스는 그들이 말한 동심천구가 천체의 운동을 설명하기 위한 단순한 기하학적인 도구일 뿐 물리적으로 실재하는 물체는 아니라고 생각한 듯하다. 그것을 물리적인 실재로 간주한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였다. 그에 의하면 우주는 두 개의 큰 영역으로, 즉 <천상의 세계>와 불완전한 <땅의 세계>로 구분된다. 우주에 대한 이러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분법은 피타고라스 학파와 플라톤의 영향에 의한 것임이 분명하다. 두 영역은 그것을 구성하는 기본 물질이 다르기 때문에 지배하는 물리적 법칙 또한 다르다. 천상의 세계의 물체들은 지구를 감싸고 있는 여러 천구에 붙어서 지구 둘레를 돌고 있다. 이 천구들은 땅위에 있는 물질과는 전혀 속성이 다른 제 5의 물질(quintessence)인 에테르(ether)로 이루어져 있다. 에테르는 순수한 물질로서 무게가 전혀 없고 수정처럼 투명하다. 따라서 천구는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물체를 통과시키지 않으며 단순하고 규칙적이며 영구적인 운동, 즉 원운동을 한다. 천체가 투명한 천구에 붙어서 돌고 있다는 생각은 근대 천문학자들에 의해 부인되기까지 근 2천년간 서양 사람들에 의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위에서 말한 천상의 세계는 우주의 중심인 지구에서 볼 때 항성들이 붙어 있는 맨 바깥쪽의 항성구 혹은 제일천구(First Heaven)로부터 토성, 목성, 화성, 수성, 금성, 태양을 거쳐 달까지 이어진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는 다시 말해 유한한 구형이다. 또한 천구의 운동이 시작도 끝도 없는 원운동을 한다는 의미에서 시초도 종말도 없으며 우리 우주 이외에 또 다른 우주도 없다. 천구가 엄청난 속도로 돌고 있기 때문에 그것에 실려 있는 천체들은 마찰에 의해 빛을 낸다. 항성은 모두 하나의 천구에 실려 돌고 있지만 다른 행성들은 제나름의 천구들을 가지고 있다. 가장 외부의 항성구와 가장 안쪽에 있는 천구와의 관계는 형상과 질료, 혹은 원동자와 피동자의 관계와 같으며 각 천구는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다른 천구들과 운동을 주고 받는다. 따라서 각 행성구의 고유한 운동이 그 바로 위에 있는 천구의 운동의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는데 그것을 막기 위해 아리스토텔레스는 각 천구 사이에 바로 위의 천구의 운동을 상쇄하기 위한 22개의 천구를 끼워 놓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한 새로운 천구는 물리적인 설명을 위한 것일 뿐 천체의 운동을 기하학적으로 나타내기 위해서는 불필요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천구의 운동을 주관하는 형이상학적인 존재로서 이른바 종동천(宗動天, Primum Mobile)을 가정했다. 종동천은 신적인 존재로서 그 자신 순수형상이기 때문에 운동하지는 않지만 모든 운동을 가능하게 하는 부동(不動)의 원동자(原動者)(Unmoved Mover)이다. 항성구는 종동천에서 제일 가깝기 때문에 가장 완벽한 원운동을 한다. 그러나 그러한 완전성은 그 밑의 천구로 내려갈수록 감소하며 따라서 항성구는 단순한 항성주기를 갖는데 반해 그 밑의 천구들의 항성주기는 갈수록 복잡해진다.
달 밑을 이루는 땅의 세계는 천상의 세계에 비해 비교가 되지 않을만큼 규모가 작다. 그 가운데는 물론 조그마한 구형의 지구가 있으며 그곳에서는 영구히 불변하는 천상의 세계와는 달리 온갖 생성 소멸과 변화가 일어난다. 그것은 지상의 물체들이 천구와는 전혀 다른 물질로 이루어졌음을 의미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지상의 물체를 이루는 기본적인 물질을 우리에게 지각되는 가장 기본적인 대립적인 성질인 따뜻함(hot)과 차거움(cold), 그리고 건조함(dry)과 축축함(wet)의 교차적인 배합에 대응하여 따뜻하고 건조한 불, 차고 축축한 물, 따뜻하고 축축한 공기, 차고 건조한 흙등 4가지를 설정했다. 그러한 엠페도클레스적인 4원소설은 모든 물질은 그 물질의 성질을 결정하는 형상과 질료로 이루어지므로 가장 기본적인 원소는 형상을 지니지 않은 순수한 질료인 원질(primary matter)과 가장 기본적인 성질들의 결합이어야 한다는 그의 자연철학으로부터 필연적으로 귀결되는 결론이었는데, 이후 근대 화학이 성립하기까지 서양인의 물질관을 지배했다.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물체의 물리적인 행태는 그 물체의 구조에서 비롯되는 제반 속성에 의존한다. 4원소도 그 구조가 서로 다름에 따라 제각기 서로 다른 역학적인 특성을 지닌다. 천상의 물체들이 영구하기 때문에 영구적으로 계속되는 운동, 즉 원운동을 하는 데 반해 지상의 물체들은 모두 속성상 유한하기 때문에 크기가 유한한 지상의 세계에서는 시작과 끝이 있을 수 밖에 없는 그러한 형태의 운동, 즉 직선 운동을 한다. 적어도 외부에서 강제하지 않고 자유롭게 움직이도록 허용하는 한에서는, 다시 말해 "자연운동"을 하는 한에서는 그러하다. 예를 들어 외부의 강제를 받지 않았을 때, 흙은 지구의 중심을 향해 직선으로 떨어지며 반대로 불은 지구 중심에서 반대 방향으로 곧장 올라가게 된다. 이것은 곧 지상의 세계의 상층부는 불이, 그리고 하층부는 흙이 머물러야 할 "자연의 장소"(natural place)임을 의미한다. 그 사이가 공기와 물의 자연의 장소로서 흙의 자연장소는 그 밑에 있기 때문에 흙을 공기나 물 속에서 놓으면 곧장 자신의 장소를 향해 떨어진다. 또한 자신의 장소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속도가 빨라지는 데, 이것이 왜 무거운 물체가 자유낙하할 때 시간이 흐를수록 낙하속도가 빨라지는가 하는 것을 설명해준다.
물체에 자연의 장소가 있다는 것은 각각의 공간이 제나름의 속성을 갖는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것은 또한 원자론자들이 운동의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기본적인 조건 가운데 하나라고 본 허공 내지는 진공(vacuum)의 개념을 인정하지 않았다. 논리적인 근거에서 빈공간의 존재 가능성을 부인한 파르메니데스와는 달리 아리스토텔레스는 진공을 부인할만한 물리적인 이유가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운동법칙에 의하면 운동하는 물체의 속도는 그 자신의 속성에서 비롯되는 자연운동이건 아닌 외부의 힘의 작용에 의한 "강제운동"이건, 그 물체에 작용한 힘의 크기에 비례하고 그 물체가 움직이는 매질(medium)의 저항에 반비례한다. 외부의 힘이 작용하지 않는 자유낙하의 경우 매질의 저항이 상대적으로 작은 무거운 물체일수록 그 무게에 비례하여 빨리 떨어진다. 그렇다면 매질이 전혀 없는 진공에서는 물체는 아무 저항도 받지 않기 때문에 속도가 무한대가 될 것이며 또한 무게가 서로 다른 두 물체가 같은 거리를 동일한 속도로 운동할 수 있을 것이다. 무한한 속도를 인정하는 것은 하나의 물체가 동시에 서로 다른 장소에 있을 수 없다는 논리적인 법칙과 어긋나는 결과를 초래하며 동일한 속도로 운동하는 서로 다른 무게의 물체를 인정하는 것은 무게의 개념을 무의미한 것으로 만드는 결과가 된다.
자연운동이 아닌 강제운동을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물체에 계속적으로 힘을 가해 주지 않으면 안된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있어 힘의 전달은 짐수레를 끄는 소의 경우에서 보듯이 반드시 운동을 일으키는 원동자(原動者)와 물체가 직접 접촉하는 경우에만 가능하다. 따라서 근대 역학에서의 만유인력처럼 서로 떨어진 두 물체 사이에서 전달되는 힘의 개념은 인정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밀물과 썰물의 현상이 달에서 전달된 어떤 힘의 덕분이라면 그것은 달과 지구 사이가 아무것도 없는 진공이 아니라 달의 힘을 계속적으로 전달해 주는 어떤 물질로 채워져 있음을 의미한다.
관성과 진공을 인정하지 않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역학에서 늘상 문제가 되었던 것은 투사체(projectile)의 운동이었다. 예를 들어 화살과 같은 투사체는 운동을 일으키는 활과의 접촉이 끝난 뒤에도 수직 낙하하는 자연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얼마큼 앞을 향한 "강제운동"을 계속하다가 낙하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한 현상을 아리스토텔레스는 화살이 활시위를 떠난 순간부터 화살에 의해 앞의 공기가 뒤로 잇달아 밀려나 화살에 계속 추진력을 제공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공기에 의한 추진력은 화살의 무게에서 비롯되는 저항 때문에 갈수록 감소하며 완전히 사라진 뒤에는 화살은 자연적인 운동을 하여 땅에 떨어진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천문학이나 역학은 대부분 상식적인 관찰에 의존한 것이었으며 그런만큼 일반인들에게 강한 호소력이 있었다. 특히 그의 역학은 고대에서 이 분야에 관한 최초의 체계적인 이론이었다. 그의 과학이론은 중세에 그의 학문이 부활된 후 근대 과학혁명에 이르기까지 유럽인들에게 감히 도전할 엄두도 낼 수 없는 절대적인 권위로 군림했다. 근대과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학문적인 권위에 도전함으로써 시작되었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 예를 들어 관성의 법칙과 같은 근대의 운동법칙만 해도 진공의 가능성을 부정한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를 배격하고 저항하는 매질이 전혀 없는 진공 상태에서 어떤 운동이 일어날 것인가를 추상적으로 고찰한 끝에 얻어졌던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생물학
아리스토텔레스의 과학적 업적 가운데 최대의 찬사를 받고 있는 부분이 생물학이다. 생명현상에 관한 그의 관심은 오늘날의 비교해부학과 생리학, 발생학, 생태학 등 넓은 분야에 걸쳐 있었으며 각 분야에서 놀랄만큼 치밀한 관찰력으로 수집한 방대한 자료를 남겨 놓았다. 그가 남긴 보고 가운데 많은 것은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 것으로 판명되었으나 아직도 그 타당성이 인정되고 있는 것도 적지 않다. 오랜동안 잊혀졌다가 19세기 중엽에 이르러 뮐러(Johannes Müller, 1801-1858)가 같은 설명을 제시하는 바람에 유명하게 된 {동물학 연구}(Historis animalium)에서의 이른바 "매끈한 상어"(smooth shark)의 알의 부화와 태아의 성장에 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묘사는 그가 얼마나 정확한 관찰자였는가 하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생물학에 관한 연구에 있어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은 쓸 데 없는 일을 전혀 하지 않는다."는 그의 구호에서 보듯이 시종일관 목적론적인 자세를 견지했다. 예를 들어 되삭임 동물들의 위가 복잡한 이유를 그는 그 동물들의 치아가 부실한 것을 보상하기 위한 자연의 계획으로 설명하는가 하면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서는 엄니와 뿔이 모두 필요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 두가지를 동시에 갖춘 동물은 없다고 주장했다. 각 유기체는 그 나름의 목적이 있으며 그러한 목적은 그 개체의 생물학적인 구조와 활동에 의해 드러난다는 목적론적인 견해를 받아들이는 학자들이 적어도 생명과학 분야에서는 오늘날까지도 적지 않다.
생명현상에 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은 말할 것도 없이 위에서 설명한 질료와 형상의 구분에 입각한 그의 4원인설의 필연적인 결과이다. 그에 의하면 생명체도 형상과 질료의 결합물이라는 점에서는 생명이 없는 사물과 마찬가지이다. 각가지 생물에 있어 질료는 신체가 되나, 형상은 생명체의 영혼(psyche, anima)이다. 생물의 새끼의 형상은 수컷에서 제공되며 질료는 암컷이 제공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생명체의 영혼이 신체없이는 존재할 수 없으나 그 자체 물질적인 것은 아니라고 말함으로써 원자론자들의 유물론과는 대비되는 생기론(生氣論, vitalism)의 입장을 취했다. 영혼은 유기체를 움직이고 그것을 도구로 하는 힘이기 때문에 생명체의 모든 활동이 어떤 목적을 지향한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영혼은 그 질에 있어 동일하지 않으며 그 질적 차이 때문에 유기체들의 생명활동의 등급이 나타난다. 가장 하위의 혼은 식물혼(vegetive soul)으로서 식물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성장과 생식을 가능하게 한다. 동물은 그 밖에서 보다 상위의 동물혼(animal soul)을 지니고 있는 데, 이것에 의해 지각하고 운동을 한다. 인간은 여기에 덧붙여 가장 높은 등급의 영혼인 이성혼(rational soul)을 심장에 지니고 있으며 그 덕분에 합리적인 사고를 할 수가 있다. 이 세 영혼은 서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서로 다른 것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영혼의 이러한 등급은 자연계에 존재하는 일관된 계층구조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종류들이 그 완전성에 따라 생명활동이 전혀 없는 무생물로 부터 가장 완전한 유기체, 즉 인간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연속적인 '사다리'를 형성하고 있다. 그러한 "자연의 사다리"(ladder of nature, scala natura)에서 밑에 위치한 종으로 부터 그 상위의 종으로의 진화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지라도 그것에 의해 종을 계층적으로 분류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러한 계층적인 자연관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과학이론에서 보편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생물 가운데 특히 동물에 집중적인 관심을 보여 인간을 비롯한 540여종의 동물을 12가지로 구분했다. 체계적인 분류를 위해 아리스토텔레스는 동물들의 발생과정을 면밀하게 관찰했으며 많은 동물을 해부하기까지 했는 데 고대에서 동물의 해부를 그처럼 광범위하게 시도한 것은 그가 처음이었다. 그러나 동물들의 관찰과 자료분석에 임하는 주의깊고도 꼼꼼한 그의 자세에도 불구하고 일부 오류를 범하는 것을 막지는 못하였다. 한 예로 그는 이미 2세기 전에 뇌의 주요 기능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감각과 지적인 사유 능력의 온상이 뇌가 아닌 심장이라고 한사코 주장했다. 그의 생물학의 저술에는 그러한 잘못된 견해와 관찰보고가 적지 않다. 역사적으로 그의 오류가 갖는 문제는 그러나 그 수의 많고 적음에 있지는 않다. 근대에 이르기까지 아리스토텔레스가 과학계에서 누렸던 절대적인 권위는 그의 어떤 사소한 오류도 시정하는 것을 어렵게 했으며 따라서 위의 심장에 관한 이론처럼 과학의 발전에 심각한 장애를 제기하는 경우조차 없지 않았다.
범주와 실체의 문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