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사는 노부부
맑은하늘 / 이영애
명절은 제사 지낸다는 핑계로
떡국 한 그릇이라도 나눠 먹는다는 이유를 걸어놓고
떨어져사는 가족 친지들과 함께 모여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며
친목을 도모할 수 있는 날이 아닌가?"
난 친척은 없어도 아들 둘이 있어서
아들 가족 그리고 딸 아들같이 생각하는 지인들의 방문으로
음식을 해서 먹이는 작은 행복을 누린다.
오늘은 명절도 지나고 해서
이웃 노부부를 슬쩍 언급해 본다.
서울에서 잘 나가는 자식을 둘이나 둔 옆집 노부부는
두 분 만의 즐거움을 누리며 살고 있다
잘 나가는 아들 둘이 한 달 용돈 20만 원씩 40만 원 보내주는 것을
내 자식 최고다 하며 자랑하는 순수한 할머니의 얼굴은
환한 함박꽃을 닮았다.
40만 원씩이나 매달 보내준다며
잘 나가는 아들들 자랑을 기분 좋아 늘어놓으신다
겨우 40만 원 받고 그렇게나 좋으세요?
하면 들으려 하지 않고
고맙지~
울아들 효자야~!
하신다.
괜히 이간질하는 말을 한 게 후회스러워
자식이 부모에게 손 벌리지 않고 자기들끼리 잘 사는 것도 복이지요!
하고 맞장구치면
저수지 뚝 터지듯 어릴 적부터 자란 얘기서부터 고릿적 품고 있는
아들자랑 보따리 풀기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헤벌 쩍 웃으시며 줄줄이 늘어놓으시는 노부부이다.
일 년 동안 추석날 설날 두 번 오는데 그것도 번갈아가며 온다.
이번엔 작은아들이 왔으니까
올 추석엔 큰아들이 온단다.
일 년에 한 번 보는 셈이다
며느리 손주는 보기가 힘들고 아들만 잠깐 다녀 간다.
그래도 아들이라도 보는 것에 고마워하는 노부부이다.
며느리 손주는 인사하러 안 와요!
하고 슬쩍 말하면
다들 바쁜데 뭐
전화는 왔어? 하며 편드는 노부부
명절에도 안 오는 괘씸한 것들,
내가 물려준 재산이 얼만데
할 법도 할터인데
불만이라곤 1%도 없는 표정이시다
자식자랑을 할 때면 노부부는 신난다.
자식한테 아무것도 바라는 마음이 없는 분들
불평불만이 뭔지 모르는 분들이다.
가지고 있던 땅 다 팔아서 노후 자금 남겨놓으시고
유산상속은 다 끝내셨단다.
며느리가 안 오는 거에
절대 불평을 하지 않는 노부부다.
지들 잘만 살면 그게 효도지 한다.
그런 모습이 아름다워서
간혹,
용돈이라고 손에 쥐어주면
소녀같이 배시시 웃으며 좋아서 춤추는 할머니!
좋아서 춤추는 할머니를 보며 덩달아 크게 웃는 할아버지
그 모습이 좋아
할머니 용돈 조금 좋아하는 과일 음식 등을 드리면서
마음에 행복을 담곤 한다.
할아버지는 고대법대출신,
할머니는 이대 가정과 나오신
시골에서 보기 드문 학벌을 가지신 분들이다.
이분들은 학벌도 좋지만 인성학교를 잘 나온 분들이다.
학벌이 좋다고 자화자찬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분들이다.
예전 잘 살 때 압구정동에서
내로라하는 갑부였으며 시아버님은 판사 셨다는 말도,
건넛마을 고대 동창생 할아버지가 말해서 마을 사람들이
알고 있을 정도다.
할아버지 고대 법학과 나오셔서 법원 행정사무관으로
근무하셨다면서요~!
대단한 분이셨네요!라고 말하면 쑥스러워하면서
"에그~다 지난 일인걸 뭐 자랑거리도 아녀~?"
하며 겸연쩍은 듯 웃으신다.
내가 가면 컴퓨터 하고 놀다가도
얼른 끄시고 반갑게 맞으면서 자리에 앉으라고 권하시고
이런저런 대화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곤 한다.
몇 시간씩 대화를 해도 다른 사람에 관한 얘기 쓸데없는 얘기는
화제가 되지 않는다.
나는 고대 앞은 많이 지나다니고 캠퍼스는 몇 번 가본 적 있지만
학벌로 치자면 쪼끔도 내놓을 게 없으니 학벌 얘기를 하자하면
깨갱 거리고 한마디도 못하겠지만 지난 얘기는 한마디도 없이
현재 사는 얘기
즉, 예를 들면
"어제 저 할망구가 너무 먹어 배탈 나서 화장실을
수없이 들락날락 잠을 못 잤어!"
할머니를 보며 핀잔 아닌 핀잔을 즐겁게 한다.
그럼 할머니가 되받아쳐서
먹기 싫은 우유를 막으라해서
먹게 한 할아버지 탓이지 하며 깔깔 댄다
눈 오면 눈을 다 치워줘서 늘 고맙다는 인사말
어제오늘만 화재 삼는 분들이다.
나는 배운다.
내가 내 자랑을 하며 나 이런 사람이야라고 하기보다
잘 익은 벼가 되어 겸손해지면
남들이 저 사람 참 좋은 사람이야란 말을 들을 수 있는 게
잘 익어가는 인생이란 것을...
늘 부족한 나 자신을 이런 분들을 만나면서
채워가는 게 행복이라는 것도...
좋은 이웃과 정과담을 나누며 올 한 해도 예쁘게 살고 싶다.
진정한 자존심은,
자식이 잘못해도 이웃이 잘못하더라도
불만을 품지 않는 거란 것도...
첫댓글
맑은하늘 선생님의 산문 수필이
아름다운 감동의 잔영으로 남아
제가 대신 올렸습니다 감사합니다.